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형

이세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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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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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4-03-20~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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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란과 이스라엘, ‘그림자 전쟁’ 접고 ‘전면전’ 들어갈까[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인사이트>, <중동 라이벌리즘>,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대규모 도발로 지난해 10월 7일(현지 시간) 시작된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 6개월 만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이란 영사관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번 공격으로 이란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 통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혁명수비대(국가 최고지도자의 직속 군사조직)의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 준장 등 최소 13명이 사망했다. 자헤디는 이란 혁명수비대에서 해외작전과 특수작전을 수행하는 정예부대 ‘쿠드스군’에서 시리아와 레바논 지역을 담당하는 지휘관이었다. 그는 2020년 1월 미국의 무인기(드론) 공격으로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사망한 가셈 솔레이마니 당시 쿠드스 사령관 이후 사살된 이란 혁명수비대의 최고위 관계자다.당연히 이란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란 국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알라의 증거란 뜻‧이슬람 시아파 최고 지도자에 대한 호칭) 알리 하메네이는 이스라엘에 대해 “매를 맞게 될 것”이라며 보복 의지를 밝혔다. 이미 이란군에는 최고 수준의 경계령이 내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이 이번 공격에 직접 대응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CNN은 빠르면 다음주(8~14일) 중 이란의 보복 공격이 진행될 것이라고 보도했다.그동안 이란과 이스라엘은 ‘앙숙’이지만 전면전을 치르지는 않았다. 대신 두 나라는 이른바 ‘그림자 전쟁’을 치러왔다. 이란은 하마스와 헤즈볼라 같은 무장정파들을 이용해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을 일으켜 왔다. 이스라엘은 이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가담한 인사들을 암살해 왔다. 가자지구 전쟁이 한창 진행되는 가운데 이스라엘이 ‘이란 영토’나 다름없는 이란 영사관을 공격해 핵심 군 관계자를 살해했다는 건 의미가 다르다. ● 뿌리 깊은 갈등과 장기간 지속된 ‘그림자 전쟁’두 나라는 서로를 주적으로 여긴다.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으로서 ‘이슬람 혁명’을 통해 신정공화정을 수립한 이란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중동 전역에 확대하려고 한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의 시아파 무장정파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게 좋은 예다. 이런 이란에게 이슬람 3대 성지(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중 하나인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있는 ‘유대교의 나라’ 이스라엘은 당연히 눈엣가시다.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무슬림인 팔레스타인인들이 조직적으로 추방됐다는 것도 이란에게는 좌시하기 힘든 부분이다. 수니파가 절대다수임에도 이란이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유 중 하나다.이란이 해외작전을 담당하는 최정예 부대 이름을 쿠드스군으로 지은 것도 ‘반이스라엘 의지’를 담은 조치다. 쿠드스는 아랍어로 예루살렘을 의미한다. 즉, 예루살렘 탈환의 의미를 지닌 것이다.실제로 이스라엘에게 이란은 만만치 않은 존재다. 시리아와 레바논 같은 주변의 적대적인 아랍 국가들은 내전을 겪으며 나라가 엉망이 됐다. 군사력도 형편없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적수가 못된다. 반면 이란은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지만, 사정거리 2000km 수준의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대거 개발·생산해 온 군사 강국이다. 드론 역시 러시아가 대거 구입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할 만큼 수준급이다. 무엇보다, , 시리아 정부군, 이라크의 다양한 시아파 무장단체를 이용해 언제든지 크고 작은 국지전을 진행할 수 있다. 이른바 ‘저항의 축’ 혹은 ‘시아벨트 전략’이다. 이란은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의 시아파 정치인들을 통해 이 나라들의 외교안보 전략도 이스라엘에 부담 가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하지만 가만히 있을 이스라엘이 아니다. 이스라엘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란을 괴롭혀 왔다. 정보기관 ‘모사드’가 중심이 돼 압도적인 정보력과 은밀한 작전을 바탕으로 이란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관련 유력 인사들을 암살해왔다. 가장 최근에는 2020년 11월 유명 핵 과학자인 모센 파흐리자데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원격 조종 기관총으로 살해했다. 2010년 마수드 알리 모하마디 테헤란대 교수(핵물리학), 2011년 테라니 모가담 이란 혁명수비대 장군(미사일 담당), 2012년 무스타파 아흐마디 로샨 박사(우라늄 농축 업무 담당) 등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네타냐후 정권은 ‘확전’, 이란은 ‘현상 유지’에 더 관심과연 두 나라는 조만간 크게 충돌할까. 누가 더 전면전에 적극적으로 나설까.이스라엘, 정확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이 대대적으로 반격해 오고, 이를 계기로 전쟁을 확대하는 것을 지향할 가능성이 높다.현재 네타냐후 총리는 ‘전시 내각’과 ‘극우세력의 지원’을 통해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자지구 전쟁 장기화와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 석방이 지연되면서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이스라엘 국민의 불만은 상당하다. 최근에는 이스라엘 제2의 도시이며 경제중심지인 텔아비브에서 10만 여 명이 총리 퇴진을 외치며 시위가 펼쳐졌다. 수도 예루살렘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지구 전쟁이 터지기 전에도 개인비리 혐의로 조사를 받아왔고, 국민들의 지지를 크게 잃은 상태였다. 총리에서 물러나 면책 특권이 사라지면 감옥에 갈 수도 있다.이런 상황에서 하마스, 헤즈볼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이란과의 충돌 상황이 벌어진다면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자연스럽게 정치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또 자신의 지지 세력인 극우 진영의 단합을 다시 한 번 도모하고, 중도 보수층의 지지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다.반면 이란은 ‘국가 체면상’ 이스라엘에 보복을 하는 건 검토하겠지만 전면전 혹은 대규모 충돌은 피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 가장 확실하게 이스라엘을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이 하마스와 헤즈볼라 같은 저항의 축을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제재로 가뜩이나 어려운 이란 경제를 더욱 파탄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경제난에 지친 국민들의 불만도 더 키울 수 있다. 어쨌든 이스라엘의 핵심 우방국인 미국이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다는 것도 이란에게는 큰 부담이다.● 이란은 어떻게 보복할까그렇다면 이란이 아예 보복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이스라엘 공격으로 인한 사망자(혁명수비대 최고위급 관계자), 장소(시리아 내 이란 영사관), 국가 최고지도자의 발언(분명한 보복 의지 표현) 등을 감안할 때 어떤 형태로든 이란의 보복은 있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런 점에서, 솔레이마니가 사망했을 때 이란이 보여줬던 모습이 하나의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다. 당시 이란은 솔레이마니가 사망한지 5일 뒤인 2020년 1월 8일 이라크에 있는 미군기지 2곳(아르빌 기지,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에 22발의 미사일을 퍼부었다. 작전의 명칭은 ‘순교자 솔레이마니’였고, 미사일이 발사된 시간은 솔레이마니가 드론 공격을 당한 시간과 같은 오전 1시 20분이었다.말 그대로, 이웃 나라에 있는 미군기지를 초토화시키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미군 사망자는 1명도 없었다. 이란은 이라크 측에 공격 계획을 비공식적으로 전했고, 이라크가 미국에 이를 알려 미군들은 기지에서 모두 대피했기 때문이다. 이란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전면 충돌은 피하면서도 최소한의 체면은 세우는 상징적인 보복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하지만 의도와 방식이 어떻든 간에, 이란이 이스라엘과의 충돌할 경우 중동의 긴장은 더 고조될 수밖에 없다. 또 충돌의 파장은 늘 그렇지만 정확한 예측이 힘들다. 더군다나 중동은 가자지구 전쟁으로 이미 6개월째 혼란스런 상황이다. 다시 한번, 전세계가 중동을 바라보며 긴장하고 있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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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반대에도 ‘마이 웨이’ 외치는 이스라엘[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인사이트>, <중동 라이벌리즘>,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이스라엘과 미국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10월 7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으로 촉발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민간인들의 사실상 마지막 남은 피란처인 라파(가자지구 남단으로 이집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음)에서 대규모 지상전을 강행하려는 것에 분명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동에서의 전쟁 장기화는 11월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에서 인명 피해가 커지는 것도 바이든 대통령에게 큰 부담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가자지구에서는 팔레스타인인 3만 명 이상(가자지구 보건부 집계)이 사망했다. 현재 140만여 명의 피란민들이 거주 중인 라파에서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감행하면 인명 피해는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아랍계 유권자들과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이 강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불만을 키울 수 있다. 미국 민주당에서도 최근 이스라엘의 움직임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네타냐후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훌륭한 연설이었다”고 평가했다.반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전혀 흔들림이 없다. 그는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는 라파에서도 대규모 지상전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네타냐후 총리는 22일 이스라엘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면담한 뒤에도 성명을 통해 “라파에 진입하지 않으면 남은 하마스 부대를 제거할 수 없다. 미국의 지지 속에 이를 수행할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필요하다면 스스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이스라엘이 우방국이며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분명한 반대 메시지에도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이스라엘이 미국에 큰 소리 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마스 궤멸 없이는 네타냐후의 정치 생명도 끝현재 전쟁을 가장 원하는 사람은 네타냐후 총리란 평가가 많다. 2022년 12월 말 세 번째 임기(첫 번째 임기 1996년 6월~1999년 7월, 두 번째 임기 2009년 3월~2021년 6월)를 시작한 네타냐후 총리는 역대 최장수 이스라엘 총리다.그는 강경한 안보 전략을 바탕으로 많은 성과를 이뤄냈지만 다양한 부정부패 혐의로 이스라엘 수사 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아왔다. 또 기소도 돼 있는 상태다.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채 총리에서 물러나면 감옥행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인 것.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연구실장(한국이스라엘학회장)은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가자지구 전쟁을 이유로 최대한 오랜 기간 집권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하고,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했다는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며 “미국과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라파까지 지상군을 투입해 대규모 전쟁을 벌이려는 가장 큰 이유다”고 말했다.네타냐후 총리는 세 번째 임기가 시작된 뒤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에서 과반이 동의하면 대법원 확정 판결도 뒤집을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을 마련하는 데도 공을 들여왔다. 이 과정에서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해 중동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와 법치가 보장되는 이스라엘을 후진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받았다.하마스의 공격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피해가 워낙 컸기 때문에 네타냐후 총리에 부정적인 진영에서도 일단은 ‘하마스 궤멸’이란 목표에 동의하는 상황이다. 특히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과 연정을 이룬 초강경 보수 진영에서는 라파 진격을 포함한 광범위한 공격 확대를 지지한다.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연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역시 강경한 대응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네타냐후의 친형, 팔레스타인 테러범과 싸우다 사망네타냐후 총리의 특별한 가족사도 감안해야 한다. 네타냐후 총리의 친형 요나탄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 테러범들과 싸우다 사망했기 때문이다. 1976년 7월 특수부대에서 복무 중이던 요나탄은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이 에어프랑스 항공기를 아프리카 우간다 엔테베에서 납치해 터진 ‘엔테베 작전’에 투입됐다. 그리고 테러범들과 교전 중 사망했다. 당시 유일한 이스라엘군 사망자가 요나탄이었다.이스라엘이 우간다에서 터진 납치 사건에 특수부대를 파견했던 건 총 260명의 항공기 탑승객 중 이스라엘 국적자와 유대인이 106명이나 됐기 때문이다.형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네타냐후 총리는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을 마치지 못했다. 또 형의 죽음으로 테러와 정치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적 성향 역시 더욱 보수적으로 변했다. 많은 이스라엘과 아랍권 사람들은 “네타냐후 총리의 강경한 안보관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반감의 배경에는 형의 죽음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 미국을 움직이는 이스라엘의 힘네타냐후 총리가 미국의 반대에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배경에는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가진 역량도 무시할 수 없다.무엇보다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막강한 유대인 파워가 있다. 금융계를 중심으로 정치, 법조, 행정, 언론, 학계 등에서 유대인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미국 유대인들의 정치적 성향은 다양하다. 그러나 ‘친이스라엘’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는 점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동일하다.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미국 내 보수 성향이 강한 사람들, 특히 복음주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친이스라엘 성향은 매우 강하다.미국 유대인들의 단체인 미국 정치인들 사이에선 선거나 중요한 정책 입안을 앞두고 꼭 찾아가서 ‘눈도장’을 찍어야 하는 단체로 여겨진다. AIPAC이 아니더라도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정치권에 전달하고 다양한 로비를 펼치는 단체와 인사는 많다. 한마디로, 이스라엘 입장에선 ‘라파 지상전 정도는 감행해도 이스라엘을 확실히 지지해 줄 세력이 미국 정치권에 충분히 있다’는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에서 미국과 가장 오랜 기간 신뢰를 쌓았고, 동일한 가치(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도 이스라엘은 특별하다. 특히 미국이 40년 이상 ‘주적’으로 여겨온 이란을 견제하는데 이스라엘은 꼭 필요한 존재다. 사실상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고, 군사 역량도 크게 떨어지는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같은 아랍 왕정 산유국들과 달리 이스라엘은 세계적인 수준의 정보 역량, 방공망, 군사력을 갖췄다. 핵무기도 보유하고 있다.실제로 미국은 중동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할 때 이스라엘의 다양한 도움을 받는다. 2020년 1월 미국이 무인기(드론)을 이용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살해할 때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란 견제는 물론이고 최근 중동에서 커지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도 미국으로서는 확실한 우방국이며 군사 강국인 이스라엘을 소홀히 여길 수 없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전쟁, 얼마나 큰 변화를 불러올까 많은 아랍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미국의 버릇없는 자식(Spoiled Child of US)’이라고 표현한다.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성장했고, 멋대로 팔레스타인(나아가, 다른 중동 나라들)을 공격하고 탄압한다는 뜻이다. 부모가 자식 편을 들 듯, 미국이 결국은 이스라엘 편을 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자지구 전쟁을 둘러싸고 갈등에 빠진 미국과 이스라엘. 결국 그들은 금방 다시 화해할까. 아니면 이번 갈등은 오래갈까.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과 정치 생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에게 이번 가자지구 전쟁은 최종적으로 어떻게 작용할까.가자지구 전쟁은 이스라엘과 하마스뿐 아니라 미국 정치에도 이미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나라들이 더욱 가자지구 전쟁을 예의주시해야 할 이유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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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만명 숨졌는데…라마단에도 계속되는 ‘가자 비극’[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인사이트>, <중동 라이벌리즘>,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가자지구 전쟁’이 발발 6개월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10월7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공격으로 시작된 가자지구 전쟁의 결과는 참담하다.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에선 3만 명, 이스라엘에선 13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시티를 중심으로 한 가자지구 북부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실상 초토화됐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으로 여겨졌던 가자지구 남부 라파 일대(이집트와의 국경 인근)에도 이스라엘의 공습이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가자지구는 말 그대로 ‘가자지옥’이 됐다. 미국, 카타르, 이집트 등이 중재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협상도 성과가 없다. 최근에는 이슬람교에서 가장 성스러운 시기로 여겨지며 동시에 명절이기도 한 ‘라마단’을 앞두고 휴전 협상에 진척이 없다는 점 때문에 실망이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너그러운 라마단’라마단은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가 ‘알라(신)’로부터 ‘쿠란(이슬람 경전)’의 계시를 받은 신성한 달(성월·聖月)을 의미한다. 이 시기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철저히 금식(물 마시기 포함)한다. 하지만 밤에는 ‘이프타르’로 불리는 성대한 만찬을 즐긴다. 가족, 친척, 친구, 이웃, 직장 동료 등과 돌아가며 이프타르를 즐기는 게 무슬림의 정서다.올해 라마단은 한국 기준 10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이어진다. 라마단은 나라마다 시차와 달의 모양을 감안해 시작과 종료 시기가 정해진다. 라마단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화해와 평화다. 가족, 이웃 간의 갈등을 피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전쟁도 라마단 기간 중에는 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라마단 기간 중 가장 많이 쓰이는 인사말 중 하나가 ‘라마단 카림’이다. ‘너그러운 라마단’이란 뜻이다.이런 이유 때문에 이슬람권에서는 더욱 안타까운 눈으로 가자지구를 바라본다.● 평화롭지 않았던 팔레스타인의 라마단 가자지구 전쟁 때문에 이번 라마단은 유독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비극적인 라마단’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하지만 올해 라마단을 앞두고 팔레스타인에게는 또하나의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에 3426채의 정착촌을 추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하마스에 비해 온건 성향인 파타 정파가 관할하고 있는 서안에 이스라엘은 정착촌 확장 정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정착촌 확장 정책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주택 단지를 짓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이스라엘 군인과 경찰도 정착촌 인근에 배치된다.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영토 늘리기 전략이다. 국제사회에서는 불법 행위로 간주한다. 아랍권에서도 가장 심각한 팔레스타인 탄압 정책으로 여기다. 한국 외교부도 9일 이스라엘의 신규 정착촌 건설 계획에 우려를 표했다.하지만 극우 성향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정착촌 확장 정책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는 2022년 12월 취임식에서부터 정착촌 확장 의지를 밝혔다.사실 올해 뿐 아니라 최근 수년간 라마단은 팔레스타인에 유독 가혹했다. 2021년 라마단 중에는 팔레스타인의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이를 막기 위해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 알아크사 모스크 방문을 제한했다. 당연히 시위는 더욱 격화됐다.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과 이스라엘의 보복도 이어졌다.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2018년 라마단도 팔레스타인에는 ‘나크바(아랍어로 대재앙이란 뜻)’로 남아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라마단 시작 이틀 전인 5월14일(이스라엘 건국일)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요국들은 이스라엘(유대교)과 이슬람권에서 모두 성지로 여기는 예루살렘 대신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삼았고, 대사관 이전을 촉구해 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에서 중립적인 자세를 취한다는 취지에서 경제 중심지인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설치했던 것.아랍권에선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 5월 7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추방된 사건을 나크바로 부른다. 지금도 이스라엘과의 충돌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때 나크바라고 표현한다.● 가자지구 전쟁에 영향 받을 라마단 민심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협상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하지만 이번 라마단 중 중동에서는 적잖은 긴장감이 감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은 여전히 홍해 일대에서 미국 등 서방 선박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후티 반군에 대한 미국 등의 보복도 진행되고 있다.