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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작가의 은밀한 독서[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36〉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입력 2022-03-30 03:00업데이트 2022-03-30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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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나라가 전쟁 중이다. 이런 때 그가 소환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는 위대한 작가였지만 이념적으로는 국수주의자에 가까웠다. 폴란드와 관련해서는 특히 그랬다. 폴란드 영토였던 우크라이나 베르디치우에서 태어난 영국 작가 조지프 콘래드가 그를 싫어한 것은 그래서였다.

폴란드인을 향한 도스토옙스키의 태도는 불신을 넘어 혐오에 가까웠다. 그는 그들을 대놓고 싫어하며 그들이 러시아로 이주하는 것을 격렬히 반대했다. 그는 그들이 러시아에 와서 할 것이라고는 러시아를 증오하고 배반하는 일밖에 없을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러시아가 오스트리아, 프러시아와 함께 폴란드 영토를 이리 찢고 저리 찢은 역사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의 편견은 소설에 곧이곧대로 투영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폴란드인들을 무자비하게 희화화한다. 그들은 배반자이고 사기꾼의 모습으로 나온다. 그루셴카라는 러시아 여성을 배반하고 떠난 폴란드 대위는 돈 때문에 그녀를 다시 유혹하려고 돌아오는 사기꾼이다. 그는 카드놀이에서는 동행한 다른 폴란드인과 짜고 러시아인들의 돈을 긁는 사기 행각을 벌인다. 폴란드 여성들에 대한 묘사는 더 가관이다. 그들은 러시아 병사들과 춤을 추고 나면 “고양이처럼 그들의 무릎에 냉큼 올라앉는” 헤픈 여자로 묘사된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편견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런 편견을 가졌다고 그의 소설이 위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소설로 된 성서라고 해도 될 만큼 심오하고 감동적인 사랑과 환대의 이야기다. 왜 이런 모순이 생길까. 편협하고 편향되거나 인간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사람에게서도 고귀하고 심오한 것을 끌어내는 것이 예술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것은 그래서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이다. 콘래드가 겉으로는 도스토옙스키를 “그 귀신 붙은, 얼굴 찌푸린 인간”이라고 부르며 경멸했으면서도 그의 소설을 숨겨 놓고 읽은 이유다. 아무도 모르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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