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진 씨(왼쪽)가 올 2월 7일 제1회 영덕대게 전국피클볼대회에선 남자 복식 130+(나이 합계) 부에서 우승한 뒤 파트너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박철진 씨 제공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에 있는 피클볼 코트에서 ‘딱’… ‘딱’… ‘딱’…. 경쾌한 타구감이 이어졌다. 박철진 씨(68)가 지인들과 피클볼(Pickleball)을 치고 있었다. 지난해 6월부터 피클볼을 시작한 그는 2월 7일 열린 전국대회에서 1위를 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70세가 눈앞인 그가 어떻게 6개월여 만에 전국 최강이 됐을까?
박철진 씨가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 피클볼 코트에서 피클볼을 하고 있다. 축구 선수 출신이지만 어깨 회전근 파열과 위암 후유증 등으로 스포츠를 즐기지 못했던 박 씨는 지난해 6월 피클볼에 입문해 올해 전국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고양=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박 씨는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축구선수로 활약했다. 체육 교사 및 축구 감독으로 25년 넘게 학생들을 지도했다. 운동 신경을 타고났지만, 사회생활 하면서 배구 등 스포츠를 즐기다 양쪽 어깨 회전근이 파열됐다. 게다가 위암 수술에 이은 항암 치료로 체력까지 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좋아하던 스포츠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그런데 피클볼은 달랐다.
“의사가 어깨가 완전히 망가질 수 있다며 테니스와 골프 등 채를 가지고 하는 운동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죠. 그래서 젊었을 때 즐기던 골프도 특별한 경우 아니면 치지 않았죠. 항암 치료로 체력까지 떨어진 뒤에는 거친 운동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했죠. 하지만 피클볼은 체력 소모가 크지 않으면서 체력을 키워줬어요. 무엇보다 다양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 재미까지 더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1965년 미국에서 발명된 피클볼은 테니스 및 탁구와 유사하면서도 배드민턴 복식 코트(13.4m X6.1m)에서 즐기는 패들(라켓) 스포츠다. 공도 구멍이 뚫려 있는 플라스틱 재질이다. 실내외에서 즐길 수 있고, 코트 크기가 탁구에 비해 크고 공이 땅에 닿아도 되기 때문에 보통 테니스의 변형 스포츠로 불린다. 2명(싱글), 4명(복식)이 즐길 수 있다. 경기 규칙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박철진 씨가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 피클볼 코트에서 패들로 공을 받아 넘기고 있다. 고양=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피클볼이 인기란 소식에 박 씨는 집(경기도 고양시 일산) 근처 백석 알미공원피클볼문화센터를 찾아 기본기부터 배웠다. 그는 “골프나 테니스처럼 어깨를 크게 돌리지 않고 상하좌우 90도 내에서 샷을 할 수 있어 어깨에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코트가 테니스 복식 코트(23.77mX10.97M)에 비해 훨씬 작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크지 않고, 부상 위험도 적다고 했다.
매일 2~3시간 땀을 흘렸다. 엘리트 선수 출신이다 보니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배운 지 넉 달 만인 지난해 10월 고양시 대회 남자 복식에서 준우승했다. 11월 충북 청주에서 열린 전국대회에선 6위. 그리고 올 2월 7일 제1회 영덕대게 전국피클볼대회에선 남자 복식 130+(나이 합계) 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제 나이가 내일모레 70세입니다. 피클볼은 누구나 해도 됩니다. 쉽게 배울 수 있고, 부상 위험도 적어 남녀노소 함께 즐길 수 있어요. 특히 어르신들이 재밌게 즐기며 체력도 키울 수 있어, 최고의 실버 스포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즐기는 가족들도 많습니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진입장벽도 낮다. 간단한 운동복 차림에 패들과 공만 있으면 할 수 있다. 패들도 비싼 것도 있지만 몇만 원이면 살 수 있다. 박 씨는 “굳이 코트가 없어도 패들만으로 공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그래서 여행 갈 때 패들하고 공만 가지고 가면 빈 공간에서 언제든 칠 수 있다”고 했다.