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충돌이 심해지고 민간인 피해가 늘어나면 아랍권의 민심은 더욱 격화될 수 있다.라마단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기간이다. 당연히 이프타르 중 진행될 ‘라마단 대화’에서 가자지구 전쟁은 비중 있게 다뤄질 수밖에 없다.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해의 라마단 때도 중동 나라들은 ‘라마단 민심’에 긴장한다. 한국 정치권에서 추석과 설 명절 뒤 민심에 관심을 가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그런 점에서, 아랍권은 물론이고 미국 등 서방 나아가 이스라엘도 라마단 민심을 어느 정도는 신경 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만약 라마단 기간 중 가자지구 공격으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거나, 종교 시설 등이 파괴된다면 팔레스타인은 물론이고 아랍권, 나아가 이슬람권의 분노 게이지는 급상승할 것이다. 당연히 가자지구 전쟁 휴전을 위한 협상이나 중재에도 악영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이번 라마단 기간 중 국제사회가 가자지구를 더욱 걱정스럽게 바라볼 이유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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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자 전쟁’, ‘사우디와 이란’…새해에도 술렁이는 중동[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가자지구 전쟁’, ‘사우디아라비아의 2030 엑스포 유치’, ‘앙숙 사우디와 이란의 외교관계 복원’, ‘스트롱맨들의 대통령 선거 승리(튀르키예, 이집트)’, ‘자국민 학살 독재자(시리아)의 국제사회 복귀’…지난해 중동에서는 ‘세계의 화약고’, ‘국제 이슈의 중심지’란 말에 어울리게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많은 중동 이슈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또 앞으로도 중동에서는 많은 갈등과 변화가 나타날 것입니다. 올해 관심 가질 필요가 있는 중동 이슈들을 정리해봤습니다.1. 가자지구 전쟁은 언제 끝나나? 가자지구는 어떻게 될까?말 그대로 끝이 안 보입니다. ‘하마스 궤멸’이란 목표 아래 이스라엘은 대규모 지상군을 가자지구에 투입했고, 지속적으로 공습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하마스 보건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7일(현지 시간) 하마스의 도발로 시작된 가자지구 전쟁으로 2만 명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습니다. 이중에는 여성과 어린이도 적지 않습니다.하마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에서는 1200여 명이 사망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인 사망자 수가 이스라엘의 20배 가까이 되는 상황입니다.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는 이스라엘의 보복이 과도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이스라엘이 이번 기회에 가자지구를 아예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만들고, 사실상의 인종청소를 자행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옵니다.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하마스 구성원들이 일반 주민과 섞여 있고, 하마스가 의도적으로 무기와 지휘 시설 등을 민간인 거주 지역에 배치하고 있다고 반박합니다. 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가 팔레스타인 영토란 점을 부인하진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권이 어떻게 행사될 지에 대해선 그 누구도 구체적인 이야기를 안 하는 혹은 못하는 상황입니다. 요르단강 서안을 기반으로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이끄는 정파인 ‘파타(하마스에 비해 온건 성향이며 이스라엘과 협력함)’가 가자지구(하마스가 관할했던 지역)도 관리해야 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파타가 그동안 보여 온 무능과 부정부패 등을 감안할 때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부정적 의견이 훨씬 강한 상황입니다.가자지구 전쟁이 언제 끝날지도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가 궤멸될 때까지 전쟁을 멈출 수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끝이 언제일지 또 하마스 궤멸이 가능할지 아직 누구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2.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은 ‘중동 전쟁’으로 확대될까?최근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작은 나라 레바논이 심상치 않습니다. 레바논은 하마스 못지않게 반이스라엘 정서가 강한 무정장파 헤즈볼라가 정치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헤즈볼라는 1982년 설립될 때부터 이란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헤즈볼라는 이란이 중심국인 시아파이며, 당연히 친이란 성향입니다. 하마스와도 다양한 협력을 진행해 왔습니다. 헤즈볼라는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했을 때부터 이스라엘을 비판해 왔고 국경 지대에서 이스라엘과 충돌해 왔습니다. 다만 전면전으로 확대될만한 조짐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가자지구 전쟁 발발 뒤 이스라엘이 하마스 고위관계자를 가자지구 밖에서 제거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당연히 하마스는 물론이고 헤즈볼라와 이란도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언급했습니다.헤즈볼라는 하마스보다 보유한 무기의 양과 수준 모두 월등합니다. 2014~2017년에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최정예부대인 ‘쿠드스군’과 함께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IS) 퇴치 작전에도 대거 투입됐습니다. 말 그대로 실전 경험도 많고, 역량도 상당한 거죠. 2006년에는 이스라엘 군인을 납치했고, 34일간 이스라엘과 전쟁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궤멸’을 외치며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지만 여전히 헤즈볼라는 건재합니다. 또 이스라엘은 군인을 중심으로 160여 명(레바논에선 1000명 이상 사망)이 사망했습니다. 하마스의 지난해 10월 이스라엘 공격전까지는 무장정파와의 충돌로 가장 많은 이스라엘인 사망한 때였습니다.만약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펼치고, 나아가 시리아와 이라크의 친이란 시아파 무장단체도 이스라엘과 현지 미군기지 등을 공격한다면 중동은 정말 심각한 상황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이 경우, 이스라엘의 우방이며 이란에 적대적인 미국도 개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헤즈볼라에게도, 이란에게도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은 심각한 도박입니다. 미국 역시 중동이 시끄러운 건 큰 부담입니다. 무엇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올해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중동 정세가 혼란스러울수록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은 부담입니다. 그러나 부정부패 혐의로 큰 어려움을 겪어 왔고, 이번 하마스의 도발에 제대로 대응 못해 ‘정치적 위기’에 몰려 있는 네타냐후 총리는 정국이 안정될 경우 국민들의 비판과 정권 교체 압박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런 만큼 전시 상황을 최대한 오래 끌고 가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3. 미국 대통령 선거 후 중동은 어떻게 바뀔까?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에서 가장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부분 중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여부입니다. 말 그대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후보가 되고 궁극적으로 대통령에 다시 당선될 수 있느냐는 것이죠.현재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높고, 바이든 대통령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10개월이나 남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수 있다는 전망이 꽤 힘을 얻고 있습니다.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중동에서도 적잖은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북한 핵 문제, 나아가 한반도 관련 이슈에서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전 미국 대통령들과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인 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시절 △이란과의 ‘핵 합의’ 파기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이스라엘 수도인 예루살렘이 이슬람의 성지이기도한 점을 감안해 기존에는 경제중심지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설치했었음)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의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살(2020년 1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드론을 이용했음)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간의 외교관계 정상화(아브라함 협정) 등을 추진했습니다. 이 중 ‘아브라함 협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동 정세에 악영향을 준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또 기존 미국 대통령들은 추진하지 않았던 과격한 정책을 추진한다는 평가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한다면 미국의 중동 정책이 크게 달라질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옵니다.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어떤 중동 정책이 추진될까요? 바이든 대통령 집권 초에는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시절 탈퇴했던 이란 핵 합의를 복원하려 할 것이란 기대가 있었습니다. 또 트럼프 행정부 시절보다 안정적인 중동 정책이 추진될 것이란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 정책은 딱히 성과가 없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4. 사우디, 어디까지 얼마나 달라질까?지난해 중동에서 가장 관심을 많이 받은 나라는 어디였을까요? 가자지구 전쟁만 아니었으면 단연 사우디였을 갑니다. 최근 중동 뉴스의 중심지는 확실히 사우디란 생각이 듭니다.‘아랍의 맹주’, ‘이슬람의 성지 수호국(3대 성지인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중 메카와 메디나가 사우디에 있음)’인 사우디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의 지휘아래 다양한 개혁‧개방 조치, 국가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서울의 면적의 44배에 이르는 최첨단 도시를 만드는 ‘네옴 프로젝트’는 그중 핵심입니다. 삼성, 현대, LG 등 한국 주요 기업들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 글로벌 기업들도 네옴 프로젝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옴 프로젝트와 관련해 변화 내지 새로운 발표가 있을 때마다 관심이 집중 됩니다. ‘2034 월드컵’도 사실상 사우디가 유치 확정 상태입니다. 당초 강력한 경쟁자였던 호주가 경쟁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2034 월드컵 유치전에는 현재 사우디만 뛰고 있는 상황입니다.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 2030년 엑스포, 2034년에는 아시안게임(하계)와 월드컵… 사우디는 말 그대로 이제 국제 이벤트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사우디는 글로벌 기업 유치 전략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사우디 정부는 지난해 12월 초 자국으로 중동지역본부를 이전하는 기업에 대해 법인 소득세를 30년 간 면제해 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또 중동지역본부나 거점 연구개발(R&D)센터를 사우디에 만드는 기업에 대해선 정부나 공공기관의 프로젝트를 수주할 때 더 많은 혜택을 줄 예정입니다.무함마드 왕세자는 기회가 될 때마다 사우디의 석유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또 사우디를 다양한 국제 이벤트를 즐길 수 있는 ‘열린 나라’로 만들겠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이전의 사우디와 말 그대로 완전히 다른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이죠. 무함마드 왕세자의 ‘새로운 사우디 만들기’ 작업은 올해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우디는 계속 중동 이슈의 중심지로 많은 주목을 받을 것입니다.5. 총선 앞둔 이란에선 어떤 움직임이 나타날까? 가자지구 전쟁,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충돌, 러시아에 대한 무기 공급 등이 좋은 예입니다.이란은 중동에서 사우디, 튀르키예와 함께 지역 패권을 놓고 경쟁 중인 나라입니다. 특히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같이 정세가 불안하고 시아파 비중이 큰 나라에서 시아파 무장정파, 종교지도자, 언론 등을 조직적으로 지원하며 영향력을 키워왔습니다. 이른바 ‘시아벨트 전략’이죠.이란은 중동에서 드물게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를 치루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3월1일 총선이 치러집니다. 물론 이란의 선거는 시아파 최고지도자가 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을 모니터링하고, 정치적 발언 등도 제한되기 때문에 글로벌 스탠더드 기준으로 볼 때 ‘자유로운 선거’라고 하기는 어려습니다. 지난해 11월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야당 후보 중 28% 이상이 출마 자격을 잃었고, 많은 유권자가 투표를 거부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이번 총선이 안정적으로 치러지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이란 국민들의 정서와 현지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유럽, 일본에서는 이란 선거에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카이로특파원으로 활동하던 2020년에도 이란 총선이 있었는데, 당시 일본 신문사들은 테헤란 특파원 외에도 기자를 현지에 파견하며 적극적으로 취재했었습니다.이란에서는 2022년 9월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20대 여성 마사 아미니가 ‘도덕경찰’에 체포된 뒤 의문사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수개월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이란 안팎에선 히잡 착용 의무화로 인한 여성 억압뿐 아니라 경제난과 폐쇄적인 정치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지속적인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또 계기가 있을 때마다 시위가 계속 발생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습니다.이번 이란 총선을 앞두고는 어떤 움직임이 이란에서 나타날지 궁금해집니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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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년 집권, 군부 출신 대통령…그 나라에 드리운 먹구름[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압둘팟타흐 시시(69). 이집트 대통령이다. 10~12일(현지 시간) 치러진 이집트 대통령 선거에서 89.6%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2014년부터 집권 중이며, 이번 선거로 3선에 성공했다. 2030년까지 집권 가능하다. 시시 대통령은 이집트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군인 출신이다. 그는 2010년 12월 이웃나라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으로 이집트에서 30년(1981년 10월~2011년 2월) 간 철권통치를 펼쳤던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1928년 5월~2020년 2월)이 2011년 2월 권좌에서 쫓겨난 뒤 권력을 장악했다.정확히는, 당시 이집트에도 잠시나마 ‘카이로의 봄’이 있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난 뒤 민선 지도자인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1951년 8월~2019년 6월)이 2012년 6월 대선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종했던 무르시 전 대통령은 보수 이슬람 사상이 담긴 정책을 강조하며 이집트의 뿌리 깊은 세속주의에 반대되는 행보를 보였다. 당연히 국민들의 불만은 커졌다. 부정부패와 무능한 국정운영도 국민들의 불만을 키웠다.결국 무르시 전 대통령은 1년 1개월 뒤인 2013년 7월 시시 대통령이 중심이 된 군부에 의해 축출됐다. 사실상 시시 대통령이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절대 권력을 이어받은 인물인 것. 시시 대통령을 ‘21세기의 파라오’, ‘이집트의 스트롱맨’으로 부르는 이유다.● 더 이상 ‘아랍의 맹주’가 아닌 이집트국내‧외 언론에서 이번 이집트 대선은 별다른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당선된 5월 튀르키예 대선과 지난해 12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년반 만에 다시 총리로 돌아왔을 때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중동,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이집트가 차지하는 비중이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뜻이다.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이 이집트를 이끌던 1950~1960년대 이집트는 아랍의 중심이었다. ‘아랍판 유엔’으로도 불리는 아랍연맹(AL·1945년 설립) 본부도 카이로에 자리 잡고 있다.하지만 이제 아랍의 중심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왕정 산유국들의 정치경제 협의체인 걸프협력회의(GCC‧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 국가들이다. 중동의 패권 경쟁 국가에서도 사우디, 이란, 튀르키예를 주로 언급한다. 이집트를 패권 국가로 분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중병’에 걸려 있는 이집트 경제3선에 성공했지만 시시 대통령과 이집트를 둘러싼 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다. 무엇보다 이집트의 경제 사정은 최악을 향해 가고 있다.만성적인 경제난과 이로 인한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심각하다. 이집트파운드화의 가치는 계속 떨어지고 있고, 물가 상승률도 30~40%에 이른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거나, 외국인으로부터 임금을 받는 이집트인들은 “월급을 달러로 달라”고 강조한다.10월과 지난달에는 세계 3대 신용평가 기관인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 모두 이집트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현재 이집트의 신용등급은 ‘투자 부적격’ 상태. 세계은행에 따르면 시시 대통령이 부임한 직후인 2015년 27.8%였던 빈곤율은 2020년 31.9%로 올랐다. 총 30억 달러(약 3조9000억 원) 규모다. 하지만 IMF가 요구하는 긴축 재정과 변동환율제 도입 같은 경제구조 개혁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IMF는 이집트를 지원하는 데 소극적이다.다양한 기간 사업을 군인 출신들이 독식하는 ‘군부 중심 경제구조’도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안 보인다. 이집트에선 오래전부터 건설, 물류, 호텔 등 다양한 부문에서 군인 출신들이 요직을 차지한 기업들이 영향력을 발휘한다. 많은 경우 실력이 아닌 특혜 속에서 성장해 왔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펜데믹도 이집트 경제에 악영향을 줬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밀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이집트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피라미드로 상징되는 고대 유적지와 홍해의 빼어난 자연경관을 앞세워 성장해온 관광 산업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카이로 동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지역에 개발 중인 ‘신행정수도(NAC‧New Administrative Capital) 건설 프로젝트’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2015년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서울보다 큰 도시를 사막 한가운데 만들어 정부부처, 공공기관, 이집트 주재 외교공관 등을 모두 옮기는 게 목표다. 현지에서는 시시 대통령의 핵심 국책 사업으로 여겨진다. 일부는 ‘수에즈 운하’ 개발과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집트 정부의 재정 부족으로 신행정수도 건설 프로젝트는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당초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것을 희망했다. ● 국경 맞대고 있는 이웃국가들은 전쟁 중안보 상황도 안 좋다.가자지구 전쟁, 리비아 내전, 수단 내전 등으로 불안 요소가 산적해 있다. 이집트는 가자지구(북동쪽), 리비아(서쪽), 수단(남쪽)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특히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공격으로 ‘생지옥’이 된 가자지구는 이집트에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약고’나 다름없다.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대규모 공습이 이어지고 있고, 이집트 국경과 인접한 가자지구 남쪽에는 약 200만 명(이중 피란민은 약 100만 명으로 추정)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머물고 있다.그동안 시시 대통령은 ‘가자지구 난민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가자지구에선 이미 2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또 식량, 물, 연료 부족도 심각하다. 휴전 움직임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가뜩이나 경제 사정이 안 좋은 이집트로선 가자지구 난민 수용은 최대한 피하려 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국제사회의 압박이 커지고, 동시에 난민 수용에 따른 경제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 현재 방침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철권통치와 세속주의 강조하며 영향력 키워이런 위기 상황에서 시시 대통령이 버틸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일단은 강압적인 리더십이다. 시시 대통령의 철권통치와 군부의 견제로 이집트에서 야당 정치인의 활동은 매우 제한돼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은 이번 대선에서 야당 정치인들의 선거운동이 원활하지 않았고, 국민들도 자유롭게 야당을 지지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이집트에서는 시위도 사실상 전면 금지하고 있다. 한때 아랍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꼽혔던 카이로 도심의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는 평소에도 경찰(사복 경찰 포함)이 많이 배치돼 있다. 2019년 9월20~21일 중 전국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동시에 발생했을 땐 약 3주간 타흐리르 광장을 전면 봉쇄했다. 또 이집트 정부에 비판적인 BBC와 미들이스트아이(MEE) 같은 언론의 인터넷 사이트도 차단했다. 인터넷과 통신 기능도 떨어뜨려 소셜미디어 이용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집트의 뿌리 깊은 세속주의를 흔들지 않고 있다는 점은 시시 대통령의 장점으로 꼽힌다. 무르시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여성들의 옷차림, 교육, 취업 등을 제한하려고 했었다. 반면 시시 대통령은 여성들의 사회활동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 이집트 전체 인구(약 1억1000만 명)의 약 10~15%를 차지하는 콥트 기독교(중동에 기반을 둔 고대 기독교 종파) 신자들에 대해서도 포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신행정수도에는 대규모 콥트 기독교 성당도 자리 잡고 있고, 시시 대통령은 이곳을 방문했다. 이슬람이 아닌 종교에 부정적이었던 무르시 전 대통령과는 역시 다른 모습이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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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 살만도 꽂혔다, 사우디판 디즈니월드 ‘키디야’[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키디야(Qiddiya)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찾고 싶은 장소가 될 것이다.”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현재 사우디가 수도 리야드 인근에 개발 중인 복합 엔터테인먼트 도시 키디야에 대한 기대를 한껏 드러냈다. 한국 부산, 이탈리아 로마와 경쟁했던 ‘2030 엑스포’를 유치한지 9일 만이었다.7일(현지 시간) 현지 영문매체인 아랍뉴스와 국영 SPA 통신에 따르면 무함마드 왕세자는 “키디야는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문화를 즐기기 위해 가장 먼저 찾고 싶은 도시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며 “(키디야가) 사우디의 경제 성장, 국제 평가, 전략적 지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사막 위 서울 절반 크기 엔터테인먼트 도시키디야는 리야드 남서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사막지대에 개발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도시다. 