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덕

김창덕 부장

동아일보 산업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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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창덕 부장입니다.

drake007@donga.com

취재분야

2024-06-13~2024-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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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창덕]‘로또 분양’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신반포15차를 재건축해 다음 달 공급될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 일반 분양가가 최근 결정됐다. 3.3㎡당 6737만 원. 1월 서초구 잠원동에서 분양한 ‘메이플자이’(6705만 원)를 넘어 사실상 역대 최고가라고 한다. 같은 달 주인을 찾은 서울 광진구 광장동의 ‘포제스한강’이 1억 원대였지만 아파트라기보단 초고급 빌라에 가까운 단지다. 원펜타스는 높은 분양가 이상으로 눈길을 끄는 게 있다. 어마어마한 기대 수익이다. 원펜타스 분양가는 가장 작은 전용면적 59㎡가 16억 원대, 84㎡는 23억 원가량이다. 작년 8월 입주한 인근 ‘래미안 원베일리’의 비슷한 평형대 매매가격은 각각 32억 원과 43억 원 안팎. 원펜타스 30평형대에 당첨되면 당장 20억 원 가까운 시세차익을 얻는다는 얘기다.‘복권 제조기’ 전락한 분양가상한제 원펜타스가 ‘로또 분양’이라 불리는 이유다. 청약시장은 벌써부터 들썩인다. 몇 년간 전매가 제한되고, 비록 3년 유예된 상태지만 실거주 의무도 있어 단기 차익 실현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닌데도 말이다. 액수가 20억 원이라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시장에선 보는 모양이다. 이런 기현상은 집값을 억누르기 위해 고안된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고 있기에 벌어진 일이다. 2005년 3월 도입된 이 제도는 천정부지로 솟은 아파트 분양가를 인위적으로라도 끌어내리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투기과열지구 중에 분양가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의 2배가 넘는다든지, 거래량이 갑자기 늘면 적용 대상으로 지정된다. 분상제는 도입 후 폐지와 부활을 거듭했다. 최근에는 2020년 7월 민간 택지까지 확대 시행됐다가 지난해 1월부터 다시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아직까지 분상제가 적용되고 있는 지역은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뿐이다. 분상제 적용 아파트가 복권으로 둔갑한 것은, 바꿔 말해 정책 효과가 작았다는 말과 같다. 분양가를 낮춰 주변 시세까지 안정시키길 바랐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다. 결국 분상제는 청약 당첨자들에게 인근 단지와의 시세차익을 선물로 안겨주는 장치로 전락했다. 물론 분양가 상한선이 없었다면 재건축조합이나 시공사가 더 챙길 수 있었던 몫을 일반 분양자가 일부 나눠 갖게 된 셈이라는 주장도 있다. 제3자가 보기에는 ‘도긴개긴’일 뿐이지만. 원펜타스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수많은 청약 대기자들이 있지만 대부분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일반 분양자가 시세차익을 챙기려면 본인 수중에 적어도 20억 원의 현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거주 의무가 3년 유예돼 당장은 전세를 놓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이들도 있는데, 3년 후 실거주 의무제가 폐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목돈을 쥔 사람들에게만 입장권이 교부된 ‘그들만의 리그’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부에선 편법과 탈법이 횡행할 수 있다. 시장에선 “자금이 한 푼도 없더라도 청약을 넣지 않으면 바보”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 일단 당첨만 되면 어떻게든 방법이 생긴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금융기관 대출 조건이 까다로운 만큼 외부 자금이 법망을 피해 들어오는 과정에서 시장이 혼탁해질 수밖에 없다.부작용 컸던 정책들 과감하게 걷어내야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고 내놓은 수많은 정책들은 ‘실패’의 멍에를 쓰고 수정되거나 사라졌다. 연명 중인 분상제가 바로 그런 정책의 한 사례다. 이미 많은 부분 완화돼 효력이 줄어든 종합부동산세도 정치권에서 폐지 얘기가 흘러나오는 중이다. 아파트값은 무리한 정책으로 수요를 찍어 누르면 누를수록 오히려 팽창하는 힘이 커지곤 했다. 제 몫을 다하지 못한 규제나 세제는 이제라도 과감하게 걷어낼 필요가 있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라는 기본 중의 기본에 시장을 한번 맡겨 보는 건 어떨까. 김창덕 산업2부장 drake007@donga.com}

    • 202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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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창덕]‘고객’ 외면한 정책이 성공한 사례는 없다

    정부는 작년 초 한국토지주택공사(LH) 매입임대 사업에 대해 주택을 사들이는 가격을 ‘원가 이하’로 정했다가 올 2월 ‘합리적 시장가격’으로 바꿨다. 매입임대는 LH가 주택을 직접 사들여 청년, 신혼부부, 고령자, 저소득층 등에게 저렴하게 임대하는 사업이다. 1년 만에 기준을 되돌린 건 지난해 매입 실적이 목표치의 23%에 그쳤기 때문이다. 사실 이 수치는 2020년 100%에서 2021년 67%, 2022년 46%로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조건에 맞는 매물 찾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단 얘기다. 그런 사정을 무시하고 원가도 쳐줄 수 없다고 하니 매물이 나올 리 없었다. 시장을 외면한 정책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모든 정책에는 저마다의 고객이 있다 3월에는 아파트 공시가격을 층(7개 등급)과 향(8개 방향), 조망(도시·숲·강), 소음(강·중·약) 등에도 등급을 매겨 전면 공개하겠다던 기존 방침을 철회했다. 이런 요소들에 따라 아파트 가격 차이가 나는 게 사실이더라도 정부가 등급을 매겨 공표까지 하면 개인 자산에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깜깜이 공시’라는 비판을 피하겠다는 목적만 그럴듯했지, 시장 반응에 대한 고민은 얕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주택 정책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최근 정부는 국가통합인증마크(KC)를 받지 않은 80개 품목의 해외 직접구매(직구)를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사흘 만에 거둬들였다. 위해 제품 수입을 차단해 소비자들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대책인데, 그 소비자들이 정작 뭘 원하는지는 읽지 못한 결과다. 정부도 오판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기업 총수들이 내는 메시지 중 가장 많이 언급하는 단어가 ‘고객’이다. 기업의 생존이 고객에게 달려 있어서다. 기업이 이해하려는 대상은 시장에서 타깃 고객층으로, 그리고 개인으로 점차 좁혀졌다. 이젠 인공지능(AI)을 접목하면서 개인이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에 반응할지까지 들여다본다. 모든 정책도 마찬가지로 고객이 있다. 매입임대 사업은 우선 집을 갖고 있거나 지으려는 이들부터 해당 정책에 호응해야 한다. 그래야 집을 최대한 확보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싸게 빌려줄 수 있다. 아파트 공시가격은 현재 집을 가진 이들은 물론이고 미래에 집을 사려는 잠재 구매자들까지도 해당 정책에 영향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이 고객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해외 직구 논란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정책 입안자들에게 기업 수준의 고객 분석을 요구하는 건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특정 고객들만 잡으면 되는 기업과 달리 국가는 특정 계층에게만 이로운 정책을 설계해선 안 된다는 논리에서다. 그러나 기업 전략이나 국가 정책 모두 고객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고 본다.쉽게 만든 정책일수록 부작용도 큰 법 요즘은 국민들의 행태가 예전보다 훨씬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어 공무원들도 정책 결과를 예측하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시장이나 이해당사자들의 상황을 더 치밀하게 분석해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책상에 앉아 쉽게 만든 공급자 위주 정책은 어떤 후폭풍을 낳을지 가늠하기 힘들다. 반면 고객 관점의 정책은 만들기는 어려워도 시행은 오히려 쉽다. 작은 것부터라도 변화를 시도해 봤으면 한다. 이를테면 장관 사진 한 컷을 얻기 위한 현장 방문이나 기업 다그치기 용도의 업계 간담회를 ‘각계 의견 수렴’으로 포장하는 일부터 중단하면 어떨까.김창덕 산업2부장 drake007@donga.com}

    • 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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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레라가 전 세계 어디서 창궐하든, 결국 이 사람만 바라본다[데스크가 만난 사람]

