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90만 건 주취 신고, 치안 공권력 소진 심화
공무집행방해 사범 4명 중 3명이 주취자 현실
보호조치 규정 속 주취 난동 면책, 책임 물어야
상습 난동 엄정 처분 통한 치안 대응 여력 회복
김영식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2025년 주취자 보호조치 신고는 90만 건을 넘었다. 하루 평균 약 2500건이다.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붙잡힌 이들 중 상당수가 주취자다. 경찰청 집계 결과 공무집행방해 사범은 2024년 기준 9481명으로 이 가운데 주취자는 7372명(77.8%)이었다. 동아일보가 기획 보도한 ‘골든타임의 약탈자들’에 따르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주취자 한 명을 상대하는 데 경찰관 2, 3명이 수 시간 투입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폭행이나 기물 파손 등 명백한 범죄에 이르지 않는 한 주취자는 현행 경찰관직무집행법상 ‘처벌 대상’이 아니라 ‘보호 대상’으로 분류된다. 술이 깰 때까지 경찰관은 치안 현장의 최전선에서 주취자를 달래고, 물을 떠다 주고, 그런 뒤 귀가 조치한다.
그러나 이 시간은 누군가의 구조 요청, 폭력 피해 신고, 실종 아동 수색에 쓰였어야 할 공적 자원이다. 취객에게 경찰의 발이 묶여 있는 사이 다른 누군가의 생명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주취 난동이 늘어날수록 긴급 대응의 여력은 줄어든다. 이는 단순한 행정력 낭비가 아니라 공공안전의 구조적 침식이다.
그렇다고 술 자체를 악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마시는 술이 난동 행위의 시발점일 수는 있지만 파출소 현장에서 밤마다 치르는 주취 홍역의 본질은 아니다. 또 주취자에게도 보호 조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보호한다고 난동 행위까지 면책해서는 안 된다. 공공장소에서의 난동은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타인의 안전을 침해하는 행위다.
결국 책임을 묻지 않는 사회, 그리고 공권력의 소진을 당연시하는 무감각이 본질적인 문제다. 더 이상 ‘주취무법(酒臭無法)’ 사회를 방치할 수 없다. 공권력이 취객의 편의를 봐주는 데 쓰이게 할 것인지, 시민의 안전을 지키게 할 것인지 사회가 선택해야 한다.
술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러나 모든 사회가 같은 혼란을 겪는 것은 아니다. 영국은 난동 주취자에게 현장에서 즉시 벌금을 부과한다. 미국과 호주는 폭력성이 확인되면 곧바로 형사범으로 전환한다. 프랑스는 공공장소 만취자를 보호 유치하고 비용을 청구한다. 제도는 명확하고, 책임은 분명하다.
반면 우리는 주취자를 보호 조치의 대상으로 규정하면서도 책임은 충분히 묻지 않는다. 술은 개인의 선택이다. 만취 상태에 이를 정도의 음주 역시 자기 책임의 영역이다. 형법의 기본 원칙은 ‘자기 책임’이다. 스스로 초래한 위험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 법치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유독 주취 난동만큼은 사회가 대신 비용을 떠안고 있다.
이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반복적 주취 난동에 대해서는 형사 책임을 보다 엄정하게 묻는 체계가 필요하다. 단순 훈방이나 관행적 선처가 아니라 상습성에 대한 가중 처벌과 즉결심판 절차의 간소화를 통해 신속한 처분이 뒤따라야 한다. 술에 취했다는 사정이 책임을 감경하는 사유가 아니라 오히려 위험을 자초한 사정으로 평가돼야 한다.
아울러 민사적 책임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주취로 인해 과도하게 투입된 공공 비용에 대해 일정 부분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고의적·상습적 난동의 경우 경찰력 낭비와 시설 훼손 비용을 청구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공짜 보호’라는 인식이 깨지지 않는 한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나 주취해소센터 등 보호·관리 인프라는 강화돼야 한다. 다만 그 운영 역시 책임의 원칙과 분리돼서는 안 된다. 상습 난동자에 대해서는 이용 비용 부담이나 사회봉사 의무 부과 등 책임을 수반하는 장치가 병행돼야 한다.
물론 인권은 중요하다. 만취 상태의 취약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인권과 면책은 다르다. 보호는 하되 책임은 묻는 것이 법치의 균형이다. 지금처럼 보호만 있고 책임이 따르지 않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그 대가는 결국 가장 약한 시민이 치르게 된다.
공권력은 무한하지 않다. 누군가의 술주정이 다른 누군가의 생명 구조를 지연시킨다면 그것은 개인적 일탈을 넘어 사회적 부정의(不正義)다. 주취는 변명이 아니라 책임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술에 취했기 때문에 더 엄격한 책임을 지는 사회로 나아갈 때 비로소 법치는 균형을 회복한다. 보호와 책임이 함께 작동할 때 공권력은 제자리를 찾고 공동체는 공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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