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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먹은 죄’[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34〉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입력 2022-03-16 03:00업데이트 2022-03-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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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왕이 밭을 갈아 모범을 보이며 풍년을 기원하는 날. 왕의 쟁기는 금으로, 신하들의 쟁기는 은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왕이 쟁기를 잡고 출발하자 신하들도 출발했다. 화려한 의식이었다. 그런데 들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의 몸은 앙상했다. 날씨까지 더워서 농부도 헐떡거리고 소도 헐떡거렸다. 소는 채찍에 얻어맞아 살이 터지며 쟁기를 끌었다. 쟁기질에 흙이 뒤집히자 벌레들이 꼬물거리며 나왔다. 그러자 새들이 날아와 다퉈 가며 벌레들을 쪼아 먹었다.

그 모습을 골똘히 바라보는 열두 살짜리 소년이 있었다. 그 나라의 태자였다. 그는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는 호화롭게 살고, 누군가는 벌거벗고 땡볕 아래에서 밭을 가는 농부로 살고, 누군가는 코뚜레가 꿰여 채찍질을 당하는 소로 사는 모습이 그를 아프게 했다. 살아있는 것들끼리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참혹한 생사의 먹이사슬은 그를 더 힘들게 했다. 이것은 석가모니의 유년 시절에 얽힌 일화다. 반칠환 시인의 ‘먹은 죄’는 열두 살 소년 싯다르타가 몇천 년 전에 느꼈음 직한 감정을 부분적으로 환기하는 짧은 시다.

“새끼들에게 줄 풀벌레 잡아오던/지빠귀를 새매가 나꾸어 갔다/가까스로 허물 벗고 날개 말리던/잠자리를 물총새가 꿀꺽 삼켜 버렸다/오전에 돋은 새싹을 다람쥐가 갉아먹는다/그러나 어느 유족도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다 먹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한없이 슬퍼도 적막한, 푸른 숲 속의 일이다.”

뒤집힌 흙에서 나온 벌레를 새가 잡아먹고 풀벌레를 잡아오는 지빠귀를 새매가 잡아먹는 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먹거나 먹히지 않는 존재가 어디 있으랴. 그들이 서로를 향해 복수를 꿈꾸지 않는 것은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숲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싯다르타가 열두 살 때 느꼈던 감정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그러한 연민의 감정에서 시도 태어나고 종교도 태어난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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