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에 매달 뺏기던 치매머니, 이제 더 잃을 걱정 안해도 돼”

  • 동아일보

‘치매머니 공공신탁’ 첫 가입자 나와
국민연금공단이 생활비 등 관리
서비스 출범 두달 문의 1200건 넘어

2일 경기 양주시 양주치매안심센터에서 ‘치매머니 공공신탁’ 1호 가입자 전모 씨(84·앞줄 왼쪽)가 계약서를 보고 있다. 양주=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2일 경기 양주시 양주치매안심센터에서 ‘치매머니 공공신탁’ 1호 가입자 전모 씨(84·앞줄 왼쪽)가 계약서를 보고 있다. 양주=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나라에서 내 돈을 지켜준다고 하니 기분이 ‘베리 굿’이에요.”

치매를 앓는 고령층의 재산을 국가가 맡아서 관리해 주는 ‘치매머니 공공신탁’(치매안심 재산관리 서비스)의 첫 계약이 체결됐다. 2일 경기 양주시 양주치매안심센터에서 만난 1호 가입자 전모 씨(84)는 “그동안 혼자 돈을 관리해 곤란했는데 이제 안심이 된다”며 웃었다.

센터를 통해 지난해 전 씨의 공공 후견인이 된 이요셉 씨는 현금을 들고 나간 전 씨가 계속 빈손으로 돌아오는 것을 목격했다. 짜장면을 사먹겠다며 현금 10만 원을 인출했지만 올 때는 한 푼도 없을 때도 있었다.

누군가 전 씨의 돈을 가로챈다는 것을 알게 된 이 씨는 그를 대리해 5월 초 국민연금공단에 치매머니 공공신탁을 신청했다. 이 씨는 “어르신이 더 큰 돈을 잃을까 봐 걱정했는데 공공신탁 덕분에 재산을 지킬 수 있게 됐다”고 했다.

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4월 22일 치매머니 공공신탁 서비스가 시작된 후 이달 3일까지 두 달여간 1271건의 문의가 이어졌다. 이 중 118건의 서비스 신청이 이뤄졌으며, 현재 총 4건이 체결됐다. 심층 상담이 34건 진행되고 있어 조만간 가입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치매 공공신탁은 국민연금공단이 치매 또는 경도인지장애 환자와 계약을 맺고 최대 10억 원의 현금성 자산을 관리해 주는 서비스다. 치매 노인의 안정된 노후를 지키고 경제적 학대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65세 이상 치매 환자의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172조 원으로 추산된다.

이번 신탁 계약으로 전 씨가 가진 현금성 자산 약 2000만 원과 매달 받던 기초연금·기초생활급여 120만 원가량을 공단이 관리하게 됐다. 그 대신 공단은 전 씨에게 매달 80만 원의 생활비를 계좌로 지급한다. 또 월세 33만 원과 공과금 13만 원은 후견인이 공단에 영수증을 제출하면 공단이 대신 납부한다. 수술비 등 목돈이 급히 필요할 땐 후견인이 공단에 특별지출 신청을 하면 즉시 지급받을 수 있다.

전 씨를 포함해 현재 공공신탁에 가입한 4명은 모두 가족과 연고가 끊겨 혼자 살거나 요양시설에 입소한 치매 노인이다. 이런 노인들을 위해 치매안심센터나 요양시설이 재산 관리를 신청할 수 있다.

공공신탁은 투명한 재산 관리를 통해 가족 간 갈등을 막는 효과도 기대된다. 이경수 영남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형제들과 의논해 어머니 이모 씨(86)의 예금 1억1000만 원과 기초연금 등 현금성 자산을 모두 공단에 맡기기로 했다. 이 교수는 “부동산 등 다른 재산은 손대지 않고 현금 자산만 요양과 치료를 위해 공단이 관리한다고 설명했더니 모두 동의했다”며 “가족 간 갈등을 막을 수 있는 좋은 제도”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 어머니의 후견인 선임 절차를 밟고 있다. 치매 환자 본인이 직접 계약하기 어려운 경우 가족 중 한 명이 후견인이 되거나 공공 후견인을 지정해야 한다. 후견인 선임은 법원 심리 등을 거쳐 2∼4개월이 걸린다. 이 교수는 “공공신탁 상담부터 후견인 선임 절차까지 모든 과정을 옆에서 도와주는 코디네이터가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치매머니 사냥’ 피해를 막기 위해선 가입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10억 원 이하 현금성 자산만 신탁이 가능한데, 부동산 등으로 대상을 확대해 취약계층뿐만 아니라 중산층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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