    《‘Material Description: Euvichol, Inactivated Oral Cholera Vaccine Order qty: 1,000,000 Price per unit: 1.70 USD’2016년 10월 17일 밤. 유니세프로부터 납품요청서가 날아들었다. 불활성화 콜레라 백신 ‘유비콜’을 100만 도스(1도스는 1회 접종분) 주문한 것이었다. 카리브해 최빈국 아이티에 긴급하게 보낼 물량이라고 했다. 계약 금액은 170만 달러. 당시 환율로 약 19억3000만 원 수준이었다. 규모는 중요치 않았다. “공식 주문이 아직 한 건도 없는데 어떻게 믿나”라는 반대에 막혀 상장예비심사 통과 가능성이 거의 사라지던 무렵이었다. 극적으로 유니세프 주문서가 도착한 건 3차 전문가 회의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였다. 상장예비심사 승인 통보를 받은 그해 11월 7일 백영옥 유바이오로직스 대표(62)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백신을 개발해 공급한다는 것은 어느 날 나에게 뚝 떨어진 운명 같았다. 멈추면 더 힘드니 달렸다. 그래서 오늘이 왔다.”유바이오로직스는 이듬해 1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한국에 있는 세계 유일의 콜레라 백신 생산기지 현재 세계에서 콜레라 백신을 생산하는 기업은 딱 한 곳, 한국의 유바이오로직스다. 샨타바이오테크닉스라는 인도 기업이 있었지만 지난해 말 생산을 중단했다. 콜레라처럼 저개발국에서 많이 발생하는 공공 백신의 경우 이른바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생산업체를 찾는 것조차 힘들다.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콜레라가 다시 유행하자 한국 백신이 유일한 희망으로 떠오른 셈이다. 유니세프가 올해 유바이오로직스에 약속한 연간 주문량은 4933만 도스로 약 1240억 원어치에 해당한다. 2016∼2023년 8년간 누적 납품량 1억3000만 도스의 40%에 육박하는 규모다. 현재 콜레라 유행 심각성으로 볼 때 연간 매출액 첫 1000억 원 돌파는 거의 확정적인 셈이다. 백 대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보니 납기나 품질을 더 철저히 맞춰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다”더니 “그래도 대량 오더를 받은 직후엔 안도감부터 들었던 게 사실”이라며 웃었다. 유바이오로직스는 국제백신연구소(IVI)의 기술 이전을 받아 콜레라 백신을 생산할 목적으로 2010년 창업한 회사다. 한국에 본부를 둔 첫 국제기구인 IVI는 ‘가능하면’ 한국 기업이 샨타바이오테크닉스에 이은 제2의 백신 생산기지가 돼 주길 바랐다. 공동 창업자 3명이 그 기회를 잡았다. 백 대표는 전문경영인으로 회사 초기에 합류했다. 공동 창업자들이 말 그대로 삼고초려를 했다고 한다. 수의대 출신에 CJ제일제당 바이오제약본부에서 18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바이오공정실장으로 4년을 지낸 최고의 현장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그가 제안에 솔깃했던 이유는 이랬다. “비록 스타트업이지만 개인과 국가를 넘어 공공의 이익에 기여한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게다가 ‘부를 가진 자’에게서 기부받은 돈으로 ‘부를 갖지 못한 자’에게 나누는 일이잖아요.” 백 대표는 지금도 임직원들에게 “우리는 좋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회사니까 보람을 가져도 된다”고 말한다고 한다. 또 주변 지인들이 유바이오로직스 주가 전망을 물어보면 “당신이 한 주 사면 아프리카 애들이 백신 한 번 더 맞을 수는 있다”고 답한다. 그는 “어릴 때 맞았던 백신들이 모두 해외 원조로 받은 것들이었는데, 이젠 한국 기업 유바이오로직스가 없으면 전 세계가 콜레라 백신을 맞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유바이오로직스가 한국이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이 된 2010년 설립된 것이 우연이 아닌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고 했다.● 월급 밀린 직원들 감동시킨 ‘20만 원짜리 우동’ 스타트업이, 그것도 IVI라는 국제기구와 함께 처음 백신을 만들어 본다는 게 당연히 쉽진 않았다. 우선 투자 유치가 문제였다. 자본금은 3억 원으로 시작해 유상증자를 거듭하면서 20억 원까지 늘렸지만 연구개발(R&D) 비용을 대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국내 대기업이나 대표 제약사들의 문을 무작정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관심을 보이는 곳들이 꽤 있었음에도 투자는 번번이 무산됐다. 백 대표는 “직접 가방을 싸 짊어지고 70∼80곳은 다녔다”며 “몇몇 회사는 투자를 약속하고 실사까지 했는데 마지막에 틀어지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실제 한 회사는 공탁금 50억 원을 걸겠다는 적극성까지 보이다 중도에 포기했다. 다른 회사는 기업 오너의 투자 승인까지 받았는데, 주금을 납입해 주기로 한 날 결정을 뒤집었다. 창업자 중에서도 이탈자가 생겼다. 3년차에 접어들던 2012년 가을부터 직원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다. 스타트업들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한 번은 건너가야 한다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였다. 그해 말 백 대표는 회계 담당 직원에게 통장에 남은 잔액이 얼마인지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400여만 원. 그는 전 직원 20명에게 20만 원씩을 이체하라고 했다. 그러곤 단체 메시지를 보냈다. ‘많지는 않지만 20만 원을 급여계좌에 이체했으니 크리스마스에 가족들과 따뜻한 우동이라도 사드세요. 밀린 급여는 곧 마련해 지급하겠습니다.’ 백 대표에게도 그날의 일은 너무나 생생하다. 본인도 직장 생활 20여 년간 모아온 적금, 보험 가릴 것 없이 모두 깬 것도 모자라 빚까지 지면서 회사 자금으로 넣은 상태였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지 못한다는 게 가장 고통스러웠다. 그때 우동이 떠오르더란다. “우리가 어릴 때 경부선 타고 다니면 대전역에서 2, 3분 정차할 때 꼭 우동을 먹었잖아요. 시골(백 대표 고향은 경남 거창군이다)이니 장날에 읍내에 나가 우동 한 그릇 먹고 오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거든요.” 백 대표의 진심은 직원들에게도 닿았다. 춘천 공장에 출장을 갔던 박영신 국제업무 담당 전무(53·당시 생산2본부장)는 서울행 ITX를 기다리는 기차역 플랫폼에서 그 문자를 받았다. 그는 2020년 발간한 창립 10주년 사사(社史)에 이렇게 썼다. ‘태연한 척 감정을 숨기고 지내왔던 기억들이 일순간에 스치며 눈물이 솟아올랐다. 가족들과 우동을 사 먹지는 않았지만, 20만 원짜리 근사한 우동을 먹은 것처럼 뿌듯했다.’ 그해 ‘20만 원짜리 우동’ 선물을 받은 직원 대부분은 여전히 회사를 지키고 있다. 현재 320명까지 늘어난 임직원들 중 그때 이야기를 모르는 이는 없다. 백 대표는 “그 시절을 함께 겪어낸 이들이 지금까지도 회사에 남아 중추적인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게 이 사업을 하면서 가장 고마운 일”이라고 했다. 2013년 5월 드디어 첫 투자 유치의 결실이 맺어졌다. IVI와 오랜 협업 관계인 빌&멀린다게이츠재단의 지원 사격에 힘입어 서울시바이오펀드가 움직였고, 녹십자와 한국투자파트너스까지 참여하면서 50억 원이 통장으로 들어왔다. 이듬해 콜레라 백신 ‘유비콜’의 임상 3상과 공장 증설이 진행됐고, 2015년 12월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사전적격성평가(PQ) 인증을 획득했다.● 선진국에서 돈 벌어 개발도상국에 베푸는 게 목표 유바이오로직스는 추가적인 백신 개발에도 한창이다. 매년 2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 장티푸스 백신은 필리핀에서 임상 3상을 마치고 2026년 출시를 앞두고 있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을 대상으로 한 수막구균염 백신도 국제보건기술연구기금(라이트펀드), 빌&멀린다게이츠재단과 3자 공동으로 개발 중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공공 백신만 가지고 기업을 꾸려갈 수는 없다는 게 백 대표 생각이다. 공공 백신은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지만, 저개발 국가에 지원되는 용도이다 보니 가격대가 낮다. 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 다른 ‘캐시카우’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준비 중인 다음 스텝은 바이러스 백신이다. 콜레라, 장티푸스, 수막구균염 같은 세균 백신은 주로 공공 부문에서 수요가 많지만, 바이러스 백신은 주로 선진국 시장이 크다.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나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VZV) 등이 대표적이다. 공공 백신이 한 번 접종에 1, 2달러라면 의무 접종이 아닌 ‘프라이빗 백신’은 200∼300달러를 내야 한다. 유바이오로직스는 이미 미국 팝바이오테크놀로지와 함께 ‘유팝라이프사이언스’라는 조인트벤처(JV)도 세웠다. 유바이오로직스가 62.5%, 팝바이오테크놀로지가 32.5% 지분을 갖는다. 이 JV는 지난주 세계 최대 바이오클러스터인 미 보스턴 케임브리지이노베이션센터(CIC)에 입주했다. 인터뷰 말미 백 대표는 “먹어 봐야 맛을 알고 산에 가야 범을 잡는다”면서 “백신을 하는 사람으로서 미국 같은 선진국에 우리가 개발한 백신을 등록하는 게 남은 꿈”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공공과 프라이빗 비중을 딱 절반씩 가져가려 해요. 선진국에서 번 돈으로 아프리카 같은 저개발 국가에 백신을 계속 싸게 공급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처음 유바이오로직스 대표로 부임할 때 들었다던 생각과 닮아 있었다.김창덕 산업2부장 drake007@donga.com}

