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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승련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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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6~2025-07-26
칼럼100%
  • [김승련 칼럼]외계인에게 침공당한 국민의힘

    지난 1개월 남짓 동안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내놓은 주문은 탈윤석열 부부, 탈계파, 영남색 약화로 요약된다. 이렇게 하면 반석에 오른다고는 장담 못해도, 이 정도도 못하고는 위기탈출은 어렵다는 점에 동의한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앞줄에 리드하던 친윤 중진들과 뒤에 숨은 ‘언더(under) 찐윤’이 보여준 혁신 저항은 상궤를 벗어난다. 대통령과 술 마신 걸 자랑했고, 여사에게 받은 문자를 훈장처럼 여기던 이들이다. 이들이 떠받들던 대통령 부부는 표를 준 1639만 유권자 중 상당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쯤 되면 내려놓는 게 상식이고 순리지만, 이들 생각은 다르다. 소설 ‘이방인’의 한 대목처럼 ‘대통령이 파면되고 구속된 거 빼면 오늘도 평범한 하루가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부조리극 같은 인사청문회 장면은 지금대로는 안 된다는 걸 보여줬다. 친윤 의원들은 총리의 돈 문제, 다른 장관 후보자들의 보좌관 갑질, 논문 표절을 질타했다. 이들 상당수는 ‘계엄 해제’ 표결 때 뒤로 빠졌고, 대통령 체포 저지엔 적극적이었다. 헌법과 법률의 작동을 가로막으려 했던 이들이 스폰서 의혹, 학문 윤리 훼손, 쓰레기 갑질을 놓고 질타했다. 후보자의 명백한 잘못이고 지적도 맞는 말이었지만, 왠지 울림이 작았다. 이런 일은 다음 총선까지 3년간 반복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문제 장관 후보자’ 1명에 대해서만 지명을 철회했다. 2명 모두 낙마하지 않은 것은 민심이 등돌린 친윤 야당의 전망 없음을 빼고는 설명이 안 된다. 차떼기 사태 때 2004년 한나라당 의원 37명은 불출마를 선언했다고 한다. 그들이 주판알 못 튀겨서 그만뒀다고 보지 않는다. 그쯤은 하는 게 당과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또 “자기 정치 한다”고 친윤이 꼬집는 윤희숙 혁신위원장은 아버지 부동산 거래로 의심을 받기 싫다며 3년 남은 의원직을 내던졌던 인물이다. 국민의힘은 외계인에게 침공당한 것과 다를 게 없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미국 잡지 인터뷰에서 썼던 이 표현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일’을 가리킨다. 보수 정치의 산 역사인 이 정당이 윤석열의 늪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데, 구조 요청도 자구 노력도 변변히 하지 않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말처럼 대란(大亂)엔 대치(大治)로 풀어갈 필요가 있다. 큰 위기엔 상상 못했던 수를 찾아야 길을 만들 수 있다. 윤희숙 혁신위가 제안한 윤석열 부부 전횡 반성의 당헌당규 삽입, 수도권 정치인의 최고위원 선출 확대, 국회의원 당원 소환제를 포함하는 1∼4호 혁신안이란 것도 ‘대치’의 한 방편이다. 친윤의 문제는 친윤이 풀 수밖에 없다. 친윤 밖 혁신위가 아무리 요구해야 당권을 쥔 친윤 진영은 겉으론 마이동풍이고, 속으론 더 움츠러든다. 그러자면 선두에 섰던 친윤 중진이 나서야 한다. 억울하다고 느끼겠지만, 숙명이라면 숙명이다. 자신을 포함해 영남과 강원의 언더 찐윤 의원들을 설득해 내야 한다. 올가을까지 현역 30명이 의원직을 동반 사퇴하는 것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경우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재선거를 위한 미니 총선이 열리게 된다. 인지도 높으나 신뢰를 잃은 친윤 중진과 역할이 미미하던 언더 찐윤이 물러난 지역구에 수도권 정치를 이해하는 5년, 10년 뒤 대통령감, 당 대표감을 발굴해 공천할 수 있다. 새로운 피는 당이 활력을 되찾아 건강한 야당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일방 독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국정은 국정대로 견제와 균형을 더 찾아갈 수 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윤석열 정치의 수혜자였던 친윤 중진들에겐 속죄와 자기희생의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확률은 1%도 안 된다는 걸 안다. 외계인 침공 확률만큼 작을 것이다. 3년이나 남은 의원직을 누가 버리려 하겠나. 하지만 버틸수록 당은 수렁에 빠질 것이고, 지탄이 빗발칠 것이 자명하다. 지역 유권자들은 앞에서 입을 닫을 뿐이지, 누가 어떻게 국민의힘 정치를 망가뜨렸는지 잘 안다. 누가 앞줄 친윤인지 뒷줄 언더인지도 안다. 이런 찜찜한 정치로 3년 임기를 마저 채울 것인가. 3선, 4선으로 선수(選數)를 쌓는 게 직업적으로 성공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들의 정치를 마음에서 존경하는 이들은 줄어들고 있다. 백범 선생이 배웠다는 옛 가르침에 그른 말이 하나도 없다. 나뭇가지 잡고 올라가는 것은 별로 대단하달 게 없다. 하지만 절벽에 매달려 있을 때 손을 놓을 수 있는 것은 용기로, 이 시대 리더에게 꼭 필요한 가치다. 친윤 중진과 언더 찐윤의 좌장들은 용기를 낼 수 있을까.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 2025-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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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련 칼럼]국민의힘 혁신, ‘언더 찐윤’과의 싸움이다

    야당이 된 국민의힘에 ‘언더(under) 찐윤’이라는 수면 아래 실세 그룹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지난달 처음 들었다. 국민의힘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꾼 김상욱 의원이 몇 군데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언더 찐윤은) 본인들 이름이 뉴스에 거론되는 것도 반기지 않는다. 똘똘 뭉쳐 있고, 지역구 행사 열심히 다닌다. 대인 관계가 참 좋다. 20∼30명쯤 된다. 대구·경북, 부산·경남, 울산, 강원에 있다. (계엄과 탄핵 이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지역구에서 김문수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크게 이겼으니까.”갈등을 겪다 탈당한 의원의 말이니, 감정과 과장이 섞였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며칠 뒤 원내대표를 지낸 김성태 전 의원이 “김상욱 의원 말이 맞다”고 동의하고 나섰길래 이들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김 전 의원에게 따로 물어보니 “윤 대통령의 술친구 하던 의원도 여기에 중요한 역할이 있다. 그들 협조 없이는 원내대표 같은 핵심 당직을 맡는 게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대단한 결사체를 말하는 게 아니다. 권성동 이철규 윤상현 나경원 등 전면에 서는 친윤 의원 말고, 늘 말없이 무리를 이루던 의원들을 가리킨 것이다. 알려진 것과 달리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변화를 거부하고 이익을 챙긴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두 사람의 공개 발언 이후 당에서 언더 찐윤을 거론하는 의원을 발견하지 못했다. 당내 인사에게서 “당내에선 이들과 내놓고 싸우는 게 부담스러워 입을 안 여는 것”이라고 설명을 들었다. 다른 의원은 “이들 찐윤은 두려움 때문에 더 뭉치고 있다. 제대로 된 리더가 등장하는 걸 막고 싶을 거다”고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당에는 묘한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국민의힘이 건강함을 잃은 것은 소장파 정치의 실종과 궤를 같이한다. 1990년대 홍준표 김문수, 2000년대 오세훈 원희룡 남경필처럼 때때로 당에 반기를 든 초재선 그룹들이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윤석열 체제에서도 초재선의 집단행동이 있었지만, 목표는 친윤 이익 챙기기였다. 비상계엄 이후로 좁혀 보면 더 선명하다. 계엄 해제 표결에 집단 불참했고, 탄핵에 찬성했다며 한동훈을 내몰았고, 한덕수 대선 후보 옹립을 위해 연판장 돌렸고, 김용태의 ‘탄핵 반대 당론의 백지화’를 흐지부지시켰다.이제 국민의힘이 버틸 곳은 민심밖에 없다. 그 민심은 신뢰할 만한 스피커를 앞세우고, 똑떨어지는 논리로 정부와 여당을 비판할 때 힘을 얻는다. 민주당이 대통령실 특활비를 여당이 됐다면서 전액 살려낸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안면몰수 행위였다. 국민의힘은 비판하긴 했는데, 민주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용산 정무수석만 나서 잘못을 인정했을 뿐이다. 놀라운 점은 국민 여론이 국민의힘의 비판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야당이 투명인간 취급 받는다는 말이 나와도 할 말이 없게 됐다.국민의힘에는 안철수 혁신위가 출범했다. 계엄과 대통령을 감싸고돈 것을 자기 언어로 반성하는 것이 제1 과제일 것이다. 지금은 사과하고 대선 백서를 낸다고 해서 큰 감동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단계다. 결국 친윤 핵심에 대한 인적 청산만이 국민들에게 변화의 간절함을 전달할 방법이다. 다른 어떤 혁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람 청산의 방식으론 책임자 2선 후퇴에서 3년 뒤 총선 불출마, 당장 의원직 사퇴까지 여러 선택이 있다. 인위적 청산이건, 당사자의 자기희생이건 그건 나중 문제다. “종양과 고름을 짜내겠다”던 안 위원장 말은 이런 걸 가리켰을 것이다.윤핵관이나 친윤 영남 중진의 퇴장만 떠올릴 일이 아니다. 김상욱, 김성태 두 사람이 수면 위로 끄집어 올린 ‘똘똘 뭉친 무명의 국회의원 결사체’를 주도했던 이들도 예외일 수 없다. 문제는 안철수의 혁신카드를 ‘언더 찐윤’과 유대가 깊고, 이들의 후원 속에 당선된 송언석 원내대표가 받아들이겠느냐는 점이다. 안 위원장의 혁신 싸움이 어려운 이유다.당 내부에선 ‘바깥의 힘’에 기대를 거는 눈치다. 특검 수사, 특히 16개 사건을 다루는 김건희 특검 수사를 말한다. 수사 과정에서 대통령 부부에 선을 댔던 ‘언더 인물’들이 등장한다면 철옹성 같던 찐윤 연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하지만 이런 경우라면 보수 본당인 국민의힘으로선 서글픈 상황이다. 