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19일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이라크전쟁 개전을 선언한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왼쪽 사진)과 지난달 28일 트루스소셜에 올린 영상 성명을 통해 이란전쟁 개전을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이라크전은 ‘파월 독트린’을 지키지 않아 실패한 전쟁으로 평가된다. 사진 출처 백악관 및 트루스소셜
김상운 국제부 차장 “미국을 상대로 이란의 어떠한 선제공격이 임박했다는 정보를 듣지 못했다. 트럼프가 ‘선택에 의한 전쟁(war of choice)’을 시작했다.”(마크 워너 미 상원 정보위원회 부위원장)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위협의 범위와 시급성에 대한 주요 정보를 의회와 국민들에게 제공하지 않았다.”(척 슈머 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발발한 미국-이란 전쟁의 명분과 방법을 둘러싸고 벌써부터 미국 내에서 비판 여론이 불거지고 있다. 비판론의 중심에는 그동안 미국이 전쟁 수행의 핵심 원칙으로 여겨온 ‘파월 독트린(Powell Doctrine)’이 자리 잡고 있다.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1937∼2021)이 창안한 이 원칙은 미국이 군사력을 사용할 때 △명확한 국가 이익과 달성 가능한 목표가 존재하고 △국민과 의회의 지지를 확보하며 △외교적 수단이 모두 소진된 뒤 최후 수단으로 압도적 군사력을 투입하고 △분명한 출구전략을 갖춰야 한다는 조건을 담고 있다. 이는 장기전의 수렁에 빠져 막대한 희생만 낸 채 반전 여론에 밀려 후퇴한 베트남전쟁의 교훈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중에 거짓으로 드러난 ‘대량살상무기(WMD) 제거’ 명분을 내걸고 전쟁을 일으켜 미국의 도덕성에 큰 흠집을 낸 이라크전쟁도 ‘파월 독트린’에 어긋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렇다면 이번 이란 전쟁은 파월 독트린에 비춰볼 때 어떤 특성을 갖고 있을까.
● 불명확한 전쟁 목표와 출구전략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란과의 전투 개시를 선언하며 “우리의 목표는 이란 정권의 ‘임박한 위협’을 제거함으로써 미 국민을 방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 정보당국은 아직까지 미국을 겨냥한 선제공격 등 임박한 위협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ABC뉴스가 2일 전했다.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제거 후 정권 이양 목표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트럼프는 1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간부들이 무기를 국민들에게 넘겨주기를 바란다”면서도 “난 우리가 베네수엘라에서 했던 게 완벽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 봉기에 따른 정권 교체와, 정책 전환을 조건으로 한 지도부 유지라는 상반된 목표를 함께 언급한 것.
미국은 베네수엘라 군사작전에서도 이런 행태를 보였다. 리처드 폰테인 미국 신안보센터(CNAS)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에서 마약 차단,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처벌, 석유 회수, 먼로 독트린 적용 등 목표가 계속 바뀌었다”며 “미국이 무얼 위해 싸우는지, 무엇이 성공인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 의회 패싱한 기습 작전
미국의 이번 이란 공격은 제네바 핵 협상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의회에 대한 사전 보고나 승인은 없었고,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절차도 누락됐다. 올 초 단행된 베네수엘라 군사작전도 마찬가지. 이는 미국이 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당시 대통령이 의회를 설득하고, 국민적 여론을 결집한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이란과의 핵 협상이 진행 중이었다는 점에서 외교 수단이 모두 소진된 뒤 최후 수단으로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과도 어긋난다.
● ‘제한적 정밀타격’ 통한 치고 빠지기
파월 독트린에 따르면 일단 군사작전이 시작되면 지상군을 비롯한 압도적 군사력을 투입해 장기 소모전으로 흐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최근 트럼프가 이란에 지상군 투입 가능성을 시사하긴 했지만, 현재까진 해·공군력 위주의 제한적 정밀타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방공망을 무력화한 뒤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하는 선에서 그친 베네수엘라 사례와도 유사하다.
이에 대해 첨단 군사 기술 발달 등 시대 변화를 반영한 거라는 해석도 있다. 베네수엘라의 무기 시스템을 무력화한 일명 ‘디스컴버뷸레이터(Discombobulator)’나 이란 전쟁에서 정부 시스템 해킹 같은 사이버전이 적극 활용된 게 대표적이다.
결국 미국의 전통적인 전쟁 방식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트럼프식 이란 전쟁은 모호한 전쟁 목표로 인한 장기전 함정에 빠지지 않고, 국민적 합의를 이뤄낼지에 그 성패가 달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파월 독트린(Powell Doctrine)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이 창안한 전쟁 수행의 원칙. △명확한 국가 이익 및 달성 가능한 목표의 존재 △국민 및 의회 지지 확보 △최후 수단으로 서 압도적인 군사력 투입 △분명한 출구전략을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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