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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사랑은 동사다[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35〉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입력 2022-03-23 03:00업데이트 2022-03-23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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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간에 걸친 단식을 끝낸 남자는 큰 판지를 들고 서 있었다. 거기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그것은 행동하는 단어다.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앞의 두 문장은 그가 좋아하는 트립합 밴드 ‘매시브 어택’의 ‘눈물방울’에 나오는 노랫말로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

리처드 랫클리프라는 평범한 영국인 이야기다. 그의 시련은 2016년 4월에 시작됐다. 어린 딸을 데리고 친정부모를 만나러 이란에 갔던 아내가 귀국길에 테헤란 공항에서 체제전복혐의로 체포됐다. 영국에 있던 남편은 애가 탔다. 영국정부는 자기들이 알아서 해결할 테니 “호들갑 떨지 말고” 있으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역구의원도 찾아가고 언론에 호소도 하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아내와 같이 2주에 걸쳐 단식투쟁까지 했다. 아내는 테헤란 감옥에서, 그는 런던 주재 이란대사관 앞에서 했다. 그것도 안 통하자 그는 2021년에는 영국 외교부 건물 앞에서 3주 동안 단식을 했다. 아내를 기억해달라는 간절한 호소였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아내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 있었다.

그의 아내는 인질이었다. 이란은 1979년에 팔레비 정권이 영국은행에 맡긴 4억 파운드(약 6400억 원)를 영국이 돌려주지 않자 그의 아내를 인질로 삼았다. 그는 목숨을 걸고 행동하면서 그 실상을 세상에 알렸다. 그것이 시민들을 움직이고 정치인들을 움직였다. 결국 정부는 여론에 밀려 이란에 돈을 돌려줬고 그의 아내는 2022년 3월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6년 만의 일이었다. 그의 눈물겨운 헌신 덕이었다. 그를 아낌없이 도와주었던 지역구 여성의원은 의회에서 석방 소식을 전하며 우스갯소리로 그가 “세상의 남편들에 대한 기준을 높여놓았다”고 말했다. 그랬다. 그는 매시브 어택의 노랫말처럼 사랑이 실천적 동사라는 것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정형화된 명사가 아니라.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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