잘못을 스스로 바로잡을 능력을 잃은 정당은 존재 이유가 있나. 또 “독재 정치”라며 비판하던 3개 특검법이 자당 환부를 도려내주길 기대하는 정치는 또 뭔가. 국민의힘은 넘어져 있다. 일어서는 과정을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진통이 커지더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 그 핵심에서 언더 찐윤과의 싸움이 빠질 수 없다. 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 20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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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련 칼럼]‘셰셰발언’ 벗어날 100일 보낸 뒤 트럼프 만나라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날 2번의 기회가 사라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백악관의 대통령 당선 축하 메시지에 “중국의 간섭을 우려한다”는 대목이 찜찜하다. 동맹국에 대한 명백한 결례이지만, 새 정부에게서 느낀 중국 우호 기류를 견제하는 것 같아서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북-중-러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를 했다”는 ‘기이한’ 표현을 민주당이 탄핵소추문에 써 넣은 일이 있었다. 워싱턴에서 일으킨 파장이 백악관 생각에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취임 후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고, 한미동맹파를 일부 기용한 것은 긍정 평가받을 일이지만, 비중이 클 수는 없다.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지금은 한국이 최대 수혜자였던 탈냉전 30년 자유무역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적어도 트럼프 정부하에선 동맹이라는 이유로 미국이 한국을 편들어 주는 시기도 아니다. 그렇기에 어느 때보다 대통령의 구상이 중요한데, 이 대통령은 진지한 언론에 체계적인 질문을 던질 기회를 대선 때 주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보다 덜 이념적이다. 이 대통령이 1년 전 “중국에도 대만에도 셰셰(謝謝·고맙다) 하면 된다”고 말한 것은 실용적 사고에서 나온 진심이라고 믿는다. 굳이 중국과 척질 필요 없고, 경제 교류 늘리면 좋다고 여겼을 것이다. 문제는 타이밍이고, 대통령의 정세 판단 오류 가능성이다. 요새 국제정치학자들은 “(국제 규범을 강조하는) 화려한 위선의 시대는 가고, (강대국이 자기 이익만 챙기는)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왔다”는 말을 종종 한다. 미국의 향후 30년 주적은 중국이다. 중국이 패권 지위를 넘보는 걸 막기로 한 것이다. 트럼프건 바이든이건 똑같다. 미국은 이를 위해 대만과 주변 서(西)태평양 해역에서 중국 압박에 올인했다. 지난 30년처럼 중국에 첨단 제품 팔고, 러시아에서 값싼 원재자를 사는 게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는 국제법보다 주먹이 더 가까운 ‘19세기형 강대국 외교’를 불러왔다. 미국이 이란에 벙커버스터를 떨어뜨려 항복을 받아내고, 멀쩡한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의 영유권을 ‘근외(近外·near abroad)’ 정책의 이름으로 탐내는 세상이 왔다. 이 대통령은 한미동맹도 강화하고, 중국과 관계도 개선하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자주파와 동맹파가 함께하는 이런 ‘양손잡이 외교’는 쉽지 않다. 중국과 교류가 확대되고, 정부 간 접촉은 늘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행사와 의전을 넘어서서 중국의 본질적 이익에 기여할 때는 미국에 된서리 맞는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 미 국방장관이 “안보는 미국과 하면서 중국과 손잡고 돈 버는 시대는 갔다”고 압박하는 게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안보정책을 원점에서 실용의 이름으로 재검토할 기회를 맞았다. 강을 건넜으니 타고 온 뗏목은 버려도 된다는 경구는 경제 정책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조각(組閣) 등을 이유로 나토 참석을 미룬 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취임 100일 동안 과거 발언도 지우고, 백지 상태에서 새 그림을 짜야 한다. 대통령은 대중국 전략을 한미동맹파 외교관들에게 맡겼는데, 미국의 비판적 중국관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반면 대북한 정책은 정동영 이종석 등 자주파에게 맡겼고, 취임 첫 주부터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중단시켰다. 김정은이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상정한 뒤 문을 닫은 지금 북한이 관계 개선 필요성을 느끼도록 해야 할 과제가 이들에게 주어졌다. 대통령실은 머잖아 한미 정상회담이 열릴 때 트럼프가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가정한 뒤 준비해야 한다. 첫째, 미국은 대만 유사시에 주한미군을 급파할 텐데, 그때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둘째, 미국은 북핵 폐기는 장기 과제로 돌리는 가운데 미국을 핵공격 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없애는 대가로 대북 제재를 푸는 협상을 북한과 벌일 수도 있는데, 한국은 수용할 수 있나. 이재명 정부가 전자에 동의하면 중국이, 후자에 동의하면 국내 여론이 뒤집어질 일이다. 새 정부는 두 질문에 예스-노 답변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운 틀을 짜고 해법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미 간에 당장은 관세 및 투자협상 등 먹사니즘(먹고 사는 문제)이 현안이지만, 향후 1, 2년 내에 죽사니즘(죽고 사는 문제)이 기다리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 분담금을 더 내라는 미국의 요구가 상대적으로 더 쉬워 보일 정도다. 첫 100일 가운데 벌써 20일이 지났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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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트럼프, 초강력 폭탄 ‘벙커버스터’ 투하할까

    “무조건 항복하라.” “당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겨냥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이다. 이란은 13일 시작된 이스라엘의 탄도미사일과 드론 공격 때문에 군 참모총장을 잃었고, 핵 시설과 미사일 기지가 파괴됐다. 이런 국면에 트럼프 대통령마저 무시무시한 메시지를 던지고 나섰다. 지금까지는 해외 군사 개입을 극히 꺼려 왔던 트럼프 대통령이다. ▷이스라엘이 군사작전에 나선 것은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이 겉돈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이란은 무기급에 가까운 60% 농축우라늄을 비밀리에 비축했고, 유엔은 그 규모가 408kg에 이를 것으로 봤다.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 버리겠다”고 공언하는 이란이 몇 개월 내로 핵무기를 확보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스라엘은 몇몇 핵 시설은 파괴됐지만, 수도 테헤란 남쪽 산악지대의 포르도 핵 기지는 손대지 못했다. 수천 개의 원심분리기가 지하 80∼100m에 숨겨진 곳이다. 미국의 벙커버스터(GBU-57)가 주목을 받는 이유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올 2월, 4월 2차례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4월엔 포르도 기지 사진까지 제시하며 지하 목표물을 파괴하는 벙커버스터 사용을 적극 설득했다. 탄두 중량만 13t으로, 미 공군 B-2 스텔스 폭격기로만 실어 나를 수 있는 초대형 폭탄이다. 지상군 투입 없이도 이란 지하 핵시설을 직접 때릴 수 있다. 미 공군은 단발이 아니라 여러 발을 조율된 타이밍에 동시 투하하는 훈련을 지난 2년간 해 왔다. 당시 회담 때 트럼프는 네타냐후의 요청을 거절했다. ▷벙커버스터를 쓴다는 것은 미국의 정식 참전을 뜻한다. 트럼프의 대외 분쟁 불개입 철학과 상충해 쉽게 내릴 결정이 아니다. 방사능 유출에 따른 비난을 받을 수도 있고, 이란이 중동 내 미군기지를 공격할 땐 확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트럼프 참모들은 “대통령의 신념을 관철시키자”는 쪽과 “어느 대통령도 못 한 이란 핵 제거를 트럼프가 해내야 한다”는 쪽이 맞서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동안 미국이 시작한 전쟁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자랑처럼 말해 왔다. ▷안팎으로 꽉 막힌 미국의 사정은,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벙커버스터 사용 옵션을 솔깃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는 “내가 취임하면 모든 전쟁을 다 멈춰 세우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우크라이나 등에서 휴전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상호관세 협상이나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도 논란이 크다. 트럼프에겐 벙커버스터와 관련해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군사적으로 파괴하거나, 사용할 것처럼 구두 압박 수위를 높여간 뒤 이란이 핵 포기 문서에 서명하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평소라면 후자의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지만, 전면전이 시작된 지금은 예측하기 힘들어졌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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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배은망덕” “미쳤다”… 파국 맞은 트럼프-머스크 브로맨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맺은 아슬아슬한 정치 동맹이 5일 파탄을 맞았다. 