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집값이 2년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정부의 전방위적인 다주택자 압박과 대출 규제가 실효를 거두는 모양새다. 이제 이재명 대통령은 비거주 1주택자로 규제 전선을 넓히며 고삐를 더 바짝 죄고 있다.
하지만 투기 수요를 틀어막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존재한다. 현재 집값 불안 배경엔 ‘똘똘한 한 채’를 향한 열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핵심지 주택을 무한정 늘릴 순 없는데, 다수가 그걸 열망하니 문제다.
어떻게 하면 서울로 집중된 수요를 전국으로 분산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 정부가 해결책 중 하나로 제시한 것이 ‘5극 3특’ 국가 균형성장 전략이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탈피해 전국을 5개의 메가시티와 3개의 특별자치도로 재편하겠다는 구상이다. 기업을 유치하고 인프라를 깔아 지방을 살기 좋게 만들겠다는 취지다. 수요 분산의 해법, 재택근무
방향은 맞다. 문제는 시간이다. 대규모 인프라 구축과 산업 생태계 조성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더라도, 그 효과를 체감하려면 최소 10년은 지나야 한다. 당장의 집값 불길을 잡기엔 너무 먼 이야기다.
그보다 더 빨리, 단기간에 수요를 분산할 방법은 없을까. 한 가지 해결책이 있긴 하다. 바로 재택근무 확대다.
재택근무가 대도시 도심 집값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팬데믹 기간 미국에서 확인됐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같은 주요 대도시에서 직주근접 필요성이 약해지자, 값비싼 도심 대신 저렴한 외곽 지역으로 주택 수요가 분산됐다. 이른바 ‘도넛 효과(Donut Effect)’다. 공실이 늘어난 도심에서는 사무실을 주거용으로 개조하는 사업이 활발해졌다. 도심의 주택 수요는 줄이고 공급은 늘렸으니 일석이조다.
모든 노동자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제조업 공장이나 대면 창구에서 일하는 직군이라면 현장을 떠나기란 불가능하다. 사무직이라고 해도 재택근무에 적합한 근로자는 따로 있다. 재택근무가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여러 연구에 따르면 자기 주도적으로 일하는 전문성 높은 고숙련 근로자는 재택근무로 오히려 성과를 높일 수 있다. 불필요한 대면 접촉과 출퇴근의 피로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다. 업무 특성에 따라 잘 활용하면 재택근무만 한 효율적 수단도 드물다.
서울은 제조업 기반이 약한 대신 사무·전문직 근로자 비중이 유독 높은 도시다. 통계에 따르면 서울 취업자 3명 중 1명 이상이 관리자나 전문가, 사무 종사자다. 여의도와 강남·서초구 같은 핵심 업무지구는 이 비중이 절반을 훌쩍 웃돈다. 금융회사와 대기업 본사, 민간 연구소 등이 서울에 몰려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재택근무에 적합한 고숙련 사무직군에 해당한다. 재택근무 전면 도입이 서울에 특히 효과적인 이유다.
출산율 제고 위한 저비용 해법
재택근무 효능은 집값 안정에만 그치지 않는다. 스탠퍼드대 니컬러스 블룸 교수팀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재택근무는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상당하다. 부부가 모두 주 1일 이상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 여성 1인당 기대 출산율을 무려 0.32명이나 높일 수 있다고 한다. 0.80명에 그친 지난해 출산율을 생각하면 재택근무 도입이 시급하다. 연간 수십조 원의 예산을 쏟아붓는 현금 지원책보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훨씬 더 저비용 고효율의 해법이다.
재택근무를 위한 디지털 기술은 이미 성숙해 있다. 사무실 출근을 고집하며 효율화를 꾀하지 않는 기업의 낡은 관습이 걸림돌이다. 서울은 비우고 가정을 채우는 재택근무는 집값 불안과 저출산의 복합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빠른 정책적 우회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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