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왜 53년 만의 NBA 우승에 열광하나
가난한 이민자의 스포츠… 스트리트 농구 활발
9·11테러-코로나19로 ‘회복력’ 중시 문화 정착
닉스 관련 마케팅으로 3.8억 달러 경제 효과
지난달 1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펼쳐진 뉴욕 닉스의 NBA 우승 축하 기념 퍼레이드에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뉴욕=AP 뉴시스
임우선 뉴욕 특파원
《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웨스트4’ 지하철역 인근 농구장. 한 떼의 인파가 역 바로 앞에 마련된 경기장 인근에서 농구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트리트 농구의 성지’인 ‘더 케이지(The cage)’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지하철역 앞 인도에 바로 붙어 있는 농구장이다. 주변에 약 6m 높이의 높은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고 사람들이 철조망에 얼굴을 대고 경기를 지켜보는 모습이 마치 동물원의 우리 같다고 해서 ‘케이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경기장에서는 누구나 뛸 수 있다. 다만 수준급 아마추어 선수들이 즐겨 찾아 그 수준은 프로농구를 방불케 한다는 평가다. 경기장의 시설과 운영 방식도 진짜 농구장을 닮았다. 경기장 전면에는 점수를 표시하는 전광판이 있고, 마이크를 잡고 실시간 경기 상황을 해설해 주는 아나운서도 있다. DJ는 경기 전후와 하프타임에 신나는 힙합 음악을 틀어준다.
이곳의 한 자원봉사자는 “미국프로농구(NBA) 선수들도 오프 시즌 때는 이곳을 찾아 농구 경기를 한다”며 “최근 뉴욕 닉스가 NBA 우승을 확정한 뒤 이곳의 열기 또한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는 “뉴요커들에게 농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맨몸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공 하나로 모든 이와 연결될 수 있는 뉴욕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강조했다.
● 53년 만의 NBA 우승에 뉴욕 열광
뉴욕 닉스 테마의 옷차림을 하고 지하철에 탄 뉴요커들. 지난달 뉴욕 닉스의 NBA 우승으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른 뉴욕에서는 어딜 가든 닉스 유니폼을 입은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뉴욕 닉스는 1946년 창단됐다. 지난달 3∼13일 7전 4선승제로 치러진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NBA 챔피언 결정전에서 4승 1패로 통산 세 번째 NBA 우승을 차지했다. 닉스의 이전 우승은 무려 53년 전인 1973년. 결승전에 진출한 것도 1999년 이후 27년 만이었기에 결승전 진출이 확정된 순간부터 도시 전체가 열광적인 응원전에 돌입했다.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장식하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JP모건체이스 신사옥 등 유명 고층 빌딩은 일제히 뉴욕 닉스의 상징색인 주황과 파랑으로 빌딩 불을 밝혔다. 시민들은 경기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너도나도 닉스 유니폼은 물론이고 닉스의 로고가 새겨진 모자와 티셔츠 등을 입고 다니며 팀을 향한 지지 메시지를 보냈다. 센트럴파크를 달리는 마차의 말들도 닉스 응원 망토를 두르고 달렸다. 뉴욕 공공도서관은 도서관 컴퓨터의 바탕화면마다 닉스 응원 문구를 띄웠다.
뉴욕 교육청은 학부모들에게 메일을 보내 닉스 경기가 있는 날 학생들이 주황과 파랑 티셔츠를 입고 학교에 와 닉스 응원에 동참하도록 하자고 권했다. 뉴욕 시민 에런 씨는 “뉴욕이 이렇게 완전한 하나가 된 건 정말 오랜만이다”라고 했다.
뉴욕 닉스의 우승 닷새 후인 지난달 18일 맨해튼 남부에서 펼쳐진 ‘티커테이프 퍼레이드(Ticker-tape Parade)’에서도 진풍경이 이어졌다. 수많은 시민이 퍼레이드에 나선 닉스 선수들을 직접 보고 환호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일부는 인근 건물 지붕 위는 물론이고 담벼락과 나무 위에까지 매달렸다.