규모는 334km²로 서울시(약 605km²)의 절반을 넘는다.미국 테마파크인 ‘식스플래그’와 대형 워터파크를 중심으로 골프장, 자동차 경주장, 올림픽박물관, 호텔, 공연 시설 등이 키디야에 들어설 예정이다. 2018년에 개발 계획이 발표됐고, 건설은 2019년부터 시작됐다.무함마드 왕세자가 직접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사우디의 중·장기 경제사회 개발 계획인 ‘비전 2030’에도 키디야 개발은 주요 사업으로 포함돼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키디야 개발을 담당하는 ‘키디야 투자회사(Qiddiya Investment Company·QIC)’의 이사회 의장이기도 하다.한국에서는 ‘네옴 프로젝트’에 가려져 키디야는 유명세를 덜 탔다. 사업 규모로만 보면 사실 상대가 안 된다. 네옴은 사우디 북서부와 홍해 일대에 서울의 44배 크기의 대형 국제도시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9년 9월까지만 해도 이슬람 성지순례를 제외한 관광은 사실상 허용하지 않던 사우디에 생기는 복합 엔터테인먼트 도시란 점에서 키디야는 꾸준한 관심을 받아왔다.한국 기업 중에는 삼성이 가장 적극적이다. 삼성물산은 키디야에 들어설 일부 시설에 대한 건설을 담당하고, 삼성전자, 삼성SDS, 삼성에스원 등도 각각 전자제품, 정보기술(IT) 플랫폼, 보안시스템 등을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기도(Pray)가 아닌 즐기는(Play) 도시키디야는 말 그대로 ‘즐기는 도시’를 지향한다. 키디야 인터넷 홈페이지의 메인 화면에 나오는 브랜드 슬로건은 ‘Play Life(인생을 즐겨라)’다. 이슬람 성지 메카와 메디나로 유명하고, 엄격한 율법과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한 사우디와 잘 안 어울린다.이런 점을 의식해서일까. 올해 2월 ‘제2회 사우디 미디어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리야드를 찾았을 때 만난 사우디 관광청과 미디어부 관계자들도 키디야가 즐기는 장소임을 강조했다. 당시 한 관계자는 영어로 키디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기도(Pray)하는 곳이 아니라 즐기는(Play) 곳이다”라고 웃으며 강조했다.QIC에 따르면 식스플래그와 워터파크 공사는 현재 각각 59%와 61% 수준으로 진행됐다. 장기적으로 사우디는 키디야에 총 6만여 개의 건물을 세우고, 60만 명이 거주하게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문화콘텐츠 인프라 키워 젊은층 민심 잡기사우디가 키디야 개발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부족한 자국 내 문화콘텐츠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사우디에는 그동안 대중문화와 콘텐츠 산업 관련 인프라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인구 3220만 명(자국민 1880만 명‧2022년 사우디 통계청의 인구조사 기준)에 이르는 세계적인 자원 부국에 디즈니랜드와 에버랜드 같은 테마파크가 전혀 없었던 것. 사우디 최초의 테마파크로 리야드에 자리 잡고 있는 ‘블러바드월드’도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다. 쉽게 말해, 이전까지는 공연과 테마파크 같은 ‘기본적인 대중문화 활동’도 사우디 안에선 즐길 수 없었다. 이를 즐기려면 다른 나라로 가야 했다. 사우디와 가깝고 중동에서 가장 개방적인 나라 중 하나로 꼽히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사우디 관광객들이 많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특히 사우디 젊은 세대에게 ‘부족한 문화콘텐츠 인프라’는 아쉬운 점, 나아가 정부에 대한 불만이기도 했다. 이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실권을 장악하면서 사우디가 대중문화 개방 속도를 높이고, 콘텐츠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올해 38세인 무함마드 왕세자는 어린 시절부터 게임과 대중문화를 즐겼고, 개인적으로도 콘텐츠 산업에 관심이 많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주요 의사 결정에 관여하는 사우디 국부펀드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는 한국 콘텐츠 기업에도 파격적으로 투자했다. 올해 초 PIF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약 6000억 원을 투자했다. 또 지난해 3월에는 게임 기업인 넥슨과 엔씨소프트에 각각 약 2조3000억 원, 약 1조1000억 원을 투자했다.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무함마드 왕세자는 개혁·개방을 강조하며 젊은 세대의 지지를 많이 받아왔고, 안정적으로 나라를 이끌려면 앞으로도 이들의 지지가 중요하다”며 “젊은 세대의 민심을 중요하게 반영한다는 차원에서도 키디야 프로젝트를 비롯한 콘텐츠 산업 육성에 계속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비석유 산업 육성과 해외 투자 유치에도 필요무함마드 왕세자가 강조하는 사우디의 비석유 산업 육성과도 키디야 개발은 관련 있다.비석유 산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관광 산업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사우디는 키디야 개발을 통해 32만5000여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게 목표다. 또 키디야에 연간 4800만여 명의 방문객을 유치하려고 한다. 석유가 아닌 산업에서 대규모 일자리와 성장동력을 만들어 보겠다는 목표가 담겨 있는 것이다.해외 기업과 투자 유치에도 문화콘텐츠 산업은 중요하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사회‧문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우수한 인력들이 장기간 거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구축하는 데 있어 한 나라의 콘텐츠 산업 역량은 계속 중요해지고 있다”며 “사우디 같이 오랜 기간 개방적이지 않았던 나라는 더욱 적극적으로 소프트파워 관련 인프라와 산업을 육성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술 없는 관광대국’ 가능할까하지만 키디야 개발, 나아가 사우디 정부가 공 들이고 있는 ‘관광대국으로의 도약’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국내 수요는 어느 정도 만족시킬 수 있겠지만, 과연 사우디가 희망하는 것처럼 대규모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까지 가능하겠냐는 것.사우디는 이슬람 종주국답게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술과 돼지고기를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 사우디 영공에서는 외국 항공사의 비행기도 원칙적으로 주류 서비스를 해서는 안 될 정도다.카타르, UAE, 바레인 같은 주변 나라들이 외국인에게는 술과 돼지고기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엄격함이다. 이집트, 모로코, 튀르키예 같이 고대 유적지와 리조트 같은 관광 인프라를 이미 갖추고 있고 술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나라들과는 처음부터 비교가 어렵다. 사우디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한 기업인은 “정부가 육성에 적극적이고 파격적인 개발 계획으로 사우디의 관광 산업이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지만 지금처럼 술도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얼마나 지속가능한 성장이 이뤄질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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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마스와 전쟁 중에 ‘네타냐후 총리 퇴진’ 외친 이스라엘 시민들

    “이런 일은 처음 겪어본다. 하마스의 로켓이 우리 집(예루살렘 인근)에서 500m가량 떨어진 곳에도 날아왔다. 하마스의 도발에 강력히 대응해야겠지만, 안보보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사법부 권한 축소 같은 사안에 집중한 정부 책임도 크다.”(이스라엘 전직 공무원)10월 7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대대적으로 공격한 직후 현지 지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들은 얘기다. 사태 발발 두 달을 앞둔 현재 가자지구에는 대규모 이스라엘 지상군이 투입돼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장비와 인력 면에서 이스라엘군의 압도적 우위가 이어지고 있지만 전쟁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는 아직 모른다. 말 그대로 아직은 갈 길이 먼 상황.이처럼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스라엘 여론은 심상치 않다. 민간인을 중심으로 1200여 명이 사망할 만큼 무자비하게 선제공격을 한 하마스를 소탕하기 위한 전쟁은 당연히 필요하다는 여론이 강하다. 그러면서도 현재 이스라엘을 이끄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비판 여론도 끓어오르고 있다.전후 선거 실시 여론 고조로이터 등에 따르면 11월 4일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과 경제 중심지 텔아비브에서는 이스라엘 국민 수천 명이 ‘네타냐후 총리 퇴진’을 외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네타냐후 정부의 안보 무능, 인질 석방 지연, 총리 개인 비리 문제 등을 비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현지 매체인 채널13 방송이 11월 3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76%가 ‘네타냐후 총리는 사임해야 한다’고 답했다. ‘전쟁 뒤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는 응답자도 64%나 됐다. 반면 ‘전쟁 뒤에도 현 정권이 집권해야 한다’는 응답은 18%에 불과했다. 네타냐후 총리와 현 내각에 대한 이스라엘 국민의 불만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주는 결과다.무엇보다 네타냐후 정부는 ‘안보 실패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하마스의 공격은 현지에서 ‘이스라엘판 9·11테러’로 표현될 정도로 큰 충격을 안겼다. 이스라엘 역사상 무장정파와 무력 충돌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숨진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특히 사태 초기 세계적인 역량을 자랑하던 이스라엘의 방공망과 정보망이 처참하게 무너졌다. 하마스 구성원이 대거 이스라엘 영토로 들어와 대규모 시가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과거 이스라엘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웠다. 외교 소식통은 “지금 당장은 이스라엘 내부적으로 ‘하마스 궤멸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앞서겠지만,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안보 시스템이 완전히 뚫린 데 대한 ‘정부 책임론’이 강하게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스라엘은 2006년 7~8월 레바논 남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친이란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하마스보다 전투력이 훨씬 우수하다는 평가가 많음)와 34일간 전쟁을 벌였다. 이때 이스라엘에선 군인을 중심으로 160명만 사망했다(레바논에선 민간인을 중심으로 1200~1300여 명 사망).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 내에서는 “일개 무장정파와 무력 충돌로 너무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비판 여론이 적잖았다. 이번 하마스의 공격에 이스라엘 국민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네타냐후 ‘정치생명 연장’을 중심에 둔 정책‘사법부 권한 축소’ ‘극우 인사 중용’ 정책도 네타냐후 총리와 현 정부에 대한 비판 강도를 키우는 중요 원인으로 꼽힌다. 네타냐후 총리는 “크네세트(이스라엘의 단원제 의회)에서 과반이 동의하면 대법원 확정 판결도 뒤집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사법부 조정안을 적극 추진해왔다. 네타냐후 총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는 과거 사업가들로부터 고급 양복과 가족 해외여행 비용 등을 받은 혐의로 이스라엘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또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수사와 재판 결과에 따라 최악의 경우 구속될 수도 있다.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자신을 지지하는 강경 보수 내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대법원의 확정 판결도 뒤집을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강경 보수 내각 구성 과정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과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을 임명했다. 이들은 네타냐후 총리를 온건 보수파로 보이게 할 정도로 강경한 성향을 지녔다.벤그비르 장관은 1월 3일 이슬람 성지 알아크사 모스크(사원)가 위치한 동예루살렘의 ‘성전산(Temple Mountain)’을 방문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그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머리에 키파(유대인 남성이 쓰는 납작한 모자)까지 쓴 채 돌아다녔다.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들이 그동안 아랍권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 지역을 거의 방문하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당연히 벤그리브 장관은 아랍권에서 ‘국민 밉상’ ‘점령군 이미지’로 각인됐다.스모트리히 장관은 “팔레스타인 마을을 없애야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 같은 건 아예 없다”는 식의 망언을 자주 해왔다. 이스라엘 영토 넓히기이면서 동시에 팔레스타인 영토 줄이기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할 지역 내 ‘유대인 정착촌 확장 정책’의 주무 장관이기도 하다. 한 아랍 국가 외교관은 “네타냐후 정부에서 주요 직책을 차지한 극우 인사와 이들의 언행도 하마스를 자극한 부분이 분명 있다”고 말했다.네타냐후 정부는 ‘하마스 궤멸’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하마스가 사라진 가자지구, 즉 ‘포스트 하마스 가자지구’에 대한 계획은 뚜렷하지 않다. 또 가자지구 전쟁을 어느 선에서 종료할지에 대한 계획도 불분명하다.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연구실장(한국이스라엘학회장)은 “가자지구에 대한 명확한 계획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하마스와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이스라엘이 상당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며 “이 경우 가뜩이나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네타냐후 총리와 현 정부는 더 큰 위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세형 채널A 정책기획팀장·전 동아일보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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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까지 간다’…한국만큼 엑스포에 진심인 사우디[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결전이 임박했다.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가 28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결정된다. 2030 엑스포 개최지 경쟁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아온 나라는 단연 사우디다. 오랜 기간 ‘보수 이슬람 종주국’으로 통했던 무겁고 딱딱한 이미지의 나라가 엑스포 같은 개방적인 국제 행사 유치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롭게 여겨지는 것. 지금까지 ‘사우디=국제적인 행사’는 성립되기 어려운 공식이었다.사우디가 2030 엑스포 유치에 진심이란 건 여러 부분에서 이미 드러났다. 6월 파리 인근 이시레물리노에서 열린 2030 엑스포 유치를 위한 경쟁 프레젠테이션(PT) 때는 왕실 인사인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외교부 장관(왕자)과 리마 빈트 반다르 알 사우드 주미 사우디 대사(공주)를 중심으로 칼리드 알 팔레 투자부 장관, 이브라힘 알 술탄 리야드 시장 등 ‘실세 인사’들이 대거 발표자로 나섰다. 당시 한 중동 전문가는 “사우디 왕실에서 가장 글로벌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2030 엑스포 유치에 앞장선 모양새”라고 평가했다.최근에도 사우디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 대규모 개발 차관과 원조 기금을 제시하며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물론 한국에선 부산이 개최지로 선정되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강하다. 한국 정부와 재계도 상대적으로 늦게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2030 엑스포 유치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하지만 ‘석유의 나라’, ‘이슬람 성지’란 폐쇄적인 이미지 덕분에(?) 2030 엑스포 유치 경쟁에서 사우디를 향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계속되고 있다.● 사우디 왕세자의 ‘관심 프로젝트’사우디가 2030 엑스포 유치에 공을 들여온 배경에는 차기 사우디 국왕이며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으로 통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가 있다.무함마드 왕세자는 중장기 경제·사회 발전 계획인 ‘비전 2030’을 통해 현재 석유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는 사우디 경제의 체질 개선을 2030년까지 이루겠다고 강조해 왔다.‘사막의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포럼 설립, 네옴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한 서부 지역의 대대적인 개발, 일반 관광객을 위한 관광 비자 도입, 문화콘텐츠 산업 육성 등이 무함마드 왕세자가 ‘사우디 실세’가 된 뒤 시도한 정책들이다. 하나 같이 사우디의 비석유 산업 육성과 관련 있는 조치들이기도하다. 2030 엑스포 유치도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2030 엑스포는 시기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추진해 온 개혁·개방의 결과물을 대내·외로 과시하는, 즉 ‘비전 2030의 성공’을 보여주는 이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30 엑스포가 사우디에서 열리게 되면 무함마드 왕세자가 국왕으로 이 행사에 등장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의미 있는 대목. 무함마드 왕세자의 아버지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은 현재 88세다. ● 기업·투자 유치에 필요한 매력 자산2030 엑스포 개최만으로 사우디가 대단한 경제 효과를 누리기는 어렵다.하지만 해외 기업과 투자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는 사우디로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나라’, ‘기업하기 좋은 나라’란 인식을 제대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엑스포 개최는 이런 국가 브랜드를 만드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과거처럼 ‘석유를 판매한 돈으로 필요할 때 외국 기업에서 기술, 시설, 인력을 사오겠다(혹은 프로젝트를 발주하겠다)’는 전략을 바꾸고 있는 것. 여기에는 기업과 투자 유치를 통해 해외 우수 인력의 자국 내 활동을 활성화시키고, 자국민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그러나 술은 물론이고 대중문화와 국제적인 이벤트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답답한 분위기’의 사우디에서 장기간 기업 활동을 한다는 건 아직 잘 와 닿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수한 해외 인력을 유치하는 데 지금의 사우디 모습은 매력적이지 않다.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은 “사우디가 경제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기업과 투자 유치고 이를 위해서는 국가의 매력 자산을 늘려야 한다”며 “엑스포를 포함한 국제적인 행사 개최는 국가 브랜드와 문화 수준을 높이고, 나아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데 필요한 소프트웨어 역량을 키우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실제로 사우디는 2030 엑스포 외에도 국제적인 이벤트를 대거 유치했다.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네옴시티)과 2034년 아시안게임(리야드)을 이미 유치했다. 2034년에는 사우디에서 월드컵도 열릴 예정이다. ● 2019년 시동 건 관광산업 육성에 호재네옴시티와 서부 개발 프로젝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관광 산업 육성에도 2030 엑스포 유치는 의미 있는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전세계 무슬림을 대상으로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 방문을 허용하는 ‘성지순례용 관광 비자’만 있었다.사우디의 관광 개방은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며 힘을 잃었다. 그러나 사우디는 과거 무슬림만 방문 가능했던 메디나를 비무슬림도 갈 수 있게 제도를 완화하는 등 지속적으로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메카는 여전히 무슬림만 방문 가능). 또 고대 유적지가 있는 알울라 지역과 휴양지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홍해 일대에 대한 개발 프로젝트도 계속 진행해왔다.사우디가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의 대규모 콘서트를 각각 2019년과 올해 허용했고, 지난해 11월 리야드에 서양식 테마파크인 ‘블러바드 월드’를 개발한 배경에도 관광산업 육성 의지가 담겨 있다.사우디 관광청 관계자는 “사우디 관광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크고 작은 프로젝트가 계속 추진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2030 엑스포와 2034년 월드컵은 사우디 관광의 매력을 대대적으로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권문제 부각 등 우려와 과제도 많아일각에선 사우디가 2030 엑스포 유치에 성공할 경우 국제 인권단체 등이 지속적으로 문제 삼아온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 않는 낮은 인권의식, 외국인 노동자 차별, 정책 불안정성이 더욱 부각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중동 국가 최초로 2022년에 월드컵을 유치했던 카타르, 다양한 메가 개발 프로젝트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온 아랍에미리트(UAE)도 그동안 인권, 외국인 차별 등의 문제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앞으로 2030 엑스포를 포함해 사우디가 다양한 국제 행사를 개최한다고 해도 이전처럼 ‘외국 기술과 인력’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못 벗어난다면 소프트웨어 역량 키우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단순 개최에만 초점을 맞추고 실질적인 역량 쌓기 작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국 ‘보여주기 이벤트’에 그칠 것이란 지적이다.이 소장은 “사우디가 개혁과 개방을 통해 경제 체질을 바꾸고자 한다면 자국 인력들의 수준도 높여야 한다”며 “국제 행사 개최의 경우 기획과 운영 등의 과정에서 인력과 제도를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 있도록 체계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turtle@donga.com}

