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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승련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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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3~2025-03-25
칼럼100%
  • [김승련 칼럼]부정선거론… 제대로 못 다툴 거면, 손 떼라

    이영돈 PD가 1일 공개한 부정선거 다큐를 봤는데, 그동안 나온 유튜버들 주장과 다를 게 없었다. “조작값이 4일 땐 정상 투표용지 3장마다 1개씩 가짜 표를 넣는다”는 식으로 확언하는 장면이 반복됐다. 하지만 그런 일이 왜 가능한지, 그걸 믿어야 할 근거가 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중앙선관위의 관리 부실은 있을지언정 서버를 조작해 선거 결과를 뒤집는 식의 개입은 어렵다는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집권 여당을 향해 거대한 파도가 덮쳐 오고 있다. 2030 남성 지지가 늘었다지만, 정치에 무관심하던 중도층이 이 황당한 부정선거론에 여당이 끌려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탄핵 반대”와 “이재명 OUT” 구호에 이끌려 전광훈 세력과 손잡았다. ‘거리의 우파’가 펴는 부정선거 주장에 흔쾌히 동의할 수도 없으면서 한배를 타버린 것이다. 그 바람에 국민의힘이 애썼던 전광훈 세력과의 거리 두기는 없던 일이 됐다. 선출된 최고위원이 전광훈 집회에 가서 문제적 발언을 했다고 징계했던 게 불과 2년 전이다. 여당은 욕을 덜 먹을 논리를 찾아냈다. “부정선거라 단언은 못 한다. 하지만 학식 있고, 괜찮은 분들까지 부정선거를 강력하게 주장하니, 어떻게든 조사는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기 목소리는 빼고, 남의 의견을 빌리는 형식이다. 비대위원장도, 대구시장도 딱 이렇게 표현했다. 30%가 부정선거를 의심한다는 여론조사가 있다. 바꿔 말하면 70%는 이런 주장을 황당하게 여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정선거 절연이 필요한 것은 표 계산 때문만이 아니다. 여의도 정치에 비과학, 반지성은 발붙일 곳이 없어야 한다. 쉬운 일을 푸는 데 정치인은 필요 없다고 말한 게 영국 처칠이다. 그의 말대로 정치인은 어려울수록 문제를 풀어낼 책무가 있다. “이런 의견이 있으니 알아는 보자” 정도라면 정치와 지도자가 왜 필요한가. 현재 여당은 선거 시스템 특별점검법 발의를 진행 중이다. 법 통과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강성 지지층과 보조를 맞추려는 고육책이다. 지난 20년 동안 여의도 정치에 비과학적 주장이 더러 있었다. 2008년 광우병, 2016년 사드, 2023년 후쿠시마 오염수 사안을 봐도 그건 좌파 단체가 주장하고, 민주당이 2인 3각으로 이슈를 키웠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15년 뒤엔 죽는다던 주장은 17년이 흐른 지금 잊혀졌다. 사드 레이더 전자파에 새들과 참외가 튀겨진다며 경북 성주군 어르신들 앞에서 춤추며 선동했던 의원들은 온데간데없다. 일본 원전이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을 때 “일본의 핵 테러” 때문에 우리 바다에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민주당이 지난 1년 동안 우리 해안 오염을 진지하게 거론했다는 뉴스를 거의 못 봤다. 이제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경로를 따라가고, 거꾸로 민주당은 여당의 혼선을 즐기는 처지가 됐다. 요즘처럼 언론의 취재로 부정선거 의혹이 하나둘 설명된다면 부정선거 지지 여론은 20%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 국민의힘은 이 사안이 광우병, 사드처럼 흐지부지되면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그 길을 바라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런 비상식적 선거부정 주장에 기질적으로나, 사명감 때문에 외면할 수 없다고 나서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지금 국민의힘의 문제는 부정선거론을 품은 것보다 황당한 주장에 분명히 선을 긋고 나서는 리더가 없다는 점이다. 김문수 홍준표 오세훈 한동훈 같은 잠재 대선 후보들은 아직까지는 당의 모범답안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쯤 되는 사안이라면 당은 공식 견해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비공식적으로라도 치열하게 조사를 벌여야 한다. 그런 뒤 부정선거를 전면에 내걸고 다툴 만하다고 여긴다면 싸워야 한다. 부정선거 판단이 안 선다면 냉정하게 선을 긋길 바란다. 부정선거라는 게 정치적 지향점에 따라 없던 게 생기고 그럴 게 아니지 않나. 현실 정치인들로선 쉬운 길은 아니다. 당 경선을 거쳐 대선 후보가 되려면 ‘극렬 우파’의 뭉치 표가 필요하다. 하지만 계엄과 탄핵으로 지친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나서야 할 때다. 10% 안팎의 강경 지지층이 똘똘 뭉쳐 당을 인질로 삼으려 해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이들의 황당함을 알면서도 활용하려는 정치인의 태도는 시대착오적이다. 낡은 정치와 결별하려는 그 정치인은 당장의 경선 때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선거가 이번 한 번뿐인가. 그 과정은 정교하게 기록될 것이고, 유권자들은 그의 도전과 용기를 반드시 기억할 것이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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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피해국인데 패전국 취급… 젤렌스키의 슬픈 투항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만큼 트럼프 시대를 맞아 신세가 뒤바뀐 지도자도 없을 듯하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 시절 그는 칙사 대접을 받았다.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을 화상 연설을 포함해 2차례나 했다. 까다로운 선정 기준 때문에 일본 총리도 2차대전 이후 80년 동안 3번밖에 서지 못한 자리다. 유엔, 주요 20개국(G20) 등 외교 무대에서 젤렌스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침략당했지만, 자유의 가치를 위해 싸우는 동지로 대우받았다. 그러나 28일 미-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은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원하던 실지(失地) 회복, 나토 가입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면서 물 건너갔다. 이번 회담의 핵심은 광물협정이다.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전쟁 복구를 위해 우크라이나의 희토류와 원유 이익금 50%를 모아두는 펀드를 만들기로 했다. 트럼프는 처음엔 “펀드에 720조 원이 쌓일 때까지는 미국이 전액 갖고, 그 이상 걷히면 적절히 배분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젤렌스키는 제국주의식 강탈에 가깝다며 반발했다. 최종 합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국의 안전보장 다짐을 얻기 위한 ‘투항’을 예상하는 이들이 많다. 침공당한 피해국이지만 패전국처럼 대우받게 됐다. ▷트럼프 진영에 괘씸죄에 걸린 것이 젤렌스키의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해석도 있다. 젤렌스키는 지난해 미 대선을 앞두고 미군 소유 155mm 포탄 공장을 찾았다. 그곳은 하필 대선 최대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주였는데, 트럼프식 ‘일방적 전쟁 중단’에 반대하는 우크라이나계 유권자가 10만 명 넘게 사는 곳이다. 민주당 주지사가 밀착 수행하면서 젤렌스키가 트럼프보다 민주당 후보를 편든다는 인상을 남겼다. ▷트럼프는 초기 구상에 거부감을 보인 젤렌스키를 “지지율 4%에 그치는 독재자”라고 불렀다. 젤렌스키가 2019년 임기 5년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전쟁통 계엄 상태에서 지난해 선거를 치르지 않고 건너뛴 것을 꼬집은 것이다. 미국 갤럽의 우크라이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젤렌스키 지지율은 50%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이런 정도 숫자 오류는 개의치 않았다. 트럼프는 “그를 독재자라 불렀었나? 믿기지 않는다”며 빠져나갔다. ▷트럼프 2기가 표방하는 강대국 중심 외교는 더 선명해졌다. 이상과 가치를 나누는 국가끼리 동맹하고 연대하는 2차대전 이후 외교 문법보다는 강대국끼리 자기 세력권을 인정받아 이익을 챙기는 19세기 외교 방식이 중심에 서게 됐다. 약소국의 이익은 잊힐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번 주 유엔 안보리에 “러시아에 전쟁 책임이 있다”는 표현을 뺀 결의안을 냈다. 우리가 알던 미국이 맞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워싱턴에 정권교체가 있었을 뿐인데, 국제 외교의 틀이 150년 전으로 후퇴한 느낌이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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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뺄수록 더 눈에 띄는 한동훈의 21년 검사 이력

