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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38〉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입력 2022-04-13 03:00업데이트 2022-04-1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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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이따금 우울한 세상을 비춤으로써 독자가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일종의 거울이다. 김혜진 작가의 ‘중앙역’은 그러한 거울이다. 이 나라 어디를 가든 볼 수 있는 노숙자들 얘기다.

가장 우울한 장면 중 하나. 한밤중에 응급차가 광장에 도착한다. 누군가가 쓰러져 있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노숙자 노인이다. 당장 병원에 가지 않으면 위급한 상황이다. 구급차가 노인을 싣고 가자 병원 응급실에서는 받아주지 않는다. 보호자가 없고 서류도 없고 수급확인서도 없어서 그렇다. 결국 구급대원은 세 번째 병원에서 응급실 안으로 노인을 무작정 밀어 넣고 도망친다. 그래서는 안 되지 않을까. “그럼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동행한 노숙자 화자에게 구급대원이 하는 말이다.

똑같은 장면이 또 한 번 나온다. 주제와 맞닿아 있다는 암시다. 이번에는 극심한 복통을 호소하는 다른 노숙자다. 노인처럼 여자에게도 보호자도 없고 서류도 없다. 병원에서 받아줄 리가 없다. 이번에도 구급대원의 말은 거의 똑같다. “일단 치료를 받게 해야죠. 일단 응급실 안엔 넣어야 할 거 아닙니까!” 누구 마음대로 여기다 눕히느냐고 누군가가 항의하자, 화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면서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인한다. 예수를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처럼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도망친다. 응급처치를 받게 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우리도 화자처럼 모른다고,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소설이 비추는 암울한 현실로부터 어떻게든 등을 돌리고 세상의 밝은 면만 보고 싶다. 그러나 소설은 어두운 이야기를 펼쳐내면서도 끝까지 우리의 시선을 붙드는 마력을 발휘한다. 노숙자들이 처한 현실의 혼란과 무질서를 언어의 질서, 즉 잘 짜인 이야기로 만든 데서 나오는 힘이다. 게다가 이 세상의 낮은 자들이 처한 현실을 냉철하면서도 따뜻하게, 따뜻하면서도 냉철하게 바라보는 눈까지 곁들여져 있다. 여기에서 소설의 윤리성이 확보된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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