    • 202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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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구 안 보이는 ‘가자 전쟁’, 왜 카타르를 주목하나[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가자지구 전쟁’ 발발(10월7일) 한 달을 앞둔 11월4일(현지 시간) 오후 5시. 카타르 수도 도하의 복합 문화·공연 단지인 ‘카타라’ 내 극장에선 팔레스타인 영화제가 한창이었다. 이날 행사에선 이스라엘군을 공격하다 부상당한 팔레스타인 청소년을 도와 준 팔레스타인 여성 교사가 8년(약 3000일) 간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된 이야기를 다룬 영화 ‘3000일의 밤’이 상영됐다. 행사를 주관한 카타르의 영화진흥기관 ‘도하 필름 인스티튜트’ 관계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며 제작진과 배우들 모두 가자지구에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고 있는 것에 가슴 아파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11시 도하 도심의 전통시장인 수크 와키프의 베이커리 카페에는 작은 팔레스타인 깃발이 걸려 있었다. 카페 종업원은 어깨에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상징하는 흰색 바탕에 검은색 체크무늬가 들어간 ‘케피예’(keffiyeh · 중동 남성들의 전통 두건)를 두르고 있었다. 검은 체크무늬가 들어간 흰색 케피예는 전통적으로 팔레스타인 남성이 많이 두른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분쟁이 시작된 뒤부터는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나타내는 아이템으로 여겨진다.가게 점원은 “나는 모로코 출신이지만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요즘 워낙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에 그들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팔레스타인 스타일 케피예를 둘렀다”며 “팔레스타인 지역의 전통 디저트로 유명한 쿠나파(Kunafah·치즈가 들어 있는 단맛의 페스추리 형태의 구운 빵)도 평소보다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도하 시내 건물과 전광판에서도 팔레스타인 깃발과 지지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인질 석방과 휴전 협상의 무대같은 아랍 국가로서 심정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카타르에서 가자지구 전쟁의 긴박함과 불안감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카타르의 화려한 마천루와 깨끗한 거리에서 가자 지구 전쟁의 참상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하지만 카타르에선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된 움직임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전쟁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하마스, 각각 이들의 후원 세력으로 꼽히는 미국과 이란과는 또다른 이유로 국제사회는 카타르를 주목하고 있다. 바로 중재 외교다.카타르에선 이번 가자지구 전쟁의 인질 석방과 휴전 관련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9일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 사니 카타르 총리 겸 외교부 장관의 중재 아래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다비드 바르니아 이스라엘 모사드(정보기관) 국장이 만나 추가 인질 석방과 휴전 가능성 등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달 12일에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이 카타르를 방문해 타밈 빈 하마드 알 사니 국왕을 만나 이번 사태 해결을 논의했다. 작지만 성과도 있었다. 현재 하마스는 242명의 인질을 억류 중인데, 지난달 20일과 23일 각각 2명(총 4명)의 인질을 풀어줬다. 이들 모두 카타르의 중재를 통해 풀려났다.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관련 성명에 ‘카타르에 대한 감사’ 메시지도 담았다. ● 탈레반, 이란 관련 중재 경험도 풍부가자지구에서 멀리 떨여져 있는 카타르는 어떻게 이번 사태의 중재자가 된 것일까. 일반인들 사이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카타르는 그동안 중동의 외교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일단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해 카타르는 이해 당사자인 하마스, 이스라엘, 미국, 이란과 모두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무엇보다 도하에는 하마스의 정치사무소가 자리 잡고 있다. 2012년 문을 연 하마스 정치사무소는 하마스와의 대외창구 역할을 해 왔다. 쉽게 말해, 하마스와 가장 공식적이면서도 체계적인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 곳이 카타르인 것. 하마스 최고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예가 카타르에 자주 머물렀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마스 정치사무소는 하마스와의 소통 채널이 필요한 미국과 서방, 중동의 외교 중심지가 되고 싶은 카타르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면서 문을 열게 됐다.카타르에는 아프가니스탄을 통치 중인 무장정파 탈레반의 정치사무소도 자리 잡고 있다. 2013년 문을 연 탈레반 정치사무소 역시 탈레반과의 협상 창구 구축을 위해 설립됐다. 하마스 정치사무소처럼 미국과 서방도 탈레반 정치사무소가 도하에 문을 여는 것에 동의했다. 실제로 미국의 아프간 철수를 위한 탈레반과의 협상도 도하에서 주로 진행됐다. 특히 2019년 2월25일부터 3월12일까지 2주 넘게 진행된 이 도하에서 진행됐다. 2021년 8월 미국과 서방 인력들이 아프간에서 철수할 때는 카타르 정부의 도움을 받았고, 대거 도하를 경유했다. 카타르가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 것.카타르는 하마스와 탈레반 뿐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서방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카타르에 있는 미 공군의 알 우데이드 기지는 미군의 중동 내 핵심 자산으로 꼽힌다. 미국 본토 밖의 공군기지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에서 천연가스 부족 현상이 발생하자 카타르는 유럽 국가들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에도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이스라엘과는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과 달리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진 않았다. 하지만 두 나라 관계는 원만한 편이다. 카타르는 1996년 이스라엘과 무역대표부를 개설하기도 했다. 비록 2008년 이스라엘의 대규모 가자지구 공습 뒤 무역대표부가 폐쇄됐지만 특별히 두 나라 관계가 악화되진 않았다. 2007년 1월에는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총리가 카타르를 방문하기도 했다. 한국과 관련된 중재 경험도 있다. 올해 8월 한국에 동결돼 있던 이란의 원유 수출 대금 60억 달러를 해제하던 때였다. 당초 해당 자금은 카타르의 금융기관을 거쳐 이란으로 전달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배후에 이란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 자금은 카타르 금융기관에 계속 동결돼 있다.● 중재 외교와 다양한 진영과의 우호 관계 형성에 ‘올인’카타르가 다양한 진영과의 우호 관계 구축, 나아가 중재 외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지정학적 위치가 크게 작용했다.카타르는 중동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며 이슬람 종파, 정치체제, 지역 패권을 놓고 경쟁 중인 사우디아라바이아와 이란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나라 크기는 한국의 경기도 정도다. 자국민도 2021년 기준 33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카타르 총 거주자 수는 약 260만 명). 천연가스와 석유 매장량에서 각각 세계 3위와 14위(영국 에너지기업 BP의 2020년 통계)에 오를 만큼 자원 강국이지만 안보적으로는 언제든지 불안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 것.이런 안보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카타르는 사실상 모든 진영과 원만한 관계를 구축하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진영 간의 중재를 적극 진행해 왔다. 사우디가 중심이 돼 구성한 아랍, 수니파, 왕정 산유국 정치경제 협력체인 걸프협력회의(GCC·회원국은 사우디, 카타르, UAE,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국가들이 시아파 종주국이며 왕정을 무너뜨리고 신정 공화정을 세운 이란과 거리를 둬 온 것과 달리 카타르는 이란과도 적극적으로 우호 관계를 구축해 왔다. 여기에는 세계 최대 해상 천연가스 유전(카타르령 노스돔, 이란령 사우스파)을 이란과 공유한다는 이유도 있다.아랍 왕정에 부정적이며 근본주의 이슬람 사상을 전파해온 정치단체 ‘무슬림 형제단’의 활동을 사우디, UAE, 바레인 등은 금지해 왔다. 반면 카타르는 무슬림 형제단 구성원의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는 등 중립적 자세를 취해왔다. 사우디가 잠재적 패권 경쟁자로 생각해 거리를 둬온 오스만제국의 후예 튀르키예와도 카타르는 가깝다. 이처럼 진영을 넘나드는 외교안보 전략으로 한때 카타르는 사우디, UAE, 바레인 등으로부터 외교와 무역 관계가 끊기고, 영해와 영공도 폐쇄되는 ‘카타르 단교 사태’를 겪기도 했다. 당시 단교 주도국들은 카타르가 이란, 튀르키예, 무슬림 형제단 등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단교 이유로 지적했다. 단교 사태는 2017년 6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이어졌다. ● ‘중재 외교’ 부담도 커져…하마스 관계 설정도 골칫거리단교 사태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카타르는 천연가스와 석유 판매를 통해 얻은 막대한 오일머니로 비교적 위기를 안정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가 숙원 사업이던 ‘2022 월드컵’도 잘 치렀다. 그리고 카타르는 가자지구 전쟁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과 ‘휴전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국제사회의 시선은 카타르에 집중될 것이다. 하지만 카타르의 진영을 넘나드는 외교 전략과 중재자 역할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중립을 지향하던 스웨덴, 핀란드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서둘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지금 같은 양극화 시대에 지속적으로 모든 진영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한다는 건 쉽지 않다. 중재국 역할과 관련해서도 성공했다고 결론짓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분석도 있다. 김은비 국방대 안보정책학과 교수는 “중재국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는 건 협상뿐 아니라 협상 뒤 이행해야 할 사항을 관리하는 것도 포함된다”며 “카타르가 협상 뒤에도 이 같은 역할을 안정적으로 잘 해 낼 수 있는 지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하마스와의 관계 재설정도 카타르에게 내려진 숙제다. 지금까지 카타르는 하마스에 우호적이었고, 미국과 이스라엘도 이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번 가자지구 전쟁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카타르가 지금까지 하마스에 보여온 우호적인 스탠스를 인정할지는 미지수다.지난달 워싱턴포스트(WP)와 로이터는 카타르가 하마스에 납치돼 있는 인질 석방 문제가 해결되면 하마스와의 관계를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김 교수는 “카타르가 하마스와 지금 같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큰 압박이 따를 것”이라며 “다만 향후 가자지구 복구와 현지 거주 민간인 지원 등에는 적극 나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도하=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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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면전’을 선언하지 않는 것일까[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카이로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거세지고 있다.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7일(현지 시간) “전쟁이 2단계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도 “군대(이스라엘군)가 그 땅(가자지구 북부)에 주둔 중이고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고 있다고 말했다.7일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 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공습을 감행했다. 23일에는 보병부대와 탱크를 가자지구 안으로 처음 투입했다. 가자지구 안에 이스라엘 군대가 진입해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이 이번 하마스와의 전쟁 중 처음 발생한 것이다.이스라엘은 25일부터 매일 가자지구로 지상군을 투입했다. 현지 언론과 외신들에 따르면 공격 범위가 넓어지고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 가자지구에 주둔하며 지상전이 확대되고 있다.다만, 이스라엘은 아직 ‘전면전’이란 표현은 안 쓴다.이제 가자지구 안팎에서는 전면적인 지상전이 벌어지는 시점이 언제일지에 주목하고 있다. 또 이스라엘이 1400여 명이나 자국민이 사망한 이번 전쟁에서 지상전을 16일 뒤에나 시작했고, 여전히 ‘전면적 지상전 개시’는 선언하지 않는 배경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하마스 궤멸보다 인질 석방에 관심 많은 미국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궤멸 시키겠다’고 강조하면서도 지상전에 전면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인질과 미국이 꼽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5일 ‘인질 석방을 위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지상전 연기를 요청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곧바로 “사람들을 안전하게 구출할 수 있다면 그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국지적인 임시 휴전이 가자에서 인질들을 석방하는 데 필요하다면 이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사실상 미국은 지상전을 통한 하마스 궤멸보다 인질 석방을 우선 순위에 두고 있는 것이다. 하마스에 대한 즉각적이고 치명적인 보복도 중요하지만 이스라엘로서는 세계 최강국으로 중동에 대규모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미국의 메시지도 무시할 수 없다.27일에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규모 지상전을 재고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정부가 대규모 지상전 대신 항공기, 특수부대 등을 이용한 정밀타격형 공격을 통해 하마스를 공격할 것을 이스라엘에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 자국민 안전에 대한 우려 커 미국이 이스라엘의 전면적인 지상전 개시를 우려하는 배경에는 자국민에 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걱정도 깔려 있다.당장 하마스에 억류돼 있는 220여 명의 인질 중 미국 국적자는 12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인 인질의 안전에 문제가 생기면 그 비난은 당연히 바이든 행정부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이라크, 시리아, 카타르, 바레인 등에 주둔 중인 미군의 안전도 역시 중요한 문제다. 중동 주둔 미군은 이란군 또는 친이란 무장단체의 공격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특히 이라크와 시리아에 주둔 중인 미군은 이번 사태로 인해 집중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두 나라에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이란은 이슬람 시아파의 종주국) 무장단체들이 대거 활동 중이다. 시리아에선 이란 혁명수비대가 직접 군사 작전도 진행한다. 실제로 최근 이라크와 시리아에선 친이란 무장단체의 현지 주둔 미군을 겨냥한 공격이 여러 차례 있었다. 이 과정에서 미군 2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또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연구실장은 “미국의 이스라엘 지지는 분명하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인질이든 군인이든 자국민이 희생되는 건 큰 부담”이라며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이 1년 밖에 안 남은 상황이라 더욱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외교 정상화 추진을 포함해 중동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번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만으로도 내년 대선에 심각한 악재다. 미국인 사상자 발생과 중동 정세가 더 혼란스러워지는 건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어떻게 해서든 피해야 하는 추가 악재다.●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민간인 모두 피해 클 수밖에 없어현재 이스라엘에선 하마스에 대한 증오가 넘쳐난다. 30만 명 정도의 지상군을 가자지구 인근에 배치했을 만큼 준비도 돼 있다. 하지만 가자지구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끔찍한 시가전’과 ‘대규모 민간인 피해’는 피할 수 없다. 하마스 보건부에 따르면 이미 이번 전쟁으로 가자지구에선 6747명(26일 기준)이 숨졌다.무엇보다 가자지구는 인구 밀도가 높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건물들은 촘촘하게 들어서 있고, 지하에는 480km 길이의 땅굴이 조성돼 있다. 아무리 이스라엘군이 세계 정상급의 역량을 갖춘 군대라고 해도 이런 지역에서 전면적인 지상전이 펼쳐진다면 대규모 사상자 발생은 피하기 어렵다. 미국도 과거 이라크 전쟁에서 대규모 시가전이 펼쳐졌던 ‘팔루자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팔루자와 달리 가자지구에서의 지상전은 지하 땅굴에서도 대규모 전투가 벌어질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군의 피해는 예상보다 훨씬 더 커질 수 있다.하마스의 ‘인간 방패 전략’과 이스라엘군의 대규모 공격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사실상 민간인과 하마스 대원을 구별하는 게 어려운 상황에서 여성과 어린이 사상자가 늘어나면 아랍권은 물론이고 국제사회 전체적으로도 반이스라엘 여론이 빠르고 강하게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가 늘어나는 것은 2020년 8월 ‘아브라함 협정(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간의 외교 관계 정상화)’을 계기로 모멘텀이 만들어진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해빙 무드가 깨지는 것을 의미한다. 카타르의 싱크탱크인 아랍조사정책연구원(Arab Center for Research and Policy Studies·ACRPS)이 지난해 아랍권 14개 나라에서 3만33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4%가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은 8%에 그쳤다. 또 76%가 ‘팔레스타인 문제는 아랍 전체의 문제다’라고 답했다. 이번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은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화해 분위기를 파괴하려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다. 이스라엘로서는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가 늘어나고, 이로 인해 아랍권의 반이스라엘 정서가 강해지는 것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를 무시한다는 건, 하마스가 파놓은 함정에 그대로 빠지는 꼴이다.이스마일 하니예를 비롯한 하마스의 최고 지휘부가 이미 카타르로 피신해 있다는 점도 이스라엘로서는 부담이다. 하마스 궤멸에 필요한 최고 지휘부 제거가 가자지구에서의 전면적인 지상전으로는 이미 달성할 수 없는 목표가 됐기 때문이다.● 하마스보다 강한 헤즈볼라의 참전 가능성도 부담하마스와는 차원이 다른 무장정파인 헤즈볼라가 본격적으로 참전할 경우 이스라엘로서는 서부(하마스)와 북부(헤즈볼라)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헤즈볼라는 하마스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파격적인 이란의 지원을 받아왔다. 이미 20만여 기의 로켓과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헤즈볼라는 시리아 내전, 이슬람국가(IS) 퇴치 작전 등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의 최고 정예부대인 ‘쿠드스군’과 공동으로 작전을 수행한 적도 많다. 그만큼 제대로된 실전 경험도 풍부하다는 뜻이다. 쿠드스는 아랍어로 예루살렘을 의미한다. 이란은 이스라엘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한다는 뜻에서 해외작전과 특수작전을 수행하는 최정예 자국 군대의 명칭을 쿠드스군으로 정했다.헤즈볼라는 2006년 34일간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며, 이스라엘을 곤혹스럽게 만든 경험도 있다. 당시 100명 이상의 이스라엘군이 사망했다. 또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궤멸시키겠다’고 강조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레바논에서는 1000여 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연히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은 큰 비난을 받았다.사우디 싱크탱크인 킹파이잘 이슬람연구센터의 조셉 케시시안 수석연구위원은 “이스라엘이 전면적인 지상전에 못 나서는 큰 이유 중 하나는 헤즈볼라의 참전 가능성 때문”이라며 “헤즈볼라가 정식으로 참전할 경우 미국의 지원이 있더라도 이스라엘로서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전면전은 피하기 어려워그렇다면 가자지구에서 전면적인 지상전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많은 중동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전면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고 답한다. ‘이스라엘판 9‧11 테러’로 불릴 만큼 피해가 큰 상황에서 이스라엘로서는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진행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것. 30만여 명의 군대를 가자지구 인근에 집결시켜 놓았다는 것만으로도 가자지구에서의 전면적인 지상전에 대한 이스라엘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다만, 가자지구를 이스라엘이 완전히 장악한다고 해도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목표 달성이 가능할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가자지구를 장악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예측이 어렵다.가자지구에서의 전면적인 지상전이 펼쳐지고 헤즈볼라, 나아가 이란의 직접적인 참전과 미국의 군사 조치까지 이어질 경우 중동 정세는 다시 한번 크게 요동칠 것이다.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29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미국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압박하지만 그들은 계속 이스라엘에 광범위한 지원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교장관도 27일 블룸버그TV에 “미국이 지금처럼 계속 행동한다면 미국에 대항하는 새로운 전선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전세계가 가자지구를 불안한 눈으로 예의주시하는 상황도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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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하마스 충돌’서 이란이 주목받는 이유[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카이로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우리는 팔레스타인의 대응에 관여돼 있지 않다. 순전히 팔레스타인이 스스로 한 것이다.” 8일(현지 시간) 주유엔 이란 대표부는 성명을 통해 전날 대규모로 진행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자신들은 상관없다고 밝혔다. 하마스의 공격 직후 다양한 채널에서 제기된 ‘이란 개입 의혹’에 대한 반박이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선 하마스와 헤즈볼라 관계자를 인용해 ‘이란이 공격 작전을 승인했다’, ‘이란과 하마스가 이번 공격에 대해 논의했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졌다. 이란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개입은 부정하면서도, 목소리는 높이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 임박한 상황에서 분명한 하마스 지지 메시지를 내고 있다.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교부 장관은 14일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수행한다면 이란 또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유엔 이란 대표부도 ‘X’(옛 트위터)를 통해 “이스라엘 측의 전쟁 범죄가 중단되지 않으면 통제 불능 상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이스라엘과 멀리 떨어져 있고, 국경도 맞대고 있지 않은 이란은 왜 이번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개입했다는 의심을 받는 것일까. 나아가, 왜 주요 이해 당사자로 거론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이란의 이번 사태 개입 여부는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일까.● ‘시아벨트 전략’으로 주변국에 개입“한국은 이란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선 이란을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중동 나라들에게 이란은 안보 측면에서 많은 위협을 주는 나라다.” (이스라엘 외교부 관계자) 이란은 영토, 자원, 종교를 둘러싼 갈등이 꾸준히 그리고 자주 발생해온 중동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영향력을 확장해온 나라다. 미사일, 무인기(드론), 지상군 같은 군사력은 기본이다. 핵무기는 아직 개발 못 했지만 우라늄 농축을 비롯한 주요 기술을 상당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무엇보다 이란은 주변국의 정치와 안보에 다양한 형태로 개입해 오며 영향력을 키워왔다. 이란과 많은 갈등을 빚어온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이란은 주변국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수니파 종주국은 사우디)인 것을 앞세운다. 시아파 인구가 많고, 정세가 불안정한 중동 나라의 시아파 무장정파와 종교지도자 등에게 자금, 무기, 인력을 지원하는 것. 필요할 경우 이란은 자국의 최고 군사조직으로 ‘정부 위의 정부’로도 인식되는 혁명수비대의 정예부대 ‘쿠드스군(쿠드스는 아랍어로 예루살렘을 의미, 쿠드스군은 이란군의 해외작전을 전문적으로 담당)’을 파견하기도 한다. 이런 이란의 전략을 중동 안팎에서는 ‘시아벨트 전략’으로 부른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이 시아벨트 전략의 주무대다. 헤즈볼라(레바논), 카타입헤즈볼라(이라크), 후티 반군(예멘) 같은 영향력이 큰 무장정파들은 오래전부터 이란의 지원을 받아왔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충돌할 때마다, 후티 반군이 사우디의 석유 관련 시설을 공격할 때마다 ‘이란 배후설’이 등장하는 이유다. 이라크에선 카타입헤즈볼라의 미군 관련 시설에 대한 공격이 있을 때마다 이란을 의심했다. ● 가자지구도 이란의 영향력 행사 지역얼핏 보면 가자지구는 이란이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적합한 지역은 아니다. 하마스는 수니파 무장정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란은 종파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괴롭힐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하마스도 적극 지원해 왔다. 가자지구도 이란의 영향력 확장 지대에 속하는 것이다. 하마스에 대한 다양한 자금과 무기 지원이 오랜 기간 이어졌다. 또 이란은 이슬람 성월인 ‘라마단’의 마지막 금요일을 ‘쿠드스의 날’로 정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를 강조하기 위한 문화적, 종교적 조치였다.하마스 입장에선 고립돼 있는 자신들에게 무기와 자금 지원을 해주는 이란은 꼭 필요한 존재다. 