[상봉충격 대처]"만남이후 심리적 장애 주의해야"

  • 입력 2000년 8월 11일 18시 51분


남북한 이산가족의 만남은 당사자에게, 또 우리 사회에 어떤 ‘충격’을 던질 것인가.

정신과 전문의들은 상봉자들이 대부분 노인이라는 점을 들어 ‘정신적 충격’을 우려한다. 이들은 반세기 동안 죄책감, 절망감, 상실감 등이 복합된 ‘장기적 스트레스’에 시달려 왔다. 평생 상봉의 순간을 기다려 왔다고 해도 이번 만남은 심리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만남’이기 때문이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상봉 이후 이들이 월남전 참전 군인들에게서 나타났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세브란스병원 정신과의 전우택교수는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으면 그 상황이 지나가도 계속 재현되는 느낌을 받는다”며 “상봉자들이 이번에 만남―재이별의 과정을 겪으며 잠재돼 있던 고통의 요인들이 강화돼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우울증이나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쉽다는 것.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명제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 ‘핏줄’인 만큼 대화를 나누다보면 뭔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지만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무조건적인 이해’가 비교적 가능한 부모―자식간이 아닌 형제간의 만남에서는 ‘이성적’ 판단을 일절 배제하고 철저하게 감정적이 되라고 전문가들은 권한다.

사회적인 ‘문화충격’은 정상회담 때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인 회담이나 집단 대 집단의 만남이 아니라 개인적 만남의 성격이 짙기 때문에 문화충격의 여지가 적다는 것.

경기 안양 중앙병원의 신용구박사는 “흔히 우리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북측이 상처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허탈감을 더 느끼는 것은 우리 쪽일 것”이라고 말한다. 북측은 경제적으로 뒤떨어져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의 관심을 끄는 등 위상이 높아진 것에 대해 오히려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반면 경제적인 우월의식을 갖고 있던 우리 쪽에서는 당당한 북측 가족의 모습을 보며 오히려 혼란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통제된 사회에서 감정표현에 익숙지 않은 북측 상봉자들은 경제적인 측면보다는 자유롭게 감정을 뱉어내는 남측 가족을 통해 ‘문화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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