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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케임브리지를 다시 떠나며’[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37〉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입력 2022-04-06 03:00업데이트 2022-04-06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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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환대를 가르친다. 다르고 낯선 것에 대한 환대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중국시인 쉬즈모(徐志摩)의 ‘케임브리지를 다시 떠나며’는 예술이 지닌 그러한 속성을 잘 보여주는 시다.

이 시는 제목이 암시하듯 시인이 케임브리지를 다시 찾았다가 떠나면서 느끼는 애틋한 마음을 노래한다. 이육사 시인은 1941년 ‘춘추’ 6월호에서 현대 중국시인 중 쉬즈모를 가장 높게 평가하면서 이 시의 첫 연을 이렇게 번역했다. “호젓이 호젓이 나는 돌아가리/호젓이 호젓이 내가 온 거나 같이/호젓이 호젓이 내 손을 들어서/서쪽 하늘 구름과 흐치리라(헤어지리라).” 이렇게 시작된 시는 잔잔한 케임브리지 강의 물풀이 되고 싶지만 추억이 어린 그곳을 뒤로해야 하는 아쉬운 마음을 중국어 운율에 싣는다.

쉬즈모에게 케임브리지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어떤 여인을 사랑한 곳이었고 경제학을 전공하는 그를 문학으로 이끈 곳이었다. 그는 셸리, 키츠, 워즈워스와 같은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을 그곳에서 읽고 심오한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로 수많은 시들이 쓰이고, 이육사 시인의 진단대로 그것은 곧 중국 현대시의 기둥이 되었다. 그래서 중국은 중국대로, 영국은 영국대로 그의 시를 기린다. 중국 교과서에는 그의 시가 실려 낭송되고, 케임브리지대 교정에는 그의 시 마지막 연이 적힌 시비가 세워졌다. “서럽디 서럽게 나는 가고마리/서럽디 서럽게 내가 온 거나 같이/나의 옷소맨 바람에 날려 날리며/한쪽 구름마저 짝없이 가리라.”

80년 전에 이 시를 우리말로 옮긴 이육사 시인의 고백처럼 이 시의 “운율과 격조를 우리말로 이식하기는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이럴 때는 중국어의 아름다움을 잘 살린 캐나다인 마크 로스웰의 낭송을 유튜브로 들으면 조금은 도움이 된다. 이 아름다운 시에서 낯선 나라, 낯선 도시는 환대의 대상이다. 지독한 반목과 증오, 심지어 전쟁이 판을 치는 시대에 쉬즈모의 케임브리지 시를 꺼내 읽는 이유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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