당연히 협조적이다. 그러다보니 ‘이번 사태의 배후에 이란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란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악의 안보 실패, 심지어 ‘이스라엘판 9‧11 사태’란 말이 나올 만큼 이번 하마스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큰 것도 의심을 키운다. 14일 기준 이스라엘서는 1300여 명이 사망했다.한 마디로, 하마스가 자체적으로 진행한 공격으로는 이렇게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기 어렵다는 것. 미사일과 드론 강국이면 시아벨트 지역에서 다양한 지상군 전력을 운용해온 이란이 어떤 형태로든 배후에서 무엇인가를 했을 것이란 뜻이다. ● 고립 뚫기 위해 주변국에 개입그렇다면 이란은 왜 무장정파를 이용해 주변국의 정치와 안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복잡하고, 위험한 전략을 펼치는 것일까. 이란은 1979년부터 미국과 척을 졌다. 사우디 등 주변국들과도 관계가 악화됐다. 시아파 종교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세속주의와 친서방을 지향했던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면서부터다. 혁명을 통해 이란은 시아파 종교지도자와 대통령이 중심이 되는 독특한 ‘신정 공화정’을 구축했다. 근본주의 이슬람을 강조했고 서방과는 분명한 거리를 뒀다. 이때부터 미국이 주도하는 크고 작은 경제 제재에 노출돼 왔고, 1980~1988년에는 이라크와의 전쟁을 경험했다. 이란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도 큰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수니파 아랍 왕정 산유국들은 아예 이란 대응이 주목적 중 하나인 정치‧경제 연합체 걸프협력회의(GCC)까지 1981년에 구성했다. GCC 국가들은 왕정을 무너뜨린 이란의 ‘혁명 경험’이 자국에 영향을 주는 것을 극도로 우려했다. 이처럼 고립된 상황 속에서 이란은 시아벨트 전략으로 활로를 찾으려 했던 것. 이란 전문가인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는 “이란은 시아벨트 전략을 통해 자국 영토가 공격받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중동 전역에 행사하고자 했다”며 “특히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이 활동하는 동안 이 전략이 크게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1998년부터 쿠드스군 사령관으로 활동했던 솔레이마니는 2020년 1월 이라크 바그다드를 방문했다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했다. 솔레이마니 사살 작전은 미국, 나아가 이스라엘, 사우디, UAE 등 친미, 반이란 성향 국가들이 이란의 주변국 개입을 얼마나 위협적으로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으로 사례로 꼽힌다. ● 아랍-이스라엘 ‘해빙 무드’ 깨지면 이란에 수혜이번 사태로 최근 조성돼 왔던 이스라엘과 아랍권 사이의 화해 분위기가 깨질 위기에 놓였다는 것도 이란의 개입에 대한 의심을 키우는 부분이다. 최근 이란은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외교 정상화 움직임에 긴장하고 있었다. 2020년 9월 체결된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은 UAE, 바레인과 수교했다. 그 뒤에는 모로코, 수단과도 수교했다. 이스라엘이 과거 앙숙이었던 아랍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이뤄내는 건 아랍과 이스라엘 모두와 사이가 나쁜 이란 입장에선 또다른 고립을 의미한다. 특히 ‘아랍의 맹주’ 사우디까지 이스라엘이 수교하는 건 더욱 심각한 변화다. 이란으로서는 할 수만 있다면 ‘아랍-이스라엘 해빙 무드’를 흔드는 게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고,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말 그대로, 하루 아침에 아랍권과 이스라엘 사이의 형성돼 오던 화해 분위기가 깨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본격적인 보복 공격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외교 정상화 움직임에 이번 사태가 큰 악재가 될 것이란 전망은 벌써부터 나온다.결과적으로 이란으로서는 ‘이스라엘-사우디 수교’란 부담스런 변화가 최소한 연기될 수 있는 여건을 맞이한 것이다.● 헤즈볼라 참전은 사실상 이란의 참전그렇다면 이란은 하마스의 이번 공격에 개입한 것일까. 증거는 없다. 이란을 40년 넘게 직·간접적으로 제재해 왔고, 이스라엘 지지를 선언한 미국도 ‘이란이 개입한 게 분명하다’는 주장은 하지 않고 있다. 아직 이스라엘 정부도 이란의 개입을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다.국제사회의 제재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 굳이 이란이 자신들을 더욱 ‘왕따’로 만들 대규모 무력 도발을 했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김은비 국방대 안보정책학과 교수는 “이란은 핵 합의가 깨지면서 다시 강화된 경제 제재를 풀어야 하고, 내부적으로는 국민들의 불만도 많은 상황”이라며 “지금 시점에서 하마스를 이용한 대규모 무력 도발을 일으켜 고립을 가중시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반면, 오래전부터 이란이 하마스에 대한 무기와 자금 지원은 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어떤 형태로든 개입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스라엘의 하마스에 대한 보복 공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란은 다시 한번 많은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레바논의 친이란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 때문이다. 헤즈볼라는 최근에도 이스라엘을 향해 수차례 박격포 등을 이용해 도발했다. 또 강경한 하마스 지지, 이스라엘 비판 메시지를 내고 있다.이번 이스라엘과 하마스 충돌에 헤즈볼라가 본격 개입할 경우 사실상 이란과의 전쟁이 펼쳐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헤즈볼라는 설립됐을 때부터 이란과 긴밀했고, 하마스보다 훨씬 더 많은 무기와 자금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헤즈볼라가 참전할 경우 지금도 혼돈에 빠져 있는 중동 정세는 다시 한번 크게 요동칠 것이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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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란이 하면 사우디도”…빈 살만 ‘핵무장’ 발언에 중동 패권 경쟁 재주목[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카이로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이며 차기 국왕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가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20일(현지 시간)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이 핵무기를 가진다면)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 안보상 이유이며 힘의 균형을 위해서다”고 말했다.당장 벌어질 일은 아니다. 언젠가는 발생할 일이라고 확언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하지만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 치열하게 패권 경쟁을 펼치는 사우디와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는 건 지역 안보와 국제 정세를 요동치게 할 대형 사건이다. 당연히 무함마드 왕세자의 이번 핵무기 발언은 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 관계, 특히 사우디의 뿌리 깊은 이란에 대한 경계심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계기로도 여겨졌다.● 7년 만에 ‘화해’ 했어도 여전히 불편한 관계‘앙숙 관계’인 사우디와 이란은 3월 10일 7년 만에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했다. 두 나라는 2016년 1월 ‘심각한 종파 갈등(사우디는 수니파, 이란은 시아파)’을 경험하며 단교했다. 사우디가 자국 내 시아파 고위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일부는 사형시키자, 이란에선 강경 시아파 세력이 사우디 대사관과 총영사관을 공격한 게 단교의 원인이었다. 중국의 중재 아래 사우디와 이란은 베이징에서 일단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두 나라가 진정으로 화해했다고 평가하는 중동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더 이상의 심각한 갈등’을 지양하기 위해 일단 를 도모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무엇보다, 사우디와 이란 사이의 근본적인 문제, 나아가 갈등의 뿌리가 너무 깊다. 하나 같이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냉랭한 두 나라 관계는 40년 이상 지속돼 왔다.● 왕정 붕괴시킨 이란의 혁명 경험이 기분 나쁜 사우디사우디 입장에서 이란에 대해 가장 기분 나쁘고, 긴장이 되는 부분은 정치 체제의 차이다. 사우디는 국왕이 중심이 되는 왕정 체제다. 반면 이란은 시아파 최고지도자(알라의 증거라는 의미를 지닌 아야톨라로 호칭)와 대통령이 중심이 되는 독특한 형식의 신정공화정 체제다.중요한 건, 이란도 원래 왕정 국가였다는 점이다. 1979년 시아파 지도자인 루홀라 호메이니가 중심이 돼 친미, 세속주의를 지향했던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렸다. 이른바 ‘이란 이슬람 혁명’ 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신정공화정 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사우디는 걸프만이란 좁은 바다 건너 편에 있는 다른 종파의 종주국에서 혁명을 통해 왕정이 무너졌다는 게 불편하다. 쉽게 말해, 부패한 왕정을 종교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나서서 무너뜨린 ‘혁명 경험’이 자국에도 전파될까 불안하다.1981년 5월 사우디가 앞장서서 같은 문화(아랍), 정치(왕정), 경제(석유와 천연가스 중심), 종파(수니파) 체제를 지닌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종파상으로는 수니파, 시아파와 또다른 이바디파다. 하지만 정치, 경제, 문화상으로는 사우디, UAE 등과 유사하며 수니파와도 특별한 갈등이 없었다)과 정치‧경제 연합체인 걸프협력회의(GCC)를 구성한 것도 ‘이란 견제’가 가장 큰 목적이다. 다른 GCC 국가들도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이란에 대한 경계심은 컸다. 이들도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이란으로 인해 자신들의 왕정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가장 경계한다. 바레인과 UAE는 이란과 직접적인 영토 갈등도 경험했다. UAE는 1971년 연방이 구성될 때 어수선한 과정에서 3개 섬(소툰브, 대툰브, 아부무사)을 이란에게 점령당했다. 바레인은 왕실은 수니파이지만 국민 다수는 시아파다. 그리고 이란이 “바레인은 원래 우리 영토다”라고 주장해 온 것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이란의 영향력 확장 전략으로 인한 두려움다른 종파도 정치 체제 만큼 사우디와 이란 사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다. 특히, 이란이 시아파 종주국이란 특성을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넓히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는 것을 사우디는 우려한다. 이란은 시아파 인구가 많고, 정세가 불안한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예멘 같은 사우디 인근 나라의 정치와 안보에 적극 개입해 왔다. 현지 시아파 무장 정치단체, 언론사, 종교 지도자 등을 지원하며 해당 나라의 정치와 안보 여건을 이란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전략을 펼쳐왔다. 필요에 따라선 무장 정치단체들을 이용해 무력 충돌도 시도해 왔다. 이란의 영향력 확장 전략에서 사우디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우디 국영 에너지 기업인 아람코의 본사와 각종 생산시설, 연구개발 단지가 자리 잡고 있는 다란과 담맘은 사우디의 대표적인 시아파 거주 지역이다. 사우디 국부의 원천인 원유와 천연가스가 주로 생산되는 사우디 동부 지역이 시아파가 많이 사는 지역인 것이다. 또 사우디 동부는 이란과 지리적으로도 가깝다. 이란으로서는 사우디에서 ‘2등 국민’ 혹은 ‘비주류’ 취급을 받으면서 각종 사회적 차별을 받아온 동부의 시아파들을 자극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사우디 내부의 갈등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후티 반군(사우디는 예멘 정부군 지원)은 무인기(드론)를 이용해 2019년 9월 아람코의 아브까이끄의 원유 탈황·정제 시설과 쿠라이스 유전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사우디의 원유 생산량이 한동안 평소 수준의 절반으로 줄었다. 사우디 내부적으로는 “이란과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면 아람코의 주요 시설이 대거 파괴될 것”이란 공포감도 커졌다.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사우디가 네옴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을 적극 개발하는 배경에는 새로운 경제 거점을 이란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두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주요 무기 개발 경험, 이란은 있고 사우디는 없어이란과 사우디의 차이는 무기 개발 경험에서도 나타난다.이란의 경우 무기 개발 역량이 이미 확인됐다. 사실상 1979년부터 진행돼 온 각종 크고, 작은 미국의 경제 제재 속에서도 사정거리 2000km 수준의 미사일을 대거 개발했다. 중동에서 가장 미사일 기술이 발달한 나라로 꼽힌다. 드론은 러시아가 수입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사용할 정도로 성능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도 통하는 정예군 혁명수비대는 실전 경험도 풍부하다. 물론 이란은 핵무기는 완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라늄 농축 등 주요 기술에 대한 노하우는 축적돼 있다. 이스라엘 ‘모사드(정보부)’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과학자들을 여러 명 암살했다. 또 이란 내 핵 개발 관련 시설에 대한 공격도 진행했다. 모사드의 집요한 공작은 이란이 자체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인력과 시설을 상당 부분 갖췄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반면 사우디는 지금까지 거의 전적으로 ‘미국산 무기 수입’에 의존해 왔다. 사실상 안보 자체를 미국에 의존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자체적으로 중요한 무기를 개발한 경험도 없다. 과학기술 전반에 걸쳐서도 일부 에너지 분야를 제외하고는 역량이 축적돼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사우디가 핵무기 개발에 나설 경우 핵 기술이 발전한 나라의 인력을 수입해야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핵무기는커녕 일반적인 원자력 발전소(원전)도 사우디가 자체적으로 개발 및 운용할 수 있는 역량은 크게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발언처럼 ‘위기 상황’이 와도 정작 사우디가 핵무기를 쉽게 개발하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많다는 뜻이다.사우디에서 장기간 근무했던 한 플랜트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사우디는 일반 석유화학 플랜트의 개발과 운용도 외국 인력과 기술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석유화학 플랜트보다 기술 수준도 높고 복잡한 원전의 경우에도 당연히 개발과 운용 과정에서 모두 외국 인력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원전 같이 민감한 기술을 외부에 의존하는 건 당연히 안정적이지도, 적절하지도 않다.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 혼란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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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방’ 바레인 손 꽉 잡는 미국…‘탈중동 노선’ 바뀌나[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카이로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걸프만(이란에서는 페르시아만, 아랍권에서는 아라비아만으로 호칭)의 작은 섬나라 바레인이 오랜만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바레인은 아랍 수니파 왕정 산유국의 정치‧경제협력체인 걸프협력회의(GCC) 6개 회원국(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 중 가장 작은 나라다. GCC 국가 중 석유 생산량도 가장 적다. UAE와 카타르처럼 다양한 개혁·개방 조치를 취한다거나, 월드컵과 엑스포 같은 대형 국제 행사를 유치하는 것과도 거리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바레인은 이웃 나라들에 비해 유독 ‘조용한 나라’로 여겨져 왔다. 국제사회의 시선이 집중됐던 적은 드물다. 최근 바레인에 관심이 모아졌던 이유는 미국과의 관계 때문이다. 두 나라는 13일(현지 시간) ‘전략적 안보 경제 협정’을 체결했다.● 바레인, 미국과의 안보 협력 수준 높여이번에 바레인과 미국이 체결한 협정에는 ‘바레인이 공격을 당하면 미국은 바레인 정부와 해당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상의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안보 협력, 정보교류, 군사시설 이용 등을 확대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전에도 바레인과 미국은 가까운 사이였다. 미 해군의 제5함대가 바레인에 주둔하고 있다. 제5함대의 사령부 역시 바레인에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제5함대를 통해 중동에서 발생하는 분쟁에서 해군력을 신속히 투입할 수 있다. 또 과거에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이슬람국가(IS) 등을 공격할 때도 제5함대를 활용할 수 있었다. 현재 제5함대는 카타르에 있는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미 공군의 해외기지 중 가장 큰 규모)와 함께 미국의 중동 내 핵심 군사 전력으로 여겨진다. 결국 바레인과 미국이 맺은 협정은 안보 협력 및 보장 수준을 더욱 높이는 조치로 해석된다. 미국 백악관에 따르면 두 나라는 1년간 이번 협정에 대해 협의해 왔다. 워싱턴에서 진행된 협정 서명식에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살만 빈 하마드 알 칼리파 바레인 왕세자겸 총리가 참석했다.● 미국의 탈중동 정책과는 반대되는 조치무엇보다, 이번에 바레인과 미국 사이에 체결된 협정을 놓고 미국의 ‘탈중동 정책’에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최근 미국은 정권마다 다소 차이가 있긴 했지만 중동에서의 역할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셰일가스의 발굴 및 기술 발전으로 미국의 중동산 석유와 천연가스 의존도가 과거에 비해 현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또 크고 작은 중동 내 전쟁에서 미군 사상자가 꾸준히 발생한다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이 과정에서 미국의 탈중동 정책이 본격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터졌다. 바로 2021년 8월 이다.(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0901/109025373/1)2001년 9월11일 ‘세계무역센터 테러(9‧11 테러)’ 직후 미국은 ‘극단주의 세력의 뿌리를 뽑겠다’는 명분아래 아프간을 공격했다. 당시 아프간은 이슬람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무장 정치단체 탈레반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탈레반은 9‧11 테러의 기획자이며 테러단체 알카에다를 만든 오사마 빈 라덴을 보호하고 있었다. 탈레반과 20년간 전쟁(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을 벌여온 미국이 탈레반과 협상을 통해 아프간에서 전격 철수했던 것을 감안하면 바레인과의 이번 협정은 확실히 남다른 면이 있다.물론 사우디와 UAE 같이 영향력이 큰 나라와의 안보 협력 강화 협정이라면 더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사우디, UAE와 많은 지향점을 공유하는 GCC 국가인 바레인과 높은 수준의 안보 협력을 지향하는 협정을 맺었다는 건 큰 의미를 지닌다.● GCC 국가들, 미국의 탈중동 정책에 불만 커사우디와 UAE 같이 미국에 안보를 의존했던 나라들은 미군의 아프간 철수 뒤 상대적으로 중국, 러시아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어왔다. 과거보다 ‘미국의 경쟁자’들과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인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발생한 에너지난을 해결하는 데도 사우디와 UAE는 미국에 비협조적이었다. 미국의 증산 요청에 두 나라 모두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도 두 나라는 참여하지 않았다. 사우디와 UAE가 미국에 보인 냉랭함의 배경에는 탈중동 정책에 대한 불만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바레인과의 안보 협력 수준을 높이는 미국의 움직임은 탈중동 정책에 불만이 컸던 다른 GCC 나라들과의 관계 개선에도 호재다. 특히 바레인은 GCC 나라들이 큰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이란으로부터의 안보 위협에 가장 심하게 노출돼 있다. 이란은 지금도 바레인은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한다. 또 바레인은 왕실은 이슬람 수니파지만, 일반 국민의 다수는 시아파다.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영향력 확장에 더 취약한 구조다. 반면 사우디, 카타르, UAE 등은 왕실과 국민 다수가 모두 수니파다. 또 바레인은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발발해 2011년과 2012년 확산됐던 ‘아랍의 봄(아랍권의 민주화 운동)’ 때 GCC 국가 중 가장 심각한 반정부 시위를 경험했다. 당시에도 이란이 바레인의 시아파 종교자들과 주요 가문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분석이 많다. 그만큼 왕실과 정부가 취약한 것. 바레인은 GCC 국가 중 석유 생산량도 가장 적다보니 경제 여건도 어려운 편이다. 아랍의 봄 당시 바레인은 사우디의 도움을 받아 겨우 반정부 시위를 진압했다.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GCC 중 가장 어려운 사정에 놓여 있는 바레인과 미국이 안보 협력 수준을 높인다는 건 향후 사우디나 UAE 달래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전략”이라고 말했다.실제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은 미국은 바레인과의 이번 조약이 다른 GCC 국가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GCC 달래기’, 사우디-이스라엘 수교와 중‧러 견제에도 필요‘GCC 국가 달래기’, 특히 ‘사우디 달래기’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UAE와 바레인은 2020년 9월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미국은 중동의 핵심 우방국인 이스라엘과 아랍의 맹주인 사우디와의 외교 관계 정상화가 자국의 중동내 영향력 유지와 이란 견제에 꼭 필요하다고 본다.특히 내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입장에선 ‘사우디-이스라엘 수교’는 자랑할 수 있는 큰 외교 성과다. 이를 위해선 사우디의 불만인 탈중동 정책 노선이 바뀔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줄 필요가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이 나라들이 GCC 국가들과 계속 긴밀한 관계를 맺는 건 막아야 한다. 미국으로서는 아무리 중동의 중요성이 과거보다는 줄었다고 해도 러시아와 중국이 중동에 계속 진출하는 걸 그냥 두고 보는 건 어렵다. 를 중심으로 그동안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계속 키워왔다.(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30513/119276766/1)중국도 3월 7년간 단교 상태였던 를 이끌어내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30312/118286632/1)중동 국가 대사를 지낸 전직 외교관은 “미국 입장에선 에너지 자립 수준이 높아졌어도 중국과 러시아가 중동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건 또다른 부담”이라며 “GCC 국가들과 계속 안보, 경제 협력을 유지하며 어떤 형태로든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한계 많은 조약이란 평가도 나와미국과 바레인의 이번 협정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보 협력 수준을 높이는 내용임에도 GCC 국가들이 원하는 높은 수준의 안보 보장을 약속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GCC 국가들은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헌장 제5조(나토 가입국에 대한 공격을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내용) 수준의 안보 협력을 자신들과 맺길 희망한다.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존 알터만 중동팀장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바레인 협정은 이웃국가들(사우디, UAE 등 의미)이 원하는 수준에 크게 못미친다”고 평가했다.하지만 미국과 GCC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이번 바레인 협정은 계속 화제가 될 전망이다. 그리고 이 나라들 간의 협상 테이블에서도 계속 거론될 것이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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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아오르는 중동 ‘항공 大戰’, 게임 체인저 노리는 국가는?[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카이로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사우디아라비아가 3월 설립한 항공사 ‘리야드에어(Riyadh Air)’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2025년부터 정식 운항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이미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리야드에어는 설립 직후 보잉에 B787 항공기 39대를 발주했다. 앞으로도 대규모 추가 항공기 구매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지난달 10일에는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의 명문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공식 메인 스폰서가 돼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레알 마드리드, FC바르셀로나와 함께 스페인 3대 명문 프로축구팀으로 꼽히는 ‘빅클럽’이다.