    곧 정치 일선에 복귀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책(‘한동훈의 선택―국민이 먼저입니다’)을 26일 출간한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직후 자신이 ‘불법 계엄 반대’를 선언한 순간부터 대통령 탄핵 소추 이후 대표직에서 사퇴할 때까지 12일간 300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한 전 대표가 계엄 직후 경찰에게 국회 출입을 제지당하자 “정말 이럴 거냐”고 설득해 경내로 들어간 일 등이 담겨 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이 책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결정을 대단히 비판적으로 다뤘다. 평소라면 비공개했을 만한 대통령 발언이 다수 실렸다는 게 책 내용을 아는 이들의 설명이다. “한동훈의 계엄 반대는 성급했다”는 당내 친윤 그룹과 일전을 각오한 듯하다. 대표적인 것이 계엄 이튿날 윤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할 수 있는데도 안 했다”고 한 말이다. 헌법상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이 없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주장으로, 한 대표는 “황당한 발상”이라고 썼다. ▷한 전 대표는 정치인 체포 시도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뤘다. 그는 계엄의 밤에 누군가로부터 “체포되면 죽을 수 있다. 은신처로 숨어라. 추적 안 되게 휴대폰도 꺼놔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튿날 대통령에게 따져 물었는데, 대통령은 “전혀 그런 일이 없다. 체포하려면 방첩사를 동원했을 텐데, 계엄에 방첩사는 동원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에 비춰 보면 대통령은 거짓을 말했다. 12월 4일이란 초기 시점엔 방첩사의 깊고 넓은 개입이 드러나 있지 않았을 뿐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온라인 서점에 공개된 저자 소개다. 사법연수원 및 공군 법무관 생활은 적어놓았지만, 21년 동안의 검찰 생활이 빠졌다. 법무부 장관, 여당 비대위원장과 당 대표 경력은 있었다. 정치인이 됐지만, 세상은 한동훈을 ‘천하제일검’이란 별명과 함께 검사로 기억하곤 한다. 한 전 대표는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문재인 정부 초기”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수사 대상이 전직 대통령 등 거의 모두가 범보수 인사들이고, ‘나올 때까지 파는 식’의 수사 방식을 놓고 많은 비판이 있었다. 여기에 양승태 대법원장을 구속했지만 1심에서 47개 혐의가 모두 무죄가 났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수사도 2심까지 19개 혐의가 모두 무죄로 판결되면서 무리한 기소 논란을 낳았다. ▷한 전 대표로선 ‘또 검사 출신 대통령이냐’는 질문에 답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윤 대통령의 국정 실패에는 고집불통의 성향이나 배우자의 국정 개입이란 특이점도 있지만, 검사 생활만 26년을 한 데 따른 경험 제약을 꼽기도 한다. 경쟁자들은 이 점을 물고 늘어질 수 있다. 온 세상이 아는 검사 한동훈을 저자 소개에서 몇 자 뺀다고 달라질 건 없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더 기억하고, 더 묻게 됐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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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승련]표와 박수만 좇는 ‘후진 정치’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지 묻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1961년 케네디라는 만 43세 미국 대통령이 했다는 연설은 참 맹랑하다. 당시 워싱턴 정치라고 유권자에게 하나하나 다 챙겨드리겠다는 달콤한 약속을 안 했을 리 없다. 그런데 갓 당선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반대를 주문했다. 요즘 한국 정치인들이라면 꿈도 못 꿀 메시지다.민주당 전략: “거부권 반복 나쁘지 않다” 여의도에서 좋은 정치란 선거에서 이기는 정치다. 좋게 말해 민심에 충실한 것이고, 기분 나쁜 표현이지만 손에 뭘 쥐여줘야 이긴다고 다들 믿는다. 오락가락하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온 국민에게 1인당 현금 25만 원씩 나눠주겠다고 방향을 잡았다. 그러더니 봉급 생활자 세금도 깎아주겠다고 나선 것도 다 이기기 위해서다. 국민의힘이라고 다르지 않다. 한동훈 대표 시절 금투세 적용 시기를 늦춰 주식 투자자를 겨냥한 감세를 민주당보다 먼저 꺼내든 이력이 있다. 모두 수천만, 수백만 수혜자를 노리고 나라 곳간을 비우는 것이다. 반대로 ‘약속보다 더 걷고, 덜 돌려드릴 수밖에 없어졌다’며 머리를 숙여야 하는 국민연금 개혁은 양당이 몇 년째 뒤로 미루고 있다. 민주당은 2년 전 ‘재집권 전략 보고서’라는 단행본을 펴내면서 이 점을 명확히 했다. 책에는 “기득권 세력에 피해를 보는 이들(사회적 약자)을 위해 … 다수가 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법을 발굴해 확 밀고 가자. (윤석열 정권이) 민생법안을 거부하는 재의 요구를 자꾸 발동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양곡법안이 딱 부합하는 사례다. 민주당은 2023년 이후 이 법안을 2번 단독 처리했고, 2번 거부권이 행사됐다. 이 법대로라면 정부는 남아도는 쌀값을 유지시키기 위해 해마다 3조 원을 써야 해 재정 낭비 논란이 컸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농민을 위한 법을 만들고, 대통령 혹은 권한대행은 농심을 망각한 채 거부권을 썼다는 이미지가 생겼을까. 만약 생겼다면, 책 제목 ‘재집권 전략’은 일부 먹힌 게 된다. 정치인들은 응집력 강한 소수의 극렬 지지층 앞에 맥을 못 춘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서울서부지법 난입, 헌법재판관 집 앞 시위를 두고 “우리의 길이 아니다”라고 똑 부러지게 말 못 한다. 또 부정선거론에 대해서도 애매한 태도를 유지했는데, 이거야말로 윤석열 대통령이 배격하자던 반지성주의에 해당한다. 그동안 광우병, 사드 전자파, 천안함 폭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효과 등을 놓고 대체로 보수정당이 상대 정당의 비과학성과 반지성을 개탄하는 구도였는데, 지금은 뒤집혀 버렸다. 이른바 문빠를 두고 “양념”이라고 감싼 것이나, 개딸 그룹의 ‘수박 처단’ 흐름을 방치했던 것과 다를 게 없다.與는 전광훈 선 긋고, 野는 왼쪽 설득해야 혹시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정책과 메시지로 후보들 사이에 옥석이 가려질 것이다. 이번에도 국민 세금으로 표 받고, 듣기 좋은 말로 박수받는, 쉽지만 후진 정치가 선전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렇게 끝나선 곤란하지 않을까. 자신의 지지층에게 좀 불편하더라도 꼭 필요한 말을 하는 후보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국민의힘 후보라면 전광훈 목사 그룹의 황당한 주장과 선을 긋는 이가 나왔으면 좋겠다. 또 “나는 중도 보수”라고 좌표를 잡은 이재명 대표가 그 위치에서 저 왼쪽에 있을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 왜 글로벌 전쟁을 벌이는 국가대표 기업의 생존이 중요한지, 북한에 한없이 너그럽기만 한 안보정책이 왜 한미일 3각 협력을 해치는지. 여와 야에서 불편하더라도, 꼭 가야 하는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하는 지도자가 나오길 바란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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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젤렌스키는 빠진 트럼프-푸틴의 종전 협상

    전쟁 발발 3년을 앞두고 막 출범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협상이 묘한 구도로 흐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2일 전화 정상회담을 갖고 “종전협상 즉각 개시”에 합의했다. 18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양국 협상단이 처음 마주 앉았다. 하지만 침략당한 우크라이나는 배제됐다. “우크라이나와 협상하지 않겠다”는 푸틴의 말을 트럼프가 일단 들어준 결과다. 핵무장 강대국에 침공당한 우크라이나는 어쩌면 앞으로 더 가혹한 운명을 맞을 수도 있다. ▷트럼프는 평화도 돈으로 환산한다. 우크라이나에 종전 후 재건투자기금으로 5000억 달러, 우리 돈 720조 원을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통상, 전쟁에서 진 나라는 배상금을 문다.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도 배상금을 물었는데, 가혹한 배상액 때문에 나치당의 등장에 빌미를 줄 정도였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침략당한 당사국인데 막대한 돈을 요구받고 있다. 달러가 없으니 흑연, 리튬 등 희토류와 석유를 현물로 내거나 항만 이용권을 내줘야 할 판이다. ▷트럼프 정부가 쓴 협정서 초안에는 미국이 자원 채굴에 따른 수익금 50%를 갖도록 돼 있다. 조 바이든 정부가 5차례에 걸쳐 부담한 전쟁지원금은 약 250조 원 규모다. 일부는 무상 원조였지만, 상당액은 미국의 ‘무기대여법’에 따른 무기 공여로 훗날 우크라이나가 갚아야 하는 것이었다. 트럼프가 “왜 우리 도로를 지을 돈을 유럽에 퍼붓냐”고 말했지만, 전액 다 무상 지원은 아니었던 것이다. 요즘 트럼프 내각 장관들은 “우크라이나 희토류의 50%를 미국에 준다면 미군이 장기 주둔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돈이 된다면, 트럼프는 고립주의적 정책도 언제든 바꿀 것 같다.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건 나토 가입을 통한 안전보장 확보와 실지(失地) 회복이다. 그러나 둘 다 쉽지 않은 목표다. 나토는 한 가입국이 군사 공격을 받으면 모든 회원국이 함께 대응하는 만큼 우크라이나로선 이만한 안전보장책이 없다. 하지만 러시아로선 서쪽 국경에 접한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일원이 되는 것에 결사반대하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는 2014년에 점령당한 크림반도와 2022년 이후 뺏긴 돈바스 지역을 돌려받기를 바라고 있지만, “원래 우리 땅”이라며 전쟁을 시작한 푸틴에게 돌려받는 일은 쉽지 않다. ▷유럽 7개국 정상이 17일 프랑스 파리에 긴급히 모였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종전 이후에도 미국이 아닌 유럽만의 평화유지군을 우크라이나에 두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국내 사정이 제각각 달라 성사 여부는 알 수 없다. 결국 3년을 돌이켜 보면 힘없는 우크라이나만 짓밟히고, 배제됐다. 트럼프가 내세운 ‘취임 직후 종전’은 기대가 컸지만, 미국의 이익보다 약소국의 자주권을 더 챙겨줄 것이란 기대가 너무 순진했던 것인지 모르겠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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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유력 주자 행사에 몰려간 與 의원들… 마음은 이미 대선에?