    • 202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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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창덕]본사도 점주도 원치 않는 가맹사업법 개정안

    치킨집이나 빵집, 편의점 같은 가맹점들은 전국에 몇 개나 될까.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2023년도 가맹사업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등록 가맹본부는 8759개, 가맹점은 35만2866개다. 2022년 전국 가맹점(33만5298개)의 평균 매출액은 점포당 약 3억3700만 원 수준이었다. 가맹점 매출만 산술적으로 113조 원이다. 그해 한국 국내총생산(GDP) 2162조 원의 5.2%다. 가맹본부까지 합하면 이 비중은 더 높아진다. 프랜차이즈 산업의 존재감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소수의 강성 점주들만의 방패 될 수도 모든 비즈니스가 그러하듯 프랜차이즈 산업도 ‘계약’을 기본으로 한다. 가맹본부는 해당 분야에 전문성이 부족한 가맹점주들에게 판매할 물건, 조리법, 포장용기 등을 제공하고 브랜드까지 공유한다. 가맹점주들은 그 대가를 본부에 지불한다. 가맹본부로서는 효율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고, 가맹점주들로서는 원가비용이 다소 들더라도 미숙함으로 인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 불협화음이 적잖이 생기곤 하지만, 어쨌든 둘은 한몸처럼 성장해 왔다. 더불어민주당이 22일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가맹사업법)’은 가맹점 사업자들에게 단체행동권을 주는 게 핵심이다. 약자(가맹점)가 강자(가맹본부)에 맞설 수 있도록 최소한의 권리를 부여한다는 취지다. 현장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국내 외식업체의 한 고위 임원은 “한국에선 프랜차이즈 산업이 더 이상 미래가 없을 수도 있다”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사업자와 사업자 간에는 계약의 이행과 불이행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한쪽에 단체행동권, 이른바 파업권을 준다면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권리’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가맹본부 하나가 많게는 수만 개 가맹점과 계약하기에 점주 단체는 수십 또는 수백 개도 만들어질 수 있다. 가맹본부는 이들과 일일이 교섭하는 것도 어렵지만, 원활하게 합의하지 못할 경우 점주들의 단체행동권 발동에도 대응해야 한다. 심지어 가맹점주들도 시큰둥하다. 계상혁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장은 “이번 법이 통과돼 단체행동권을 갖게 되더라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사실 정상적인 점주들 중 누가 가게를 닫고 시위하러 나가겠냐는 얘기다. 계 회장은 “개정안 내용은 2010년대 중반 가맹본부와의 교섭 자체가 어려웠을 때 주장했던 사안”이라며 “지금은 이미 가맹점사업자단체를 구성해 본사와 협상하고 있기에 별로 달라질 게 없다”고 부연했다. 한편으로는 ‘정상적인 대다수 점주’가 아닌 ‘소수의 강성 점주’들만을 위한 방패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명백한 잘못을 저질러 계약 해지를 당했거나, 당할 위기에 놓인 점주들이 일단 가게 문을 걸어 잠근 채 시위에 나서도 본사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런 부담은 다른 정상적인 점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프랜차이즈 산업 투자도 위축된다 프랜차이즈 기업의 90% 이상이 중소기업이다. 대기업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가맹점에 대한 가맹본부의 관리 부담이 커지면 당연히 가맹점 확장을 주저하게 된다. 꾸준히 늘고 있던 가맹본부 설립도 감소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은퇴 후 창업을 준비하는 중장년층과 취업 전 단기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도 타격을 입게 된다. 가맹본부도, 가맹점주도 반기지 않는 법안을 ‘본회의 직회부’까지 하면서 요란하게 통과시키려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혹시 양대 노총이 미래의 조합원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가맹점주 단체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의 ‘노조’로 인정받진 못한다. 하지만 법적 노조가 아니면서도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산하에 있는 화물연대본부처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김창덕 산업2부장 drake007@donga.com}

    • 20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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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IST의 ‘24세 박사’ 시도… 꼭 성공했으면 하는 이유 [광화문에서/김창덕]

    국내 유명 공대의 A 교수는 틈만 나면 하는 얘기가 있다. “대학원생 뽑기가 너무 힘들어요.” 우선은 본교 졸업생들의 대학원 지원자가 너무 적다고 한다. 해외 유학, 대기업 취업, 벤처 창업 등 다른 선택지에 비해 국내 대학원은 매력이 떨어져서다. 본교 졸업반 학생을 두고 교수들 간 쟁탈전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다른 학교에서라도 우수 인재들이 와주면 좋겠지만 이마저도 예전 같지 않다. 어렵게 선발한 뒤엔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주며 붙잡아야 겨우 과정을 마친다. A 교수는 “대학원생 기근은 매년 더 심해지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요즘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에 따르면 이공계 쏠림 현상이 점점 심화하는 추세라고 한다. 이공계 쪽 인재풀이 그만큼 풍부해졌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전통적인 대기업은 물론이고 네이버, 카카오, 우아한형제 같은 새로운 강자들도 이공계 전공자들을 집중 선발하니 그럴 만도 하다. 과학계에서 볼 때 고민거리는 최상위급 인재들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 공학자로 성장해야 할 이들까지도 모조리 의대에 진학하고 있어서다. 전국 40개 의과대학(정원 3058명)이 매년 3000여 명을 먼저 뽑고, 그 후순위부터 서울대 KAIST 등의 비(非)의대가 선발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게다가 대학 진학 후 의대에 재도전하는 반(半)수생들도 적지 않다. 의사라는 직업이 과학자를 이른바 ‘고사(枯死)’시키고 있는 셈이다. 한국연구재단의 10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피인용 상위 1% 논문’은 2021년 14위였다. 2011년 13위에서 오히려 한 계단 후퇴했다. 중국은 2020년 미국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고, 인도도 2011년 17위에서 2021년 9위로 8계단이나 올라섰다.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동하겠지만, A 교수의 푸념대로라면 한국의 순위는 점차 떨어질 게 뻔하다. KAIST가 내년 시행할 ‘패스트트랙 박사’ 제도가 유독 눈에 띄는 까닭이 여기 있다. 학부를 3년 만에 마치되 3학년 때 대학원(석·박사 통합 과정) 수업까지 듣게 해 박사 학위를 최대한 빠르게 취득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과학고 2학년을 마치고 KAIST에 조기 진학한 학생이라면 만 24세에 박사가 될 수 있다. 의사는 20, 30년 전에도 많은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꿈꾸던 직업이다. 하지만 과학자가 되고 싶어했던 아이들도 제법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아이들에겐 의사라는 직업의 매력이 과학자를 압도하고도 남게 됐다. 진학률은 거기에서 결정된다. ‘24세 박사’를 키우겠다는 건 쉽게 말해 스타 과학자를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스타는 관심을 부른다. 2년이든, 3년이든 ‘남들보다 먼저’라는 유혹은 과학 영재들의 승부근성을 의외로 강하게 자극한다. 이런 제도 하나가 영재들을 ‘유인’할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작년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필즈상’ 수상은 한국 과학계로서는 큰 행운이었다. 골프의 박세리, 야구의 박찬호처럼 ‘허준이 키즈’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더 많은 ‘허준이’를 키워내기 위한 이런 시도들이 반드시 성공해야 한국 과학에도 미래가 있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 2023-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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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에 뜬 로봇개 ‘스팟’… 생산혁명의 상징이 돼주길[광화문에서/김창덕]