불과 1주일 전 트럼프는 정부효율부(DOGE)를 떠나는 머스크를 위해 백악관 집무실에서 퇴임식을 열어 황금 열쇠를 선물했다. 둘 사이 감정의 골은 이런 식의 ‘해피엔딩 연출’로 덮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머스크가 1년 전 개인 돈 3700억 원을 기부하면서 대선 승리를 돕고, 트럼프는 우주와 방산 계약을 테슬라에 몰아주는 관계를 맺었다. 결별은 막장 드라마와 같았다. ▷누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느냐는 무의미하지만, 그날만큼은 트럼프가 먼저 시작했다. 그는 독일 총리를 옆에 앉혀놓은 자리에서 “실망스럽다. 쓸데없는 전기차 보조금에 수조 원을 퍼부어야 한다”며 머스크를 비판했다. 트럼프가 “크고 아름다운 법안(Big, Beautiful Bill)”이라 부르는 감세법안을 두고 머스크가 이틀 전 “역겨운 흉물”이라고 부른 걸 참을 수 없었던 듯하다. TV 생중계를 봤을 머스크는 실시간으로 자기 소유 X(옛 트위터)에 “나 없었더라면 대선에 졌을 텐데. 배은망덕하다”고 썼다. ▷트럼프는 미독 정상회담 직후 하버드대에 했던 것처럼 테슬라와 맺은 정부 계약 중단 가능성을 꺼내들었다. 감정싸움이 그렇듯 수위는 계속 올라갔다. 머스크는 잠시 후 “트럼프 탄핵에 찬성한다”는 글을 SNS에 링크했다. 트럼프가 “머스크는 미쳤다”고 글을 쓰자, 머스크는 폭탄을 터뜨렸다. “엡스타인 명단에 트럼프가 포함됐고, 이게 정부가 명단 공개를 늦추는 이유”라고 썼다. 엡스타인은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옥살이하던 중 사망한 금융계 거물이다. ▷부동산 사업에 성공한 뒤 TV 명사가 된 트럼프나, 기행을 일삼으면서도 천재적 발상으로 전기차 및 우주산업 왕국을 만든 머스크에겐 공통점이 있다. 자기중심적이고, 2등을 용납 못 할 만큼 자존심(ego)이 세고, 때론 치기 어리다는 점이다. 이런 둘이 한 팀을 이뤄 백악관에 머물며 협력한다는 게 처음부터 불가능했는지 모른다. 주고받은 어린아이 말다툼 같은 싸움이 그걸 잘 보여준다. ▷둘의 결별은 서로를 파괴했다. 테슬라 주가가 하루 동안 14% 폭락해 시총 206조 원이 날아갔다. ‘누구도 도전할 수 없다’는 트럼프 신화도 금이 갔다. 머스크는 “트럼프는 3.5년 남았지만, 나는 40년 더 간다”고도 했다. 동맹국과 경쟁국을 가리지 않고 트럼프식 세계 질서를 심으려는 트럼프에겐 치명적인 장면이다. 글로벌 뉴스미디어는 이날 사건을 흥미롭게 다뤘는데, 트럼프가 자존심 회복을 위해 돌출 행동에 나설지 모른다는 불안한 변수가 새로 추가됐다. 새 정부 출범 뒤 미국과 안보 및 경제 협력 관계를 맺어야 할 우리로선 더욱 조심스러운 대목이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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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타코”에 격분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고약한 별명을 붙인 뒤 반복 사용하면서 정치적 상대방을 조롱하곤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슬리피 조(Sleepy Joe·졸린 바이든)’라 불렀고, 공화당 경선 상대자에겐 ‘낮은 스태미나(low stamina·활기가 없다)’라면서 손가락질했다. 최근엔 연준 의장을 향해 ‘미스터 투 레이트(Mr. Too Late·결정이 늦은 남자)’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런 트럼프에게도 달갑잖은 별칭이 생겼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그의 관세 정책을 금융시장이 ‘타코(TACO)’라고 부르고 있다. ▷타코는 ‘트럼프는 늘 꽁무니 뺀다(Trump Always Chickens Out)’는 문장의 머리글자를 딴 것인데, 영국 기자가 몇 번 썼더니 미 증권가 리포트에 등장했다. 급기야 28일 취재기자가 백악관 집무실에서 “월가에서 ‘타코 거래’라는 말을 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타코 거래란 트럼프의 변덕 정책에 익숙해진 금융시장이 이제 급등락하지 않게 된 현상을 가리킨다. ▷트럼프 2기 4개월 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은 좌불안석이었다. 중국 캐나다 멕시코 등을 상대로 엄청난 고율 관세를 때린다고 발표했다가 곧바로 유예하는 일이 일상처럼 돼 버렸다. 미 워싱턴포스트가 세어 보니 관세 부과와 취소 또는 유예가 50번이 넘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주식, 채권, 외환시장은 폭락했다가 한발 뺀 뒤 비로소 회복했다. 그러다 보니 ‘양치기 소년’ 우화처럼 주식시장이 무덤덤해졌다. 실제로 트럼프는 지난주 유럽연합(EU)에 50% 관세를 매겼다가 이틀 만에 “1개월 반쯤 미루겠다”고 발표했다. 미 증시는 50% 관세라는 대형 악재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트럼프는 “(타코라는 말을) 처음 듣는다”며 “다시는 그런 식으로 묻지 말아라. 고약한(nasty) 질문이다”라고 반응했다. 표정 변화는 크지 않았지만, 불쾌감을 대놓고 드러냈다. 트럼프는 “말도 안 되는 높은 숫자를 제시한 뒤 살짝 낮춰주는 걸 협상이라 부른다”는 말로 자신을 방어하려 했다. 자신의 책 제목처럼 ‘거래의 기술’로 포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타코식 오락가락 정책은 관세뿐만이 아니다. ▷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도 침략국 러시아의 편을 들면서 지구촌을 경악시켰는데, 최근엔 “푸틴은 완전히 미쳤다”며 돌아서는 듯하다. 집권 1기 땐 “하나의 중국 정책이 꼭 필요하냐”는 미중관계를 뒤흔드는 발언을 꺼냈다가 “존중하겠다”며 물러선 적도 있다. 트럼프를 겪어온 미국인들은 트럼프의 즉흥성이 문제의 중심이란 걸 간파하게 됐다. 또 그의 관세 정책이 생각만큼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트럼프가 신조어 ‘타코’에 언짢아 했지만, 진짜 그를 불편하게 만든 것은 자신과 자신의 정책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고 있다는 점일지 모른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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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련 칼럼]‘완벽한 이력서’ 정치 엘리트가 던진 질문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공개 활동을 중단했다. 26일 비공개 소환조사를 받았고, 출국금지됐다는 정도만 보도됐다. 그가 카메라에 포착된 것은 일주일 전 하버드대 한국 동창회에 참석한 일이다. 한때 몸담았던 뜨거운 대선 국면에 비춰볼 때 한가한 일정이었다. 한 전 대행은 5월 초 사퇴 담화문에서 “고뇌 끝에, 이 길밖에 없다면 가겠다”며 결기를 보였다. 정치와 국정을 바꾸겠다는 선언이었는데, 단일화 소동 끝에 후보가 안 됐다면서 뒤로 빠졌다. 완벽한 이력서를 자랑하는 그의 50년 공직은 이해 못 할 선택들로 마지막 장이 채워지고 있다. 한 전 대행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을 이끌던 비대위원장, 원내대표, 다선 중진, ‘윤핵관’들도 경력으로 치면 부러워할 게 많다. 거의 예외 없이 최고의 대학을 나오고, 고시에 붙거나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 계엄의 밤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이들은 “계엄은 잘못”이라는 쉬운 답을 못 찾았고, 부적격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고, 새벽 3시의 후보 바꿔치기를 두고 “이건 아니다”란 한마디가 없었다. 유권자들은 고위직이 주는 무게감을 믿었고, 필요할 때 제 몫을 해 줄 것을 기대했다. 평소엔 가려진 것들이 위기의 순간에 문득 드러나곤 한다. 경력에 걸맞은 실력을 논하기에 앞서, 보통 사람들의 상식과 동떨어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이라고 다를 게 없다. 요새 민주당에는 전통적으로 국민의힘이 추구하는 ‘스펙 인재’가 늘어났지만 본주류는 운동권과 시민단체 출신이다. 이들은 선후배 인연을 바탕으로 당의 중심을 차지했다. 자폭한 보수 정치에 반사이익을 얻어 선수(選數)를 쌓았지만 국회를 운영하는 모습에서 우리를 미래로 이끌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크다. 이들의 이력서는 세속적 눈으론 화려하지 않을 수 있지만 운동가의 관점에선 모자람이 없는 이들이 많다. 소리(小利)를 버리고 학생운동과 시민사회로 나섰으니 정의감을 기대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지난 몇 년간은 정의와 양심보다는 충성심이 더 부각된 시기였다. 지난 1개월만 봐도 그렇다. 민주당은 대법원장 탄핵, 특검, 청문회를 거론했다. 4심제를 도모했고, 대법관 수를 30명, 100명으로 늘리겠다고 나섰다. 사법부를 이렇게 거칠게 다룬 정당은 1987년 체제에선 없었다. 대중의 뇌리에서 잊혀졌지만 민주당은 당헌도 맞춤형으로 고쳤다. 대선 1년 전에 당 대표는 사퇴해야 한다는 조항도, 기소되면 당직을 맡을 수 없다는 조항도 지워 버렸다. 1인자의 대선 가도를 위한 조치였다. ‘양심세력’이 많다는 정당에서 “이건 아니다”란 반론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걸까. 국회의원이나 정부 고위직에 오른 이들에게서,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역사적 책임을 진다는 의식이 약해진 탓일까. 뭐가 맞는지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다. 다만 편협한 공천이 남긴 악영향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이 흥행을 거둔 뒤 2007년 이후 불붙은 경선 전쟁과 궤를 같이하는 일이다. 경선 확대는 정당 민주화의 한 형태였지만, 그 바람에 국회의원 공천은 공천권을 쥔 1인자가 ‘내 사람’을 찾는 과정처럼 돼 버렸다. 당심과 민심을 얻어 대선 후보가 되려면 현역 의원 몇 명의 지지를 얻느냐가 중요해졌다. 결국 큰 정치를 하겠다며 당돌하게 덤벼드는 미래의 당 대표감, 대선 후보감이 공천받는 일이 거대 정당일수록 크게 줄었다. 그 대신 우수하지만 무난하고 충직한 인재들이 공천을 받아 계파원이 되는 경우가 늘었다. 오른쪽 정당은 모범생을 찾았고, 왼쪽 정당은 운동권 경력이 강조됐다. 그 결과, 소장파 모임이 실종됐다. 과거엔 당 주류에게 반론을 펴는 초·재선 ‘당내 야당’이 있었다. 요즘엔 국민의힘 상당수 초선들은 대통령 뜻을 따라 연판장을 돌리는 행동대가 됐다. 민주당 초선 중 개딸 집단의 뭇매를 감당하겠다는 이들은 찾기 어렵다. 당내 민주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이견을 용납 않는 ‘한목소리’가 강화된 것이다. 이러니 당 지도부가 긴장감이 떨어진 가운데 엉뚱한 선택, 황당한 행동에 별 부담 없이 나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답을 찾아야 할 질문이 남아 있다. 누가 정치를 해야 하는가. 그 인재를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리더가 건강한 선택을 내릴 당내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계엄과 탄핵, 무너지는 당내 민주주의로 지금의 정치가 흔들리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사람의 빈곤, 특히 핵심 리더의 부재가 존재한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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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선물 많이 받아 쌀 안 사봤다” 염장 질러 퇴출된 日 장관