    12일 국회에서 개헌 토론회가 열렸다. 국회의원이나 정당이 아닌 서울시가 공동 주최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일 방법으로 외교와 국방 이외의 대통령 권한을 대폭 지방자치단체에 넘기자는 제안이 나왔다. 참석자들은 개회사를 위해 참석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개헌 구상으로 여겼을 것이다. 국민의힘에서는 권영세 비대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는 물론 현역 의원이 108명 가운데 40명 넘게 모였다. ▷정책 토론회답지 않게 일부 참석자들은 오 시장의 이름을 연호하고 박수를 치기도 했다. 김기현 의원은 “(지지자 여러분) 목소리와 박수에 뜻이 담겨 있지요. 저는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오 시장의 대선 출마 의지를 이심전심으로 알지 않느냐는 말로 들렸다. 이날 누구도 대통령 선거가 있을 거라고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오 시장도 행사장 밖에서 출마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 “조기 대선은 헌법재판소가 결론을 낸 다음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답했다. ▷이번 토론회는 옴짝달싹하기 힘든 국민의힘의 처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권 비대위원장은 2주 전 “조기 대선을 전제로 하는 여론조사는 잘못으로, 중단하는 게 옳다”고 공개 요청을 했다. 국회의 탄핵소추 직후와 달리 국민의힘 강성 지지층이 주도하는 탄핵 반대집회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은 계엄 전 지지율을 회복했다.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마무리돼 가는 현실과는 무관하게, 당으로선 지지층을 자극할 행동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의원들은 여전히 “탄핵 기각”을 외치고 있다. ▷이날 행사를 꼬집은 것은 홍준표 대구시장이었다. 그는 SNS에 “여의도 정치판에 의리가 사라진 지 오래”라고 썼다. 한남동 관저 앞에서 시위하던 의원 몇몇까지 유력한 잠재후보 행사에 눈도장 찍듯 참석했다며 비꼰 것이다. 하지만 홍 시장 역시 비슷한 행보를 한 적이 있다. 지난해 12월 말 “대구시장을 4년만 하고 졸업할 생각이었는데, 그게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이사 가야 한다는 생각에 뒤숭숭하다”는 글을 남겼다. 대통령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진 시점에 대선 출마 가능성을 누구보다 먼저 밝힌 것으로 해석됐다. ▷이재명 대표가 3년 넘게 당을 이끌어 온 더불어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에선 다른 후보들을 압도할 만한 후보가 없다. 오세훈 홍준표 이외에 김문수 한동훈을 포함하는 다수의 후보가 경쟁할 것으로 예상될 뿐이다. 오 시장도 탄핵심판 중에 ‘출마 시 내놓을 개헌 공약’처럼 비치는 개헌안을 놓고 토론회를 여는 것에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오 시장도 40명 넘는 현역 의원이 모인 것에 놀랐을지 모르겠다. 이날 토론회는 대통령에 대한 ‘의리’와 엄존하는 조기 대선 가능성이라는 ‘현실’이 맞붙은 자리였다. 의리보다는 현실의 힘이 더 셌던 것 같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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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대선에서 尹 찍은 유권자들의 뚜렷한 분화

    2022년 3·9 대선 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48.6%를 얻어 당선됐다. 1639만 표로 역대 최다 득표였다. 3년이 흐른 지금 이들은 12·3 비상계엄과 탄핵을 어떻게 여길까. 최근 지방을 돌며 열리고 있는 탄핵 반대 집회는 윤 대통령을 찍었던 이들의 여론을 얼마나 대표하고 있는 걸까. 중견 정치학자 싱크탱크인 동아시아연구원(EAI)이 10일 공개한 ‘2025년 양극화 인식 조사’는 이런 의문에 답을 찾는 시도였다. ▷웹 조사에 응답한 1514명은 자신을 강성 보수(9.6%), 온건 보수(17.2%), 중도(46.4%), 온건 진보(17.2%), 강성 진보(9.6%)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지지자가 27.3%였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는 31.0%였다. 최근 전화 여론조사 때 나타나는 정당 지지율 차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3년 전 윤 후보를 찍었다고 답한 450명의 정치적 분화다. 450명 중 “나는 강성 보수”라고 답한 응답자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여전히 강했다. 대통령 호감도를 점수(0∼100점)로 매겼더니, 강성 보수의 평균은 78.5점이었다. 그러나 온건 보수는 중간값(50점)을 조금 웃도는 54.2점, 중도 가운데 윤 후보를 찍었던 이들을 뜻하는 중도 보수는 34.9점이었다. ▷윤 대통령이 주장하는 야당의 국정 비협조, 안보·사회질서 회복 등 계엄 명분에 대한 평가도 크게 엇갈렸다. 강성 보수는 야당의 발목 잡기(10점 만점에 8.6점), 안보와 질서 유지(7.9점)라는 계엄 사유에 비교적 수긍했다. 하지만 중도 보수의 동의 수준은 매우 낮았다. 발목 잡기는 5.1점, 안보·질서 유지는 3.8점에 그쳤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인식 차이도 뚜렷했다. 지난 대선의 공정성에 대해 4점 척도로 물은 결과, 강성 보수는 3.06점으로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강한 반면 중도 보수는 2.35점으로 낮았다. 윤 대통령을 찍었던 유권자들의 분화(分化) 양상을 보여준다. ▷최근 탄핵 반대 집회 등을 통해 강성 보수의 목소리가 더 부각되고 있지만 중도의 목소리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는 게 EAI의 분석이다. 이는 강성 보수의 정치 효능감에 대한 인식이 높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나는 사회의 중요한 정치적 문제를 잘 안다”는 항목(1∼5점)에서는 강성 보수(4.4점)가 중도 보수(3.7점)보다 점수가 높았다. ▷이번 EAI 조사는 응답자 1514명 가운데 강성 보수(125명)의 적극성과 대조되는 중도 보수(247명)의 소극적 태도를 조명하고 있다. 서울대 강원택 교수는 “계엄 불가피성 인정이나 탄핵 반대 목소리는 강경파의 의견으로, 온건 또는 중도 보수의 생각은 다르다”고 분석했다. 목소리는 높지 않지만 ‘침묵하는 중도’의 민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인 셈이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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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승련]계엄이 끄집어낸 ‘앗 뜨거’ 순간

    영화 ‘도둑들’에서 배우 오달수는 홍콩인 행세를 했지만, 이내 실체가 드러난다. 미심쩍은 누군가가 뜨거운 차를 얼굴에 부었더니 “앗 뜨거 뜨거…” 하며 우리말로 소리쳤다. 위기가 닥치거나, 뭔가에 쫓기거나, 감당하기 힘든 큰일이 벌어지면 내 안의 알맹이가 무심결에 튀어나온다. 이번 계엄·탄핵 국면에서도 비슷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민주당 핵심부가 갖는 강대국과 국제질서에 대한 생각이 드러나 버렸다.대통령답지 못한 尹의 반중 의식 가장 눈에 띈 건 윤 대통령의 반중국 가치였다. 탄핵소추 직전 대국민담화를 통해 미군 항공모함과 국가정보원을 드론으로 촬영한 중국인을 굳이 거론해 중국을 겨냥했다. 또 체포 직전에는 친필 메모를 통해 ‘권위주의 독재국가가 국내 정치세력과 손잡는다’며 중국을 연상하게 했다. 헌법재판소 법정에서 법률대리인들이 끝도 없이 중국의 선거 전산망 침투 가능성을 주장했는데, 옆자리의 대통령 생각이 그럴 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납득할 만한 증거도 없이 중국이란 거대하고도 복잡미묘한 상대국을 정치에 끌어들이는 우를 범했다. 평소라면 참모들이 말렸겠지만, 그런 보좌가 없는 지금 대통령 생각은 한중 관계의 먼 미래가 아닌 자기 탄핵과 재판에만 머문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은 중국 거부감을 대놓고 말한 어쩌면 유일한 대통령이다. 후보 땐 “우리 청년들이 중국을 안 좋아한다”고 했고, 재임 중엔 대만 문제로 중국을 자극했다. 비외교적 언사였고, 그 말을 왜 했어야 하는지 전략이 안 보였다. 민주당의 탄핵소추문은 또 어떤가. 지난해 12·3 계엄 직후 국회의 1차 탄핵 표결이 7일에 있었다. 민주당이 소추문을 작성했는데, 결론 부분에 “북중러를 적대시했고, 일본 중심의 기이(奇異)한 외교를 했다”고 썼다. 한미일 협력을 추진한 미국의 반발을 부를 내용이었다. 민주당은 시간에 쫓긴 실수였다면서 그 대목은 조국혁신당이 썼다고 책임을 돌렸다. 하지만 정청래 법사위원장, 김용민 의원 등이 관여했다는 그 글은 당 주류의 집단적 속마음이 ‘뜨거 뜨거’ 순간을 맞았던 것 아닐까. 생방송 즉흥 발언도 아니고, 역사적 기록물인 탄핵소추문을 가볍게 다뤘을 리 없다. 192명 야당 의원 중 왜 이의 제기가 없었는지 궁금하다.192명 중 누구도 문제를 못 느꼈나 미국은 반발했고, 중국은 반색했다. 