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그레이엄은 기업 실적이나 내재 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주식을 골라 매수하는 ‘가치투자’ 전략을 만든 전설적 투자자다. 그는 1929년 대공황 당시 뼈아픈 투자 실패를 겪은 뒤 기업의 본질적인 경쟁력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후 투기판에 불과했던 미국 증시에서 독보적인 수익률로 자신의 이론을 증명해 냈다. 그의 컬럼비아대 강의를 들었던 워런 버핏은 “내 지식의 15%는 아버지에게서, 85%는 벤저민 그레이엄에게서 받았다”고 말하곤 했다.
▷‘고위험 고수익’을 지향하는 투자자들은 장기적 관점을 전제로 둔 가치투자에 답답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또 다른 개념인 성장투자 역시 기업의 미래 잠재력을 보고 결정하는 것이어서 ‘단타족’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전문 지식이 부족한 일반 투자자들이 고위험 파생상품까지 손을 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틈새를 파고든 게 2006년 미국에서 처음 나온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였다. 기준이 되는 지수나 종목이 상승하면 ‘지렛대’라는 이름처럼 수익률이 두세 배, 하락하면 손실도 두세 배가 되도록 설계된 상품이었다.
▷한국에서도 2010년 지수 추종형 레버리지 ETF가 처음 선을 보였는데, 올 5월 말 단일 종목에 따라가는 레버리지 ETF도 허용됐다. 기다렸다는 듯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반도체 기업에 대한 레버리지 상품이 나란히 7종씩 상장됐다. ‘삼전닉스’의 기록적인 주가 상승기에 올라타지 못했던 이들은 앞다퉈 투자에 나섰다. 중장년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두 곳의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 투자자 14만9000명 중 40, 50대가 9만1000명으로 60%가 넘었다. 2030세대보다는 투자 여력이 크고, 6070세대보다는 상대적으로 도전적 투자 성향을 가져서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제는 레버리지 상품들이 ‘블랙홀’처럼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품들은 나온 지 한 달여 만에 누적 거래액이 300조 원에 육박하고 있다. 3일 하루만 놓고 보면 코스피 전체 거래대금의 3분의 1이 이 14개 상품에 집중됐을 정도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기대와 달리 이 상품들의 수익률은 예외 없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중이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7일 “레버리지 투자로 가계 재무 건전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올해만 매수나 매도 사이드카가 수십 번 울린 코스피 시장은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품 등장 이후 변동성이 더 커진 게 사실이다. 반도체 의존도가 더 심화된 탓이다. 코스피는 2026년 기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오른 동시에 가장 불안정한 시장이 됐다. 대공황 당시 그레이엄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됐다. 지금의 코스피는 여전히 투자 시장일까, 투기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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