    “집에 (선물)받은 쌀이 많다”는 황당 발언을 한 에토 다쿠 일본 농림수산상이 결국 21일 사실상 경질됐다. 에토 전 장관이 18일 자민당 모금행사 때 “저는 쌀을 산 적이 없다. 지원자분들이 쌀을 많이 주신다. 집에 팔 정도로 있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킨 지 사흘 만이다. 일본은 1년 새 쌀값이 2배로 뛰었다. 식당 덮밥, 편의점 삼각김밥, 일본술까지 줄줄이 가격이 올라 소비자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 쌀 생산은 줄지 않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유통량이 늘지 않은 것이 이유라고 한다. ▷일 정부가 비축미까지 풀었지만 5kg에 4만∼5만 원 정도로 한국보다 2배 높게 형성된 쌀값은 요지부동이다. 이런 상황에서 쌀값 안정을 책임진 주무 장관이 그런 발언을 했으니 민심이 폭발했다. 미국이 “일본은 쌀값에 관세를 700%나 붙인다”고 할 정도로 일본에서 쌀은 단순 농산물이 아니다. 8선 의원인 에토 전 장관은 이른바 ‘농림족’ 정치인으로, 농림수산상만 2번째 맡았다. 그런 그가 쌀을 소재로 무신경한 발언을 내놓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궁금한 것은 ‘민심이 두렵다’는 정치인들이 어떻게 이렇게 발언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에토 전 장관의 배경에 답이 있을지 모른다. 에토는 세습 정치인이다. 그의 아버지 역시 같은 규슈섬 남쪽 미야자키현 농촌 지역을 낀 지역구에서 10선 의원을 지냈다. 1969년 이후 미야자키 선거는 이들 부자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별다른 경쟁 없이 반복 당선되다 보니 긴장감이 떨어졌고, 결국 “집에 쌀이 넘쳐난다”고 태연하게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둔 탓이겠지만, 그래도 일본에선 물의를 빚은 장관을 경질했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선 말실수 정도로 장관을 교체하는 일은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사기 피해가 급증했던 지난해 “젊은이들이 (집을) 덜렁덜렁 계약했다”고 해 분노를 자아냈다. 그러나 사과만 했을 뿐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충암고 후배인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태원 참사 직후 “경찰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해 공분을 자아냈다. 안전 담당 장관인 그를 문책하는 것이 순리라고 대다수가 여겼지만, 그는 자리를 지켰다. ▷문재인 정부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박원순 시장 추문 사건 때 “온 국민이 성인지 (감수)성을 집단 학습할 기회가 됐다”고 했다가 당시 여당 내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즉각 교체는 없었다. 여야 정치싸움이 거세지면서 권력 핵심부에선 “야당에 밀리면 안 된다”는 논리가 압도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에토를 경질하면서 당연한 해야 할 발언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는 “모두 임명권자인 저의 책임”이라고 했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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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한국은 중국 앞 항공모함”

    제2차 세계대전 때 항공모함(aircraft carrier)의 등장과 함께 해전은 바다 위 항공전 성격이 강해졌다. 하지만 항공모함 역시 잠수함이나 대함미사일에는 빈틈이 있다. 군사 전략가들은 가라앉지 않는 ‘불침(不沈·unsinkable) 항모’를 꿈꿨고, 전투기의 근접 이륙이 가능하면서도 침몰하지 않는 섬의 가치에 주목했다. 중국 턱밑의 대만, 미국령 괌이나 일본령 오키나와가 불침 항모로 불렸다. 중국은 남중국해 암초에 콘크리트를 퍼부어 중국식 불침 항모를 만들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15일 한국을 불침 항모처럼 묘사했다. 한 심포지엄에서 “한국은 일본과 중국 본토 사이에 떠 있는 섬 또는 고정된(fixed) 항공모함과 같다”고 했다. 중국 코앞에 있는 평택, 군산의 미군기지를 떠올리게 한다. 미 핵심 당국자가 한국을 이렇게 불렀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드문 발언인데, 대중 억제를 위한 전략적 가치를 인정한 발언이다.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일본 총리가 “일본은 미국에 있어서 (소련에 함께 저항하는) 불침 항모”라고 스스로를 낮춰 부른 적은 있다. ▷브런슨 사령관은 주한미군의 성격을 재정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봐야 한다. 내용도 피터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올 3월 비공개 회람한 ‘국방전략 잠정 지침’과 맥을 같이 한다. 그 지침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한다. 하지만 북의 재래식 군사 위협은 미군이 아닌 한국과 일본이 함께 막도록 하겠다고 돼 있다. 미국은 중국 견제 후 남은 힘으로 한국을 돕는다는 구상이다. 주한미군은 1953년 동맹 이후 유지해 온 북한 억제가 아닌 중국 대응으로 성격이 달라진다. ▷트럼프라도 동맹을 쉽게 버릴 순 없다. 미국의 최강대국 지위는 나토 같은 집단안보나, 한미, 미일 등 양자동맹을 잘 맺어 이룬 것이다. 주한미군을 돈의 가치로 따지려 드는 트럼프지만 필요성은 명확히 알고 있다. 그는 집권 1기 때 “왜 비싼 돈 들여 주한미군을 운용하느냐”며 제임스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온 답이 “북한이 워싱턴을 향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쐈을 때 알래스카 미군은 15분 뒤에 파악하지만, 주한미군은 7초 만에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그 이후론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6·3 대선 후 새 정부가 들어서면 미국은 통상 및 관세 못지않게 70년 넘게 주둔한 주한미군의 혜택을 돈으로 보상해 달라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한반도라는 위치가 지닌 가치를 인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이란 항모에서 전투기를 대만으로 출격시키겠다며 미중 갈등에 우리를 끌어들일 개연성을 높였다는 점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안보 운명을 가를 동맹 간 험난한 대화와 협상의 때가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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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련 칼럼]대통령 최측근들의 집단적 ‘불고지죄’

    국가보안법 10조에 불고지죄(不告知罪)라는 게 있다. 주위 사람이 반국가단체에 가입했거나, 북한 인사를 몰래 만난 사실 등을 알면서도 당국에 신고(고지)하지 않았을 때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양심의 자유를 해친다는 문제를 지닌 탓에 오래전부터 사문화됐다. 대통령들의 거듭된 실패를 지켜보면서 이 조항을 대통령의 최측근에게는 적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후보 잘못에 입 다물었다고 법적 처벌을 할 수는 없지만, 정치적 책임은 묻자는 뜻이다. 대선 후보가 지닌 자질 부족과 내적 허점을 뻔히 알면서 그런 게 없는 것처럼 이미지를 만든 죄, 대통령 측근으로 권세를 누리면서 바로 그런 문제가 촉발한 국정 일탈에 침묵한 죄가 해당한다. 국민 앞에 이실직고야 할 수 없더라도, 내부적으론 개선책을 찾아내 바로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젠 비밀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은 역정(逆情)과 배우자 국정개입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버럭은 정확한 보고를 어렵게 만들었고, 오판이 종종 발생했다. 가령, 윤 전 대통령은 트럼프 승리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 바이든 후보 교체설이 나온 즈음 트럼프 당선 가능성이 보고됐다. 그때 대통령은 ‘말이 되느냐’며 역정을 냈다.” 그는 91개 혐의를 받는 형사피고인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상상하기도 싫었는지 모르겠다. 이후론 ‘해리스 우세’ 보고만 받게 됐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2030년 엑스포 경쟁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참패하는 순간까지도 윤 전 대통령은 ‘부산 승리’를 확신했다고 한다. 어떤 보고를 받았길래 그럴까 궁금했는데, 이젠 짐작이 간다. 김건희 여사의 국정개입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참모들에게서 생각의 자유를 빼앗아갔다. 용산 대통령실에는 요즘 신문에 등장하는 건진법사 전성배 씨의 조카가 심어놓은 행정관 A 씨 같은 인물들이 곳곳에 포진했다고 한다. 정무와 홍보 라인 실무자들은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서는 꼭 개선해야 하지만, 여사가 불편해할 주제는 논의하지 못했다고 한다. “발언이 여사에게 보고된다고 믿었다. 오해 살 만한 생각은 꺼내지 않았다”는 내부자의 말이 뼈아프다. 지금까지 만난 역대 대통령실 참모들은 대통령이 성공해야 나라도 잘되고, 종국엔 자신의 장래도 잘 풀린다고 믿는 이들이다. 좌우를 가릴 것 없이 비슷했다. 그러자면 대통령을 정말 존경하고 좋아해야 하는데, 이런 근본적 문제점을 안고 있으니 용산은 활발한 국정의 중심이 되지 못했다. 윤 전 대통령 시절이 더 심각했을 뿐 사정은 과거 정부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의 대면보고 기피로 상징되는 불통이나, 문재인의 소득주도성장이나 탈원전 같은 외골수 경제정책은 국정에 난맥을 낳았다. 