중국 관영매체인 ‘참고소식(參考消息)’은 “구중친일(仇中親日·중국을 미워하고 일본을 가까이하다)이 소추 이유였다”고 보도했다. 일주일 뒤 2차 탄핵 때는 그 대목을 삭제했지만, 한국계 미 하원의원이 비판 기고문을 미국에서 쓰기 전부터 워싱턴 조야의 우려가 민주당에 전달됐다. 느닷없는 한미동맹 강화 결의문 발의, 노벨평화상에 트럼프 추천, 이재명 대표의 한미일 협력 평가는 이런 국면에서 나온 것이다. 진보당 소속 반미운동가 3명을 비례대표 상위권에 공천하고, 한미일 군사훈련을 두고 “자위대의 군홧발”을 거론하던 그 민주당이 맞나 싶다. 혹여 조기 대선 국면이 오면, 여야는 다양한 홍보전에 나설 것이다. 국민의힘은 ‘반중국 정서’를 놓고 반중 친윤 시위대와 중도층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할 수 있다. 민주당 역시 이미 시작한 트럼프 띄우기, 한미일 협력 강조를 통해 상대적으로 친중적이란 이미지 탈피를 시도할 거다. 선거 캠페인은 구호와 약속의 형식으로 당과 후보 브랜드를 바꾸고, 색칠하고, 때론 감추는 일이다. 하지만 다음 대선 때 외교안보 영역에선 이 작업이 더 어려워졌다. 툭 튀어나온 진심을 읽어버린 유권자들이 쉽게 믿지 않을 것이고, 중국 미국 일본 정부도 다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쯤은 비밀도 아니었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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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트럼프 노벨상 추천한 민주당 의원… 뜬금없지 않나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의 휴대전화 문자나 사진, 수첩은 언론사 사진 기자들의 단골 취재 포인트다. 3일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 역시 수첩 속 메모가 촬영되면서 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사실이 드러났다. “노르웨이 위원회에 제출·접수 완료-미 측 통보(당분간 비공개) (백악관 보고 예정)”이라는 손글씨였다. 조셉 윤 주한 미국대사대리에게 설명됐고, 이재명 대표에게도 보고됐다고 당 대변인이 확인해줬다. ▷박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 시절 북-미 대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 정착의 전기를 만들 단계까지 갔었다”며 추천 배경을 설명했다. 박 의원은 싱가포르, 하노이(베트남)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를 낸 것을 기정사실로 하고 싶은 듯했다. 그렇잖아도 트럼프는 요즘 김정은과 맺은 친분을 강조하며 모종의 북-미 간 관계 개선을 노리는 형국이다. 박 의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1차장과 원장 특보를 지내면서 이 과정에 관여한 이력이 있다. ▷박 의원의 생각과 달리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전문가 평가는 대체로 박한 편이다. “역사상 가장 많은, 수백 대의 카메라를 봤느냐”는 트럼프 자랑처럼 그의 이벤트 본능에는 맞았을지 모르지만, 북한 비핵화에는 의미가 없었다.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김정은은 평북 영변 내 낡은 핵시설에 국한해 폐쇄하는 대가로, 2016년 이후 유엔과 미국의 모든 경제 제재 해제를 반복 요구하다가 빈손으로 돌아갔다. 이후 북한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인용하기 민망한 말폭탄을 쏟아냈는데, 그런 뼈아픈 사정을 가장 잘 알 만한 인물이 박 의원이다. ▷칭찬 받기를 즐기는 트럼프의 마음을 사려는 뜻이라면 추천도 생각할 수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도 2018년 트럼프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했다. 당시 일본 내에서 “트럼프가 자격이 되느냐”부터 “너무 친미 굴종”이란 비판이 있었는데, 아베 총리는 ‘국익에 도움 된다’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 민주당으로서도 트럼프의 마음을 얻어야 할 절실한 사정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 1차 탄핵 시도 때 탄핵소추문에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 정책을 고수했다”는 표현을 민주당이 썼다가 미국 조야의 비판을 샀다. ▷올 들어 이스라엘-하마스는 휴전을 진행 중이고, 어쩌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멈춰 설 수 있다. 두 전쟁이 종식된다면 트럼프 공로는 부인할 수 없고, 노벨 평화상의 수상 자격을 갖출 수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너무나 논쟁적이다. 성추문 입막음 혐의에 대한 유죄평결, 소수자 폄훼, 우방국 정상 조롱 등 국제사회 비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민주당에도 트럼프 행정부와 이익을 나누는 실용적 관계가 필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 노력이 노벨 평화상 후보 추천으로 시작한다는 것이 왠지 뜬금없게 느껴진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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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트럼프 ‘금요일 밤의 학살’… 현실 된 ‘스케줄 F’의 공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금요일 밤을 골라 국무부 재무부 등 연방정부의 감찰관을 무더기 해고했다. “금요일 밤의 학살”이란 미 언론의 평가가 나왔다. 개인에겐 해고 사유 통보도 없었다. 백악관 인사국장의 이메일 통보를 받은 감찰관은 17명인 것이 금주 들어서야 파악됐다. “법무부와 국토안보부 2곳을 뺀 모든 부처”라는 보도가 나왔다. 살아남은 법무부 감찰관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트럼프를 수사했던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고강도로 감찰한 전력이 있다. 트럼프는 기자들 질문에 “그 FBI 감찰보고서는 참 정확했다”고 답해 그가 살아남은 이유를 짐작하게 했다. ▷전체 250만 명에 이르는 연방정부 구성원이 동요하자, 트럼프는 다음 날 “몇몇 감찰관은 불공정했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감찰관 해고를 위해 30일 전에 구체적인 해고 사유를 문서로 상원에 보고하도록 된 규정은 지키지 않았다. 트럼프는 이 규정을 모르는 듯 “해고는 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재벌 트럼프가 전국적 인지도를 쌓은 것은 20년 전 방송 리얼리티쇼 사회자로 나서서 “넌 해고됐어(you are fired)”를 외치면서다. 여전히 ‘해고는 곧 인기’로 여기는지 모르겠다. ▷첫 4년 임기 동안 트럼프는 연방정부 공직자들이 일부러 태업을 해 자신을 괴롭혔다고 여겼고, 이들을 비밀 결사체라는 식으로 “딥 스테이트(deep state)”로 종종 불렀다. 트럼프 사단은 이들을 손볼 방법을 찾다가 ‘스케줄 F’ 조항을 찾아냈다. 통상 연방정부 공직자는 고용이 보장된다(스케줄 G). 하지만 기밀을 다루거나 정책 결정 및 홍보에 참여하는 이들의 해고는 상대적으로 쉽다(스케줄 F). 트럼프는 첫 임기 마지막 해인 2020년 직무를 재조정해 4000명 선이었던 스케줄 F 대상을 5만 명 정도로 늘려놓았다. ▷트럼프가 말하는 연방정부 ‘개혁’에는 두 가지 목표가 뒤섞여 있다. 반대파를 골라낸 자리에 트럼프 충성파를 입성시킨다는 것이 하나고, 인건비 및 사업예산 절감을 통한 경영 효율화를 이루는 것이 다른 하나다. 일론 머스크 같은 혁신형 기업가에게 정부효율부(DOGE)라는 신생 조직을 맡긴 것은 둘째 목표를 위한 것이다. 스케줄 F 공직자들로선 언제, 어떻게 해고당할지 알 길이 없어 불안해한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렇듯 트럼프의 정부 개혁에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정부 슬림화로 예산을 아낀다면 누가 반대할까. 하지만 역량보다 충성심을 더 중시하고, 이메일 해고라는 거친 방식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현실이 된 첫 무더기 해고 대상이 정치적 중립성이 강조되는 감찰관들이었다. 새 감찰관들이 공직 기강 확립이란 본업을 비판자 축출에 활용할 수도 있다. 아직은 단정하기 이르지만, 이런 식이면 연방정부가 정치 싸움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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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美 출생자에 시민권 안 주면 위헌”… 트럼프 벌써 역풍