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국영 항공사 에티하드(Etihad)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냈고 현재 리야드에어를 이끌고 있는 토니 더글라스 CEO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과 의 인터뷰에서 “(리야드에어는) 아주 공격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 (환승이 아닌) 사우디 방문이 목적인 탑승객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이를 위해 리야드에어는 사우디 수도 리야드와 전세계 100곳 이상의 도시를 잇는 직항 노선을 마련할 계획이다.윤문길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에미레이트항공(Emirates), 에티하드, 카타르항공(Qatar Airways), 터키항공(Turkish Airlines)이 주도해온 중동 항공사 경쟁에 사우디도 본격적으로 가세하는 상황”이라며 “사우디가 계속 리야드에어에 투자한다면 중동은 물론이고 세계 항공 시장에도 적잖은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리야드에어, UAE와 카타르 항공사의 성공 전략 벤치마킹리야드에어는 사우디 국영 항공사로 1945년 설립된 사우디아(Saudia)와는 별개 회사다.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가 주요 의사 결정에 직접 관여하는 사우디 국부펀드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가 리야드에어의 소유주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리야드에어의 경영에도 깊이 관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후원은 리야드에어가 설립한 뒤 처음 진행된 대형 스포츠 마케팅 활동이었다. 또 에미리트항공, 에티하드, 카타르항공의 스포츠 마케팅을 연상시킨다. 세 회사 모두 세계 항공업계에서 후발 주자로 여겨진다. 가장 ‘선배’인 에미레이트항공이 1985년에 설립됐다. 카타르항공과 에티하드는 각각 1993년과 2003년에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 항공사들은 자국의 막대한 ‘오일머니(석유와 천연가스 판매 수입)’ 덕분에 단기간에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했다. 이 항공사들이 역사가 짧은 기업임에도 높은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파격적인 스포츠 마케팅이 꼽힌다. 세 회사 모두 리야드에어처럼 유럽 프로축구 리그의 빅클럽 후원에 공을 들여 왔다.()에미레이트항공은 이탈리아 세리에A의 AC밀란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널을 후원 중이다. 에티하드는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시티FC를 후원한다. 맨체스터시티FC의 구단주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하얀은 UAE 아부다비 왕실 구성원이다. 카타르항공은 자국 투자청이 소유 중인 프랑스 리그1의 파리생제르맹을 후원한다. 과거에는 FC바르셀로나,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 세리에A의 AS로마 등 다양한 명문 축구팀을 후원했다.이형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리야드에어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후원은 UAE와 카타르 항공사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한 전략”이라며 “유럽 빅리그의 명문팀 후원은 해당 팀이 전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건 물론이고 소속 선수들의 국적도 다양하고 이들이 월드컵 등 다양한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때문에 효과가 매우 큰 스포츠 마케팅”이라고 말했다. ● 항공사 육성, 탈석유 전략과 산업 다각화에 필요 사우디가 새로운 항공사를 설립해 가며 항공사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일단, 무함마드 왕세자가 2017년 왕세자 자리에 오른 뒤 본격 가동 중인 탈석유 전략과 개혁‧개방과 맞물려 있다. 현재 사우디는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와 ‘석유 판매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나라’란 기존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대적인 체질 개선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비전 2030’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사우디는 다양한 산업 구조를 갖춘 나라로 변화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IT) △콘텐츠 △관광 등과 관련된 산업 육성에 관심이 많다. 이를 위해, 해외 기업, 투자자, 관광객을 안정적으로 유치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한국, 이탈리아와 유치 경쟁 중인 ‘2030 엑스포’를 비롯해 △네옴 프로젝트(사우디 북서부와 홍해 일대에 서울의 44배 크기의 대형 국제도시를 개발하는 사업) △성지순례가 아닌 일반 관광 허용 △글로벌 기업의 중동지역본부 유치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네옴시티)과 2034년 아시안게임(리야드) 등 다수의 중‧장기 프로젝트도 가동 중이다. 하나 같이 해외에서 많은 인력이 사우디를 방문해야 하는 프로젝트다. 향후 사우디 관련 항공 여행 수요 역시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항공사는 사우디가 중동의 대표 국가, 나아가 세계적인 경제 중심지로 성장하려면 꼭 갖춰야 하는 인프라”라며 “산유국이라 항공사 운영 비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석유를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사우디가 파격적으로 항공사 육성에 뛰어든 이유”라고 말했다.UAE나 카타르도 산유국이란 특성이 자국 항공사를 단기간에 국제적인 수준으로 육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사우디는 향후 네옴항공도 운영할 계획이다. 사우디아, 리야드에어의 뒤를 잇는 제3의 국영 항공사인 셈이다. 이름에 걸맞게 네옴항공은 사우디가 서북부와 홍해 일대를 중심으로 운항하게 된다.● 리야드에어에선 술이 허용될까사우디 안팎에선 향후 사우디아와 리야드에어 간 역할 분담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리야드에어는 출장 또는 관광 목적으로 사우디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주고객으로 삼을 예정이다. 또 안정적인 수익을 내며 성장을 지향하겠다고 강조한다. 분명한 ‘상업 항공사’의 길을 걷겠다는 뜻이다.반면 사우디는 향후 사우디아를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 방문을 위해 사우디를 찾는 ‘무슬림 성지 순례자’ 운송에 중심을 둔 항공사로 운영할 계획이다.일각에선 이런 항공사 간 역할 분담을 통해 리야드에어에선 ‘주류’ 서비스가 허용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사우디아는 이슬람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는 원칙아래 모든 노선에서 주류를 제공하지 않는다. 사우디에 취항하는 외국 항공사들도 원칙적으로 사우디 영공을 벗어난 뒤부터 술을 제공할 수 있다. 사우디아 항공기에선 이륙 전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는 쿠란(이슬람 경전) 구절이 기내 방송으로 나온다. 또 메카와 메디나 상공을 비행할 땐 ‘신의 축복’을 기원하는 기장의 안내 방송도 나온다. 말 그대로,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묻어 있는 항공사인 것.항공사는 국가 브랜드나 이미지에 적잖은 영향을 준다. 그런 점에서, 성지순례자가 아닌 출장자와 관광객을 주고객으로 삼는 리야드에어에선 ‘사우디아와는 다른 서비스(주류 제공)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도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리야드에어 설립을 결정했을 무함마드 왕세자가 개혁‧개방을 강조해왔단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사우디가 네옴 프로젝트를 통해 홍해 일대에 대규모 관광지를 개발한다고 2017년 밝혔을 때도 향후 일부 지역에선 외국인에게 제한적으로 술이 허용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었다. 물론 현재까지 사우디 정부는 자국내 주류 허용과 관련해선 아무런 메시지도 내놓지 않고 있다. 리야드에어가 향후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느냐는 사우디의 개혁‧개방 속도와 강도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로도 여겨질 수 있다. ● UAE와의 갈등 심해지나 리야드에어가 본격적인 운항에 들어가면 바로 옆 나라인 UAE, 카타르와 ‘묘한 신경전’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가뜩이나 치열한 ‘중동 항공사 대전(大戰)’에 또하나의 강력한 경쟁자가 뛰어드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리야드에어는 ‘환승객 적극 유치 전략’을 택했던 에미레이트항공, 카타르항공, 터키항공과 달리 ‘직항 중심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더글라스 CEO도 “카타르, UAE와는 다른 전략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또 사우디는 내년부터 자국에 중동지역본부를 두지 않은 외국 기업에게는 정부와 공공기관 사업 입찰 기회를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한다. 장기적으로는 UAE가 두바이를 중심으로 펼쳐온 ‘중동 경제 허브 전략’을 약화시킬 수 있는 조치다. 사우디는 아랍권에서 인구와 시장 규모가 가장 큰 축에 속한다. 대형 개발 프로젝트도 많다. 때문에 사우디가 자국 내 중동지역본부를 둔 외국 기업만을 대상으로 입찰 기회를 허용하는 정책을 고집한다면 ‘UAE를 떠나 사우디로 향하는 기업’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사우디와 UAE는 아랍권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 두 나라는 정치 체제(왕정), 경제 구조(산유국), 종파(이슬람 수니파)가 같다. 6개 아랍 산유국(사우디, UAE,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이 결성한 정치‧경제협력체 걸프협력회의(GCC)에서도 사우디와 UAE는 유독 가까웠다. 하지만 최근에는 △예멘 내전(사우디는 계속 개입 중이지만 UAE는 사실상 철수 상태) △카타르 단교사태(사우디는 화해에 적극적이었지만 UAE는 부정적이었음) △석유 증산(사우디는 소극적, UAE는 적극적) 등에서 입장이 달랐다. 무함마드 왕세자와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아부다비 국왕)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소문도 많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월 UAE에서 열린 중동 국가 정상 회의 때 무함마드 왕세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또 지난해 12월 사우디에서 열린 중국·아랍 정상 회의 때는 무함마드 대통령이 불참했다. 원래 두 사람은 멘토(무함마드 대통령)와 멘티(무함마드 왕세자) 사이란 말이 돌 정도로 가까웠다. 특히 올해 62세인 무함마드 대통령이 38세인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개혁‧개방과 안보 이슈에 대한 조언을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국내 한 중동 전문가는 “두 나라 관계가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그동안 UAE가 주도해온 중동의 경제 허브 자리를 사우디가 많이 장악해 간다면 사이는 더욱 소원해 질 것”이라며 “항공사 간 경쟁도 두 나라 간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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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 사탄’과 ‘악의 축’은 화해할 수 있을까 [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카이로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루홀라 호메이니 이란 초대 국가 최고 지도자(1902~1989년)는 재임 시절(1979년 12월~1989년 6월) 미국을 ‘큰 사탄’으로 불렀다.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2001년 1월~2009년 1월 재임)은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북한, 이라크와 함께 이란을 ‘악의 축’이라고 비판했다.큰 사탄과 악의 축은 지금도 미국과 이란의 적대적인 관계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미국과 이란은 한 번도 전쟁을 치른 적이 없다. 하지만 두 나라는 1979년 2월 이란의 이슬람 성직자들이 중심이 돼 친미, 세속주의를 지향했던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린 ‘이란 혁명’을 계기로 단교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로를 향해 강한 반감이 담긴 메시지를 쏟아냈다. 큰 사탄과 악의 축은 이란과 미국이 서로를 얼마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레토릭.이런 미국과 이란 관계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최근 두 나라는 자국에 수감돼 있는 상대방 국적자를 맞교환하기로 했다. 또 미국은 대이란 경제제재 때문에 한국에 동결돼 있던 70억 달러(약 9조3100억 원) 규모의 이란 원유 결제 대금의 이체를 허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이란은 핵무기 개발에서 핵심 과정인 우라늄 농축 작업 속도도 늦추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과연 미국과 이란 사이에 불고 있는 훈풍은 계속될 수 있을까.● 뿌리 깊은 앙숙 관계 – 이란의 도발문제는 간단치 않다. 미국과 이란 간 불신은 뿌리가 깊다. 또 쉽게 치유되기도 힘들다. 두 나라 간 갈등은 4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이란 혁명 세력은 자신들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팔레비 왕의 소환 요청을 미국에 했다. 하지만 미국은 거부했다. 미-이란 갈등의 본격적인 시발점이다.이 과정에서 1979년 11월 혁명 세력을 지지하는 과격파 시위대가 ‘팔레비 왕의 송환’을 외치며 반미 시위를 벌이던 중 테헤란의 주이란 미국 대사관을 점거한다. 그리고 이란에 거주 중이던 미국 외교관과 국민 52명은 대사관 건물에 억류됐다. 이들은 1981년 1월에서야 풀려났다. 444일간 이란 혁명 세력이 미국인 집단으로 억류한 것이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명의 미국인을 이렇게 긴 기간 동안 억류한 나라나 조직은 없다. 지금도 이란은 테헤란의 구 미국 대사관 건물을 ‘외세에 대항했던 역사’를 자랑하는 기념관으로 활용 중이다.이란 전문가인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당시 이란 혁명 세력의 조치는 미국의 뿌리 깊은 ‘이란 트라우마’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며 “직접적인 무력 충돌이 없었는데도 미국이 이란을 극도로 불편하게 생각하는 데는 444일 간의 자국민 억류 사건이 결정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1983년에는 레바논의 친이란, 시아파 무장 정치단체 헤즈볼라가 수도 베이루트의 미 해병대 사령부 건물을 공격했다. 미군 241명이 숨졌다. 이란이 직접 감행한 공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은 다시 한번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다. 또 이란에 대한 반감을 더욱 키우게 됐다.● 뿌리 깊은 앙숙 관계 – 미국의 압박미국도 만만치 않다. 미국은 이란 혁명 세력이 신정공화정을 출범시킨 뒤 다양한 직‧간접 경제제재로 이란을 압박했다. 1980년부터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는 친미 아랍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함께 이라크를 지원했다. 최악의 시기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2017년 1월~2021년 1월) 시절이었다.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2009년 1월~2017년 1월) 잠시 개선됐던 이란과의 관계를 다시 냉각시켰다. 오바마 행정부가 최대 성과 중 하나로 내세웠던 이란과의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 계획·2015년 7월 타결·이란이 우라늄 농축 등 핵무기 관련 작업을 중단하면 단계적으로 경제제재를 푼다는 내용)를 2018년 5월 백지화한 것.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 중국 등 이른바 국제사회의 주요국이 이란과 맺은 합의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탈퇴한 것이다. 세부 내용이 지나치게 이란에 유리하고, 이란이 실제 핵무기 개발을 포기했는지 검증하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당연히 이란은 반발했다. 국제사회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란산 원유의 수입을 금지했다. 나아가, 이란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 통하며 최고지도자의 친위 군사조직인 혁명수비대(IRGC)를 테러단체로 지정했다.2020년 1월에는 혁명수비대 내 최고 엘리트 부대로 해외 작전과 특수전, 나아가 이란 인근 국가를 대상으로 한 비공식 외교 업무도 담당하는 쿠드스군의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무인기(드론)로 사살했다. 쿠드스는 아랍어로 예루살렘을 의미한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이스라엘의 언어)다. 쿠드스군에는 유대교를 믿는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는 예루살렘을 탈환하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지지부진한 핵 협상현재도 미-이란 관계 개선의 확실한 돌파구가 될 수 있을 만한 모멘텀은 약하다. 일단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1월 취임한 뒤 재개된 미-이란 핵 협상이 답보 상태다. 양측은 수차례 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유의미한 진전은 없었다. 최근에는 물밑 접촉도 거의 안 이뤄지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외교 소식통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에는 미-이란 핵 협상이 비교적 활발했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 현재는 중단된 상태로 봐야 한다”며 “재개된다는 시그널도 지금은 없다”고 말했다. 이란 입장에서는 경제제재를 풀어야 하는 만큼 핵 합의를 다시 이뤄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때 갑자기 핵 합의가 엎어진 트라우마가 있다. 어설픈 복원으로는 국내 보수파를 설득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핵 합의 복원 과정에서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요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확실한 이행 보장을 기대한다. 트럼프가 내년 미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이 높고, 실제 당선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미국 입장에서도 이란의 강화된 요구는 부담되고 당연히 검토해야할 사항도 많을 수밖에 없다. 협상이 다시 시작돼도 입장 조율이 쉽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2015년 오바마 행정부 시절 핵 합의가 타결될 때와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는 것도 악재다. 당시에는 주요국 간 공조가 비교적 잘 이뤄졌다. 지금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거칠어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와 서방 간 갈등도 심각하다. 또 이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핵 합의를 파기한 뒤 러시아,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란에 대한 근본적인 우려도 여전미국과 다른 중동 나라들이 우려하는 이란의 근본적인 외교안보 전략도 여전하다.아직 이란은 핵무기가 없다. 하지만 올해 5월 기준 핵폭탄 2개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의 고농축 우라늄(약 114kg)을 보유하고 있다. 또 사정거리 2000km 수준의 탄도미사일도 대량 보유하고 있다. 군사용 드론 기술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러시아가 수입해 사용할 정도로 우수하다.무엇보다, 시아파 종주국인 것을 앞세워 △헤즈볼라(레바논) △카타입헤즈볼라(이라크) △후티 반군(예멘) △하마스(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등 중동 내 친이란, 시아파(하마스는 수니파이지만 이란과 가까움) 무장 정치단체들을 활용한 무력 도발과 내부 정치 개입을 추진하는 ‘시아벨트 전략’도 여전하다. 시아벨트 전략은 시아파 인구가 많고 정세가 불안한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의 친이란, 시아파 무장 정치단체들을 이용해 해당 나라에서 유리한 정책과 전략이 추진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그리고 무장 정치단체들을 이용해 이스라엘,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같은 ‘적대국’을 공격한다.‘아랍의 맹주’이며 중동의 대표적 친미 국가인 사우디와 UAE는 이란의 드론에 원유 생산 시설과 공항이 공격받는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와 하마스의 도발을 계속 경험해 왔다. 다만, 올해 3월 중국 중재로 이란과 사우디는 7년 만에 외교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이로 인해 이란의 시아벨트 전략이 이전보다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당시 사우디 싱크탱크인 킹파이잘 이슬람연구센터의 조셉 케시시안 수석연구위원은 “사우디와 이란은 2년간 이번 협상을 진행했고, 이란의 헤즈볼라와 후티 반군 등에 대한 지원 문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우디와 이란 간의 협상 때 시아벨트 문제가 비중 있게 거론됐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뜻이다.하지만 이란이 시아벨트 전략을 크게 수정하거나 폐기하는 건 힘들다. 핵무기와 달리 이미 완성됐고, 성과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구 연구교수는 “이란은 시아벨트를 자국 안보의 핵심으로 생각한다”며 “이를 포기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란 특수’도 아직 먼 이야기결론적으로 미-이란 관계가 언제, 어떻게 본격적으로 개선될지는 불투명하다. 또 뚜렷한 개선 모멘텀도 없다.물론 미국 대통령 선거(2024년), 이란의 총선(2024년)과 대통령 선거(2025년)가 변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누구도 쉽게 과정과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한국 입장에서는 ‘기대되는 거대한 시장, 이란’이 언제, 어떻게 열릴 지도 아직 미지수인 것.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이란 인구는 약 8855만 명. 중동에서 이집트(약 1억1100만 명) 다음으로 많다. 중동권에서 인력 수준도 가장 우수한 편이라는 평가가 많다. 원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은 각각 세계 3위와 2위다. 다른 중동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 식량 생산이 가능한 비옥한 토지도 많다. 2015년 7월 핵 합의가 타결됐을 때 한국은 물론이고 전세계가 이란을 주목했던 이유다.한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건설사들이 중동에서 큰 성과를 냈다. 특히 이란에서는 드라마를 중심으로 K콘텐츠의 인기가 상당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이란에서 강세를 보여왔다.하지만 미국의 경제제재가 확실히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이란은 리스크가 너무 큰 시장이다. 미국, 나아가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활동하는 기업들에게는 이란 진출은 언제든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 ‘미국 수출’과 ‘미국 기업과의 거래’에서 자유로운 곳은 많지 않다. 삼성전자 중동지역 법인장(상무) 출신으로 테헤란 근무 경험도 있는 이창섭 전경련 자문위원은 “최근 미-이란 관계에 다소 변화가 있지만 이란 시장만 바라보는 기업이 아닌 이상 여전히 이란 진출에는 많은 위험이 따른다”며 “한국 기업들의 본격적인 이란 진출은 결국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가 해결되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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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변화, 중동에서 새로운 ‘기름 전쟁’ 불붙이나[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중동에서 ‘기름 전쟁’이 터졌다. 정확히는 ‘기름 확보 전쟁’이 한창이다. 갑작스러운 기름 생산 부족으로 기름을 확보하려는 나라 간 경쟁이 치열하다. 상대적으로 기름이 넉넉해 이를 수출하려는 나라들은 외화를 벌기 좋은 기회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내 소비용 기름이 부족해지고, 가격이 폭등하는 것을 우려한다. 이 기름은 석유가 아니다. 중동과 남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초록색과 검정색 나무 열매에서 추출하는 ‘식용 기름’이다. 이 지역에선 요리할 때 ‘필수품’으로 쓰인다. 또 주식인 빵을 찍어 먹을 때도 자주 쓰인다. 열매 절임은 중동과 남유럽에선 기본 반찬으로 여겨진다. 다른 야채를 절일 때도 이 기름을 많이 사용한다. 말 그대로 ‘국민 먹거리’이며 ‘필수 요리 재료’다. 바로 올리브유다.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더위와 가뭄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유럽 주요 국가의 올리브 수확에 비상이 걸렸다. 심한 가뭄으로 올리브 생산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나라에서 생산되는 올리브유도 크게 줄었다. 중동 전문매체인 미들이스트아이(MEE)와 미들이스트모니터(MEMO), 튀르키예 아나돌루통신 등에 따르면 올리브유 생산에 ‘빨간불’이 켜진 남유럽 국가들이 올리브유 확보를 위해 상대적으로 가뭄 피해가 적은 중동 국가들로 눈을 돌리고 있다. ● 스페인 식품업계, 튀니지와 레바논 올리브유 싹쓸이 중올리브 수확이 줄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는 스페인. 이 나라는 세계 1위 올리브유 생산국이다. 국제올리브협회(IOC)도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 본부를 두고 있다. 스페인은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62만t의 올리브유를 생산했다. 이는 같은 기간 중 통상 150만t의 올리브유를 생산했던 예년과 비교할 때 반토막에도 못 미치는 양이다. 비상이 걸린 스페인 식품 업계는 최근 중동에서 부족한 올리브유를 확보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나라는 튀니지다. 