    지난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2’에서 가장 화제가 된 순간은 로봇개 ‘스팟’의 등장이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뒤를 따라 무대에 오른 노란색의 사족보행 로봇 스팟은 수많은 카메라 셔터에도 긴장한 내색 없이 임무를 마쳤다. 스팟은 그해 4월 경기 화성시의 현대차 남양연구소를 방문한 안철수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에스코트했다. 올해 4월 방한한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 역시 환영오찬 장소인 서울 신라호텔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게 스팟이었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6월 11억 달러(약 1조4300억 원)를 들여 스팟을 개발한 미국 로봇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 2020년 10월 정 회장 취임 후 이뤄진 가장 큰 인수합병(M&A)이다. 스팟은 등장할 때마다 화제를 불러왔지만, 정작 로보틱스 산업에서 진일보한 성과가 나왔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일각에선 “1조 원짜리 안내견”, “로봇사업 주 수입원은 유튜브”(보스턴다이내믹스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319만 명) 등의 우스갯소리마저 나왔다. 스팟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달 싱가포르에서였다. 현대차그룹의 싱가포르글로벌혁신센터(HMGICS)는 스팟을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정식 직원으로 쓴다. 스팟 2대는 각각 방처럼 생긴 작업장인 ‘셀’에서 작업자 1명을 졸졸 따라다녔다. 사람이 작업을 마치면 15장의 사진을 찍고, 곧바로 38개 부품이 제대로 조립됐는지 검사한다. 스팟이 촬영한 이미지가 PC로 옮겨져 인공지능(AI)이 실시간으로 불량을 확인한다고 했다. 정 회장이 “로보틱스는 인간을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던 그대로를 구현하게 된 것이다. HMGICS의 생산혁신은 스팟만이 아니다. 각 셀에서 조립한 차체를 옮기는 건 자율주행로봇(AMR)이다. 공장 전체를 디지털로 복사한 ‘디지털 트윈’을 활용해 생산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실시간으로 찾아 수정한다. 무엇보다 지금의 자동차 산업을 있게 한 컨베이어벨트 방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도록 셀 방식으로 설계했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삼성, LG 등 한국 기업들이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성공 스토리를 써온 건 생산 효율성이 뒷받침돼서였다. 1970∼1980년대는 지금의 동남아시아처럼 저렴하면서도 성실한 노동력이 비결이었다. 1990∼2000년대는 치밀한 공급망관리(SCM)가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국내 인건비는 비싸졌고 각종 노동규제가 발목을 잡았다. SCM은 개별 기업 경쟁력보다 ‘나라의 힘’이 더 중요해졌다. 글로벌 제조업 시장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 ‘메이드 바이 코리아’의 매력은 점차 퇴색할 수밖에 없었다. 스팟을 제대로 쓰고 있는 HMGICS 출현이 반가운 이유다. 현대차는 HMGICS를 생산혁신의 테스트베드로 활용한다고 했다. 여기서 성공하면 국내외 신규 공장들에 적극 도입하겠다는 거다. 컨베이어벨트로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을 집어삼켰던 포드의 성공 스토리를, 한국 기업이 다시 쓰지 말란 법은 없다. 스팟이 그 ‘혁명’의 상징이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 202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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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창덕]노란봉투법의 약자 보호?… 힘 없으면 법 어겨도 되는가

    9일 일명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 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경영계가 강력히 반발했고 노동계는 하루라도 빨리 통과되길 촉구했던 법이다. 경제단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반대 성명을 낸 까닭은 무엇일까. 수학 문제처럼 정해진 답을 찾긴 어렵겠지만, 굳이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불확실성’이 아닌가 한다. 합법적 파업의 테두리를 넓히는 것도 두렵지만 ‘모호한’ 조항들 탓에 그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직 ‘대통령의 거부권’이라는 마지막 절차가 남아 있으니 쟁점별로 한번 따져볼 필요는 있겠다. 핵심 쟁점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합법 파업의 조건이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불일치로 인한 분쟁’에서 ‘근로조건에 관한 불일치로 인한 분쟁’으로 바뀐 것이다. ‘근로조건의 결정’은 급여나 근로시간 등에 대한 임금협상과 임금 및 단체협상을 말한다. 이것만으로도 대기업 강성 노조들은 매년 파업을 해왔다. 파업을 하지 않더라도 협상용으로 최소한 파업권은 획득해 왔다. 그런데 ‘결정’이란 단어가 빠지면서 경영적 판단 범위인 채용, 해고, 사업장 이전 등을 놓고도 노조가 파업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 법원에서 흔히 쓰는 말로 ‘다툼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노조가 생업을 내팽개치고 거리로 나서는 데 월급만 이유가 되겠나. 나 자신 또는 내 동료가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 단체의 이름으로 회사에 목소리를 내고, 그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파업이라는 극단적 방법도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기업들은 노조의 경영권 간섭을 우려하지만, 시행령을 통해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두 번째부터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를 기존 ‘사업주 등’에서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자’로 확대했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은 그야말로 실질적이지도 구체적이지도 않은 단어다. 결국은 재판을 통해 가리겠다는 얘기다. 수년간 많은 판례들이 쌓여야 대략적인 기준이 나올 것이다. 그때까지 산업계는 혼란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하청업체 노조원들이 자신과 근로계약을 맺은 회사 대신 원청업체와 임금 교섭을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진다. 내게 월급을 주는 사장은 따로 있는데, 그 사장의 고객에게 임금을 올려 달라고 한다는 얘기다. 적게는 수십 곳, 많게는 수천 곳에 달하는 협력업체와 일하는 대기업은 일 년 내내 임금협상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게 된다. 화룡점정은 노조에 손해배상 책임의 ‘면죄부’를 주는 세 번째 쟁점이다.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사용자 측이 노조원 개인별로 책임의 범위를 일일이 입증하도록 했다. 노조 파업으로 수백억 원의 피해를 입었는데 노조원 A 씨 10억 원, B 씨 30억 원, C 씨 5억 원처럼 개인당 손해액을 발라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말라는 거나 다름없다. 명분이 아무리 좋아도 불법 행위는 처벌을 받는 게 법치국가의 기본이다. 불법 파업도 마찬가지로 관용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그 누구도 약자라는 이유로 법을 어길 권리를 준 적은 없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 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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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창덕]시선 쏠린 아시아나 이사회… ‘기권’만은 말아야 할 이유