    20일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첫 4일 동안 54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석유 시추 확대, 가상화폐 촉진 등 대선 때부터 예고하던 것들이다. 불법 이민자 자녀의 시민권을 제한하는 조치도 빠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합법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아니라면 불법 체류자 어머니가 낳은 아이에게 미국 국적을 더 이상은 안 준다는 내용이다. 어머니가 유학, 관광, 단기 근로를 위해 정식으로 입국했다가 출산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인구 3억4500만 명인 미국에서는 한 해 약 360만 명이 태어나는데, 이 행정명령대로라면 25만∼30만 명이 미국 국적을 못 얻게 된다. ▷무더기 행정명령에 제동을 건 것은 법원이었다. 워싱턴주 존 코큰아워 연방판사는 23일 “이만큼 명백한 위헌 사례는 못 봤다”며 우선 ‘2주간 효력정지’ 결정을 내렸다. “미국에서 태어나면 모두가 미국 시민”이라는 수정헌법 14조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이 판사는 “(2주 뒤인) 2월 5일 추가로 판단하겠다”고 예고했다. 결론이 뒤바뀔 가능성은 작다는 전망이 많아, 기세등등하던 트럼프로선 첫 역풍을 맞은 것이다. ▷수정헌법 14조는 남북전쟁으로 노예 해방이 선언된 직후인 1866년 흑인 노예와 그 자녀의 권리 보장을 위해 만들어졌다. 미국식 속지(屬地)주의의 근간이 됐다. 과거에도 수정헌법 14조의 적법성을 연방대법원이 2차례 검토한 적이 있다. 1898년과 1982년인데, 헌법상 출생시민권(birthright)이 명확히 표현돼 있어서 다른 해석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에도 “불법 체류자 자녀에게 시민권을 준다니, 웃기지 않느냐. 지구상에 미국 한 곳만 이렇다”며 행정명령을 예고한 적이 있다. 속지주의는 미국 외에도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약 30개국이 채택하고 있지만, 사실관계에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창궐하자 계획을 미뤘다. 대통령 행정명령을 발동해 최상위 법체계인 헌법 조항에 반하는 정책을 편다는 발상이 트럼프답다. ▷트럼프는 백인 유권자의 공(恐), 벽(壁), 노(怒)를 앞세워 재선에 성공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공포심, 그래서 쌓아올린 미-멕시코 국경의 긴 장벽을 활용해 백인 지지층을 상대로 분노 마케팅을 펼쳤다.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나는 정책추진 동력(mandate)을 부여받았다”고 선언했다. 뭘 해도 정당성이 주어졌다는 믿음이다. 그렇다 보니 전문성과 경력보다는 충성심을 기준으로 장관을 발탁했고, 이벤트 같은 서명식을 통해 충분히 검토됐는지 모를 행정명령들을 쏟아냈다. 그러다가 법원에 가로막힌 것이다. 트럼프식 정치가 언제까지 지금처럼 좌충우돌할지 모를 일이다. 트럼프 2기 4년은 트럼프의 몰아치기 국정과 미국의 촘촘한 시스템 사이의 힘 겨루기로 기억될 수 있겠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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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지옥 맛볼 것” 트럼프 경고 먹혔나… 이-하마스 6주 휴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불가능해 보이던 휴전협상이 타결됐다. 우선 6주간 전투를 중단하고, 이스라엘 포로 1인당 하마스 수감자 30명 비율로 맞바꾸는 포로 교환이 시작된다. 3단계 휴전 합의 중 1단계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 닷새 전에 타결됐다.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가자지구 경계선을 넘어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1200명가량 살해하고, 약 250명을 인질로 끌고 가면서 시작된 전쟁이 15개월 만에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미국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 중 어느 쪽 역할이 더 컸느냐를 두고 뜨겁게 논쟁 중이다. 타결 발표는 트럼프가 X(옛 트위터)를 통해 선수를 쳤다. 바이든이 몇 시간 뒤 기자회견에서 “힘겨운 협상을 마쳤다”며 성과를 내세웠지만, 기자들은 ‘어느 쪽 공로가 더 크냐’는 질문을 빼놓지 않았다. 바이든은 “지금 농담하는 거냐”며 예민하게 반응했다. 서명 당사자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먼저 전화한 건 바이든이 아니라 ‘미래 권력’ 트럼프였다. 이스라엘 보도자료는 온통 트럼프의 역할을 강조했고, 바이든을 거론한 건 딱 1문장이었다. ▷미국 전문가들은 두 대통령을 모두 평가했지만, “내가 당선됐기에 가능한 휴전 합의”라는 트럼프의 말은 무시하기 어렵다. 휴전 협상 내용은 바이든 정부가 지난해 5월 내놓은 것과 흡사하다. 하지만 8개월 동안 진척이 없다가 “내 취임식 날까지 미국인을 포함한 인질을 안 풀어주면 전면적인 지옥을 맛볼 것”이라는 트럼프의 엄포 후 속도가 났다. 트럼프는 친구인 뉴욕의 부동산 사업가 스티브 윗코프를 특사로 임명했다. 유대계이지만, 외교도 중동도 문외한이었다. ▷윗코프 특사는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데 능력을 발휘했다. 11일 이스라엘로 날아가면서 “무조건 일정을 잡자”고 했다. 토요일인 그날은 유대인들이 엄격하게 지키는 안식일이었지만, 이스라엘이 따랐다고 한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협상 타결은 네타냐후 총리의 결심으로 가능했다. 그는 전쟁 중이라 현직을 유지할 뿐이지, 전쟁이 끝나면 퇴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트럼프와 협력할 때라야 휴전 후에도 권력 연장이 가능하다고 여겼을 공산이 크다. ▷지금의 국제 질서는 미국의 힘이 빠지면서 더 불안정해졌다고 평가된다. 불필요한 해외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재등장이 겹치면서 국제 분쟁은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늘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취임 직전에 어렵다던 이스라엘-하마스 휴전이 성사됐다. 트럼프는 알려진 대로 자신이 주인공인 ‘거래의 성사’에 관심이 크다. 군사력은 제한적으로 쓰겠다면서도 “지옥을 맛보게 될 거다”라는 식의 엄포 외교를 서슴지 않는다. 이번 협상 타결은 더 자신만만해진 트럼프식 외교의 서막일 수 있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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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승련]응답률 기준 강화해야 저질 여론조사 막는다

    “윤석열이를 좀 올려갖고 홍준표보다 2% 앞서게 해 주이소”라는 정치 브로커 명태균의 음성은 충격적이었다. 이런 조작 정황과는 별개지만, 정치 여론조사의 신뢰를 높이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40.0%까지 올라간 여론조사가 5일 발표된 것도 조사 품질에 대한 궁금증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대통령 40% 지지율 조사는 아시아투데이가 의뢰했고, 한국여론평판연구소가 조사했다. 응답률은 4.7%였다. “체포영장 불법 논란에도 공수처가 대통령을 강제 연행하는 것은 어떻게 보느냐” “부정선거 의혹 해소를 위해 선관위 공개 검증이 필요하냐”는 질문이 앞쪽에 배치됐다. 강성 우파의 주장을 강조한 질문들로, 응답자 중 일부는 거부감 때문에 전화 통화를 중단했을 수 있다.제안 1: 국제 기준 응답률 도입해야 낮은 응답률(4.7%)은 낮은 품질과 직결된다. 훈련된 면접 조사원이 아니라 저비용 ARS 기계가 전화를 거는 방식이어서 더 낮아졌다. 한국조사협회가 결의했던 “자동번호생성 방식 때 응답률이 7% 이하일 땐 공표하지 않겠다”는 기준에 못 미친다. 조사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통상 010 전화번호 10만 개를 발생시켜 걸면 2만 개 번호는 결번이다. ARS로 건다면 8만 명 중에 통화 중 혹은 부재중이거나, 응답 거절인 경우가 줄잡아 6만 명이다. “여보세요”라며 통화를 시작한 것이 2만 명쯤이다. 1000명이 끝까지 답변했다고 가정할 때, 한국의 응답률은 2만 명을 기준으로 5%가 된다. 하지만 실제 접촉 시도한 8만 개 번호를 기준으로 보면 1.25%다. 국제 기준(AAPOR)을 쓰는 미국은 1.25%를 적용한다. 통계학자들 권유처럼 우리도 “국제 기준으로 바꾸겠다”는 곳이 나올 때가 됐다. 아시아투데이 조사를 국제 기준에 맞춰 보면 0.89%에 그친다. 응답률이 낮아진다는 것은 ‘민심의 실체’와 더 멀어진다는 뜻이다. 인구 비중이 1.3%인 제주도를 예로 들어보자. 통상 샘플인 1000명 가운데 제주 주민은 13명, 그 가운데 30대 여성은 성·연령 비율에 따라 1명만 답하면 된다. 이틀 동안 이런 일이 벌어진다. 월요일에 ARS 장비가 전화를 건 제주 30대 여성 가운데 A는 전화를 안 받고, B는 받자마자 끊고, C∼K는 부재중이다. 화요일 저녁에 가서야 80번째 누군가가 답변을 마쳤다. 통화 중과 수신 거부 60명을 빼고, 전화를 받았던 20명 중 1명이다. 이럴 때 응답률이 5%다. 80번째 여성은 왜 79명과 달리 자기 시간 5분을 들여 응했을까. 만약 아시아투데이처럼 불법 체포영장 같은 질문을 받았더라도 끝까지 견해를 밝히고 싶은 정치 고(高)관심자였을까. 우연히 그때 짬이 났던 걸까. “대통령 위기에 보수가 전화를 더 받아 지지율 40%가 나왔다”는 주장은 보수층이 과다 대표됐고, 그만큼 평균적 민심과는 거리가 있다는 고백이기도 하다.