그동안 아랍권에서 가장 많은 올리브유를 생산해온 나라다. 스페인을 중심으로 남유럽 국가 식품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올리브유를 구입해 튀니지의 올리브유 수출량은 예년보다 30% 늘었다. 튀니지는 가뭄으로 피해를 입은 올리브 나무들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현지 올리브 수출업자인 파하드 벤 아메르는 MEE에 “튀니지의 올리브 나무들이 스페인산보다 가뭄에 강했다”고 말했다.레바논도 유럽 식품 업계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나라다. 레바논은 전체 농경지의 23% 정도가 올리브 나무 경작지. 최근 스페인 식품 기업들은 레바논 현지 생산업자들을 적극적으로 접촉하며 올리브유를 대거 구입 중이다. 레바논에선 ‘도매상들이 보유 중인 올리브유를 사실상 모두 스페인 식품 기업들이 사가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워낙 유럽 식품 기업들이 활발히 올리브유를 구입하다 보니 레바논에선 향후 자국 소비용 올리브유가 부족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또 레바논 식품 기업들이 자체 브랜드로 생산하는 올리브유가 부족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레바논 역시 올리브 나무들이 가뭄으로 인한 피해를 덜 입었다. 현지에서 4대째 올리브 나무를 재배하고 있는 아사드 사아데흐는 “레바논의 올리브 나무 품종은 강하고 기후변화에도 잘 적응했다”고 말했다.올리브유 품질은 좋지만 그동안 국내 판매에 집중했던 요르단의 식품 기업들도 최근 유럽으로 수출을 늘리고 있다.● 튀르키예, 올리브유 수출 늘었지만 ‘수출 규제’ 마련올리브 농업이 발달한 튀르키예도 유럽발 올리브유 특수를 누렸다. IOC에 따르면 튀르키예의 지난해와 올해 올리브유 생산은 예년보다 약 62% 늘었다. 튀르키예 무역부는 지난해 11월부터 7월까지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수출된 올리브유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1배와 44배 늘었다고 밝혔다.튀르키예 이즈미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에게해 올리브와 올리브유 수출협회’에 따르면 튀르키예의 올해 올리브유 수출 규모는 10억 달러(약 1조3100억 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사상 최대치다. 외화 벌이 측면에서는 분명한 호재다. 지난 20년 간 튀르키예에서 재배되는 올리브 나무 규모가 9900만 그루에서 1억8900만 그루로 두 배 가까이 늘은 덕을 톡톡히 본 결과다.하지만 지난달 튀르키예 정부는 11월까지 약 3달간 올리브유 수출과 관련된 긴급 규제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올리브유 가격이 급등하며 물가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무역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이 나라의 올리브유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2%나 올랐다. 올리브 수확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페인(82%), 그리스(72%), 이탈리아(58%)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튀르키예 정부는 자국 내 올리브유 부족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고, 식품업계가 국내 시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해외로 수출되는 올리브유에 1kg당 0.2달러(약 262원)의 추가 세금을 매기기로 결정했다. 또 튀르키예 정부는 올리브유 생산 및 가격 변화에 따라 추가 수출 규제를 마련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일단 11월까지를 규제 적용 기간으로 삼은 건 이 시기에 올리브 수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기대보다 올리브 수확이 적을 경우 규제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올리브유 가격 오름 현상은 튀르키예뿐 아니라 레바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DW)에 따르면 최근 레바논에선 1리터 당 5달러(약 6540원) 정도하던 도매상 판매 올리브유가 10달러(1만3080원)로 두 배나 올랐다. 가뜩이나 경제 사정이 안 좋은 레바논에서 생활필수품인 올리브유 가격 상승은 더욱 고통스럽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최근에는 올리브유보다 저렴한 식용유를 구입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올리브유 생산이 많고, 품질도 좋은 것으로 유명한 레바논에선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현지에서 컨설팅업을 하는 한 레바논인은 “올리브유 가격이 계속 빠르게 오르고 있고, 이제는 매우 비싸다”며 “레바논에서 올리브유가 비싸다고 느껴진 적은 처음이다”고 말했다.● 올리브유 등 생필품 부족은 민심 폭발시키는 계기 될 수 있어‘올리브유 확보 전쟁’과 ‘올리브유 가격 상승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올리브유 가격 상승은 남유럽 국가들의 올리브유 생산에 문제가 없었더라도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때 피하기 어려웠다. 문제는 지금처럼 올리브유 생산이 불안정하고, 인플레이션도 지속되는 상황에서 중동의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 사정은 더욱 안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 레바논처럼 정국이 불안한 나라는 더욱 그렇다. 이슬람교 수니파, 시아파, 기독교 간 종교 갈등이 심한 레바논은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4970달러(약 650만원‧2021년 세계은행 기준) 밖에 안 된다.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기후변화와 인플레이션이 겹치며 중동 비산유국의 경제 사정은 더욱 안 좋아졌고, 국민 생활도 계속 어려워지고 있다”며 “올리브유를 비롯해 빵과 양고기 같은 생활필수품 부족 혹은 가격 폭등 현상은 정부에 대한 극심한 불만이 폭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돼 이집트, 리비아, 예멘, 시리아로 확산됐던 ‘아랍의 봄(아랍권의 민주화 운동)’도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가 너무 심각해지면서 민심이 폭발한 게 원인이었다. 당분간 ‘중동의 올리브유 문제’가 많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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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란이 뭐길래…부글거리는 중동 [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이라크 정부가 20일(현지 시간) 자국 주재 스웨덴 대사를 추방했다. 같은 날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주이라크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일부 시위대는 대사관에 난입해 불을 지르기도 했다. 또 이라크 정부는 스웨덴의 글로벌 통신장비 기업인 에릭슨의 자국내 영업 허가를 취소했다. 모하메드 시아 알 수다니 이라크 총리는 “스웨덴과의 외교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튀르키예,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은 자국 주재 스웨덴 대사를 불러 엄중한 항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란은 자국의 신임 주스웨덴 대사 파견도 당분간 보류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무슬림 인구가 많은 파키스탄에서도 전국 곳곳에서 시위가 발생했고, 의회에선 스웨덴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결의안을 채택했다. 무슬림이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전세계 57개국으로 구성된 국제기구 이슬람협력기구(OIC)도 스웨덴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 스웨덴에서 계속된 ‘쿠란 소각’ 시위스웨덴이 이슬람권 국가들의 집중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바로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는 이라크 출신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살완 모미카가 모스크(이슬람 사원) 앞에서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며 쿠란과 이라크 국기를 소각했다. 그는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돼지고기로 만든 베이컨 조각을 쿠란 사이에 끼워 넣기도 했다. 20일에도 모미카는 스톡홀름에 위치한 주스웨덴 이라크 대사관 근처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 때는 쿠란을 소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쿠란을 발로 밟고 걷어찼다. 불과 한 달 정도 사이에 반복적인 쿠란 모욕 시위가 스웨덴에서 발생한 것. 하지만 스웨덴에서 쿠란 소각 시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1월에는 덴마크 극우정당인 ‘강경노선’의 라스무스 팔루단 대표가 주스웨덴 튀르키예 대사관 앞에서 쿠란을 소각하는 시위를 벌였다. 당시 팔루단 대표는 ‘스웨덴에서의 표현의 자유에 영향을 미치려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이슬람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자국 내 분리 독립 움직임을 보이는 쿠르드족에 우호적이라는 이유로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반대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팔루단 대표는 지난해 4월에도 스웨덴 곳곳에서 반이슬람, 반이민을 주제로 시위를 주도했고, 이 과정에서도 쿠란을 소각해 물의를 일으켰다.결국 이슬람권 국가들은 스웨덴에서 쿠란을 소각하는 ‘이슬람 모욕 시위’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스웨덴 당국이 사실상 이를 제지하지 않고 있는 것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이슬람의 3대 성지(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중 2곳(메카, 메디나)이 있어 ‘성지 수호 국가’, ‘이슬람 종주국’으로 일컬어지는 사우디 외교부는 20일 “스웨덴 당국의 반복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은 일부 극단주의들에게 성스러운 쿠란을 태우고, 훼손해도 되는 공식적인 허가증을 준 것이다”라고 밝혔다. 반면 스웨덴은 표현의 자유 등을 이유로 쿠란 소각이 이뤄지는 시위에 그동안 특별한 조치를 취해 오지 않았다. 모미카가 벌인 시위에 대해서도 조사는 진행 중이지만, 이를 반드시 처벌하겠다는 식의 자세는 취하지 않고 있다. ● 쿠란, 이슬람의 상징물…이번 소각 시위는 이슬람 명절에 발생무슬림들에게 쿠란은 ‘신의 말씀’을 적은 책이다. 말 그대로 성스러운 책이다. 함부로 훼손하는 건 당연히 안 된다. 만질 때도 손을 씻은 뒤, 오른 손으로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는 게 원칙이다. 또 쿠란을 읽을 때는 조용하고 깨끗한 장소에서 반듯한 자세로 읽어야 한다. 일상 생활에서 쿠란을 호칭할 때도 ‘성스러운 쿠란(Holy Quran)’ 혹은 ‘성스러운 책(Holy Book)’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심지어 집이나 사무실의 책장에 꽂을 때도 각별히 신경을 쓴다. 잘 정돈된 책장에 가급적 별도의 칸에 꽂아 둬야 한다. 세속적이거나 가벼운 내용의 대중서 근처에 꽂는 건 적절하지 않다. 김종도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장은 “무슬림들은 쿠란은 가급적 이슬람과 관련된 책들과 함께 책장의 별도 칸에 따로 정갈하게 꽂아두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고 말했다.오래돼 사용할 수 없다고 그냥 버리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 낡은 쿠란은 보통 모스크에 준다. 개인이 직접 처리할 땐, 조용하고 깔끔한 곳에 묻는 경우도 많다. 런던에 거주하는 한 이라크계 영국인은 “너무 낡아서 사용하기 힘든 쿠란을 소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때는 사람이 없는 조용하고 깨끗한 곳에서 엄숙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중요하게 다뤄지는 쿠란을 공개적으로 불태우고 밟는 건 평범한 무슬림들에게도 용납되기 힘든 행동이다. 반대로 가장 쉽게 이슬람을 모욕할 수 있는 행위가 쿠란을 불태우거나 밟는 것이다. 이슬람은 신이나 선지자의 모습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 사실상 가장 작은 크기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상징물이 쿠란인 셈.특히 이번에 발생한 쿠란 소각 시위는 무슬림들의 생활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모스크 근처에서 발생했다. 또 이슬람의 중요한 명절인 ‘이드 알 아드하(희생제)’가 시작된 첫 날에 발생했다. 이드 알 아드하는 무슬림들이 선조로 꼽는 이브라힘이 아들 이스마엘을 신의 명령에 따라 제물로 바치려다 (이브라힘의) 깊은 믿음을 확인한 신이 ‘아들 대신 염소를 제물로 바치라’고 다시 명령했다는 이야기를 기념하는 명절이다.이수정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중동학)은 “이번 쿠란 소각 사건은 한 마디로 ‘레드라인’을 완전히 넘었고 이슬람권 국가들의 이른바 국민 정서에도 큰 상처를 줬다”며 “주요 이슬람 국가들이 앞 다퉈서 비판 메시지를 발표하는 이유다”고 말했다.유대교를 믿는 이스라엘과 앙숙인 이란은 모미카가 이스라엘 정보부인 ‘모사드’와 연관 있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이란 국영통신사인 IRNA에 따르면 이란 정보부는 모미카가 2019년부터 모사드와 일한 인물로 보고 있다. 이란 정보부는 모사드가 지난달 3~4일 20년 만에 이스라엘군이 서안지구(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에서 감행한 대규모 군사 작전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쿠란 소각 시위를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이라크에선 종교 지도자도 나서서 스웨덴 비판이번 쿠란 소각 사태 뒤 가장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이라크의 경우 현지 유명 시아파 지도자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가 목소리를 높인 것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알 사드르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시아파 고위 성직자를 지낸 명문가 출신으로 시아파가 다수인 이라크에서 종교계는 물론이고 정치권과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이로 인해 사담 후세인 정권(1979년 7월~2003년 4월까지 대통령 역임‧미국의 침공 뒤 도피 중이다 2003년 12월 미군에 붙잡혔고 2006년 12월 사형 당했다)이 무너진 뒤 이라크 정국이 혼란스러울 때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키웠다. 산하에 무장단체도 두고 있을 정도다. 미국이 이라크를 장악한 뒤, 이라크 안정을 위해 물밑에서 적극 접촉했던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알 사드르는 최근 “이라크 정부는 스웨덴과 외교 관계를 끊어야 한다. 스웨덴은 이슬람에게 적대적이었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라크인들이 대거 반스웨덴 시위에 참여하고, 주이라크 스웨덴 대사관에 불을 지르는 과격한 행위까지 이어지게 하는 데 영향을 줬다.● 테러에도 영향 준 이슬람 풍자 행위 중동 이민자들이 많은 유럽에서는 쿠란 소각을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이슬람 모욕과 풍자(희화화) 행위가 이어져왔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강조해왔고, 무슬림 이민자들로 인한 사회 문제를 많이 겪은 유럽의 현실을 감안할 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이로 인한 테러도 발생했다. 프랑스에서는 2015년 1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가 무슬림과 무함마드(이슬람의 선지자)를 풍자하는 만평을 자주 실어 테러 대상이 됐다. 당시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에서 형체를 표현해서는 안 되는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렸고, 이를 희화하는 만평을 잡지에 게재했다. 이를 이슬람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 프랑스 출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샤를리 에브도의 사무실을 찾아가 편집장을 비롯해 10명을 총으로 살해했다. 2020년에 10월에는 샤를리 에브도의 무함마드 만평을 수업 시간 자료로 활용한 중학교 교사 사뮈엘 파티를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살해했다.2005년 9월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테러범으로 표현한 만평을 그렸던 덴마크 만평가 쿠르트 베스테르고르는 2021년 7월 사망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베스테르고르는 동료 만평가 12명과 함께 무함마드를 폭탄 모양의 터번을 쓴 사람으로 묘사했었다. 2008년 주파키스탄 덴마크 대사관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8명이 숨졌는데, 가장 큰 이유는 베스테르고르의 만평에 대한 불만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이 책임연구원은 “무슬림 이민자가 늘어나는 나라의 중앙정부와 지자체 등에서 가장 우려하는 건 이슬람에서 금기시 하는 행위가 부각되는 시위”라며 “이 경우 극단주의자는 물론이고 평범한 무슬림들도 자극하고 더 큰 과격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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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대공습, ‘중동 화약고’ 터뜨리나[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작전 기간 2일, 사망자 수 13명(팔레스타인 12명, 이스라엘 1명), 부상자 120명 이상(팔레스타인 보건부 발표)… 3~4일(현지 시간) 진행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내 제닌 난민촌에 대한 군사작전 결과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이‧팔 분쟁)은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도 대표적인 갈등으로 꼽힌다. 역사도 길다. 1940년대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둘러싼 충돌은 계속돼 왔다. 그러다 보니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기 전에는 큰 주목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제닌 사태’도 사상자 수로만 볼 때는 특별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제닌 사태에는 전세계적인 관심이 모아졌다. 언론의 대규모 취재가 이뤄졌고, 중동 외교가의 시선도 집중됐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에서 중동학 박사학위를 받은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교수(한국이스라엘학회장)는 “상황을 계속 지켜봐야겠지만,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정책에 큰 변화가 나타나는 일종의 변곡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온건파 팔레스타인 지역인 서안지구에 20년 만에 대규모 공습무엇보다, 이스라엘이 2000년대 초반 대대적으로 발생했던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무장봉기)’ 이후 처음으로 서안지구에서 대규모 군사작전을 펼쳤다는 게 큰 특징이다. 비록 사상자는 적었지만 이스라엘은 최첨단 드론을 동원해 공습을 감행했고, 1000여 명의 지상군을 제닌 일대에 투입했다. 서안지구는 대이스라엘 무력 투쟁을 강조하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단체 ‘하마스가’ 관할하는 가자지구와 달리 비교적 온건한 성향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많다. 서안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하마스와 달리 이스라엘과의 대화와 협력을 강조해 왔다. 그 결과, 지난 20여 년 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무력 충돌은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발생했다. 가자지구에서는 2008년, 2012년, 2014년, 2021년, 지난해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대규모 충돌이 발생해 수백, 수천 명이 사망했다. 가자지구에서의 대규모 충돌은 이집트, 요르단, 미국 같은 ‘제3자’가 중재를 나서야 해결되는 경우도 있을 만큼 격렬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제닌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에 수백 명의 무장 팔레스타인인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6개월간 이스라엘을 겨냥한 50건 이상의 총격이 제닌 지역에서 이뤄졌다고 밝혔다. 실제로 제닌에는 다른 서안지구 내 지역에 비해 전통적으로 하마스 지지자가 많다. 2021년에 ‘제닌 여단(Jenin Brigade)’이란 무장단체도 탄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제닌 지역은 수십 년 간 이스라엘에 맞서 무장투쟁을 해온 역사가 있다”고 설명했다. ● 초강경 보수 이스라엘 내각의 ‘전선 확대’인가 하지만 ‘제닌 지역의 위험’ 못지 않게 현재 이스라엘 정부의 초강경 보수 성향이 그동안 주된 군사작전 대상이 아니었던 서안지구도 공격 대상으로 포함시키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이스라엘을 이끌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강경 보수파로 분류된다. 그는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로 지난해 12월 세 번째(첫 번째 임기 1996년 6월~1999년 7월, 두 번째 임기 2009년 3월~2021년 6월) 임기를 시작했다. 그의 정치적 성공 배경에는 ‘안보 제일주의’, 좀더 구체적으로는 ‘강경한 대팔레스타인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특히 이번 네타냐후 내각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우 성향이 강한 정당들 간의 연정을 통해 수립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물론이고 강경 극우 성향을 보이는 인사들이 대거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노골적으로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반대하는 이들이다.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부 장관은 “팔레스타인 마을을 없애야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 같은 건 아예 없다”는 ‘망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스모트리히 장관은 ‘유대인 정착촌’ 업무를 담당하기도 한다. 유대인 정착촌 정책은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에 유대인들의 집단 정착을 장려하는 게 목적이다. 실질적인 이스라엘의 영토 늘리기다. 팔레스타인 진영에서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조치다.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사회는 불법 행위로 간주하지만 이스라엘은 꾸준히 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극우 정당 ‘오츠마 예후디트(이스라엘의 힘)’ 소속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1월3일 이슬람교의 성지인 알아끄사 모스크(사원)가 있는 동예루살렘의 성전산(Temple Mountain)을 방문해 물의를 빚었다. 현재 요르단이 관리 중인 알아끄사 모스크는 누구나 방문 가능하지만 예배는 무슬림만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들은 팔레스타인, 나아가 아랍권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동예루살렘 특히 성전산 일대 방문을 자제했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 안보 정책을 담당하는 벤그비르 장관의 성전산 방문은 메시지가 명확하다. ‘노골적인 도발이다’, ‘점령자인 것을 과시하는 행동이다’는 비판이 나왔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현재 이스라엘 정부의 정치적 지향점이나 인적 구성을 감안할 때 ‘서안지구의 반이스라엘 무장 행위에도 가자지구에서처럼 강경하게 대응한다’는 전략이 수립되는 건 시간문제였다”며 “앞으로 이스라엘 군의 서안지구 내 작전이 더욱 잦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서 군사작전 못지않게 유대인 정착촌 확장 조치에도 힘을 기울일 전망이다. 유대인 정착촌 확장은 네타냐후 정권의 핵심 공약 중 하나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말 취임 선서를 하면서도 정착촌 확장 의지를 밝혔다. 유대인 정착촌은 서안지구 쪽에 집중돼 있다. 제닌 사태 이전에도 유대인 정착촌 문제를 둘러싼 서안지구 내 이·팔 갈등은 고조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말에도 서안지구 내 정착촌에 5700여 채의 주택 추가 건설 계획을 승인했다. 아랍국가의 대사급 외교관은 “장기적으로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서 최대한 이스라엘 정착촌을 확대하면서 제닌처럼 강한 반발이 나타나는 지역은 봉쇄하는 식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반발 커지며 가자지구처럼 변하는 서안지구 민심 향후에는 ‘대규모 유대인 정착촌 확장 움직임→팔레스타인의 강한 반발과 무력 투쟁→이전보다 많아지고 강경해지는 이스라엘의 군사작전→대규모 사상자 발생’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서안지구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서안지구에서 제2, 제3의 제닌 사태도 발생할 수 있는 것. 또 서안지구가 가자지구처럼 바뀌는 이른바 ‘가자지구화(化)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온건했던 서안지구의 전반적인 성향이 급격히 강경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무능과 부패로 서안지구 내 민심이 이미 오래전부터 변화하고 있었다는 평가도 많다. 온건파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실망감으로 지지가 줄어들면 강경파인 하마스가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가 서안지구에서 강했던 지역인 제닌 일대에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행정력이 거의 미치지 못했다. 지역 경비를 담당하는 팔레스타인 보안군도 제닌 일대에선 활동하지 않았다. 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제닌 사태 중에도 이스라엘과 협상하거나, 팔레스타인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이스라엘과의 대화를 중단한다’는 발표가 사실상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보여준 유일한 대응이었다. 