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대에도 ‘마이 웨이’ 외치는 이스라엘[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4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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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스라엘, 가자지구 남단 ‘라파 지상전’ 둘러싸고 갈등 깊어져
미 민주당에선 ‘네타냐후 정권 교체’까지 언급
네타냐후, 反팔레스타인 의식 강하고, 정치 생명 연장 위해 전쟁 장기화 추진
이스라엘, 미국 내 막강한 ‘유대인 파워’ 기반으로 자기 목소리 낼 수 있어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인사이트>, <중동 라이벌리즘>,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10월 7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으로 촉발된 ‘가자지구 전쟁’의 공격 범위와 방법을 둘러싸고 두 나라 간 입장 차이가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민간인들의 사실상 마지막 남은 피란처인 라파(가자지구 남단으로 이집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음)에서 대규모 지상전을 강행하려는 것에 분명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동에서의 전쟁 장기화는 11월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에서 인명 피해가 커지는 것도 바이든 대통령에게 큰 부담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가자지구에서는 팔레스타인인 3만 명 이상(가자지구 보건부 집계)이 사망했다. 현재 140만여 명의 피란민들이 거주 중인 라파에서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감행하면 인명 피해는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아랍계 유권자들과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이 강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불만을 키울 수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 남단 라파에서 대규모 지상전을 감행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텔아비브=AP 뉴시스
미국 민주당에서도 최근 이스라엘의 움직임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네타냐후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훌륭한 연설이었다”고 평가했다.

반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전혀 흔들림이 없다. 그는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는 라파에서도 대규모 지상전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네타냐후 총리는 22일 이스라엘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면담한 뒤에도 성명을 통해 “라파에 진입하지 않으면 남은 하마스 부대를 제거할 수 없다. 미국의 지지 속에 이를 수행할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필요하다면 스스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이 우방국이며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분명한 반대 메시지에도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이스라엘이 미국에 큰 소리 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가자지구 전쟁 발발 초기에는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하지만 최근 가자지구에서 인명 피해가 급증하고, 전쟁 장기화 우려와 지지층의 비판이 제기되자 이스라엘의 라파 지역에 대한 지상전을 반대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 하마스 궤멸 없이는 네타냐후의 정치 생명도 끝
현재 전쟁을 가장 원하는 사람은 네타냐후 총리란 평가가 많다. 2022년 12월 말 세 번째 임기(첫 번째 임기 1996년 6월~1999년 7월, 두 번째 임기 2009년 3월~2021년 6월)를 시작한 네타냐후 총리는 역대 최장수 이스라엘 총리다.

그는 강경한 안보 전략을 바탕으로 많은 성과를 이뤄냈지만 다양한 부정부패 혐의로 이스라엘 수사 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아왔다. 또 기소도 돼 있는 상태다.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채 총리에서 물러나면 감옥행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인 것.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연구실장(한국이스라엘학회장)은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가자지구 전쟁을 이유로 최대한 오랜 기간 집권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하고,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했다는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며 “미국과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라파까지 지상군을 투입해 대규모 전쟁을 벌이려는 가장 큰 이유다”고 말했다.

12일 가자지구 라파에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구호 식품을 받기 위해 그릇을 내밀고 있다. 라파=AP 뉴시스
네타냐후 총리는 세 번째 임기가 시작된 뒤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에서 과반이 동의하면 대법원 확정 판결도 뒤집을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사법 조정안’을 마련하는 데도 공을 들여왔다. 이 과정에서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해 중동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와 법치가 보장되는 이스라엘을 후진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받았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피해가 워낙 컸기 때문에 네타냐후 총리에 부정적인 진영에서도 일단은 ‘하마스 궤멸’이란 목표에 동의하는 상황이다. 특히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과 연정을 이룬 초강경 보수 진영에서는 라파 진격을 포함한 광범위한 공격 확대를 지지한다.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연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역시 강경한 대응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네타냐후의 친형, 팔레스타인 테러범과 싸우다 사망
네타냐후 총리의 특별한 가족사도 감안해야 한다. 네타냐후 총리의 친형 요나탄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 테러범들과 싸우다 사망했기 때문이다.