제안 2: 반복 전화할 때라야 응답률 오른다 국제 기준을 도입하되, 대폭 줄어들 응답률은 예산과 시간을 더 들여 다시 올리면 된다. 제주 사례라면, 80명이 아니라 A∼O까지 15명에게만 전화를 거는 방법이 있다. 월요일에 안 받았다면 화요일 오전에 2차 통화를 시도하고, 화요일 저녁과 수요일 아침에 3차, 목요일에 4차, 5차 시도를 할 수 있다. 부재중 10명 빼고, 통화한 5명 중 1명이 설문에 답한다면 제주 응답률은 한국 기준 20%, 국제 기준 6.7%로 뛰어오른다. 필연적으로 면접조사원 수나 근무 일수가 늘어나고, 조사 비용이 2배 가까이 늘어날 수 있다. 높은 조사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매체와 함께 ‘편향된 의도성 질문’은 자연스럽게 퇴장할 것이고, 조사 품질과 신뢰도가 함께 오를 수 있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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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국무위원들, 경제 고민 좀 하고 말하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일 신년사를 낭독하다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많은 비판이 있는 걸 안다”고 운을 뗐다. “(한국은행) 간부들이 공보관을 통해 (총재가 신년사를) 그냥 읽고 오시고, 절대 애드립(즉흥 발언)하지 말라고 했는데,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면서 시작한 말이다. 이틀 전 최 권한대행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3명 임명을 거부하다가 탄핵당한 한덕수 전 대행과 달리, 그중 2명을 임명했다. 중앙은행 총재가 신년사에서 이런 민감한 정치 문제를 꺼낸 것이다. ▷이 총재는 “최 대행을 비판하려면, 특히 국무위원은 해외 신용평가사에 미칠 영향도 고려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년사 직후 기자간담회 때는 한술 더 떠 “국무위원들은 경제 고민 좀 하고 얘기하라”고 했다. 헌재 재판관 임명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일정이 더는 늦춰지지 않도록 한 조치다. 지금 같은 환율 급등 국면에서 외국 투자자에게 한국의 안정성을 보여주는 데 필요한 일이었다. ▷이 총재의 발언은 지난해 12월 31일 국무회의에서 벌어진 ‘소동’을 겨냥한 것이다. 최 대행은 그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사전에 예고가 없었던 헌재 재판관 임명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자 몇몇 장관이 “왜 상의도 없이 중대 사안을 발표하느냐”고 강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정치인 출신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윤 대통령과 대학 동기인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 윤 대통령의 개인변호사였던 이완규 법제처장 등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 대행은 장관들과 동료인 경제부총리가 더 이상 아니다. 재판관 임명 여부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이지, 토론해 정할 성격은 아니다. ▷이 총재가 해외 신용평가사를 거론한 건 국가 신용등급 때문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때 무디스, S&P 등 이름도 생소하던 글로벌 신용등급회사가 한국의 국가등급을 낮추는 일이 환율 폭등 및 차입금리 급등과 맞물려 진행되던 기억이 생생하다. 무디스는 12·3 계엄 직후 Aa2라는 우리 신용등급은 유지하면서도 “정치 사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총재는 자신이 10년 전 IMF 국장을 지내며 40여 아태 국가에 대한 경제리스크 보고서를 작성했던 책임자였기 때문에 더 민감했을 수 있다. ▷한국은행 총재는 발언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력 때문에 말과 행동의 절제를 요구받는다. 이 총재는 이런 상식을 깨고 한은의 업무 영역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대학입시 문제에까지 의견을 내 왔다. 그의 행보를 놓고 “오지랖이 넓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국무위원들은 경제 고민 좀 하고 얘기하라”는 말의 내용에는 뭐라 토를 달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 경제는 ‘리스크의 지뢰밭’을 걷고 있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5-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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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승련]한덕수 대행은 왜 탄핵을 자초했을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스스로 탄핵을 선택한 것이다. 또 권한대행의 대행이라는 전대미문의 혼란도 자기 의지로 선택한 것이다. 40년 공직생활 동안 변혁보다는 안정적 관리를 중시했고, 제3자건 역사건 누군가의 평가를 늘 신경 쓰면서 산 인물답지 않다. 그의 1차 책임은 선출된 대통령이 부재한 현 상황을 안정 속에 최대한 단축시키는 일이었다. 황당한 계엄을 실행에 옮긴 윤석열 대통령이 하루라도 국정의 책임자로 있어선 안 된다는 점에 대해 한 대행도 100% 동의할 것으로 확신한다.재판관 임명은 폭탄 돌리기 아니다 헌재 재판관 임명은 폭탄 돌리기 놀이처럼 작동할 일이 아니다. 그저 내 앞에서 터지거나, 다음으로 넘긴 뒤 터지길 바랄 일이 아니란 뜻이다. 40년 동안 장관, 청와대 수석, 대사, 부총리, 총리까지 안 해 본 게 없는 한덕수 대행이야말로 이런 고난도 문제를 풀 책무가 있다. 자기 손으로 재판관 3명을 임명했어야 했다. 관운이 억세게 좋았던 그에게 던져진 운명이라면 운명일 것이다. 한 대행은 폭탄을 다음 사람에게 넘기고 빠져나온 것에 가깝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이주호 사회부총리처럼 다음 순번 대행들이 헌재 재판관을 임명할지는 의문이다. 최 부총리는 어제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탄핵 재고”를 요청했고, 이주호 부총리는 입장문 발표 때 곁에 서 있었다. 1주일에 1명씩 국무위원 탄핵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는 민주당도 민주당이지만, 총리와 부총리가 이렇게 무책임해서 되겠나. 한 대행은 정치적 합의 필요성과 황교안 권한대행 관례를 거론하지만, 핑계일 뿐이다.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한 대행의 헌재 재판관 임명 거부는 시간을 끌어달라는 국민의힘 요청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이런저런 이유로 재판을 지연시켜 가며 승승장구했고, 조국 전 대표도 총선 2개월 전 내려진 2심 실형 선고 때 구속을 미뤄준 덕분에 국회의원이 됐다. 이러니 탄핵심리를 몇 개월이라도 지연시키는 게 대단한 불의가 아니라는 국민의힘 논리에 한 대행이 수긍했는지는 모르겠다. 여기에 본회의장 질의응답을 통해 민주당 의원 수십 명과 얼굴을 붉히며 숱하게 싸웠던 한 대행의 개인 경험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민주당 주장대로 대통령 욕심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한 대행은 계엄엔 반대했지만, 이번 폭탄 돌리기로 중도층 마음을 잃게 됐다. 무리수를 둬서라도 후보에 도전하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은 혹시 있을지 모를 조기 대선은 어렵더라도 5년 뒤 대선을 기약할 때라야 의미가 있다. 1949년생으로 지금 75세인 한 대행에게 5년 뒤란 없다. 윤 대통령과 나눈 의리와 우정이 변수일 수 있지만, 역시 큰 이유는 아닐 것 같다. 한 대행이 노무현의 총리, 윤석열의 총리를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과 국정은 함께해도 이념적 동지가 되지는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노무현식 정치와 이념에 경도됐다면, 그가 노무현 퇴임 1년 만에 이명박 정부의 주미 대사직 제안을 수락하지 못했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계엄으로 탄핵과 수사를 앞둔 윤 대통령을 위해 역사적 혹평을 뒤집어썼을까 싶다.‘결단’ 못 내려 공직 40년이 빛바래다 옛사람들은 사람의 말보다는 그의 발길을 보라고 했다. 한 대행은 평생 국리민복을 다짐했겠지만, 그는 다른 곳을 향해 떠났다. 우리 편 목소리와 해야 할 책무 사이에 낀 상태에서 책임 회피를 선택했다는 것 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 공직에서 수많은 ‘결정’을 내렸던 그였지만, 인생을 건 ‘결단’을 강요받는 순간은 없었을 것이다. 