최측근들은 미래의 대통령이 갖고 있던 소통의지 부족이나, 이념 경도를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선거 국면에서 국민 앞에 ‘불고지’했다. 유권자는 더 정확하게 알고 투표할 권리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3년 전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말을 썼다. 양의 머리를 좌판에 올려놓고 팔았지만, 실제론 개고기였다는 뜻이다. 국민의힘이 대선 때 정직하지 못했다는 자기 고백으로 들린다. 대선 당시 이 의원은 윤 후보의 버럭 기질과 부인의 사사건건 개입을 알고 있었을까. 실상을 더 속속들이 알았던 것은 윤핵관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윤 후보를 ‘공정과 상식’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그랬던 윤핵관들은 탄핵과 파면을 거치며 구두 사과만 했을 뿐 여전히 정치의 전면에 서 있다. 또 진보 정부가 5년 만에 보수로 넘어갔다는 점에서 심판을 받았던 문 정부 시절의 최측근들도 비슷하다. 국정 오류를 인정한 적도 없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약진 탓에 위축됐을 뿐 여전히 재기를 노리고 있다. 대선이 한 달 남짓 남은 지금, 비슷한 일은 없을까. 이 후보의 최측근들은 열성 민주당원들도 알 수 없는 이 후보의 실제 생각과 기질을 잘 알 것이다. 지금 내놓은 이 후보의 중도 보수 전략은 실체가 있는 것인지, 선거에 맞춰 내놓은 것인지 외부에선 알 도리가 없다. 여타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한동훈 후보가 전자기타를 치는 등 일상 영상을 공개했다. 민주당 3선 의원 출신은 “회계로 치면 분식회계다. 얼굴에 분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여러 후보의 이미지 전략에 유권자들이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이유다. 그동안 유권자들은 번번이 후보의 기획된 모습을 믿었다가 절망하곤 했다. 측근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며 빠져나간다. 아무도 묻고 따지지도 않으니, 측근 정치인들은 거리낌 없이 후보를 포장해 선거를 치르고 있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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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10→20→54→104→125→145%→“中에 잘해 줄 것”

    ‘10%→20%→54%→104%→125%→145%.’ 올 1월 취임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매긴 관세율은 가파르게 올랐다. 보편관세, 상호관세, 보복관세라는 이름이 붙었다. 4월 초 한국(25%), 일본(24%) 등 60여 나라에 부과하기로 한 상호관세는 시행 3시간 만에 90일 유예가 발표됐다. 이런 식의 관세 정책은 전략적 로드맵 없이 트럼프가 그때그때 만난 참모가 누구냐에 따라 결정됐다는 보도도 있다. 주먹구구 정책으로 물러난 이는 없었으니, 책임이 트럼프에게 있다는 의미다. ▷백악관은 거침없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고문은 “90일 동안 90개국과 무역협정을 맺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취임 100일을 앞둔 24일 현재 실제 체결된 나라는 한 곳도 없다. 미국은 이번 주 한국 일본 태국 인도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 ‘동맹국과 우방국 먼저’라는 미국의 제안에 따른 것인데, 관세 외에도 안보와 투자까지 패키지 딜로 다룰 수 있어서 단기간에 결론짓기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 ▷궁지에 몰리다 보니 트럼프로선 체면 불고하고 생각을 뒤집는 일이 잦아졌다. 그는 22일 145% 대중국 관세에 대해 “그렇게 높게 유지될 수 없다. 중국을 매우 잘 대해줄 거다”라고 말했다. “중국 하기에 달렸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선제적인 유화 제스처였다. 금리 인하를 요구하면서 교체 가능성을 흘렸던 제롬 파월 연준(FRB) 의장에 대해서도 “교체할 뜻이 없다”고 돌아섰다. 145%라는 상식 밖 관세를 매기거나, “언제 그를 해고(termination)하더라도 빠른 게 아니다”라고 할 때의 호기로움은 안 보였다. ▷트럼프의 변덕은 미국과 자신의 힘을 과대평가한 결과다. 그는 “참 아름다운(beautiful) 단어가 관세인데, 관세를 매겨 다시 부자가 되자”며 관세 전쟁의 승리를 당연시했다. 안보 이슈에서도 “내가 취임하면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전쟁은 몇 주 내로 끝난다”고 호언했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트럼프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백악관은 충성파로 채워져 있다. 이들은 트럼프가 세운 불가능한 목표를 두고 “이건 어렵다” “달리 접근해 보자”는 의견을 내지 못했다는 게 미 언론의 평가다. ▷트럼프를 실제로 멈칫하게 만든 것은 시장의 힘이다. 트럼프가 관세를 발표할 때마다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은 약세를 면치 못했다. 개인투자자, 연금가입자의 자산이 줄어드는데 버틸 정치인은 없다. “중국 제품이 안 들어오면 2주 뒤엔 매대가 텅 빌 수 있다”는 대형 유통사 사장들의 경고에 트럼프는 위축됐다. 트럼프의 오락가락은 국제질서에 예상보다 더 큰 리스크를 안겼다. 그렇다면 시장의 힘을 절감한 트럼프가 속도 조절에 나설까. 그럴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혼란이 큰 약이 된 셈이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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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나도 한번”… 국민의힘 13룡? 15룡?

    우리 정치에 잠룡(潛龍)이란 말이 본격 등장한 것은 1997년 대선 때다.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회창 등 9명이 각축했는데, 아홉 잠룡이란 뜻에서 ‘9룡’으로 불렀다. 아직은 물속에 몸을 맡긴(潛) 미래의 대통령(龍)이란 뜻이었다. ‘1호 당원’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국민의힘에선 잠룡이 넘쳐난다. 6·3 대선을 50여 일 앞두고 15명 안팎까지 늘어난 이들을 13룡, 15룡으로 부른다. 모두가 잘 준비된 잠룡일 수는 없건만, 출마 희망자는 늘어나고 있다. ▷안철수 의원과 이정현 전 대표가 8일 대선 도전을 선언했고,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도 출마를 위해 이날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오세훈 서울시장, 유승민 전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이철우 경북지사, 한동훈 전 대표, 홍준표 대구시장이 출마를 공식화할 것으로 보인다. 탄핵 반대를 주도했던 나경원 윤상현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거론된다. 황교안 전 대표는 탈당 후 출마를 예고했다. 당 일각에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영입 의견까지 나온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처럼 압도적 1등 후보가 없는 가운데 ‘나도 한번’ 하는 심정이 있을 것이다. ▷경선 참여를 위해선 당에 기탁금을 내야 한다. 후보 난립 방지를 위한 것으로, 3년 전 대선 때 국민의힘은 1억 원을 책정했다. 4월 말 결정짓게 될 최종 후보군에 못 끼는 후보들은 길어야 보름 동안 대선 예비후보의 지위를 얻게 된다. 컷오프되는 후보라면 연설과 경선토론 몇 번 참여하는 비용만으로도 억대의 돈을 써야 한다. 캠프 임차료와 홍보 비용 등을 합치면 부담은 더 늘어난다. 그런데도 도전자는 넘친다. 대선주자라는 이력과 인지도를 쌓으면서 내년 지방선거와 차기 당 대표 선거를 준비하겠다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경선 참여가 이들에게 마냥 꽃길이 될 리는 없다. 국민의힘은 2번 연속해서 자당 대통령이 파면당했다. 경선 주자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비롯해 대통령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새 정치가 뭔지 질문받을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란 상투적 답변으로는 곤란하다. 대선주자급 정치인이라면 중요한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왜 대통령의 실패를 막지 못했는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대선 체제로 돌아섰다. “하루의 치유면 충분하다”는 어느 예비후보의 말을 당은 믿는 듯하다. 2차례 탄핵은 보수정치에 완전한 깨어짐을 요구한 국민의 명령이다. 이번 경선이 잠룡들의 ‘대선 이후’를 준비하는 수단 정도라면, 수긍할 유권자가 얼마 없을 것이다. 13명이건 15명이건 잠룡들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자기 정치의 본질과 밑바닥을 드러낼 때가 온 것이다. 열성 지지층 눈치 보느라 옹색한 답이 나오지 않기를 기대한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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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련 칼럼]‘연어 술파티’ 주장을 대하는 2가지 방식

