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혜령]AI 총리에 거는 기대, 속도전이 아니다

  • 동아일보

최혜령 정치부 기자
최혜령 정치부 기자
1일 취임한 한성숙 국무총리의 첫 메시지는 “정부의 속도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10분 남짓한 첫 출근길 문답에서 ‘속도’라는 말을 7번 되풀이했다. 한 총리는 취임 다음 날 열린 더불어민주당 워크숍에서도 “속도전”을 강조했다. 네이버 대표이사 출신으로 ‘AI 대전환’을 강조하고 있는 한 총리는 정부도 인공지능(AI) 기업처럼 신속한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지난 1년간 생긴 문제들은 정부의 ‘속도’가 느려서 발생한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너무 빨라서 생긴 문제들이 많다. 급격하게 오른 부동산 가격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부동산 대출을 억제한 6·27 대책, 공급 확대를 위한 9·7 대책, 수도권 규제지역을 넓힌 10·15 대책에 이어 올해 1·29 대책과 7월 화성·용인·구리 규제까지 정부는 규제 속도전을 펼쳤다.

하지만 규제가 반복될 때마다 부동산 가격은 더 올랐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올 5월까지 서울 아파트값 누적 상승률은 14.73%였다. 문재인 정부 첫해 상승률 9.41%는 물론이고 역대 1위였던 노무현 정부 첫 1년의 11.68%를 넘어섰다. 여기에 전세 매물까지 씨가 마르면서 청년들이 월세에 내몰리고 있다. 정부는 “정상화 과정”이라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전세가 이렇게 갑자기 없어지면 대체 어디서 살아야 하냐”는 아우성이 빗발친다.

너무 빠르게 오른 코스피 시장에도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초 2,000 선이던 코스피는 9,000 선을 넘어섰다. 불과 1년 남짓한 기간에 몇 배로 오르고 주가는 롤러코스터처럼 움직인다. 주식을 못 산 사람들의 포모(FOMO·소외 공포)도 심각하다. 여기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출시는 주가 변동에 기름을 부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본인도 “급하게 준비했던 것은 맞다”며 속도전을 인정한 상품이다. 출시 속도를 조금 늦췄더라면 이 원장이 말한 “드러누워서라도 반대”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국정과제로 확정된 지 불과 4개월 만에 속전속결로 처리된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도 마찬가지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지 4개월 남짓 지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진짜 사장 나오라’는 하청 노조의 요구가 늘어간다. 대기업 노조는 앞다퉈 ‘영업이익 N% 성과급’을 요구한다. 노동계는 대대적인 여름 총파업인 ‘하투(夏鬪)’를 예고하고 노동시장은 혼란에 빠져 있다.

정부의 메가 프로젝트 발표 이후 한 총리 앞에는 명확한 설명을 필요로 하는 과제가 산적해 있다. 반도체 전력 해법으로 꼽히는 전남 영광 한빛원자력발전소의 설계 수명은 다해가고, 재생에너지 저장 기술은 아직 한계가 뚜렷하다. 어떻게 양질의 전력을 공급할지, 공정에 필수적인 물은 어떻게 끌어올지에 대한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연일 ‘속도전’을 강조한다.

AI 총리에게 바라는 것은 속도전이 아니다. 속도를 내려다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오는 일을 이미 여러 번 경험해 왔다. 정책이 신뢰를 얻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차분하게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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