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하씨 증언거부]정권탈취과정 역사에 묻힐듯

입력 1996-11-14 20:28수정 2009-09-2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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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圭夏전대통령이 14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11차 공판에 강제구인됐지만 법정에서 끝내 증언을 거부함으로써 신군부 정권탈취 과정의 진상이 상당부분 「역사의 과제」로 남게 됐다. 全斗煥 盧泰愚 두 전직 대통령 등 이 사건 피고인들의 유무죄 판단과는 별도로 이 사건의 핵심부분이 결국 후세 역사가들의 몫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崔전대통령의 증언거부로 영원히 진상을 밝히기 어렵게 된 첫번째 사안은 12.12당일 밤 崔전대통령이 鄭昇和 당시 육참총장의 연행을 재가할 당시 신군부측의 강압이 있었는지 여부다.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을 종합하면 崔전대통령은 사태가 이미 鄭총장 연행을 재가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른 사실을 감지하고 마지못해 재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변호인들은 崔전대통령이 처음부터 재가할 요량이었으며 결재서열상 중간에 위치한 盧載鉉국방장관이 피신하지 않았더라면 곧바로 재가가 났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두번째 사안은 80년 4월 당시 全斗煥보안사령관을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변칙 임명한 이유다. 당시 全씨는 이미 군정보를 독점하고 있었는데 민간정보를 독점하는 중앙정보부장 자리까지 全씨에게 넘긴 이유가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세번째는 5.17계엄확대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를 왜 재가했느냐 하는 의문이다. 변호인측은 이같은 결정은 모두 崔전대통령의 판단에 의한 것이라며 계속 피고인들의 내란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검찰측은 이를 내란의 시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네번째는 80년 8월16일 崔전대통령이 갑자기 하야를 결심하게 된 배경이다. 검찰측은 신군부측이 유무형의 압력를 계속 가했으며 「밀사」를 시켜 하야를 종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반해 변호인측은 신군부측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주장해 왔다. 〈河宗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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