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서도 빠른 걸음걸이를 유지하는 사람은 걷는 속도가 느려진 사람보다 정신적으로 또렷한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과 스토니브룩 대학교 르네상스 의과대학 공동 연구진은 80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성별·나이가 비슷한 또래와 비교해 걷기 속도가 매우 빠른 상위 약 9%의 ‘슈퍼 무버(super movers)’가 인지 기능 저하를 겪을 위험이 뚜렷하게 낮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내분비학 전문의로 노화와 장수에 관해 연구하는 소피야 밀만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대 교수(공동 저자)는 “슈퍼 무버란 80세 이상이면서 또래보다 훨씬 뛰어난 신체 기능을 보이는 사람”이라며 “가장 중요한 결과는 슈퍼 무버가 그렇지 않은 일반 고령층보다 인지 저하 발생 위험이 약 50% 낮았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알츠하이머병이나 치매가 없는 80세 이상 고령자 약 4900명이 포함된 여러 장기 노화 연구 자료를 분석했다.
참가자들은 일정 거리를 걷는 속도 검사를 받았다. 분석 결과 슈퍼 무버는 연구 기간 동안 새로운 인지장애 발생 위험이 일반 고령자보다 51% 낮았다.
구체적으로 슈퍼 무버는 기억력 관련 인지 기능 저하가 더 느렸고, 기억력 외 다른 인지 기능 저하도 더 천천히 진행됐으며, 기억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뇌 부위인 해마의 특정 영역 부피가 더 잘 유지됐다.
이번 연구는 고령자의 걷는 속도가 개인의 전반적인 신체와 뇌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빠르게 걷는 능력이 근육량과 근력, 심혈관 건강, 폐 기능, 신경 기능 등이 조화롭게 작동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노인의학·내과 전문의인 아밋 사이니 박사는 “걷기 능력은 여러 신체 시스템이 함께 작동해야 하는 만큼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사이니 박사는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과 인터뷰에서 “걷는 동안 심장은 더 빠르게 뛴다. 심장 박동수가 높아지면 혈액은 근육뿐 아니라 뇌와 신경, 그리고 신체의 다른 여러 기관으로도 공급된다”고 말했다. 이어 “폐 역시 조금 더 빠른 속도로 호흡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은 폐를 더 활발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슈퍼 무버는 근육량과 근력 등 신체 기능을 더 잘 유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근육은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라 운동 중 다양한 신호 물질을 분비하는 내분비 기관 역할도 한다. 근육에서 분비되는 일부 마이오카인(Myokine)은 염증 조절과 대사 개선 등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한 근육 활동은 뇌 혈류 개선, 염증 조절, 뇌세포 보호와 관련된 물질 분비 등을 통해 인지 건강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치매와 관련된 흥미로운 점도 관찰됐다.
일부 슈퍼 무버의 뇌에서는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병리인 비정상 단백질 침착(플라크)과 신경섬유 엉킴이 발견됐지만 생전에는 치매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것이 꾸준한 움직임과 활동적인 생활이 노화 과정에서 뇌가 변화하더라도 기능을 유지하는 회복력을 높일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슈퍼 무버처럼 뛰어난 신체·인지 기능을 오래 유지하는 데는 유전적 요인도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연구를 주도한 밀먼 교수는 80대 이후에도 50~60대 수준의 인지·기억 기능을 유지하는 ‘슈퍼 에이저’에서는 유전의 영향이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연구진은 생활습관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건강한 식생활,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 관리, 가족·친구와의 사회적 교류, 꾸준한 운동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치매 사례의 약 절반은 청력 저하, 고혈압, 흡연, 운동 부족 등 수정 가능한 14가지 위험 요인을 관리함으로써 예방하거나 발생을 늦출 가능성이 있다는 대규모 연구 결과도 있다.
공동 저자인 스토니브룩 대학교 르네상스 의대의 신경과장 조 베르기스 박사는 “빠른 걷기는 뇌와 몸이 건강하게 늙고 있다는 표시”라면서 “동시에 빠르게 걷는 사람들은 걷는 활동을 통해 염증 감소, 심혈관 건강 개선, 인지 기능 유지에 필수적인 뇌 영역의 성장 촉진 같은 여러 경로로 뇌 건강을 보호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베르기스 박사는 이번 연구가 모든 연령대와 체력 수준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말한다.
바로 ‘계속 움직이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나이가 들어서도 슈퍼 무버가 되는 길로 이끌 수 있다고 베르기스 박사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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