    윤석열 대통령의 운명이 4일 정해진다. 파면될지, 복귀할지 기대와 전망이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제는 정치의 정상화를 말할 때가 왔다. 큰 책임을 짊어져야 할 최고위 리더의 거짓말은 정치를 빠르게 황무지로 만들었다. 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거짓과 허위에 대한 국민적 심판을 제안한다. 그동안처럼 적당히 넘어가선 안 된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심리 도중 국회에서 끌어내라고 지시한 대상이 의원인지, 인원인지 모호하게 말하다가 ‘탄핵 공작설’을 꺼냈다. 혼자만 아는 진실은 깊이 숨겼다. 윤상현 의원이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인 줄 몰랐다고 답변했다가, 명태균의 통화녹음 공개로 체면을 구겼다. 몇 년 전 어느 대법원장이 정파적 발언을 부인하다가 음성녹음이 공개됐던 일과 판박이다. 김건희 여사가 했던 “당선되면 내조만 하겠다”는 약속은 실소를 낳았다. 국면 탈출용이란 걸 윤 대통령 부부가 제일 잘 알았을 것이다. 차기 대통령에 가까이 갔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선 유죄, 2심에선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가 대장동과 백현동 파문 초기 “마치 골프를 친 것처럼 (당시 야당이) 사진을 공개했다” “국토부가 협박했다” 등의 발언을 한 게 거짓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번지며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허위 발언 여부는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이 나올 것이다. 궁박한 처지에 내놓는 거짓말은 우리네 유권자라고 무관하지는 않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인류의 조상은 아담과 이브, 그들의 두 아들 카인과 아벨이다. 아담과 이브, 카인이 하나님에게 거짓을 말했다. 3000년쯤 전 유대인들도 거짓말은 떼어낼 수 없는 인간 본성으로 봤던 것이겠지만, 정치인의 공적 허위에 맞서는 과제를 미룰 이유는 아니다. 탄핵 정국에 가려졌지만, 검찰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3월 추가로 기소한 일이 있다. 이 사건은 우리가 제도적으로 거짓말에 관대하다는 걸 일깨워 줬다. 구속 중인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이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방북 구상과 관련해 800만 달러를 북한에 제공하도록 한 혐의 등으로 2심까지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경기도지사에게 보고해 가며 진행했다고 진술했다가 1심 재판이 끝날 무렵 번복했다. 수원지검의 ‘연어 술 파티’ 회유 주장이 이때 나왔다. 대법원 판단이 남았지만 일단 1심, 2심 재판부는 이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술 파티 주장은 배척됐지만, 이 전 부지사는 손해 본 게 없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법정 진술이 거짓일지라도 재판 방해에 이르지 않는다면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돼 있다. 제3자인 증인의 위증은 처벌하지만, 자기 방어 땐 면책된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 사안을 국회로 가져가 청문회를 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 전 부지사는 법정에서처럼 ‘연어와 소주로 회유당했다’고 주장했다. 법정 발언은 처벌할 수 없던 검찰은 선서를 해 증인이 된 이 전 부지사를 위증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판사들은 “형사 법정은 거짓말 경연장”이란 말을 종종 한다. 그럼에도 감옥 가는 걸 피하려는 자기방어 본능은 처벌할 수 없다는 인지상정과 거짓 진술이라는 이유로 제약을 두면 ‘자백을 강요하는 셈’이라는 논리로 이 법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선 다르다. 1990년대 말 빌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 때 드러난 대로다. 클린턴은 연방대배심 앞에서 “성적(性的)인 관계는 없었다”고 말했다가 위증과 사법 방해죄로 처벌을 받을 뻔했고, 실제로 미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됐다. 탄핵 사유는 인턴 직원과 맺은 성적 접촉이 아니라 거짓말이었다. 미국에선 형사 피고인도 증인선서를 한 뒤라야 법정에서 진술이 허용된다. 위증 처벌을 감수할 때 자기방어를 허용한다는 의미다. 거짓을 단죄하는 이런 분위기 속에 미국에서는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은 더 모욕적으로 여겨진다. 우리 형사소송법을 당장 바꾸자는 말은 꺼내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범법자가 늘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공적 영역에서 정직함에 가치를 더 두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곳곳에서 목격되는 부조리를 보면 더욱 그렇다. 정치인들의 거짓이 반복되지만, 정치인 가운데 이 문제를 개탄하는 일이 드물다. 조기 대선이라도 열린다면 오늘의 시대정신은 거짓과의 싸움이다. 유권자는 이 점에 더 천착해야 새 대통령이 취임한 뒤 후회를 줄일 수 있다. 정치 리더들에게 조선시대 어느 선비처럼 턱 밑에 칼을 놓고, 허리춤에 방울 다는 자기경계를 주문하는 게 아니다. 평균적인 한국인보다 더 정직해 달라는 요구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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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시그널 게이트’… 나사 풀린 트럼프 사람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인사 18명이 상업용 앱인 ‘시그널’에 단체 대화방을 만들었다. 부통령, 백악관 비서실장, 안보보좌관, 국방장관, 국무장관,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이 망라된 이 대화방에서 이달 13일 친이란 성향의 예멘 후티 반군을 공격할지 여부가 논의됐다. J D 밴스 부통령이 난색을 보였다가 국방장관이 공습을 고집하자 동의로 돌아섰다. 이틀 뒤 국방장관은 이 대화방에 폭격 2시간 전부터 공습 계획을 올렸고, 작전 후엔 빌딩 붕괴 등 폭격 성공 사실을 공유했다. ▷여기엔 심각한 보안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온라인 월간지 ‘디애틀랜틱’의 편집장이 이 대화방의 19번째 참여자로 13일 초대됐고 이들의 논의 과정을 다 지켜본 것이다. 이 매체의 제프리 골드버그 편집장은 24일 관련 내용을 보도하며 “(대화방 참여자들은) 외부 민간인이 들어온 사실조차 몰랐던 데다가 군사용 보안 기능이 없는 상업용 앱(‘시그널’)을 써서 극비 군사 계획을 노출했다”고 지적했다. ▷“민간 앱이 해킹됐다면 미군 조종사 목숨이 위태로울 뻔했다”는 지적이 ‘시그널 게이트’ 로 번지면서 워싱턴이 발칵 뒤집혔다. 보도 하루 만에 상원 정보위가 소집됐다. 소환된 CIA 등 정보당국 책임자들은 “대화 내용에 군사 기밀은 없었다” “백악관 조사 중에는 답할 수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트럼프의 참모들은 “야당 성향 기자의 트럼프 비판일 뿐”이라며 의미 축소에 급급했다. 언론인을 대화방에 초대한 사람은 마이클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확인됐다. 육군 특수부대(‘그린 베레’) 대령 출신인 왈츠는 하원의원 시절 골드버그 편집장과 알고 지냈다고 한다. ▷논란이 커지자 디애틀랜틱은 “군사 기밀은 다루지 않는다는 보도 원칙이 있지만, 이번엔 독자의 판단을 구한다”며 2차 보도에 나섰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공격 당일 오전 11시 44분에 “F-18 출격. 13시 45분 1차 타격. 목표인 테러범은 평소 위치에. MQ-9 드론도 이때 출격”이라고 올렸다고 한다. 공습 2시간 전에 공격 수단은 물론 공습 예정 시간을 공개한 것이다. 외부 민간인이 이를 퍼뜨렸거나 해킹됐다면 어땠을까. 후티 반군에게 대공포 격추를 시도할 기회를 줬을 수 있다. ▷이들이 왜 정부 보안 채널을 안 썼는지, 언론인을 왜 초청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분명한 건 트럼프 안보라인 전원이 기본적인 보안 상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보도 후에도 기본적인 사실 관계조차 부정하면서 오히려 언론을 공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는 트럼프가 충성파만 찾는 바람에 최고위직을 맡기에는 경험과 경륜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입증된 셈이어서 더 뜨끔했는지 모르겠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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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련 칼럼]부정선거론… 제대로 못 다툴 거면, 손 떼라

    이영돈 PD가 1일 공개한 부정선거 다큐를 봤는데, 그동안 나온 유튜버들 주장과 다를 게 없었다. “조작값이 4일 땐 정상 투표용지 3장마다 1개씩 가짜 표를 넣는다”는 식으로 확언하는 장면이 반복됐다. 하지만 그런 일이 왜 가능한지, 그걸 믿어야 할 근거가 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중앙선관위의 관리 부실은 있을지언정 서버를 조작해 선거 결과를 뒤집는 식의 개입은 어렵다는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집권 여당을 향해 거대한 파도가 덮쳐 오고 있다. 2030 남성 지지가 늘었다지만, 정치에 무관심하던 중도층이 이 황당한 부정선거론에 여당이 끌려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탄핵 반대”와 “이재명 OUT” 구호에 이끌려 전광훈 세력과 손잡았다. ‘거리의 우파’가 펴는 부정선거 주장에 흔쾌히 동의할 수도 없으면서 한배를 타버린 것이다. 그 바람에 국민의힘이 애썼던 전광훈 세력과의 거리 두기는 없던 일이 됐다. 선출된 최고위원이 전광훈 집회에 가서 문제적 발언을 했다고 징계했던 게 불과 2년 전이다. 여당은 욕을 덜 먹을 논리를 찾아냈다. “부정선거라 단언은 못 한다. 하지만 학식 있고, 괜찮은 분들까지 부정선거를 강력하게 주장하니, 어떻게든 조사는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기 목소리는 빼고, 남의 의견을 빌리는 형식이다. 비대위원장도, 대구시장도 딱 이렇게 표현했다. 30%가 부정선거를 의심한다는 여론조사가 있다. 바꿔 말하면 70%는 이런 주장을 황당하게 여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정선거 절연이 필요한 것은 표 계산 때문만이 아니다. 여의도 정치에 비과학, 반지성은 발붙일 곳이 없어야 한다. 쉬운 일을 푸는 데 정치인은 필요 없다고 말한 게 영국 처칠이다. 그의 말대로 정치인은 어려울수록 문제를 풀어낼 책무가 있다. “이런 의견이 있으니 알아는 보자” 정도라면 정치와 지도자가 왜 필요한가. 현재 여당은 선거 시스템 특별점검법 발의를 진행 중이다. 법 통과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강성 지지층과 보조를 맞추려는 고육책이다. 지난 20년 동안 여의도 정치에 비과학적 주장이 더러 있었다. 2008년 광우병, 2016년 사드, 2023년 후쿠시마 오염수 사안을 봐도 그건 좌파 단체가 주장하고, 민주당이 2인 3각으로 이슈를 키웠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15년 뒤엔 죽는다던 주장은 17년이 흐른 지금 잊혀졌다. 사드 레이더 전자파에 새들과 참외가 튀겨진다며 경북 성주군 어르신들 앞에서 춤추며 선동했던 의원들은 온데간데없다. 