거친 스포츠는 아니지만, 느낌은 테니스나 탁구 치듯 격렬하다고 했다. “플라스틱 공인 데다 탁구공보다 10배는 커서 스피드는 빠르지 않은데 때릴 때 타구감이 정말 좋아요. 경쾌하게 울리는 소리에 계속 랠리를 하다 보면 리듬감까지 더해져 스트레스가 날아갑니다.”
박철진 씨가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 피클볼 코트에서 패들로 공을 받아 넘기고 있다. 고양=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박 씨는 피클볼을 한 뒤 무릎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는 “솔직히 임상학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데 힘들던 계단 오르내리기가 어느 순간부터 쉬워졌다”고 했다. 그동안 간간이 산책과 걷기 정도 하다가 주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운동을 꾸준히 하다 보니 무릎 상태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전남 목포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던 박 씨는 2006년 위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하고 항암 치료까지 마치니 90kg이던 체중이 70kg으로 줄었다. 2012년 거스 히딩크와 허정무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합심해 유소년축구 발전을 위해 만든 ‘H&H 재단’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명예퇴직하고 교직을 떠났다. H&H 재단 일을 그만두면서 딸들이 있는 고양시에 둥지를 틀었고, 2019년 지역 축구 발전을 위해 ‘J FC 클럽’을 만들었다. 12세 이하, 15세 이하 유소년팀부터 성인반까지 운영했다. 지금은 모든 운영을 축구 후배에게 넘기고 피클볼에 매진하고 있다.
거스 히딩크(왼쪽)와 허정무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둘은 한국 유소년 축구 발전을 위해 ‘H&H 재단’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DB박 씨는 축구인으로서 목포 지역 축구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난 뒤 월드컵 개최 잉여금으로 각 지역에 축구 센터를 지었는데, 그때 허정무 전 감독과 함께 축구 센터 유치를 위해 뛰었고, 유치에 성공했다. 목포축구센터가 탄생한 배경이다.
박 씨는 노벨 문학상을 포함해 세계 4대 문학상(부커상, 공쿠르상, 전미 도서상) 수상자들의 책 4500여 권을 구입해 읽고 소장하고 있다. “운동선수 출신으로 지도자가 됐는데 사실 아무것도 몰랐죠. 한마디로 무식했죠. 그래서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기준을 세계 4대 문학상 수상자로 정했죠.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40여 년 꼬박꼬박 책을 읽었습니다.”
박철진 씨가 경기 고양시에서 ‘J FC 클럽’을 운영할 때 클럽하우스에 책을 비치한 모습. 박철진 씨 제공책을 읽고 네이버 블로그에 독후감을 남겨 파워블로거가 됐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山冊(산책·robinhood812)’을 운영하고 있다. 팔로우하는 사람만 3000여 명이다. 각 문학상 발표 시기가 되면 후보작을 미리 예견하는 글을 올리기도 한다. J FC를 운영할 땐 클럽하우스에 책을 비치해 아이들이 읽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박 씨는 지난해 10월부터는 고양시 식사동에 코트를 마련해 ‘J FC’란 피클볼동호회를 만들었다. 현재 60여 명의 회원들과 매일 피클볼을 치고 있다. 그의 향후 목표는 피클볼을 활용한 시니어 스포츠 활성화다. 그는 최근 피클볼 프로 2급 자격증을 획득했다. 직접 피클볼을 치며 시니어들에게 노하우도 전수할 계획이다.
“이젠 제 건강도 챙기면서 시니어 건강 증진에도 힘쓰고 싶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대부분 시니어가 걷기만 합니다. 그래선 건강하게 살기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즐겁게 게임도 하면서 체력을 키우기에 피클볼이 정말 좋습니다. 나이 들수록 함께 어울려야 외롭지 않습니다. 피클볼은 정말 배우기 쉽고, 부상 위험도 적습니다. 꼭 한번 해보세요.”
박철진 씨(오른 쪽에서 두 번째)가 지난해 경기 고양시피클볼대회에 출전했을 때 회원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박철진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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