    30일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열린다. 예정대로라면 아시아나항공의 화물 사업을 분리 매각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다. 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통합할 경우 일부 여객노선은 물론 화물 사업에서도 경쟁 제한 우려가 있다면서 승인을 보류하고 있다. 한국에서 프랑크푸르트, 파리, 로마, 바르셀로나를 오가는 여객노선은 대한항공이 티웨이항공에 운수권을 넘겨주는 방안이 해결책으로 거론된다. 세부적으로는 EU집행위원회(EC)가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있어도 어쨌든 방향성만큼은 정리가 되는 분위기다. 골칫거리는 화물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우리는 통합에 100%를 걸었다”고 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배수진을 쳤다는 뜻이다. 그런데 EC는 그냥 도장을 찍어주진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다. 두 항공사가 통합할 경우 화물 고객사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대한항공은 결국 EC 설득을 위해 아시아나항공의 화물 사업 분리 매각이라는 사실상 ‘자해 행위’에 가까운 방안까지 내놨다. 여객, 화물 두 날개 중 하나를 버리고 반쪽만 인수하겠다는 거다. EC는 대한항공에 독점 해소 방안을 이달 말까지 제출하라고 통보한 상태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로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화물 사업 매각에 반대하자니 2년여를 끌고 온 두 회사 간 통합을 사실상 실패로 몰아갔다는 비판이 두렵다. KDB산업은행은 통합이 무산되면 아시아나항공에 추가적인 자금 지원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홀로 남겨진 아시아나항공이 결국 재기하지 못하면 이사회 멤버들에게 두고두고 ‘책임’이란 꼬리표가 붙을 수 있다. 그렇다고 과감하게 찬성표를 던지기도 어렵다. 화물 사업까지 팔아 회사를 반쪽으로 만들었는데 EC가 또 다른 이유를 들어 승인을 거부한다면 어쩔 텐가. 게다가 EC의 벽을 넘는다 한들 미국 경쟁 당국이란 거대한 산이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이사회가 이번엔 결론을 내지 않고 결정을 ‘연기’하거나 사실상 ‘기권’할 거란 얘기도 들린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수년간 정상적인 기업으로서의 활동을 하지 못했다. 미래를 위한 투자는 중단된 채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왔을 뿐이다. 이번 이사회 결정은 아시아나항공의 드라마틱한 반등을 이끌어낼 순 없겠지만, 아주 조금이나마 불확실성을 걷어낼 수 있다. 반면 결정을 미루거나 다른 곳에 공을 넘긴다면 아시아나항공은 그만큼 더 오랫동안 ‘시계(視界)제로’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 EU든 미국이든 경쟁 당국은 결국 통합 당사자들보다는 자국의 고객사들을 먼저 고려하기 마련이다. 때에 따라서는 경쟁 관계에 놓인 자국 기업을 노골적으로 보호하려 든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이 처음 추진됐던 2020년 정부와 업계에선 세계 7위권 ‘메가 항공사’ 탄생을 기대했다. 3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런 장밋빛 전망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세계 항공업계는 그사이 팬데믹을 통해 얻은 교훈을 발판 삼아 저마다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어느 쪽이든 담대한 결론을 내야 하는 이유다. 시간은 결코 우리 편이 아니다.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 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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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창덕]사우디서 만들 ‘한국형’ 선박, 저성장시대 해법 될 기술수출

    사우디아라비아 동부의 주바일항 인근 킹살만 조선산업단지에는 연간 40척 이상의 선박을 만들 수 있는 사우디 합작조선소(IMI)가 막바지 공사 중이다. 독 3개짜리인 이 조선소의 부지 규모는 약 500만 ㎡(약 150만 평)로 축구장 700개 크기다. 2016년 12월 사우디 국가사업으로 확정된 후 내년 완공 때까지 투입되는 자금만 5조 원에 이른다. IMI는 세계 최대 석유기업 아람코를 포함한 사우디 기업 3곳과 HD현대가 합작해 만든 회사다. HD현대 지분은 20%. 울산에서 세계 최대 조선소를 운영하고 있는 HD현대의 노하우가 중동으로 건너간 것이다. 게다가 2019년 맺은 ‘설계기술 판매계약’에 따라 IMI에서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한 척이 건조될 때마다 HD현대는 기술 라이선스 비용을 챙기게 된다. 1971년 영국 조선업체 스콧리스고로부터 설계도면을 임차해 첫 선박 건조에 나선 지 50여 년 만에 거꾸로 설계기술을 수출하게 됐다. HD현대는 또 2020년 아람코 자회사인 사우디아람코개발회사, 사우디 산업투자공사인 두수르와 3자 합작으로 선박엔진 제조사 마킨(MAKEEN)을 설립했다. HD현대의 독자개발 중형 선박엔진 ‘힘센엔진’의 첫 라이선싱 사업이다. 마킨은 올 6월 IMI 인근 부지에서 착공식을 가졌고, 2025년 양산에 들어간다. 사우디는 1970년대 건설 역군들의 첫 땀이 서린 곳이다. 1976년 현대그룹이 수주한 주바일 산업항 공사는 9억4000만 달러 규모로, 당시 한국 국가예산의 4분의 1 수준이었다고 한다. 많은 아버지들이 중동으로 건너가 외화를 벌었고, 경제 고속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이제 그 사우디에 건너가는 사람들은 짐을 이고 나르는 대신에 첨단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른바 ‘두뇌 수출’이다. 한국 조선업은 여전히 잘나가고 있다. 수주 호황에 힘입어 ‘빅3’ 모두 3년 치 일감을 확보해 뒀다. 현장 생산인력 부족으로 오히려 수주 속도를 조절할 정도다. 문제는 현재가 아닌 미래다. 국내 생산가능 인력은 나날이 감소하고 있다. 외국인으로 메우는 데도 한계가 있다. IMI와 마킨은 이런 한계를 벗어날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른 제조업이라고 상황이 다르지 않다. 대규모 노동력을 투입하는 생산중심 제조업은 지금의 한국을 있게 한 1등 공신이지만, 미래 한국까지 책임져주진 못한다. 한 제조업체 임원은 “이제는 완제품이나 반제품을 배에 실어 보내는 대신 그동안 축적해온 기술력을 자산으로 활용할 때가 됐다”고 했다. 이달 중순 삼성 현대자동차 한화 HD현대 등 대기업 총수들이 일제히 사우디를 방문할 예정이다. 사우디 최대 프로젝트 ‘네옴시티’가 가장 큰 관심사다. 단순히 도로를 깔고 건물을 짓는 걸 넘어 대규모 도시를 ‘창조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매력적인 만큼 경쟁도 치열할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 수준을 제대로 가늠해볼 기회이기도 하다. 제2의 IMI 사례들도 함께 쏟아져 나오길 기대한다. 이러한 기술수출이 중동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할 때 한국도 지긋지긋한 저성장 기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 202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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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창덕]가속페달 밟던 자동차산업, 노조 리스크에 ‘급제동’ 위기

    한국 월별 수출액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8월까지 11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주요 수출 품목들이 일제히 부진을 겪고 있는 탓이다. 반도체 경기 추락으로 ‘대한민국 투톱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그간 보기 힘들었던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다. 조선업계 빅3인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은 최근 2년간 수주 호황을 누렸지만, 재무제표에 완전히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정유사와 석유화학회사들은 국제유가 등락에 따라 실적이 들쭉날쭉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한국을 나락에서 구해낸 ‘1등 공신’은 자동차산업이다. 8월만 보더라도 자동차 수출액은 52억9000만 달러(약 7조 원)로 작년 8월보다 28.7%가 늘었다. 14개월 연속 성장세다. 반도체(―20.6%), 석유화학(―12.0%), 석유(―35.3%), 무선통신(―7.8%) 등이 까먹은 걸 그나마 만회해줬다. 기업 실적도 좋다. 현대차의 2분기(4∼6월) 매출은 42조2497억 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17.4%가 늘었다. 영업이익은 4조2379억 원으로 42.2%나 뛰었다. 기아의 성장세는 더 가파르다. 매출 26조2442억 원, 영업이익 3조4030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20.0%, 52.3% 증가했다. 두 회사 모두 분기 기준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지난해 상반기(1∼6월)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에 반도체마저 없었다면 큰일이 났을 것”이라는 자조가 많았다. 지금은 “자동차마저 없었다면”이라는 가정이 더 자주 들릴 정도다. 그런 자동차의 질주가 잠시 멈출 위기를 맞았다. 브레이크를 잡은 이는 글로벌 경쟁사도, 외부 경영 환경도 아닌 내부의 노동조합이다. 현대차와 기아 노사는 지난해까지 각각 4년 연속, 2년 연속 무분규로 임금 및 단체협상을 타결했다. 그런데 올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현대차 노조)와 기아자동차지부(기아 노조)는 각각 7월과 5월 민노총 총파업에 동참하기 위해 부분파업을 강행했다. ‘정치파업’이 끝난 뒤 이어진 임단협에서도 노사 협상은 삐걱대고 있다. 지난달 말 파업권을 획득한 현대차 노조는 13, 14일 부분파업까지 예고 했었다. 기아 노조도 11일 파업권을 얻자마자 12일 곧바로 쟁의대책위원회를 열어 파업 여부를 논의했다. 매년 임단협에서 파업권을 통해 사측을 압박하는 건 정해진 수순과 같다지만, 올해는 예년과 분위기가 다르다는 얘기가 많다. 두 회사 노조는 특히 ‘정년 64세’를 협상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현재 만 60세인 것을 4년을 더 연장해 달라는 것이다. 사측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다. 무리한 정년 연장은 곧 신규 채용 중단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현대차가 올 3월 10년 만의 생산직 신규 채용에 나서자 700명 모집에 수만 명의 지원서가 몰려들었다. 작년 생산직 100명을 뽑은 기아도 그랬다. 현대차의 경우 12일 노사가 잠정 합의했기에 분규 없이 협상을 타결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노조로서도 오랜만에 찾아온 ‘호시절’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는 악수를 둘 필요는 없지 않은가.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 2023-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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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기차용 커패시터필름… 삼영, 시험생산 들어가