성 교수는 “서안지구에서는 열악한 경제 사정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도대체 이스라엘과 대화하면서 무엇을 얻었느냐’는 반발감이 이미 커지고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제닌 공격 같은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이 계속된다면 서안지구의 가자지구화는 피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이스라엘의 제닌 공격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장례식에서도 서안지구 내 민심 이탈 현상은 제대로 확인됐다. 이스라엘 영자지인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제닌 사태 중 사망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장례식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고위관계자들이 참석하지 못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부 관계자들의 장례식 참석을 막았던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계자들이 장례식 참석을 거부당하는 동영상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점령자(이스라엘)에게 협력했다’는 식의 메시지가 퍼져나가고 있다. ● 서안지구로 전선 확대는 막 시작된 ‘아랍권과 해빙’에 악영향 “지금은 작전을 종료하지만 제닌에 대한 광범위한 조치는 일회성이 아니다. 우리는 제닌이 테러리즘의 안식처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4일 제닌 작전의 지휘를 담당한 기지를 방문해 이렇게 말했다. 분명한 서안지구로의 전선 확대 의지를 표명한 것. 네타냐후 총리는 국익이나 정치적 지향점 못지않게 개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그는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됐고,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사법부 무력화 법안(의회 과반 이상이 동의하면 대법원의 확정 판결도 뒤집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 포함)’을 추진하다 대규모 시위 사태가 발생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팔레스타인 압박 정책을 통해 지지 세력의 결집을 노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서안지구로의 전선 확대에는 치명적인 부작용도 있다. 무엇보다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의 최대 공적 중 하나로 내세우는 일부 아랍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의 두 번째 총리 임기 중이던 2020년 9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아브라함 협정(이스라엘과 아랍권의 외교 정상화)’에 참여해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과의 외교 정상화를 이끌어냈다. 현재 이스라엘은 모로코와 수단과도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했다. 궁극적으로 아랍권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수교를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2030 엑스포’ 유치 경쟁에서도 이스라엘은 사우디를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이 확대되고 이로 인한 피해가 커질 경우 아랍권의 반발 역시 거세질 수밖에 없다. 모로코는 최근 이스라엘과의 회담을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또 아브라함 협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권 국민들의 인식은 부정적이다. 카타르의 싱크탱크인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이 지난해 14개 아랍국가의 3만33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4%가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은 8%에 그쳤다. 또 76%가 ‘팔레스타인 문제는 아랍 전체의 문제다’라고 답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네타냐후 총리와 현 이스라엘 내각의 강경한 팔레스타인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도 변수다. 바이든 행정부는 꾸준히 유대인 정착촌 확장에 반대해 왔다. 네타냐후 총리는 집권한지 반년이 넘었지만 아직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도 못했다.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집권 뒤 반년이 지났는데도 진행되지 않은 건 이스라엘 총리에게 이례적인 일. 바이든 행정부와 네타냐후 정권 간의 거리감이 분명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서안지구에서 더욱 과감한 압박 정책을 펼치고 싶겠지만 아랍권과 미국과의 관계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내년 미국 대선 결과도 이스라엘의 향후 서안지구 관련 정책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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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우디가 ‘2030 엑스포’에 ‘올인’하는 이유[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무함마드 왕세자의 개혁·개방 성과 알리는 이벤트UAE, 카타르보다 뒤늦게 뛰어든 ‘국제 이벤트’ 유치 경쟁에서 성과 내야 사회문제는 더욱 논란되고 부각될 수도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다함께 내일을 향해.’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놓고 한국(부산), 이탈리아(로마)와 경쟁 중인 사우디아라비아(리야드)의 엑스포 테마다. 2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인근 이시레물리노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제172차 총회의 2030 엑스포 유치를 위한 경쟁 프레젠테이션(PT). 사우디는 왕실 구성원인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외무부 장관(왕자)와 리마 빈트 반다르 알 사우드 주미 사우디 대사(공주)를 중심으로 이브라힘 알 술탄 리야드 시장, 칼리드 알 팔레 투자부 장관 등이 발표자로 나섰다. 사우디 정부에서 영향력과 글로벌 감각을 갖춘 핵심 인사들이 대거 출동한 셈이다.이들은 PT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총리)가 취임한 뒤 달라지고 있는 사우디의 모습을 강조했다. 리야드에 개발될 예정인 세계 최대 도시공원(킹 살만 공원), 복합 문화 지구인 ‘뉴 무라바(새로운 광장) 프로젝트’, 최첨단 도심 철도망 구축 등이 소개됐다. 칼리드 장관은 공격적인 ‘오일머니’ 투입 계획도 강조했다. 그는 “사우디는 2030년까지 3조3000억 달러(약 4314조7500억 원)를 투자할 예정인데, 이 중 30% 이상이 리야드에, 엑스포에는 78억 달러(약 10조 20924억 원)가 투자될 것”이라고 밝혔다. BIE 행사장 밖에서도 사우디의 공격적인 홍보가 주목을 받았다. 사우디는 19일 명품 브랜드의 전시회와 상품 발표 행사 등이 자주 열리는 장소로 유명한 건축물로 에펠탑 근처에 있는 ‘그랑팔레’에서 BIE 회원국 대표단 초청 행사를 열었다. 파리 택시에도 리야드 엑스포 관련 광고를 부착시켰다. 말 그대로 엑스포에 ‘올인’ 하는 모습을 보였다. ● 일단 앞서 나가는 사우디…프랑스, 중국, 튀르키예, 이스라엘 지지 확보 현재 사우디는 2030 엑스포 유치 경쟁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우디 최대 영자지인 아랍뉴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179개 BIE 회원국 중 60개국 이상이 공식적으로 사우디 지지를 선언했다. 여기에는 프랑스, 튀르키예, 중국도 포함돼 있다. BIE 본부가 자리 잡고 있는 프랑스가 이웃 나라이며 유럽연합(EU)과 주요 7개국(G7)에서 오랫동안 협력해온 이탈리아 대신 사우디 지지를 공개 선언한 건 이례적이다. 중동 전문매체인 미들이스트모니터에 따르면 아랍의 ‘주적’ 이스라엘도 사우디를 지지하고 있다. 사우디와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다. 이스라엘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0년 9월 주도한 ‘아브라함 협정(이스라엘과 아랍권의 관계 정상화)’을 계기로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수단, 모로코 등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했다. 사우디가 엑스포 유치 경쟁에서 선전하고 있는 배경에는 당연히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통하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있다. 엑스포 유치 역시 무함마드 왕세자가 직접 지휘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처럼 직접 PT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BIE 총회 기간 중 파리를 찾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만나는 등 이른바 행사장 밖에서의 ‘고공 플레이’에 집중했다.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2030 엑스포 유치는 자신이 기획한 국가 중장기 발전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이벤트가 될 수 있다. 자신이 추구해 온 사우디의 개혁‧개방 성과를 전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 아버지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88)의 나이를 감안할 때, (사우디가 엑스포를 유치한다면) 무함마드 왕세자는 엑스포를 국왕의 신분으로 맞이할 수도 있다. 다시 한번,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등장과 성장을 알릴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또 사우디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아직 유치하지 못했다. 현재까지 사우디가 유치에 성공한 대규모 국제 이벤트는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네옴시티)과 2034년 아시안게임(리야드) 정도다. 2030 엑스포 유치에 성공한다면 사실상 사우디 건국이래 처음으로 현지에서 열리는 전세계적인 이벤트인 셈이다. 사우디가 2030 엑스포 유치에 진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은 “사우디로서는 엑스포 유치를 국가 위상 제고, 관광 자원 개발, 투자 유치, 국민의 자부심 고취 등을 동시에 추구하는 기회로 생각할 것”이라며 “한국의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와 유사한 효과를 노린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국제 이벤트 ‘아랍 최초 유치’를 UAE, 카타르에게 내준 아쉬움 ‘국가 자존심’ 차원에서도 사우디는 2030 엑스포를 특별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사우디는 이른바 이슬람권과 아랍권의 맹주다. 이슬람교 3대 성지(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중 2곳(메카, 메디나)를 보유하고 있다. ‘성지 수호국’이다. 사우디 국왕의 공식 명칭에는 ‘두 성지의 수호자’란 표현도 들어간다. 특히 사우디는 같은 종파(이슬람 수니파), 언어‧문화(아랍), 정치체제(왕정), 경제구조(석유와 천연가스 수출), 지리(아라비아반도와 걸프만)를 공유하는 국가들(사우디, UAE,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 사이에서의 중심국이다. 사우디는 이 나라들과 함께 1981년 5월 정치경제협력체인 걸프협력회의(GCC)를 구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지역과 종교 면에서 ‘중심 국가’의 면모를 확실히 갖췄고, 국제사회 전반에 걸쳐서도 영향력이 큰 나라지만 국가 브랜드를 높이고 전세계적 주목을 받는 국제 이벤트를 유치하지 못했다는 건 사우디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특히 이웃나라인 UAE와 카타르가 각각 2020 엑스포(코로나19로 실제로는 2021년 10월~2022년 3월에 열렸다)와 2022 월드컵을 유치한 건 사우디의 아쉬움을 더욱 키운다. 아랍, 나아가 중동 문화에서 부족(집안 혹은 왕실) 간 경쟁 의식은 상당하다. 가령, ‘마즐리스(Majlis‧가족과 친지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가족행사를 여는 일종의 사랑방 같은 공간)’를 화려하고, 독특하게 꾸미는 문화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강하다. 엑스포를 포함한 국제 이벤트 유치에서도 이런 경쟁 문화가 발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UAE나 카타르처럼 ‘작은 나라’가 아랍과 중동의 대표처럼 문화산업에서 주목을 받는 건 사우디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삼성물산, 삼성전자, KOTRA에서 근무하며 사우디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윤여봉 중동경제통상포럼 대표는 “GCC 국가들 간에도 경쟁 의식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며 “카타르에게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아랍 최초 개최’를, UAE에게 ‘아랍 최초 엑스포 개최’를 빼앗긴 만큼 사우디로서는 2030 엑스포를 유치해 파격적인 규모와 성과를 보여주려는 데 더욱 초점을 맞추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내부 인권문제 등 더욱 부각될 수도 사우디는 엑스포 유치를 통한 비석유 산업의 육성과 해외 투자 유치 같은 경제 효과도 기대한다. 또 국가 브랜드 이미지 개선에 대한 관심 역시 크다. 하지만 ‘사우디가 정말 개방적으로 변화하고 있느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기업 환경을 갖추고 있느냐’는 면에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이 적잖다. 사우디는 중동지역본부를 자국에 둔 기업만 정부와 공공부문 사업 입찰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겠다는 정책을 2021년 초에 밝혀 큰 논란을 빚었다. 무함마드 왕세자를 전세계적인 인물로 부각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네옴 프로젝트’ 역시 세부 전략이나 계획에서 잦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형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국제PR)는 “중·장기적으로 한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요소에는 정책과 제도의 안정성도 포함된다”며 “사우디를 포함한 중동 산유국들은 인프라나 이벤트 같은 하드웨어적 홍보 수단 못지않게 정책과 제도의 안정성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우디가 2030년 엑스포 유치에 성공할 경우 여성과 외국인 노동자 등과 관련된 인권문제가 더욱 부각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카타르도 2022 월드컵 유치를 계기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가 큰 논란이 됐었다. 이 교수는 “사우디가 최종적으로 엑스포를 유치한다면 인권문제는 물론이고 다른 사회문제들도 꾸준히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을 통해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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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스포츠 산업 노리는 ‘진격의 오일머니’[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축구, 골프, F1…스포츠 산업 향한 전방위 투자 아랍 젊은 리더들, ‘자기 성과 만들기’에 관심 커 ‘스포츠 워싱’과 ‘보여주기 이벤트’란 지적도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케이스 #1 지난해 12월 19일(현지 시간)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22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와 킬리앙 음바페의 프랑스가 맞붙은 이날 경기에서 타밈 빈 하마드 알 사니 카타르 국왕은 또다른 승자였다. 당시 메시와 음바페의 소속돼 있던 프랑스 리그앙(리그1)의 최고 명문팀 파리생제르맹의 소유주가 카타르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카타르투자청(QIA) 산하 스포츠 투자전문회사인 카타르스포츠인베스트먼트가 파리생제르맹을 소유하고 있다. 타밈 국왕으로서는 자국에서 열린 ‘중동 첫 월드컵’에서 사실상 자신이 구단주인 팀의 ‘월드 스타’ 두 명이 결승에서 경쟁하는 ‘흐뭇한 상황’을 보게 된 것. 카타르는 스페인 명문 FC바르셀로나에 대한 후원도 카타르재단(카타르 정부가 설립한 교육·문화·과학 분야 지원 비영리재단)과 카타르항공(국영항공사)을 통해 오랜 기간 진행해 온 ‘국제 축구계의 큰 손’이다. 케이스 #2 7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가 지원하는 LIV 인비테이셔널 골프(LIV)와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 DD월드투어(옛 유러피안투어)가 ‘통합’을 발표했다. 세 단체는 통합을 발표하며 “골프란 종목을 전 세계적으로 통합하기 위해 획기적인 합의를 이뤘다”고 밝혔다. 원래 LIV골프와 PGA투어는 앙숙이었다. 지난해 6월 출범한 LIV골프가 ‘오일머니’를 앞세워 더스틴 존슨, 필 미컬슨, 브룩스 켑카 같은 유명 선수를 PGA투어에서 빼갔기 때문. PGA투어는 LIV골프로 넘어간 선수들의 출전을 금지했다. 또 LIV골프는 PGA투어가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극심한 갈등 관계였던 LIV골프와 PGA투어가 통합한다고 하자 미국이 최근 소원해진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사우디에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합 발표가 있던 날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사우디를 방문했다. PIF가 새로운 통합 골프 단체의 독점적 투자자란 점도 ‘미국의 사우디 배려’에 힘을 실어주는 근거다.● 오일머니에 술렁이는 글로벌 스포츠 산업아랍 왕정 산유국들의 글로벌 스포츠 산업을 향한 진격이 거세다. 현재는 사우디와 카타르의 스포츠 산업에 대한 투자가 돋보인다. 하지만 막대한 오일머니를 보유한 아랍에미리트(UAE)와 쿠웨이트도 언제든지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사우디는 ‘미스터 에브리싱’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가 실권을 잡으면서 스포츠 산업에 대한 투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2018년부터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E’를 열고 있고, 2019년에는 ‘사막의 혈투’로 불린 WBA·IBF·WBO·IBO 복싱 헤비급 통합 타이틀전도 유치했다. 역사는 짧지만 두둑한 상금으로 유명 테니스 선수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디리야 테니스컵’도 사우디가 무대다. 디리야는 수도 리야드에 위치한 사우디 왕가의 발상지로 현지에선 주요 역사 유적지로 통한다. 축구에도 관심이 많다. PIF를 통해 2021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뉴캐슬유나이티드에도 3억 파운드(약 4882억 원)를 투자했다. PIF가 뉴캐슬의 최대 주주가 된 뒤 우수 선수대거 영입 등 파격적인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2021~2022 시즌 11위에 그쳤던 뉴캐슬은 최근 끝난 2022~2023 시즌에서는 단번에 4위에 올랐다. 사우디는 은퇴를 앞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과 카림 벤제마(프랑스) 같은 월드 스타를 자국 프로축구팀에 영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우디는 국제 스포츠 이벤트 유치에도 시동을 걸었다. 이미 2034년 아시안게임(리야드)과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네옴시티)을 유치했다. 사우디 건국 이래 자국에서 열리는 최대 스포츠 행사가 될 전망이다. 2036년 올림픽 유치를 통해 ‘중동 최초의 올림픽’ 타이틀을 획득한다는 목표도 있다. 최근 스포츠 산업에 대한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사우디와 달리 카타르는 이미 1990년대부터 스포츠 산업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카타르는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의 ‘중동 최초 유치’란 타이틀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건 2022년 월드컵이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도 2019년에 중동 최초로 개최했다. 카타르는 아랍권에서는 처음, 중동권에서는 두 번째로 2006년에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나라다. 그리고 2030년 아시안게임을 다시 유치했다. 중동 국가 중 처음으로 두 번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나라로 이름을 올리게 된 것. 경기도와 비슷한 크기의 작은 나라가 ‘국제 스포츠 이벤트 허브’란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은퇴를 앞둔 유명 축구 선수를 자국 프로리그에 영입하는 것도 중동에서는 카타르가 원조다. 스페인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사비 에르난데스(FC 바르셀로나 감독)와 가비 페르난데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코치)가 선수 시절의 말년을 카타르에서 보냈다. ● 젊은 리더의 국가 브랜드 이미지 개선 작업사우디와 카타르가 유독 스포츠 산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는 이유로는 국가 브랜드 이미지 개선이 꼽힌다. 교육 수준이 높고, 외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은 젊은 리더들이 나라를 이끌면서 본격적으로 소프트파워 역량 키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것. 무함마드 왕세자와 타밈 국왕은 각각 38세, 43세다.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 나아가 문화콘텐츠 산업 전반에 대한 관심을 키우며 성장한 세대다. 또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 폐쇄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자국의 이미지를 바꾸려는 의지도 분명하다. 이형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국제PR)는 “아랍 산유국의 젊은 지도자들은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에 집중했던 기성세대 지도자들과 구별되는 성과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 중 하나로 국가 브랜드 이미지 개선을 삼았을 수 있다”며 “그동안 국가 차원의 관심이 많지 않았던 분야인 만큼, 새로운 리더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게 상대적으로 쉬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포츠의 경우 결과가 쉽게 확인되고, 국내외에서 동시에 관심을 받는 것도 용이해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적절한 도구”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사우디와 카타르 같은 아랍 산유국들은 오일머니로 큰 부를 축적했지만 △외국인 노동자 인권 문제 △여성 차별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 강조 △극단주의 성향의 무장단체 지원 의혹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천문학적인 돈을 스포츠 산업에 투자할 때마다 전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지만 동시에 ‘스포츠워싱(스포츠를 이용한 부정적인 이미지 세탁)’이란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특히 카타르는 2022년 월드컵을 앞두고 자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저임금, 위험한 근무 환경, 열악한 거주시절 등으로 큰 비판을 받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심층 탐사보도를 통해 “2010년부터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이주 노동자 6500여 명이 카타르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보여주기식 이벤트? 경제 성장 위한 전략?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의 중‧장기 종합발전 계획인 ‘비전 2030‘을 통해 △탈석유(산업 다각화) △네옴시티 개발 △과학기술 역량 강화뿐 아니라 스포츠와 문화콘텐츠 산업의 육성도 강조하고 있다. 한 마디로, 석유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는 사우디 경제의 체질 개선을 지향하고, 이 과정에서 스포츠 산업도 키우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우디를 포함해 아랍 산유국들의 스포츠 산업에 대한 투자와 관심은 여전히 ‘유명 대회나 선수 유치’ 식의 보여주기 조치에 머물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 유치와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관련 산업 활성화 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거의 없다. 예산 및 재정 타당성 분석과 인력 양성 계획도 마찬가지다. 이수정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중동학)은 “아직까지 아랍 산유국들의 스포츠 산업에 대한 투자는 단순한 국가 홍보 프로젝트 성격에 머물고 있다”며 “지속적인 경제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우디와 카타르 모두 글로벌 스포츠 산업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국부펀드를 많이 이용한다. 보통 국부펀드는 안정적이면서, 지속가능한 성과가 나는 투자를 지향한다. 또 체계적인 투자 전략을 강조한다. 하지만 PIF나 QIA가 얼마나 치밀한 전략을 바탕으로 스포츠 산업에 투자하는 지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아랍 산유국 국부펀드와 교류해본 경험이 있는 최희남 전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은 “과거보다 투자전략이나 의사결정 구조가 많이 체계화됐지만 여전히 아랍 산유국 국부펀드들은 왕실이나 정부의 주요 프로젝트에는 세밀한 검토 없이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며 “스포츠 산업도 수익성과 성장 가치보다는 왕실과 정부의 관심 사업이라 파격적으로 투자하는 성향이 강해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아랍 산유국들이 경제 구조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는 해외 기업과 투자 유치를 위해 스포츠 산업을 활용하려는 의도가 강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은 “사우디와 카타르 같은 아랍 산유국으로선 개혁‧개방 의지와 소프트파워 역량을 꾸준히 보여줘야 유명 글로벌 기업과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된다”며 “일회성 대회 유치나 이벤트 참여가 아니라 지속적인 스포츠 산업 투자는 장기적으로 경제 구조를 바꾸고, 수준을 높이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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