1976년 7월 특수부대에서 복무 중이던 요나탄은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이 에어프랑스 항공기를 아프리카 우간다 엔테베에서 납치해 터진 ‘엔테베 작전’에 투입됐다. 그리고 테러범들과 교전 중 사망했다. 당시 유일한 이스라엘군 사망자가 요나탄이었다.

이스라엘이 우간다에서 터진 납치 사건에 특수부대를 파견했던 건 총 260명의 항공기 탑승객 중 이스라엘 국적자와 유대인이 106명이나 됐기 때문이다.

형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네타냐후 총리는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을 마치지 못했다. 또 형의 죽음으로 테러와 정치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적 성향 역시 더욱 보수적으로 변했다. 많은 이스라엘과 아랍권 사람들은 “네타냐후 총리의 강경한 안보관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반감의 배경에는 형의 죽음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 미국을 움직이는 이스라엘의 힘
네타냐후 총리가 미국의 반대에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배경에는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가진 역량도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막강한 유대인 파워가 있다. 금융계를 중심으로 정치, 법조, 행정, 언론, 학계 등에서 유대인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미국 유대인들의 정치적 성향은 다양하다. 그러나 ‘친이스라엘’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는 점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동일하다.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미국 내 보수 성향이 강한 사람들, 특히 복음주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친이스라엘 성향은 매우 강하다.

2019년 3월 미국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IPAC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온사람들이 이스라엘과 미국 국기를 함께 흔들고 있다. 이들은 행사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 필요성을 설명했다. 동아일보 DB
2019년 3월 미국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IPAC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온사람들이 이스라엘과 미국 국기를 함께 흔들고 있다. 이들은 행사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 필요성을 설명했다. 동아일보 DB
미국 유대인들의 단체인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은 현지 정치권에서 가장 영향력이 센 로비단체 중 하나로 분류된다. 미국 정치인들 사이에선 선거나 중요한 정책 입안을 앞두고 꼭 찾아가서 ‘눈도장’을 찍어야 하는 단체로 여겨진다. AIPAC이 아니더라도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정치권에 전달하고 다양한 로비를 펼치는 단체와 인사는 많다. 한마디로, 이스라엘 입장에선 ‘라파 지상전 정도는 감행해도 이스라엘을 확실히 지지해 줄 세력이 미국 정치권에 충분히 있다’는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에서 미국과 가장 오랜 기간 신뢰를 쌓았고, 동일한 가치(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도 이스라엘은 특별하다.

특히 미국이 40년 이상 ‘주적’으로 여겨온 이란을 견제하는데 이스라엘은 꼭 필요한 존재다. 사실상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고, 군사 역량도 크게 떨어지는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같은 아랍 왕정 산유국들과 달리 이스라엘은 세계적인 수준의 정보 역량, 방공망, 군사력을 갖췄다. 핵무기도 보유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중동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할 때 이스라엘의 다양한 도움을 받는다. 2020년 1월 미국이 무인기(드론)을 이용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살해할 때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란 견제는 물론이고 최근 중동에서 커지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도 미국으로서는 확실한 우방국이며 군사 강국인 이스라엘을 소홀히 여길 수 없다”고 말했다.

● 가자지구 전쟁, 얼마나 큰 변화를 불러올까
많은 아랍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미국의 버릇없는 자식(Spoiled Child of US)’이라고 표현한다.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성장했고, 멋대로 팔레스타인(나아가, 다른 중동 나라들)을 공격하고 탄압한다는 뜻이다. 부모가 자식 편을 들 듯, 미국이 결국은 이스라엘 편을 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자지구 전쟁을 둘러싸고 갈등에 빠진 미국과 이스라엘. 결국 그들은 금방 다시 화해할까. 아니면 이번 갈등은 오래갈까.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과 정치 생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에게 이번 가자지구 전쟁은 최종적으로 어떻게 작용할까.

가자지구 전쟁은 이스라엘과 하마스뿐 아니라 미국 정치에도 이미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나라들이 더욱 가자지구 전쟁을 예의주시해야 할 이유다.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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