    전기전자 소재인 커패시터필름을 생산하는 ㈜삼영이 신규 생산라인에서 전기차 콘덴서용 3.5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필름을 시험 생산했다고 29일 밝혔다. 전기에너지를 저장하는 데 사용되는 커패시터필름은 가전제품, 재생에너지(풍력, 태양력), 전기차 등에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특히 3.5μm 이하 극초박막 필름은 전동화가 진행 중인 전기자전거, 드론, 소형 비행기, 방산용 장비 등에 사용되고 있다. 전기차용 커패시터필름 시장은 일본과 독일 업체가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삼영은 세계 3위 커패시터필름 생산업체로 월 1000t을 생산할 수 있다. 삼영화학공업이 모태였으나 주력 생산품이 포장용 소재에서 커패시터필름으로 바뀌면서 법인명을 4월 ㈜삼영으로 바꿨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 202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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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흥민의 경제적 효과, 車9800대 수출 맞먹어”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 소속인 손흥민 선수(사진)가 지난해 한국 경제에 약 5900억 원의 생산 유발 효과를 낸 것으로 분석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일 발표한 ‘빅리그 스포츠 스타의 경제적 효과’ 보고서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연구원은 지난해 국가 이미지 조사에서 ‘한국’ 하면 연상되는 인물로 3.5%가 ‘손흥민’을 꼽았고, 2015년 영국에 진출한 점을 감안해 연간 인지도 상승률을 0.5%포인트로 봤다. 여기에 국가 인지도가 제품 이용으로 전환되는 비율 48.7%를 곱해 손흥민의 소비재 수출 기여도를 약 0.24%포인트로 추산했다. 지난해 한국의 소비재 수출액은 약 860억 달러(111조 원·2022년 평균 환율 적용)로, 손흥민이 기여한 규모는 약 2700억 원으로 추정됐다. 이는 승용차 약 9800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 것이다. 현경연은 이 수출액 증가의 생산 유발 효과는 약 5900억 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약 1840억 원 수준으로 산출했다. 현재 손흥민 외에도 영국,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 빅리그를 포함해 유럽에서 뛰는 한국 축구 선수는 17명이다. 현경연 측은 “스포츠를 포함한 한류 성장이 소비재 수출 확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국내 수출 구조의 안정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 2023-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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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급망 재편은 위기이자 기회… 정책 지원이 차이 만든다[광화문에서/김창덕]

    공급망은 기업 경영의 기본이다. 가장 적절한 시기에 원자재, 장비, 부품, 인력 등을 확보해 가장 효율이 높은 생산기지에서 제품을 만들고, 고객이 필요로 할 때 적기 공급하는 일련의 과정 하나하나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한다. 공급망 관리를 잘하는 기업은 승승장구했고, 그러지 못한 곳은 재고자산과 생산비용 증가에 힘겨워했다. 최근 경제 부문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단어를 꼽으라면 ‘공급망’이 후보에서 빠질 리 없을 것 같다. 개별 기업의 경쟁력이 아닌 국가 간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어서다. 화살의 시위를 당긴 건 미국이다. 첨단기술 부문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를 노골화한 게 시발점이다. 미국은 중국을 주요 공급망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한편 자국 내 기업을 유치하고 나섰다. 우호적인 국가들과는 경제동맹체 구성에도 속도를 냈다. 지난해 초 발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은 이런 미국 중심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한국은 일본, 대만 등과 함께 미국의 행보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참한 나라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때나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시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대기업들은 적게는 수조 원, 많게는 수십조 원의 대(對)미 투자를 발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해 8월 미 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 시행 후 1년 동안 1억 달러 이상의 관련 분야 대미 투자 발표를 분석한 결과 전체 110건 중 한국 기업이 20건(18%)이었다고 한다. 해외 기업(66건) 중 단연 1위였다. 유럽연합(EU·19건)보다 많고 일본(9건)의 두 배가 넘는다. 그렇다면 한국은 재편 중인 공급망 속에서 영향력이 확대됐을까. 최근 대한상공회의소와 유엔 무역통계를 살펴보니 지난해 반도체 장비 3대 강국(미국, 일본, 네덜란드)의 대한국 수출액은 166억4000만 달러로 전년의 186억9000만 달러보다 20억5000만 달러 줄었다. 그만큼 한국 내 반도체 산업 투자가 줄었다는 의미다. 반도체 경쟁국이자 동맹국으로 엮인 미국(25%), 일본(18%), 대만(13%)이 나란히 증가하는 동안, 한국은(―11%) 집중 견제 대상인 중국(―19%)과 같은 처지로 내몰렸다. 전기차 배터리라고 다르지 않다. 최근 SK온이 1조5000억 원 수준의 국내 설비투자를 발표하긴 했지만,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등 배터리 3사 투자 발표는 대부분 미국 또는 캐나다였다. 한국 기업은 모두 미국으로 몰려가는데, 한국에 투자하겠다는 해외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정책 지원이 이 같은 차이를 만들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지원법에 의거해 527억 달러를 내놓았고, 일본은 대만 TSMC의 반도체 공장 투자액의 40% 이상을 지원하기로 했다. 한미일 정상은 이번 공동성명을 통해 국제질서를 저해하는 주체로 중국을 직접 지목했다. 안보뿐 아니라 경제 측면에서 ‘탈중국’의 시계가 보다 빨라질 수밖에 없게 됐다.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한국 경제가 실익을 챙기려면 지금보다는 훨씬 과감한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남은 시간이 생각보다 짧을 수 있다.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 202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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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흥민, 작년 5900억원 생산유발효과…車 9800대 수출 맞먹어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훗스퍼 소속인 손흥민 선수가 지난해 한국경제에 약 5900억 원가량의 생산유발효과를 낸 것으로 분석됐다.현대경제연구원은 20일 발표한 ‘빅리그 스포츠 스타의 경제적 효과’ 보고서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연구원은 지난해 국가이미지 조사에서 ‘한국’ 하면 연상되는 인물로 3.5%가 ‘손흥민’을 꼽았고, 2015년 영국에 진출한 점을 감안해 연간 인지도 상승률을 0.5%포인트로 봤다. 여기에 국가 인지도가 제품 이용으로 전환되는 비율 48.7%를 곱해 손흥민의 소비재 수출 기여도는 약 0.24%포인트로 추산했다.지난해 한국의 소비재 수출액은 약 860억 달러(111조 원·2022년 평균 환율 적용)로, 손흥민이 기여한 규모는 약 2700억 원으로 추정됐다. 이는 승용차 약 9800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 것이다. 현경연은 이 수출액 증가의 생산유발효과는 약 5900억 원, 부가가치유발효과는 약 1840억 원 수준으로 산출했다. 현재 손흥민 외에도 영국,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 빅리그를 포함해 유럽에서 뛰는 한국 축구 선수는 17명이다. 현경연 측은 “스포츠를 포함한 한류 성장이 소비재 수출 확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국내 수출 구조의 안정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 202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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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창덕]과학적 사실 외면하는 선동 비용은 결국 국민이 치른다

