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련 칼럼]‘환경론자’ 김성환 장관, 원전-수자원 품나

  • 동아일보

‘괴물’ 인공지능의 반도체 먹어치우기
막대한 이익과 동시에 인플레-양극화 초래
지금 같은 대란(大亂) 때 추진한 호남 팹
상대 당 정책 이어받는 대치(大治) 풀어야

김승련 논설실장
김승련 논설실장
지금 한국 경제가 대전환기를 맞았다는 관점에 동의한다. 인공지능이란 괴물이 갑자기 등장했고, 그 괴물은 수천 년 역사에서 우리가 거의 유일하게 1등을 차지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를 먹고 산다. 그래서 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첫 40년간 200조 원 안팎의 흑자를 냈는데, 올해 영업이익이 3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어마어마한 현금 창출에 따라 한국이 미래를 준비할 기회가 생긴 것은 맞다. 하지만 늘어난 돈은 물가 상승을 일으키고, 부동산-자산 양극화로 상당수 국민에게 물질적 심리적 고통을 안길 것이다. 이런 대란(大亂)이야말로 대치(大治)로 맞서야 한다. 큰 사변이 났을 땐 전에 없던 과감한 조치를 내놓으며 난제를 풀어가야 하는데, 결국 선 굵은 지도자가 감당할 것이다.

삼성과 SK가 800조 원이란 돈을 투자해 전남광주에 반도체 팹 4개를 짓기로 했다. 미래 반도체 경쟁을 위해 10년 뒤 수요까지 염두에 둔 선제적 모험 투자다. 삼성과 SK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완공을 대폭 앞당기는 정도에 안주하지 않았다. 별의 순간을 봤을 때 신의 옷깃을 잡아 끌며 승부해야 하는 건 정치뿐만 아니라 기업 영역에도 적용되는 말이겠다.

걸림돌이 있다면 전남광주의 전기와 물에 대한 의구심일 것이다. 정부는 지난달 발표 때 풍부한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고 댐과 저수지 기능을 강화해 해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선뜻 수긍이 어려웠다. 요 며칠 핵심 당국자들이 나선 것도 찜찜함을 걷어내기 위한 것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전남광주에) 원전 2기 더 지을 수 있다”고 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전력과 용수를 풀자면서 “국가가 생각하는 스케일도 함께 커져야 한다”고 했다. 특단의 조치를 염두에 둔 듯한 김 실장의 발언은 김 장관과 조율을 거친 당국의 의지 표시일 것이다.

전기와 물 정책 책임자인 김 장관은 오랜 탈원전 환경론자였다. “탈원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 “고리 2호기 원전 수명 연장은 부울경 주민을 볼모로 한 도박”이라고 했던 당사자다. 이런 그가 몇 년 사이에 당의 대선 공약에 따라 탈(脫)원전을 버리고 감(減)원전으로 돌아서더니, 이젠 계획에 없던 호남 원전까지 말하고 있다. 이만저만한 변신이 아니다. 수자원도 그렇다. 김 장관은 지난해 10월 과거 정부가 짠 기후대응댐 14개 건설 계획 중 7개를 중단시킨 주무 장관이었다. 그런 그가 신념을 벗어던지고 수자원 관리에 나설 태세인데, 김 장관이라고 이 과정이 마음 편할 리 없다.

호남 반도체 팹은 지난한 설득이라는 과제를 앞두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일군은 원전을 위험하게 여기고, 강물은 인공물에 막힘없이 흘러야 하는 것으로 믿는다. 이명박식 원전 개발과 4대강 사업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 이들이다.

어느 정당이라고 열성 지지층을 불편하게 하고 싶겠나. 하지만 우리 편을 설득하면서 추진하는 사업은 국가를 위해 소아(小我)를 희생하는 일로 평가될 만한 일이다. 어쩌면 환경론자 장관이라 이 작업에 더 적임일 수도 있겠다. 올 1월 갤럽 여론조사 때 민주당 지지층 가운데 35%는 원전 신규 건설에 반대했고, 42%는 찬성했다. 원전 반대론자가 결코 소수 그룹이 아닌 것이다.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친민주당 단체 43곳은 김 장관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상태다.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에서 친명-친문은 전쟁 중이다. 호남 원전 추진과 수자원 개발은 문재인 정부의 속살 같은 정책을 뒤엎는 일이다. 인화성이 큰 갈등거리란 뜻이다. 물론 반도체 공장이 전남광주로 결정된 마당에 권리당원이 많은 전남광주 지역과 척지는 주장을 문재인 정부쪽에서 펼 가능성은 낮다. 그래서 ‘정청래 vs 김민석-송영길’ 1 대 2 구도로 치러질 당 대표 경선 과정에 문 정책 백지화로 불릴 이 사안은 수면 아래서만 머물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드러내놓고 싸우지 않을지언정 그 저류에 계파 갈등은 부글거릴 공산이 크다.

야당이라고 여유로울 수 없다. 야당은 왜 광주여야 하느냐며 상대적으로 투자액이 적은 영남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영남 정서를 감안해 박수만 칠 수는 없다는 건 이해하지만,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듯한 전략은 동의받기 어렵다. 야당도 이 결정을 번복할 힘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대통령이 밝힌 대로 오랜 소외 문제가 서남권 반도체에 내재한다는 걸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지 않나.

국힘은 모처럼 민주당이 기존 정책을 뒤집어 가며 자당의 정책노선 쪽으로 옮겨오고 있다는 걸 부각시키고 싶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실용의 이름이든, 정치적 이익의 이름이든 신념을 고치는 상대 당을 궁지로 몰 이유는 없다. 민주당의 선택을 좋게 평가하는 것이 유권자 눈에는 더 성숙한 정치로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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