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주제일고 강당에서 서울 배재고 야구부 선수단이 광주제일고 야구부 선수단을 향해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배재고 야구부는 지난달 29일 광주제일고 야구부와의 경기 중 5·18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내용의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이 됐다. 이날 배재고 학생들과 교사들은 광주제일고를 방문해 “학생들과 전남광주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전달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6일 오후 3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누문동 광주제일고 강당. 남색 교복을 입은 광주제일고 야구부 선수들과 교직원 등 50여 명이 배재고 측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온 배재고 야구부 선수단과 교직원, 학부모 등 80여 명이 강당으로 들어섰다.
사회를 맡은 광주제일고 김영주 교감이 “전체 차렷, 상호 인사”라고 하자 양측 참석자들은 서로 고개를 숙였다. 이어 배재고 선수 대표가 단상에 올라 사과문을 읽었다. 지난달 29일 양측이 맞붙은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5·18민주화운동 조롱’ 논란이 불거진 뒤 양측 학생들이 7일 만에 마주한 것.
● “다시 만나면 정정당당한 승부 기대”
야구 경기 중 광주제일고 선수들을 상대로 5·18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내용의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이 된 서울 배재고 야구부 선수단 주장이 6일 공개한 자필 사과문. 서울시교육청 제공배재고 선수 대표는 “부적절한 발언으로 큰 상처를 입은 광주제일고 선수, 학부모, 광주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건으로 모든 선수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으며, 야구를 떠나 인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배우게 됐다”고 했다.
사과문 낭독이 끝나자 배재고 선수들은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배재고 야구부 주장은 광주제일고 야구부 주장에게 사과문을 전달한 뒤 악수했다. 권오영 배재고 야구부 감독도 “저희로 인해 상처를 받은 광주제일고 선수, 감독, 코치진에게 마음을 다해 죄송하다고 말씀드린다”며 “깨끗하고 정정당당해야 할 경기에서 더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고 사과했다. 이효준 배재고 교장도 “가슴속 깊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눈물을 흘렸다. 배재고 학부모들은 뒷좌석에서 고개를 숙인 채 사과 과정을 지켜봤다.
광주제일고 측도 사과를 받아들였다. 조윤채 광주제일고 감독은 “중요한 것은 실수를 반성하고, 화해하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라며 “다시 정정당당하게 멋진 승부를 하는 날을 기대한다”고 했다.
이규연 광주제일고 교장은 “배재고 학부모들이 눈물을 흘리고 학생들도 울먹이고 있어 안타깝다”며 “배재고 학생들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라. 학생들의 미래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을 잘못 이끈 것은 어른의 책임이고,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발전하고 변화된 모습으로 서는 것이 진정한 화해와 용서”라며 “두 학교의 전통이 한순간의 실수로 부정되는 일이 없도록 이번 일을 반성과 화해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배재고와 광주제일고가 지닌 역사와 전통도 언급하며 화해를 강조했다.
● 양교 선수들, 5·18민주묘지 합동 참배
논란은 지난달 29일 청룡기 대회 배재고와 광주제일고 경기에서 불거졌다. 배재고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외친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구호가 5·18민주화운동을 조롱했다는 비판을 받은 것. 광주제일고가 즉각 항의했고, 경기 뒤에도 논란은 확산됐다. 이에 배재고는 1일 광주제일고를 찾아 사과하려 했지만, 광주제일고 측이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을 이유로 방문을 미뤄 달라고 요청하면서 한 차례 불발됐다. 이후 논란은 정치권 공방으로까지 번졌지만 두 학교와 선수들 사이에서는 배재고 선수들이 이날 광주제일고 선수들을 만나 직접 사과하고 광주제일고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두 학교 학생들은 약 30분 동안 사과와 화해의 시간을 가진 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을 참배했다. 이어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로 이동해 함께 참배했다. 이날 광주제일고 출입문 주변에서는 일부 시민과 유튜버들이 모여 “배재고 선수들 반성하라”, “배재고 선수 파이팅” 등 엇갈린 구호를 외치기도 했지만 별다른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서울시교육청은 다음 달까지 전체 학교 운동부를 방문해 인권 교육 등 운영 실태를 점검하기로 했다. 또 학교체육진흥회와 함께 학생 선수들을 대상으로 혐오·차별적 표현을 금지하고 건전한 응원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교육 자료를 개발할 예정이다. 배재고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는 역사 교육, 인권 교육, 차별·혐오 표현 방지 교육도 지원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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