그의 화려한 공직 경력이 폭탄을 다음 국무위원에게 넘긴 마지막 한 컷 때문에 빛바래게 됐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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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레이디 맥베스’에 김 여사 빗댄 더타임스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가 윤석열 대통령을 맥베스로, 김건희 여사를 그의 부인 레이디 맥베스로 빗댄 기사를 썼다. 기사에 맥베스란 표현은 도입부 딱 한 문장에만 등장한다. 우리에게 춘향전이 그렇듯이, 영국 독자들에게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하나인 ‘맥베스(Macbeth)’는 설명이 필요 없나 보다. 서사(敍事)나 주인공 설명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편집자는 “한국인은 비상계엄 선포에 그들의 ‘레이디 맥베스’를 문제 삼는다”는 제목을 뽑았다. ▷‘맥베스’의 줄거리를 듣다 보면 한국 정치가 절묘하게 겹쳐진다. 충신 맥베스는 스코틀랜드 왕을 위해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고, 최측근인 부관과 함께 왕의 총애를 받았다. 귀로에 마녀 셋을 만나 들은 ‘왕이 될 운명’이란 말에 흔들렸다. 그가 머뭇거리자 아내 레이디 맥베스는 뭐가 두렵냐며 부추겼고, 그는 주군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왕국이 혼돈에 빠지는 동안 자신의 최측근 부관까지 제거하게 된다. 맥베스 부부는 비극적 운명을 맞았다. 정치인 문재인, 윤석열, 한동훈이 떠오른다는 이들이 많다. 김건희 여사도 함께. ▷영국 기자에겐 윤 대통령의 정치 입문에 관여한 김건희 여사가 레이디 맥베스로 보인 것 같다. 김 여사는 검찰총장인 남편 업무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후보 시절엔 핵심 참모 이상의 역할을 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선거는 패밀리 비즈니스”라는 말까지 꺼냈다. 여기에 손바닥의 왕(王)자, 김 여사가 유튜버 방송 기자의 손금을 봐 주며 “내가 잘 보죠”라고 말하는 영상, 하얀 수염의 풍수전문가까지 등장했다. 셰익스피어 작품 속 ‘예언’처럼 무대에 올릴 만한 요소가 갖춰졌다. ▷윤 대통령은 왜 반헌법적인 데다 황당하기까지 한 비상계엄을 실행에 옮겼을까. 총선 전부터 지나가는 말처럼 “야당이 저러면, 계엄으로 정리하면 되지”라고 말하곤 했다는 얘기가 용산 안팎에서 들린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의 국정 방해”를 이유로 댔다. 설사 그렇더라도 군을 국회에 투입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김건희 특검법과 명태균 음성파일에서 아내를 보호하기 위한 것 아닐까 하는 추측이 끊이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맥베스 비유를 먼저 꺼낸 것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2021년, 2024년 2번이나 공개적으로 ‘맥베스 부부의 비극적 최후’를 거론했다. 대문호지만,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들은 요즘 기준으로 봐도 ‘이런 막장 드라마가 없다’고 평가받는다. 진짜 기가 막히는 일은 400년이 지난 한국에서 그런 막장이 현실로 살아난 듯하고, 적잖은 영국 독자들이 한국 정치를 흥밋거리처럼 바라보게 됐다는 점이다. 궁지에 몰린 대통령 부부의 처지가 셰익스피어쯤 되어야 할 수 있는 창작처럼 느껴진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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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윤석열 대통령 ‘가짜 출근 쇼’까지 했나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22년 5월 언론은 대통령의 출근 시간을 추적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택을 나선 시각은 취임 첫 3일 동안 오전 8시 31분, 9시 12분, 9시 55분이었다. “공무원 기준으론 지각”이란 비판이 나왔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은 24시간 근무한다”고 반박했고, 곧 정권 초기의 대형 이슈들에 묻혀 버렸다. 참모의 말엔 귀 닫은 채 회의시간을 독점하고, 잦은 음주 풍문 속에 국정에 몰입하지 못한다는 증언이 이어지는 오늘의 ‘탄핵 전야’에 돌이켜볼 때,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한 언론이 집권 후반기를 맞은 11월 한 달의 출근 시간을 관찰했다. 11일 보도에 따르면 주말과 남미 순방을 뺀 18일 가운데 대통령이 오전 9시 이전에 용산 집무실에 도착한 건 이틀뿐이었다. 이래서야 국정의 컨트롤타워인 대통령실 업무 기강이 제대로 섰을까 싶다. 정작 더 큰 문제는 경호처가 언제부턴가 ‘가짜 출근차’를 동원한 듯한 장면이다. ▷언론의 지난달 25일 취재를 보자. 그날 오전 한남동 관저에서 검은색 고급 승용차 3, 4대와 승합차 3∼5대로 구성된 차량군이 2차례 빠져나왔다. 경찰 오토바이 경호가 뒤따랐다. 각각 오전 8시 52분과 9시 42분이었고, 도착지는 용산 대통령실이었다고 한다. 차량 규모로 볼 때 대통령과 수행원, 경호팀이 출근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이런 일은 29일에도, 12월 3일에도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2번 출근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달랐던 것은 경찰의 태도였다. 첫째 행렬을 맞을 때 경찰은 호루라기로 주변 차량을 통제했고, 길목에 선 경찰은 서로 잡담했다는 것이다. 둘째 행렬 땐 사복 경찰이 추가로 배치됐고, ‘표준 교통신호제어기’ 뚜껑을 열어놓고 언제든 신호등 변동을 할 태세였다. 경찰청 폐쇄회로(CC)TV도 첫 번째와 달리 두 번째엔 차량들이 한남동 관저를 나설 때 카메라가 차량에 집중되고 화면은 확대됐다. 이동할 때는 카메라가 차량을 추적했다고 한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 내부에서는 요인 경호 때 위장용으로 빈 차를 내보내는 ‘공차’ 방식을 늦은 출근에 활용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헌법적 비상계엄과 정치인 체포령까지 불거진 마당에 이런 일은 사소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취재가 사실이라면 사안의 크기는 달라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언론의 출근 시간 추적이 부담스럽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든가 출근 시간을 앞당기면 된다. 쉽고 삿된 길을 택해서 들어간 시간과 인력 낭비는 어쩔 것인가. 첫 번째 빈 차 행렬의 운전자와 탑승자들은 ‘위장용 출근 쇼’에 얼마나 어처구니없어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경호처가 “경호 보안상 이유”라며 입을 닫을 게 아니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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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이재명 한동훈 우원식 조국 김명수… 설마 싶은 ‘체포 리스트’

    윤석열 대통령 탄핵 표결 정국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생각을 180도 틀었다. “계엄은 위헌적이나, 탄핵은 불가”였던 그가 6일 갑자기 “대통령 직무 정지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돌아섰다. 계엄이 선포된 3일 밤 군이 정치인 체포를 시도했고, 윤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이른바 ‘체포 리스트’가 있었다는 주장인데, 사실로 확인된다면 정치권 지축을 뒤흔들 일이다. ▷‘체포 시도설’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입에서 시작됐다. 계엄이 무산된 직후 석연찮은 이유로 사직한 홍 전 차장은 6일 민간인 신분으로 국회 정보위에 출석했다. 그 자리에서 3일 밤 대통령과 충암고 출신인 여인형 방첩사령관과 통화한 내용을 공개했다. 윤 대통령이 “정치인들을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하라. (민주당이 경찰에 넘긴) 대공수사권을 국정원에 돌려줄 테니 방첩사를 도우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했다. 계엄 발표 20분쯤 뒤였다. ▷홍 차장은 곧바로 방첩사령관과 통화했는데, 체포 대상 정치인 이름을 불러줘 받아 적었다고 했다.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김민석, 박찬대, 정청래, 조국, 김어준, 김명수(전 대법원장), 김민웅(김민석 의원 친형), 권순일(전 대법관)… 순서였다고 했다. 홍 차장은 “여기까지 받아 적다가 미친 ×이구나 생각해 멈췄다”고 국회에서 말했다. 이름이 기억 안 나는 선관위원 1명, 민노총 또는 한노총 위원장 1명이 더 포함됐다고 했다. 계엄법상 현역 의원은 현행범이 아니면 체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법성을 다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재명 박찬대 등 야당 지도부 말고도 집권 여당의 한동훈 대표까지 체포 대상에 올랐다면 놀라운 일이다. 