    미국 할리우드가 2004년 내놓은 ‘투모로우’는 제법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 재난영화다. 지구온난화로 남북극 빙하가 녹으면 주변 바다의 염도가 떨어진다. 찬물이 깊은 바다로 내려가지 않고 표면에 머물면 적도의 따뜻한 물을 고위도로 옮기는 멕시코 만류 등 해류가 막히게 된다. 결국 열을 전달받지 못한 북반구 지역이 온통 빙하로 뒤덮인다. 실제 빙하기 끝 무렵인 1만2000년 전쯤의 ‘영거 드라이아스 기’가 모티브가 됐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영화적 상상이 더해졌다. 수십 년에 걸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련의 과정을 단 6주 만에 일어난 것으로 묘사한 것이다. 덕분에 스토리는 긴박했고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 관객들의 뇌리에도 기후변화의 ‘악몽’이 선명하게 각인됐다. 재미없는 과학적 사실에만 충실했다면 얻을 수 없었던 결과다. 관객들도 이를 진실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영화야 태생부터 픽션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지 않나. 문제는 사람들이 먹고사는 현실에서도 과학적 사실을 비과학적으로 활용하는 일이 빈번하게 목격된다는 점이다. 판단의 잣대로 삼은 과학을 믿지 못하면 결국 사회적 혼란만 커질 뿐이라는 걸 여러 차례 실감했다. 2008년 ‘광우병 사태’는 의학적 사실에 과장과 거짓이 보태져 온 나라를 혼돈에 빠트렸다. 다리가 풀려 쓰러지는 미국 소 영상은 수많은 과학자들의 말을 삼켜 버릴 만큼 충격적이었다. 공포심이 극대화됐을 때 과학은 설 자리가 없었다. 2017년 표출된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적대감은 국가 에너지정책을 후퇴시킨 것은 물론이고 세계적 원전 기술을 가진 한 기업을 통째로 날릴 뻔했다. 최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논쟁도 마찬가지다. 정치의 영역이고 사회적 영향이 큰 이슈지만 판단의 기준은 과학이다. 그런데도 과학계 목소리, 특히 정치적으로 불리한 설명에 대해서는 철저히 귀를 닫는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단언컨대 과학계는 분열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신뢰도가 곧 생명인 과학자들이 과학적 팩트를 놓고 거짓을 말하진 않는다”며 “일부 학자가 비전문 영역에 대해 무책임하게 발언한 것이 확산되고 부풀려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세계적 환경운동가 마이클 셸런버거의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2021년)에서도 그런 사례가 다수 언급된다. 방대한 양의 과학 논문 등을 근거로 한 책이다. 참고문헌 리스트만 80쪽에 달한다. 셸런버거는 서문에서 “환경 문제를 과장하고, 잘못된 경고를 남발하고, 극단적인 생각과 행동을 조장하는 이들은 긍정적이고, 휴머니즘적이며, 이상적인 환경주의의 적이다”라고 썼다. 그러곤 아프리카의 콩고민주공화국이나 브라질 아마존 등에서의 사례를 들며 극단적 환경주의자들의 선동이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 조목조목 비판한다. ‘환경’이 아닌 ‘환경운동’을 목적으로 삼았기에 과학적 진실을 외면하거나 악용하는 이들에 대한 고발이다. 지금 일부 한국 정치인들의 목적은 ‘국민건강’일까, ‘국민건강을 담보로 한 정치’일까. 정치인이 정치활동을 하는 걸 말릴 수 있겠냐마는 결국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 건 그들이 아닌 국민이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 2023-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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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장 멈춰 세운 불법 파업… 스스로 빌미 준 ‘개혁 명분’[광화문에서/김창덕]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 지부(현대차 노조)가 12일 5년 만에 파업을 강행했다. 부분파업이라지만 공장 가동이 중단됐고, 분명한 불법이었다. 임금 및 단체협상 교섭에서 난항을 겪고 있어서가 아니다. 올해 교섭은 11일까지 7차례 진행됐을 뿐이다. 노사 대표가 상견례를 하고 교섭 테이블에 앉아 노조 요구안을 읽어내려가는 단계다. 보통 20차례 안팎의 교섭이 진행됐을 때 노조 요구안 읽기가 두 번 정도 끝난다고 한다. 이때부터 노사 양측은 본격 협상에 들어간다. 노조도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 파업(쟁의)을 위한 절차를 밟는다. 아직은 파업 운운할 때가 아니었단 얘기다. 현대차 노조가 법을 어기면서까지 파업에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도 2019년부터 4년 연속 무파업으로 임협 또는 임·단협을 타결했던 좋은 기억을 뒤로한 채 말이다. 첫째는 금속노조의 압박을 꼽는 이가 많다. 형제 단체인 기아 노조는 5월 31일 민노총 총파업 당시 부분파업으로 동참했다. 기아의 노사 간 임·단협이 이달 3일에야 시작됐으니 당연히 쟁의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 파업이었다. 당시 현대차 노조는 파업에 동참하지 않았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5월 총파업 때 기아와 달리 현대차가 빠지면서 이번엔 금속노조로부터 현대차지부에 강한 압박이 들어온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반대로 기아는 이번 총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결국 금속노조 입장에서는 대표 사업장인 현대차와 기아가 한 번씩은 상급단체의 뜻에 동참하는 모양새를 갖춘 것이다. 둘째는 불법 파업을 해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2018년 5월 현대차 노조가, 같은 해 11월에는 현대차 및 기아 노조가 불법 파업을 했다. 3건 모두 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기소유예였다. 검찰이 불법파업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 나아가 야당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은 노조의 불법 파업으로 인한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기업은 노조원별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하고 있다. 파업은 단체행동인데, 개인별로 손해액을 발라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많다. 재계에서 “손해배상 청구는 불법 파업을 막을 마지막 카드인데, 이를 무력화시키는 법”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요약하자면 현대차 노조는 결국 상급단체의 정치파업에 들러리를 서려는데, 불법이라고 해도 딱히 책임을 묻지도 않으니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게 된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노총의 총파업이라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파업 행태”라며 “현대차 경영진이 정권 퇴진이나 후쿠시마 오염수 반대를 위해 무얼 할 수 있나”고 반문했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명백히, 정치 파업은 적법한 파업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민노총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의지에 맞서 3일부터 산별노조가 돌아가며 순환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거리에 나서 확성기를 든 그들이 더는 미룰 수 없는 ‘개혁 대상’임을 스스로 입증해 내고 있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 202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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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창덕]글로벌로 확장하는 K배터리… 국내투자 명분도 만들어줘야

    프랑스 르노그룹이 최근 부산에 연간 생산 20만 대 규모의 전기자동차 생산 공장을 짓겠다고 공언했다. 귀도 하크 르노그룹 부회장이 박형준 부산시장을 만나 밝힌 내용이다. 투자 금액은 1조 원 이상으로 예상되고, 양산 시점은 2026년 이후다. 기아가 4월 경기 화성시에서 전기 베이스의 목적기반모빌리티(PBV) 전용 공장 착공식을 열었고, 현대자동차는 울산 전기차 전용 공장 착공을 4분기(10∼12월)로 확정했다. 현대차그룹의 외로운 투자 행보에 르노가 가세하면서 국내 전기차 생태계도 활력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르노의 계획이 현실화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지근거리에서 안정적으로 납품해줄 배터리 공장이 지어져야 한다. 미국, 유럽의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한국이나 중국 배터리업체들과 앞다퉈 자신들의 안방에 배터리 합작 공장을 짓는 이유다.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는 배터리 기업을 3곳이나 보유하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실제로도 국내 배터리 3사는 모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배터리업체 한 관계자는 “현재 해외에 짓기로 한 합작 공장에만 집중해도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북미의 경우 한국 배터리 3사가 가동 중이거나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은 단독과 합작 공장을 포함해 모두 15곳, 생산 규모로는 560GWh(기가와트시)에 달한다. 국내 기업인 현대차그룹과의 합작 공장이 지어질 곳도 한국이 아닌 인도네시아와 미국이다. 국내 공장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오창플랜트는 18GWh, SK온의 서산공장은 5GWh 규모다. LG가 향후 33GWh로 확대할 계획이라지만 해외 투자 규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박정호 르노코리아 상무는 22일 한국무역협회가 주최한 배터리산업 간담회에서 “한국 전기차 공장 투자를 추진하고 있지만 국내 배터리 생산 부족으로 투자 결정에 불리한 상황”이라고 했다. 배터리 때문에 전기차 공장 투자가 엎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무사히 투자로 이어져도 K배터리의 안방에서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해야 할지도 모른다. 배터리 기업들의 국내 투자가 적은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투자의 실익이 없어서다. SK온과 미국 포드의 합작법인 블루오벌SK는 공장 3개를 지으면서 미 에너지부로부터 최대 92억 달러(약 12조 원)의 정책자금을 저리로 빌릴 수 있게 됐다. SK온이 현대차와 미국 조지아주에 짓는 배터리 공장은 7억 달러의 보조금을 챙길 예정이다. 삼성SDI와 제너럴모터스(GM)의 미국 인디애나주 합작 공장도 15년간 세금을 면제받는다. 한국에선 기대하기 힘든 조건들이다. 무역협회 간담회에 참석한 김동현 SK온 팀장은 “국내에선 경쟁국 대비 지원 규모가 미흡하다”며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지방투자촉진 보조금도 기업당 최대 지원 한도가 국비 100억 원으로 제한돼 아쉽다”고 했다. 자유경쟁시장에서 기업 유치의 가장 큰 명분은 돈이다. 유치 조건이 적어도 경쟁국들보다 모자라진 않아야 한다. 자칫 방심했다간 배터리를 수입에만 의존하는 나라가 될 수도 있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 2023-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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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엑스포 유치 기원… HD현대 ‘드림콘서트’ 성황리 끝나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기원하기 위해 부산에서 열린 국내 최대 K팝 행사 ‘제29회 드림콘서트’(사진)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콘서트를 후원한 HD현대는 28일 부산 연제구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전날 열린 드림콘서트가 관객 3만여 명이 찾은 가운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부산엑스포 유치 열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드림콘서트가 처음으로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열렸다. ITZY, 비투비, NMIXX, 오마이걸 등 전 세계에서 팬덤을 가진 K팝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 이번 콘서트는 25∼2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3 기후산업국제박람회’의 공식 폐막공연 역할을 겸했다. 태평양 도서국 정상들을 포함한 3만여 명의 관객은 엑스포 유치 후보지인 부산 북항 일원의 변화된 모습을 감상했다. 관객들은 이날 공연 중 엑스포 유치 응원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HD현대 관계자는 “이번 드림콘서트를 통해 부산 엑스포 유치를 향한 우리 국민의 열정을 확인했다”며 “공연장을 찾아준 각국 정상들을 포함한 세계 K팝 팬들에게 이 열기가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 202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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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쾌적한 환경’ 권리 뺏는 10년째 확성기 욕설 시위[광화문에서/김창덕]