일본 원전이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을 때 “일본의 핵 테러” 때문에 우리 바다에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민주당이 지난 1년 동안 우리 해안 오염을 진지하게 거론했다는 뉴스를 거의 못 봤다. 이제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경로를 따라가고, 거꾸로 민주당은 여당의 혼선을 즐기는 처지가 됐다. 요즘처럼 언론의 취재로 부정선거 의혹이 하나둘 설명된다면 부정선거 지지 여론은 20%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 국민의힘은 이 사안이 광우병, 사드처럼 흐지부지되면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그 길을 바라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런 비상식적 선거부정 주장에 기질적으로나, 사명감 때문에 외면할 수 없다고 나서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지금 국민의힘의 문제는 부정선거론을 품은 것보다 황당한 주장에 분명히 선을 긋고 나서는 리더가 없다는 점이다. 김문수 홍준표 오세훈 한동훈 같은 잠재 대선 후보들은 아직까지는 당의 모범답안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쯤 되는 사안이라면 당은 공식 견해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비공식적으로라도 치열하게 조사를 벌여야 한다. 그런 뒤 부정선거를 전면에 내걸고 다툴 만하다고 여긴다면 싸워야 한다. 부정선거 판단이 안 선다면 냉정하게 선을 긋길 바란다. 부정선거라는 게 정치적 지향점에 따라 없던 게 생기고 그럴 게 아니지 않나. 현실 정치인들로선 쉬운 길은 아니다. 당 경선을 거쳐 대선 후보가 되려면 ‘극렬 우파’의 뭉치 표가 필요하다. 하지만 계엄과 탄핵으로 지친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나서야 할 때다. 10% 안팎의 강경 지지층이 똘똘 뭉쳐 당을 인질로 삼으려 해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이들의 황당함을 알면서도 활용하려는 정치인의 태도는 시대착오적이다. 낡은 정치와 결별하려는 그 정치인은 당장의 경선 때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선거가 이번 한 번뿐인가. 그 과정은 정교하게 기록될 것이고, 유권자들은 그의 도전과 용기를 반드시 기억할 것이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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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피해국인데 패전국 취급… 젤렌스키의 슬픈 투항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만큼 트럼프 시대를 맞아 신세가 뒤바뀐 지도자도 없을 듯하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 시절 그는 칙사 대접을 받았다.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을 화상 연설을 포함해 2차례나 했다. 까다로운 선정 기준 때문에 일본 총리도 2차대전 이후 80년 동안 3번밖에 서지 못한 자리다. 유엔, 주요 20개국(G20) 등 외교 무대에서 젤렌스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침략당했지만, 자유의 가치를 위해 싸우는 동지로 대우받았다. 그러나 28일 미-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은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원하던 실지(失地) 회복, 나토 가입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면서 물 건너갔다. 이번 회담의 핵심은 광물협정이다.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전쟁 복구를 위해 우크라이나의 희토류와 원유 이익금 50%를 모아두는 펀드를 만들기로 했다. 트럼프는 처음엔 “펀드에 720조 원이 쌓일 때까지는 미국이 전액 갖고, 그 이상 걷히면 적절히 배분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젤렌스키는 제국주의식 강탈에 가깝다며 반발했다. 최종 합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국의 안전보장 다짐을 얻기 위한 ‘투항’을 예상하는 이들이 많다. 침공당한 피해국이지만 패전국처럼 대우받게 됐다. ▷트럼프 진영에 괘씸죄에 걸린 것이 젤렌스키의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해석도 있다. 젤렌스키는 지난해 미 대선을 앞두고 미군 소유 155mm 포탄 공장을 찾았다. 그곳은 하필 대선 최대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주였는데, 트럼프식 ‘일방적 전쟁 중단’에 반대하는 우크라이나계 유권자가 10만 명 넘게 사는 곳이다. 민주당 주지사가 밀착 수행하면서 젤렌스키가 트럼프보다 민주당 후보를 편든다는 인상을 남겼다. ▷트럼프는 초기 구상에 거부감을 보인 젤렌스키를 “지지율 4%에 그치는 독재자”라고 불렀다. 젤렌스키가 2019년 임기 5년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전쟁통 계엄 상태에서 지난해 선거를 치르지 않고 건너뛴 것을 꼬집은 것이다. 미국 갤럽의 우크라이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젤렌스키 지지율은 50%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이런 정도 숫자 오류는 개의치 않았다. 트럼프는 “그를 독재자라 불렀었나? 믿기지 않는다”며 빠져나갔다. ▷트럼프 2기가 표방하는 강대국 중심 외교는 더 선명해졌다. 이상과 가치를 나누는 국가끼리 동맹하고 연대하는 2차대전 이후 외교 문법보다는 강대국끼리 자기 세력권을 인정받아 이익을 챙기는 19세기 외교 방식이 중심에 서게 됐다. 약소국의 이익은 잊힐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번 주 유엔 안보리에 “러시아에 전쟁 책임이 있다”는 표현을 뺀 결의안을 냈다. 우리가 알던 미국이 맞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워싱턴에 정권교체가 있었을 뿐인데, 국제 외교의 틀이 150년 전으로 후퇴한 느낌이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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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뺄수록 더 눈에 띄는 한동훈의 21년 검사 이력

    곧 정치 일선에 복귀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책(‘한동훈의 선택―국민이 먼저입니다’)을 26일 출간한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직후 자신이 ‘불법 계엄 반대’를 선언한 순간부터 대통령 탄핵 소추 이후 대표직에서 사퇴할 때까지 12일간 300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한 전 대표가 계엄 직후 경찰에게 국회 출입을 제지당하자 “정말 이럴 거냐”고 설득해 경내로 들어간 일 등이 담겨 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이 책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결정을 대단히 비판적으로 다뤘다. 평소라면 비공개했을 만한 대통령 발언이 다수 실렸다는 게 책 내용을 아는 이들의 설명이다. “한동훈의 계엄 반대는 성급했다”는 당내 친윤 그룹과 일전을 각오한 듯하다. 대표적인 것이 계엄 이튿날 윤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할 수 있는데도 안 했다”고 한 말이다. 헌법상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이 없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주장으로, 한 대표는 “황당한 발상”이라고 썼다. ▷한 전 대표는 정치인 체포 시도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뤘다. 그는 계엄의 밤에 누군가로부터 “체포되면 죽을 수 있다. 은신처로 숨어라. 추적 안 되게 휴대폰도 꺼놔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튿날 대통령에게 따져 물었는데, 대통령은 “전혀 그런 일이 없다. 체포하려면 방첩사를 동원했을 텐데, 계엄에 방첩사는 동원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에 비춰 보면 대통령은 거짓을 말했다. 12월 4일이란 초기 시점엔 방첩사의 깊고 넓은 개입이 드러나 있지 않았을 뿐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온라인 서점에 공개된 저자 소개다. 사법연수원 및 공군 법무관 생활은 적어놓았지만, 21년 동안의 검찰 생활이 빠졌다. 법무부 장관, 여당 비대위원장과 당 대표 경력은 있었다. 정치인이 됐지만, 세상은 한동훈을 ‘천하제일검’이란 별명과 함께 검사로 기억하곤 한다. 한 전 대표는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문재인 정부 초기”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수사 대상이 전직 대통령 등 거의 모두가 범보수 인사들이고, ‘나올 때까지 파는 식’의 수사 방식을 놓고 많은 비판이 있었다. 여기에 양승태 대법원장을 구속했지만 1심에서 47개 혐의가 모두 무죄가 났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수사도 2심까지 19개 혐의가 모두 무죄로 판결되면서 무리한 기소 논란을 낳았다. ▷한 전 대표로선 ‘또 검사 출신 대통령이냐’는 질문에 답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윤 대통령의 국정 실패에는 고집불통의 성향이나 배우자의 국정 개입이란 특이점도 있지만, 검사 생활만 26년을 한 데 따른 경험 제약을 꼽기도 한다. 경쟁자들은 이 점을 물고 늘어질 수 있다. 온 세상이 아는 검사 한동훈을 저자 소개에서 몇 자 뺀다고 달라질 건 없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더 기억하고, 더 묻게 됐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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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승련]표와 박수만 좇는 ‘후진 정치’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지 묻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1961년 케네디라는 만 43세 미국 대통령이 했다는 연설은 참 맹랑하다. 당시 워싱턴 정치라고 유권자에게 하나하나 다 챙겨드리겠다는 달콤한 약속을 안 했을 리 없다. 그런데 갓 당선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반대를 주문했다. 요즘 한국 정치인들이라면 꿈도 못 꿀 메시지다.