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는 1978년부터 48년간 명품 수선을 해 온 작은 공방이 있다. 이곳에선 낡은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제품을 새것처럼 복원해 주거나 쓸 만한 가죽을 잘라내 작은 가방이나 지갑을 만들어 준다. 1980년대 봉제공장에서 기술을 익혔다는 평균 경력 35년 장인들의 솜씨가 입소문을 타면서 옷장 속에 고이 모셔 뒀던 명품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사별한 남편이 사준 가방, 어머니가 물려주신 가방, 첫 월급으로 산 지갑 등 애틋한 사연이 있는 수선 요청이 많다.
▷2022년 루이비통이 이곳에서 대를 이어 공방을 운영하는 이경한 씨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 씨는 보통 10만∼70만 원씩을 받고 루이비통 가방을 해체한 뒤 원단과 금속 부품을 활용해 새로운 디자인의 가방, 지갑을 만들었다. 루이비통은 리폼 제품에 자사 로고가 드러나 있기 때문에 상표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5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리폼 업체가 한둘이 아닌데 왜 이 씨의 공방만 소송을 당했을까. 이 씨가 직접 밝힌 사정은 이렇다. 2022년 루이비통은 법무법인을 통해 국내 명품 리폼 업체들에 “리폼이 적발되면 법적 소송을 하겠다”며 앞으로 중단하겠다는 확약서를 받았다고 한다. 겁에 질린 소상공인들은 도장을 찍었지만, 이 씨만 이를 거절했다. 이 씨는 한 유튜브에 출연해 “리폼을 해서 파는 것도 아니고 소비자가 맡기면 기술을 제공할 뿐인데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았다”고 했다. 소송 비용 부담에도 자칫 수선업체가 줄도산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버텼다.
▷1, 2심에선 이 씨가 졌다. 리폼 제품도 독립된 교환 가치를 지닌 상표법상 ‘상품’에 해당한다고 법원은 봤다. 판결이 알려지자 비싼 가격에 비해 부실한 사후서비스(AS)가 불만이던 소비자들은 뿔이 났다. 명품을 AS 맡기면 본국으로 보내야 한다며 수개월을 기다리라 하기 일쑤다. 그 비용도 상당하다. 그러면서 ‘내돈내산’ 리폼까지 안 된다니 수백만 원짜리를 버리란 말이냐는 항변이다. ‘자동차 튜닝도 금지하나’ ‘옷 줄여서 아이 입히면 불법이냐’ 등 냉소적 반응이 쏟아졌다. 중국 짝퉁 시장은 방치하면서 한국에선 영세 소상공인에게까지 쩨쩨하게 군다는 불만도 있다.
▷대법원은 다르게 봤다. 리폼 제품이 개인적 용도로만 사용되는 한 상표권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고 26일 원심을 파기했다. 리폼은 개성을 표현하거나 재활용 등을 통해 제품 수명을 연장하는 행위이므로 소유권 행사 및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원 순환이라는 환경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고이고이 아껴 쓰는 소비자,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고친 장인에게 죄를 묻는 건 상식적으로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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