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부처간 무역수지 '120억달러'목표 논란

  • 입력 2000년 5월 15일 19시 47분


120억달러의 올해 무역수지 목표는 달성 가능한가. 또 이 목표는 반드시 고수해야 할 절대과제인가.

정부가 설정한 무역수지 목표가 흔들리면서 이같은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부처간에 전망치는 물론 적정한 무역수지 규모에 대한 이견도 나타나고 있다.

▽부처간 전망차이〓무역수지에 관한 한 정부의 공식입장은 당초 입장에서 변함이 없다. 4일 국제수지 관련 관계장관 회의에서도 흑자 전망치를 수정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같은 정부의 입장은 외형적으로는 장관회의라는 형식을 거쳤지만 사실은 청와대 이기호경제수석의 입김이 많이 작용한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정부의 공식입장에는 무엇보다 김대중대통령의 무역수지 목표 달성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바탕에 깔려 있어 정부내에서는 아무도 ‘감히’ 이 목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수출의 주무부서인 산업자원부의 내부 판단은 이와 사뭇 다르다. 당초 산자부는 올해 120억달러 흑자목표를 세우면서 1·4분기중 15억달러, 2·4분기 및 3·4분기중 각각 30억달러, 4·4분기 45억달러 등으로 흑자달성 계획을 짰다. 그러나 4월까지 흑자는 겨우 7억7000만달러. 산자부 관계자들은 “지금과 같은 사정에서라면 올해 무역흑자는 잘해봐야 80억달러 정도에 머무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대규모 흑자, 정상적인가〓흑자가 많으면 물론 나쁠 건 없다. 하지만 대규모 흑자가 정상적 현상인지, 우리 경제에 꼭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무역은 98년부터 흑자로 돌아서 2년반여 흑자를 내고 있으나 이같은 흑자행진은 사실 이례적인 것. 80년대 중반 반짝 흑자를 낸 것 외에는 97년까지 줄곧 적자였으며 98년 이후 흑자도 IMF사태에 따른 극심한 내수 위축과 환율상승으로 수입이 줄어들면서 나타난 반사적 현상인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많은 전문가들은 현재 무역수지 추이는 98, 99년의 ‘비상상황’에서 벗어나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대규모 흑자 목표에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이제는 예전처럼 무역수지가 대외신인도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지 않다”며 “무조건 대규모흑자를 고집하기보다는 적정규모의 수지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무역수지에 지나치게 집착해 수입 억제책을 펼 경우 산업구조 고도화에 필요한 정보화 관련 투자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도 말했다.

산업연구원 심영섭(沈永燮)선임연구위원은 “우리 경제가 국제수지 목표치 고수에 안간힘을 쓰다가 행여 무리수를 두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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