민주당 전략: “거부권 반복 나쁘지 않다” 여의도에서 좋은 정치란 선거에서 이기는 정치다. 좋게 말해 민심에 충실한 것이고, 기분 나쁜 표현이지만 손에 뭘 쥐여줘야 이긴다고 다들 믿는다. 오락가락하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온 국민에게 1인당 현금 25만 원씩 나눠주겠다고 방향을 잡았다. 그러더니 봉급 생활자 세금도 깎아주겠다고 나선 것도 다 이기기 위해서다. 국민의힘이라고 다르지 않다. 한동훈 대표 시절 금투세 적용 시기를 늦춰 주식 투자자를 겨냥한 감세를 민주당보다 먼저 꺼내든 이력이 있다. 모두 수천만, 수백만 수혜자를 노리고 나라 곳간을 비우는 것이다. 반대로 ‘약속보다 더 걷고, 덜 돌려드릴 수밖에 없어졌다’며 머리를 숙여야 하는 국민연금 개혁은 양당이 몇 년째 뒤로 미루고 있다. 민주당은 2년 전 ‘재집권 전략 보고서’라는 단행본을 펴내면서 이 점을 명확히 했다. 책에는 “기득권 세력에 피해를 보는 이들(사회적 약자)을 위해 … 다수가 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법을 발굴해 확 밀고 가자. (윤석열 정권이) 민생법안을 거부하는 재의 요구를 자꾸 발동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양곡법안이 딱 부합하는 사례다. 민주당은 2023년 이후 이 법안을 2번 단독 처리했고, 2번 거부권이 행사됐다. 이 법대로라면 정부는 남아도는 쌀값을 유지시키기 위해 해마다 3조 원을 써야 해 재정 낭비 논란이 컸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농민을 위한 법을 만들고, 대통령 혹은 권한대행은 농심을 망각한 채 거부권을 썼다는 이미지가 생겼을까. 만약 생겼다면, 책 제목 ‘재집권 전략’은 일부 먹힌 게 된다. 정치인들은 응집력 강한 소수의 극렬 지지층 앞에 맥을 못 춘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서울서부지법 난입, 헌법재판관 집 앞 시위를 두고 “우리의 길이 아니다”라고 똑 부러지게 말 못 한다. 또 부정선거론에 대해서도 애매한 태도를 유지했는데, 이거야말로 윤석열 대통령이 배격하자던 반지성주의에 해당한다. 그동안 광우병, 사드 전자파, 천안함 폭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효과 등을 놓고 대체로 보수정당이 상대 정당의 비과학성과 반지성을 개탄하는 구도였는데, 지금은 뒤집혀 버렸다. 이른바 문빠를 두고 “양념”이라고 감싼 것이나, 개딸 그룹의 ‘수박 처단’ 흐름을 방치했던 것과 다를 게 없다.與는 전광훈 선 긋고, 野는 왼쪽 설득해야 혹시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정책과 메시지로 후보들 사이에 옥석이 가려질 것이다. 이번에도 국민 세금으로 표 받고, 듣기 좋은 말로 박수받는, 쉽지만 후진 정치가 선전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렇게 끝나선 곤란하지 않을까. 자신의 지지층에게 좀 불편하더라도 꼭 필요한 말을 하는 후보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국민의힘 후보라면 전광훈 목사 그룹의 황당한 주장과 선을 긋는 이가 나왔으면 좋겠다. 또 “나는 중도 보수”라고 좌표를 잡은 이재명 대표가 그 위치에서 저 왼쪽에 있을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 왜 글로벌 전쟁을 벌이는 국가대표 기업의 생존이 중요한지, 북한에 한없이 너그럽기만 한 안보정책이 왜 한미일 3각 협력을 해치는지. 여와 야에서 불편하더라도, 꼭 가야 하는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하는 지도자가 나오길 바란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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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젤렌스키는 빠진 트럼프-푸틴의 종전 협상

    전쟁 발발 3년을 앞두고 막 출범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협상이 묘한 구도로 흐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2일 전화 정상회담을 갖고 “종전협상 즉각 개시”에 합의했다. 18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양국 협상단이 처음 마주 앉았다. 하지만 침략당한 우크라이나는 배제됐다. “우크라이나와 협상하지 않겠다”는 푸틴의 말을 트럼프가 일단 들어준 결과다. 핵무장 강대국에 침공당한 우크라이나는 어쩌면 앞으로 더 가혹한 운명을 맞을 수도 있다. ▷트럼프는 평화도 돈으로 환산한다. 우크라이나에 종전 후 재건투자기금으로 5000억 달러, 우리 돈 720조 원을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통상, 전쟁에서 진 나라는 배상금을 문다.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도 배상금을 물었는데, 가혹한 배상액 때문에 나치당의 등장에 빌미를 줄 정도였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침략당한 당사국인데 막대한 돈을 요구받고 있다. 달러가 없으니 흑연, 리튬 등 희토류와 석유를 현물로 내거나 항만 이용권을 내줘야 할 판이다. ▷트럼프 정부가 쓴 협정서 초안에는 미국이 자원 채굴에 따른 수익금 50%를 갖도록 돼 있다. 조 바이든 정부가 5차례에 걸쳐 부담한 전쟁지원금은 약 250조 원 규모다. 일부는 무상 원조였지만, 상당액은 미국의 ‘무기대여법’에 따른 무기 공여로 훗날 우크라이나가 갚아야 하는 것이었다. 트럼프가 “왜 우리 도로를 지을 돈을 유럽에 퍼붓냐”고 말했지만, 전액 다 무상 지원은 아니었던 것이다. 요즘 트럼프 내각 장관들은 “우크라이나 희토류의 50%를 미국에 준다면 미군이 장기 주둔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돈이 된다면, 트럼프는 고립주의적 정책도 언제든 바꿀 것 같다.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건 나토 가입을 통한 안전보장 확보와 실지(失地) 회복이다. 그러나 둘 다 쉽지 않은 목표다. 나토는 한 가입국이 군사 공격을 받으면 모든 회원국이 함께 대응하는 만큼 우크라이나로선 이만한 안전보장책이 없다. 하지만 러시아로선 서쪽 국경에 접한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일원이 되는 것에 결사반대하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는 2014년에 점령당한 크림반도와 2022년 이후 뺏긴 돈바스 지역을 돌려받기를 바라고 있지만, “원래 우리 땅”이라며 전쟁을 시작한 푸틴에게 돌려받는 일은 쉽지 않다. ▷유럽 7개국 정상이 17일 프랑스 파리에 긴급히 모였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종전 이후에도 미국이 아닌 유럽만의 평화유지군을 우크라이나에 두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국내 사정이 제각각 달라 성사 여부는 알 수 없다. 결국 3년을 돌이켜 보면 힘없는 우크라이나만 짓밟히고, 배제됐다. 트럼프가 내세운 ‘취임 직후 종전’은 기대가 컸지만, 미국의 이익보다 약소국의 자주권을 더 챙겨줄 것이란 기대가 너무 순진했던 것인지 모르겠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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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유력 주자 행사에 몰려간 與 의원들… 마음은 이미 대선에?

    12일 국회에서 개헌 토론회가 열렸다. 국회의원이나 정당이 아닌 서울시가 공동 주최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일 방법으로 외교와 국방 이외의 대통령 권한을 대폭 지방자치단체에 넘기자는 제안이 나왔다. 참석자들은 개회사를 위해 참석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개헌 구상으로 여겼을 것이다. 국민의힘에서는 권영세 비대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는 물론 현역 의원이 108명 가운데 40명 넘게 모였다. ▷정책 토론회답지 않게 일부 참석자들은 오 시장의 이름을 연호하고 박수를 치기도 했다. 김기현 의원은 “(지지자 여러분) 목소리와 박수에 뜻이 담겨 있지요. 저는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오 시장의 대선 출마 의지를 이심전심으로 알지 않느냐는 말로 들렸다. 이날 누구도 대통령 선거가 있을 거라고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오 시장도 행사장 밖에서 출마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 “조기 대선은 헌법재판소가 결론을 낸 다음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답했다. ▷이번 토론회는 옴짝달싹하기 힘든 국민의힘의 처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권 비대위원장은 2주 전 “조기 대선을 전제로 하는 여론조사는 잘못으로, 중단하는 게 옳다”고 공개 요청을 했다. 국회의 탄핵소추 직후와 달리 국민의힘 강성 지지층이 주도하는 탄핵 반대집회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은 계엄 전 지지율을 회복했다.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마무리돼 가는 현실과는 무관하게, 당으로선 지지층을 자극할 행동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의원들은 여전히 “탄핵 기각”을 외치고 있다. ▷이날 행사를 꼬집은 것은 홍준표 대구시장이었다. 그는 SNS에 “여의도 정치판에 의리가 사라진 지 오래”라고 썼다. 한남동 관저 앞에서 시위하던 의원 몇몇까지 유력한 잠재후보 행사에 눈도장 찍듯 참석했다며 비꼰 것이다. 하지만 홍 시장 역시 비슷한 행보를 한 적이 있다. 지난해 12월 말 “대구시장을 4년만 하고 졸업할 생각이었는데, 그게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이사 가야 한다는 생각에 뒤숭숭하다”는 글을 남겼다. 대통령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진 시점에 대선 출마 가능성을 누구보다 먼저 밝힌 것으로 해석됐다. ▷이재명 대표가 3년 넘게 당을 이끌어 온 더불어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에선 다른 후보들을 압도할 만한 후보가 없다. 오세훈 홍준표 이외에 김문수 한동훈을 포함하는 다수의 후보가 경쟁할 것으로 예상될 뿐이다. 오 시장도 탄핵심판 중에 ‘출마 시 내놓을 개헌 공약’처럼 비치는 개헌안을 놓고 토론회를 여는 것에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오 시장도 40명 넘는 현역 의원이 모인 것에 놀랐을지 모르겠다. 이날 토론회는 대통령에 대한 ‘의리’와 엄존하는 조기 대선 가능성이라는 ‘현실’이 맞붙은 자리였다. 의리보다는 현실의 힘이 더 셌던 것 같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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