한 대표는 5일 대통령 면담 때 “왜 국회에 투입된 군이 나를 체포하려 했느냐”고 따진 적이 있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왜 거론됐는지 의문이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대장동 사건의 김만배 씨와 깊은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친야 방송인인 김어준 씨는 여론조사 ‘꽃’을 통해 총선 여론조사 조작 가능성을 따지려 한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홍 전 차장에 따르면 방첩사는 그날 밤 체포조를 투입했는데 정치인 위치를 못 찾아내자, 자신에게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고 한다. 체포한 뒤 경기 과천에 구금하는 계획도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아무런 조치를 않았다”며 무관함을 주장했는데, 수사로 가릴 일이다. 그가 어마어마한 통화 내용을 직속 상관인 조태용 국정원장에게 보고했는지를 두고도 양쪽 진술이 엇갈린다. 역사에 가정은 필요 없다지만, 최초의 체포 계획이 성사됐다면 어떤 일이 이어졌을까. 2차, 3차 체포 리스트가 없으리란 법도 없으니,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나왔을지 상상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일이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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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누구 조언 듣고 그랬을지가 1만 달러짜리 질문”

    해외 언론의 한국 보도는 때때로 바깥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 수 있는 창을 열어준다.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도 그랬다. 긴급 상황을 사실 위주로 다루던 외신 보도에서 비판적 견해가 늘어났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4일 “윤 대통령은 즉각 사임하라”면서 “윤 대통령은 한국 같은 주요국 대통령직은 물론이고 어떤 자리에도 안 맞다(unfit)는 걸 입증했다”는 주장이 담긴 익명의 칼럼을 실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자사의 모든 글에는 회사의 집단지성이 담겼다는 이유로 글쓴이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계엄 선포를 “미국의 (한미일) 태평양 동맹을 위협할 만한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그런 뒤 “윤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아메리칸 파이’ 노래를 부르던 시절은 갔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자사 칼럼니스트 3인의 대화 형식의 글을 실었다. 거기에는 계엄 선포를 “완전한 오판”으로 평가하고, “대통령은 누구와 상의했고, 누구의 조언을 들었나. 그것이 1만 달러짜리 질문”이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한국의 국격과 민주주의 성숙도에 비춰볼 때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었다. ▷언론사의 공식 견해인 사설도 여럿 등장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첫날 “민주국가에서 있어선 안 될 사태가 한국서 벌어졌다”는 사설을 쓴 데 이어 이튿날에도 “윤 대통령은 북한과 긴장이 지속되는 한반도 정세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고 썼다. 워싱턴포스트는 “뻔뻔하고도, 위헌적으로 보이는 (민주주의) 전복 시도가 한국 민주주의를 진짜 위협했다”고 평가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힘들게 이룬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험에 빠뜨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을 폈다. ▷언론뿐만 아니라 한반도 정책을 다루는 미국의 싱크탱크도 의견을 표명했다. 워싱턴 소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윤 대통령의 종말(demise)을 부를 수 있다”고 예측했고, 스팀슨센터는 “정치적 자살행위”라고 평가했다. 미 국무부 부장관이 이례적으로 이번 일을 “심각한 오판”이라고 비판한 것과도 맥을 같이하는 견해들이다. 미국은 한국을 일본과 함께 ‘권위주의 중국’의 팽창을 막는 핵심 동맹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안보 전문가들의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한국은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 가운데 경제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성숙시킨 유일한 국가다. 미 블룸버그통신이 “민주주의의 등대로 여겨졌던 한국에서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고 묘사한 것도 그런 이유다. 대통령 한 사람의 독단이 오랜 시간 쌓아올린 한국의 국격에 손상을 입혔다는 것은 외신의 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해법을 마련하고, 이것이 외신을 통해 보도되는 것을 지켜보는 방법밖에 없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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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추경호와 ‘당사의 50인’

    ‘권한은 많고 책임은 없다’는 말을 듣는 국회의원도 때로는 벌거벗고 광야에 설 때가 있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에겐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가 그랬다. 찬반에 대한 본인 생각을 드러내고 평가받아야 할 순간이 왔던 것이다. 국회는 4일 오전 1시쯤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을 진행했다. 투표 참석자 190명 전원이 찬성했는데, 여당 소속은 18명이었다. 시대착오적인 계엄에 반대한다는 숫자가 108명 의원 가운데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비슷한 시각 국회 건너편 국민의힘 중앙당사에는 여당 의원이 50명 넘게 모여 있었다. 표결에 불참한 이들로, 당 주류에 가까운 의원들이 상당수였다. 이들은 추경호 원내대표의 오락가락 지시로 혼란을 겪었다고 했다. 원내대표 이름의 공식 집결 지시는 3일 오후 11시 이후 2시간 동안 ‘즉시 국회→중앙당사 3층→국회 예결위 회의장→당사 3층’으로 계속 달라졌다. 그러는 사이에 투표는 끝나버렸다.▷당사에 모인 의원들은 “대체 뭔 일이 벌어진 거냐”며 우왕좌왕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8월 이후 계엄설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45년 만에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는데도 상당수 집권당 의원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관찰자에 가깝게 행동했다는 뜻이다. 그러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의결정족수를 채웠다고 선포하는 장면이 TV에 나오고 국회 표결 처리가 임박하자 몇몇 의원이 “계엄은 안 될 일” “대통령은 왜 성사도 못 시킬 계엄을 선포했느냐”는 등의 말을 주고받았다고 한다.▷추 원내대표는 의원들을 당사로 집결시켜 놓고는 국회 본청 원내대표실에 장시간 머물렀다. 본회의장까지 3, 4분 거리였지만 회의장에 가지 않았다. 계엄 선포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그는 상황 파악에만 주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표결 불참에 대해선 “내 판단으로 안 했다”고 했다. 친한계인 김종혁 최고위원은 “추 원내대표는 본회의장으로 오라는 한 대표의 말을 거부했다”는 말까지 했다. 추 대표는 4일 새벽 상황에서나, 이날 오전 열린 의총에서도 공식적으로 계엄의 문제점을 거론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에 이어 국민의힘 의원들도 역사와 민심의 평가 무대에 오를 처지에 놓였다. 의원들은 계엄 해제 표결에 왜 참여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질문받게 될 것이다. 표결 불참자 중 일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반대의 뜻을 밝혔지만, 당사에 머물던 범주류 의원 50여 명은 어떤 정치적 의사표시도 내놓지 않았다. 어떤 의원들은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한 상황에서 계엄 해제 표결을 위해 담을 넘어서까지 본회의장을 찾았고, 어떤 의원들은 제3자처럼 TV로 본회의장 표결을 지켜보며 개인적 논평을 했을 뿐이다. 극명하게 엇갈린 장면이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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