    “툭 터놓고 얘기해서, 아침 출근 시간부터 욕설 섞인 확성기 소릴 듣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인근의 한 기업 직원이 한 말이다. 현대차그룹 사옥 주변에선 10년째 집회·시위가 이뤄지고 있다. 기아의 지방 한 대리점으로부터 계약 해지를 당한 자동차 판매업자 A 씨가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그룹 사옥 옆 염곡사거리에는 동서남북 방향을 가리지 않고 A 씨가 내건 현수막 수십 개가 걸려 있다. ‘기아차 판매 내부고발 해고자 ○○○ 공동대책위원회’에서도 몇 명씩 나와 시위를 거들곤 한다. 현대차그룹 직원은 물론 인근 기업 직원들과 염곡사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은 원하지 않아도 A 씨 등의 주장을 보고, 들어야 한다. 그것도 정제되지 않은 비방과 욕설이 섞인 채로. 비단 A 씨 사례만일까. 삼성전자 서초사옥이나 KT 광화문사옥 등의 주변은 다양한 이유를 내건 시위대가 접수한 지 오래다. 대기업 총수 자택도 시위꾼들에겐 좋은 타깃이 돼 왔다. 헌법 제 21조는 1항에서 언론·출판의 자유와 함께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2항에서는 ‘허가제’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자유를 확실하게 못 박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자유롭게 펼 수 있고, 다수인이 공동의 목적을 갖고 회합하는 것을 막지 못하게 한 것이다. 거리로 나온 이들은 하나같이 이 권리를 내세운다. 하지만 시위를 하면서 자신들이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해 언급하는 이들은 없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시위대가 타깃으로 삼은 기업이나 기관은 잘못이 있건 없건 어쩔 수 없다고 치자. 피해를 보면 고소, 고발을 통해서라도 적극적인 문제 해결에 나설 동기라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런 연관도 없는 시민들까지 듣고 싶지 않은 걸 듣고, 보고 싶지 않은 걸 봐야 한다. 한두 번 지나칠 땐 그러려니 하겠지만, 주변 주택에 살거나 상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피할 수 없는 ‘시위 공해’가 된다. 일부에선 헌법 제35조 1항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환경권을 거론하기도 한다. ‘환경’에는 물, 공기, 토양 등 자연 환경 외에도 미관과 소리 등 사회적 환경도 포함하고 있다는 해석에서다. 20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는 ‘전교조 34주년 결의대회’와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전국 행동의 날’ 집회, 시민단체 촛불승리전환행동의 ‘제40차 촛불대행진’ 등이 잇달아 열리면서 수만 명이 운집했다. 일부 차로가 통제된 광화문 일대는 극심한 교통 정체를 빚었다. 청계천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은 갑작스레 맞닥뜨린 대규모 시위에 당황해하며 자리를 떴고, 인근 예식장을 향하던 하객들 중에는 발만 동동 구르다 운전대를 돌린 이들도 있었다. 세상에 의무가 배제된 권리란 없다. 헌법에 보장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때도 타인의 권리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침해하는 건 폭력이나 다름없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 202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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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스코를 바꾼 10년 전 로드맵… 미래 투자하는 환경 만들어야[광화문에서/김창덕]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3년 11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의 김지용 신소재사업실장(현 미래기술연구원장)의 방 한쪽 벽면은 대형 인쇄지 여러 장을 이어 붙인 로드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깨알같이 쓰여 있던 글자들을 세세히 기억하진 못한다. 다만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음극재와 양극재 사업을 어떻게 키워갈지 세부 단계별로 촘촘하게 정리해놓은 걸 보고 감탄했던 장면은 머리에 남아 있다. 김 실장은 그 로드맵을 가리키면서 ‘소재보국(素材保國)’이란 단어를 썼었다. 포스코가 조선, 자동차, 가전 등 국가 핵심산업에 안정적으로 철을 공급했던 걸 ‘제철보국(製鐵保國)’이라 부르는 것처럼 미래 신산업에 필요한 소재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면서 “소재 사업은 공격적으로 투자해도 10년은 걸린다”고 했다. 포스코가 소재 사업을 본격화한 건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8월 포스코켐텍이 LS엠트론의 이차전지 음극재사업부(옛 카보닉스)를 인수했고, 2012년 3월에는 휘닉스소재와 지분 절반씩을 투자해 양극재 전문업체 포스코ESM을 세웠다. 이들은 이후 다른 소재회사들과 합쳐져 지금의 포스코퓨처엠이 됐다. 김 실장이 얘기했던 10년의 시간이 지났다. 포스코퓨처엠은 현재 그룹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 전체로 봐도 가장 ‘핫’한 기업이 됐다. 이 회사는 3일 중국 화유코발트와 경북 포항시에 1조7000억 원을 투자해 배터리용 양극재에 필요한 중간 소재와 음극재 생산라인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24일 역시 포항에 6000억 원대 양극재 공장을 짓겠다고 공시한 지 열흘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연이은 투자는 넘쳐나는 일감을 감당해내기 위해서다. 포스코퓨처엠은 올 들어서만 삼성SDI와 40조 원(10년간), LG에너지솔루션과 30조 원(7년간)어치 소재 공급 계약을 맺었다. 양극재 누적 계약액만 92조 원에 달한다. 포스코그룹은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공정자산 기준 재계 순위에서 처음 5위에 올랐다. 소재를 철강에 이은 새로운 사업 축으로 결정하고 오랜 기간 투자해온 결과가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전기차로 옮아가면서 포스코퓨처엠은 특수를 누릴 수 있게 됐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한국산 배터리, 특히 한국산 소재의 몸값을 이렇게 높여준 것도 어쩌면 행운에 가깝다. 하지만 이 모든 게 10년 전 벽면을 가득 채웠던 그 로드맵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한국 경제 전체로 봐도 해묵은 과제가 있다. 수출 상대국으로는 중국에, 품목으로는 반도체에 지나치게 쏠린 산업구조다. 지난달까지 14개월째 이어진 무역적자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특정 국가와 상품에 대한 의존증이 기초 체력을 약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많다. 결국 포스코퓨처엠 같은 신사업 분야 기업이 하나씩 나와야 한국 경제도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기업들이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건 정부의 몫이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 20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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