이날 퍼레이드는 300년 넘는 뉴욕의 역사가 녹아있는 특별한 행사로 꼽힌다. 이 행사는 ‘영웅들의 협곡’이라 불리는 맨해튼 남부 고층빌딩 밀집 구역을 따라 펼쳐진다. 과거 월가에서 일하던 증권사 직원들이 퍼레이드가 열릴 때 창밖으로 주식 시세 정보를 출력하던 종이테이프(티커테이프)를 뿌리며 축하하던 것에서 유래했다. 미국과 뉴욕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우주비행사나 스포츠 선수 등이 있을 때 이 행사가 마련된다. 이날 닉스 선수들은 하늘 가득 흩날리는 색종이 가루 속에서 시민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
● 뉴욕의 회복력 상징
미국은 워낙 스포츠가 발달한 나라다. 그중에서도 농구는 가장 인기 있는 종목으로 종종 꼽힌다. 뉴욕 닉스의 NBA 우승에 대한 뉴욕의 열광은 그 자체로 이해할 만하다. 다만 뉴욕 시민들의 기쁨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농구가 뉴욕에서 갖는 사회 문화적 의미, 닉스의 승리가 보여주는 가치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평가다.
뉴욕에서 농구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도시의 사회적 정신과 생존 방식을 보여준다. 뉴욕은 수백 년 전부터 미국에서 가장 다양한 이민자들이 모이는 도시였다. 뉴욕에서 쓰이는 언어가 600가지가 넘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맨손으로 도착해 자신만의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는 곳이 바로 뉴욕이다.
이런 상황에서 농구는 말이 통하지 않고 큰돈이 없어도 공 하나로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스포츠였다. 특히 사방이 트인 공간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펼쳐지는 ‘스트리트 농구’는 오직 맨몸과 실력으로 자기 자신을 입증할 수 있는 가난한 청년들의 탈출구로 기능했다.
특히 땅이 비좁은 뉴욕에서는 정규 코트 사이즈보다 작은 공터 코트에서 하는 ‘스트리트 농구’가 발전했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거친 몸싸움과 화려한 드리블이 곧 뉴욕의 리듬이 돼 힙합 음악과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해석도 있다.
뉴요커들이 닉스의 우승에 열광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회복력(resilience)’의 가치를 보여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01년 전대미문의 9·11테러, 코로나19 팬데믹 등을 겪은 뉴욕은 고난으로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강인함을 각별히 높이 산다.
올해 NBA 결승전에서 닉스는 매 경기 초중반 상대편에 10점 이상 지는 상황에서 오뚝이처럼 일어나 역전에 성공했다. 닉스가 뉴욕의 회복력과 불굴의 의지를 고스란히 보여줬다는 평이 나왔다. 조란 맘다니 뉴욕 시장은 “닉스는 뉴욕시를 위해 승리했을 뿐 아니라 뉴욕시다운 방식으로 승리했다”고 치하했다.
● 경제 효과도 상당해
뉴욕 닉스의 NBA 우승은 뉴욕에 경제적으로도 큰 기여를 했다. 뉴욕시 경제개발공사(NYCEDC)에 따르면 닉스의 결승전 진출 이후 뉴욕시에서만 약 3억8000만 달러(약 5814억 원) 이상의 경제적 가치가 창출됐다.
결승전 3차전에서는 가장 싼 표가 4112달러(약 629만 원)에 팔릴 정도로 티켓 시장의 규모가 커졌다. 또 매 경기 날 뉴욕 일대의 주요 식당, 펍 등에서는 단체 관람 행사가 잇따랐고 이에 관련 소상공인의 매출도 크게 뛰었다. 닉스 관련 굿즈의 출시도 급증해 거리 노점상부터 고급 백화점에 이르기까지 닉스 관련 매출이 치솟았다.
뉴욕타임스(NYT)는 “닉스 열풍이 계속되면서 본사가 뉴욕에 있지도 않고, 농구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기업이나 브랜드들도 닉스를 주제로 한 마케팅에 열심”이라며 뉴욕 닉스를 활용한 소셜미디어 게시물 또한 일반 게시물보다 약 5배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러큐스대 뉴하우스 광고대학원의 베스 이건 교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오늘날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정치화되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닉스가 이런 상황에서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기에 많은 브랜드들이 쉽게 동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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