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세형]텍사스로 기업과 사람이 가는 이유

  • 동아일보

이세형 국제부장
이세형 국제부장
“텍사스는 명실상부한 ‘기업 본사의 중심지’다.”

지난달 미국 경제매체 포천이 미국 500대 기업(매출 기준) 중 가장 많은 기업이 본사를 두고 있는 주(州)가 텍사스라고 발표하자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이같이 밝혔다.

미국 500대 기업 가운데 57곳의 본사가 자리 잡고 있는 텍사스는 오랜 기간 미국의 산업 중심지로 여겨져 온 캘리포니아(56곳)와 뉴욕(53곳)을 앞섰다. 텍사스에 본사를 둔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오라클, 테슬라, HP, 스페이스X, 셰브론 등이 꼽힌다.

낮은 세금과 주택 가격, 보수 문화

미국 유명 기업의 본사를 대거 유치한 텍사스의 성공 비결은 어찌 보면 평범하다. 또 교과서적이다. 기업 하기 좋은 여건을 적극적으로 조성했기 때문이다.

텍사스는 미국의 대표적인 원유 생산지라 재정이 풍부하다. 그러다 보니 세금이 적다. 개인 소득세는 없고, 법인세같이 기업이 내야 하는 세금도 적은 편이다. 세금 부담이 높기로 유명한 ‘경쟁자’ 캘리포니아와 대표적으로 구별되는 특징이다. 미국의 조세연구기관인 택스파운데이션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의 개인 소득세 최고 세율은 13.3%로 미국에서 가장 높다. 심지어 순자산 10억 달러 이상의 부자들을 겨냥한 ‘억만장자세’ 도입도 검토됐다.

주택 가격과 전반적인 생활 물가 역시 텍사스는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에 비해 많이 낮다.

이런 장점들 속에서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에 비해 보수적인 문화도 기업과 그 구성원이 텍사스를 선호하는 이유로 부각되고 있다. 텍사스는 대선과 상·하원 선거에서 꾸준히 공화당이 강세를 보여온 전통적인 보수 성향 지역이다. 당연히 캘리포니아와 뉴욕 같은 진보 성향 지역에 비해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과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등을 강조하는 문화가 약하다.

성소수자에 대한 다양한 배려, 마약과 범죄에 상대적으로 관용적인 정책 등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화 충격을 겪을 일이 텍사스에선 적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2024년 스페이스X 본사를 캘리포니아에서 텍사스로 옮길 때 캘리포니아의 뿌리 깊은 진보 문화를 문제로 지적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정부연구소가 2020년 진행한 여론조사에선 캘리포니아를 떠나고 싶어 하는 주민 중 절반 정도가 ‘정치와 문화’도 이주를 고민하게 만드는 이유로 꼽았다.

최근 만난 실리콘밸리 빅테크의 엔지니어 S 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미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나온 뒤 20여 년간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한 50대 교포인 그의 주변에도 텍사스의 기업으로 옮긴 지인들이 있다. S 씨는 “텍사스로 간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캘리포니아에 비해 낮은 세금, 저렴한 주택 가격과 함께 PC와 DEI를 강조하지 않는 분위기도 장점으로 내세웠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가 캘리포니아에선 흔한 성 중립 화장실 같은 것을 접할 일이 없어 다행이다’란 말을 하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고 덧붙였다.

말 그대로, PC주의로 인한 심리적 불편함을 훨씬 덜 경험한다는 것도 ‘캘리포니아 주민’에서 ‘텍사스 주민’이 된 이들이 꼽는 장점인 것이다.

정책 못지않게 문화와 정서도 중요

기업 중심지로서 텍사스의 성과는 정책과 규제 못지않게 지역의 문화와 정서도 기업과 그 구성원을 유치하는 데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또 기업과 사람들이 각각 사업과 일자리를 생각할 때 경제적 측면은 물론이고 문화적인 요소 역시 심도 있게 고려한다는 것도 시사한다. 전 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기업 유치, 기업 키우기 경쟁에서 성과를 내려면 당장은 눈에 보이는 파장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특정 문화와 이념이 과도하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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