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난무했던 90년대 남북 핵 협상[횡설수설/윤완준]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7월 5일 23시 18분


남북 고위급 회담은 종종 한국의 대통령과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원격으로 지휘하는 ‘대리전’이라고 불렸다. 회담장엔 폐쇄회로(CC)TV와 마이크가 설치됐고, 이를 통해 남북 대표단의 몸짓과 음성이 실시간으로 청와대와 평양에 전달됐기 때문이다. 협상에서 무엇을 주고받을지는 양측 상부의 훈령에 따라 진행됐다. 심지어 회담 대표들은 ‘정회를 요구하라’, ‘목소리를 단호히 하라’ 같은 지침까지 쪽지로 받기도 했다.

▷북한 대표단은 우리 대표단의 기를 꺾기 위해 과격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냉면 목구멍’ 발언으로 악명이 높았던 북한의 리선권은 2018년 10월 남북 고위급 회담 시작부터 조명균 당시 통일부 장관이 2, 3분 늦었다는 이유로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었다. 남북 교류·협력이 강조됐던 2000년대 이후 회담에서 우리 대표단은 남북 관계를 의식해 반응을 자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회담장에서 큰소리를 내기 일쑤였던 북한 대표들도 회담장을 벗어나면 달라졌다. 2015년 목함 지뢰로 우리 장병들이 중상을 입은 사건 때는 남북 회담 내내 책임을 부인하던 황병서 당시 총정치국장을 우리 측 대표단이 CCTV가 없는 화장실로 불러낸 뒤 반전이 일어났다. 황병서는 화장실에서 지뢰가 북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한국이나 해외에서 비밀리에 우리 측과 접촉한 북한 고위급 인사들은 양주를 같이 마시기도 하며 본심을 드러냈다. 고비마다 남북 관계의 실마리를 풀었던 건 공식 회담보다는 막후 협상이었다.

▷1990년대에는 이런 물밑 접촉마저 어려웠다. 당시 소련의 붕괴로 위기감을 느낀 북한이 회담장에 나왔지만 체제 유지를 위한 시간 벌기에 가까웠다. 한국 대표단 역시 북한에 대한 불신을 감추지 않았다. 최근 통일부가 공개한 당시 회담 문서에도 막말과 호통이 오간 장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남북은 북한의 핵 사찰 수용 등을 위해 1992년부터 1년여간 32차례 협상을 벌였다. 북한 대표는 우리 대표를 ‘깡패’ ‘강도’라고 불렀고, 우리 대표는 북한 대표를 향해 ‘북한에 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놈’이라고 했다.

▷1992년 말 열린 회담에선 북한 대표가 김일성의 사진을 찢는 일까지 있었다. 우리 대표단이 김일성과 스탈린이 나란히 선 사진을 보여주며 누가 사대적이냐고 따지자 북한 측이 흥분한 것이다. 당시 회담장 분위기가 얼마나 험악했는지 알 수 있다. 결국 남북 간 첫 핵 협상은 결렬됐다. 그 뒤로도 남북 관계는 수차례 부침을 겪은 끝에 마지막 남북 회담이 벌써 8년 전의 일이 됐다. 그사이 북한은 핵보유국을 자처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남북 대화 자체를 ‘개꿈이자 망상’으로 치부하며 휴전선에 장벽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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