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슈&뷰]인공지능 시대 정부 문서, 근본을 바꿀 때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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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식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장
문용식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장
문서는 어느 조직에서나 소통의 기본 수단이다. 특히 공무원 업무의 시작과 끝은 문서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부처의 경우 문서 작성이 전체 업무의 40%를 차지한다는 연구도 있다. 그런데 정부의 문서 작성 관행에는 두 가지 커다란 문제가 있다.

첫째, 지나친 형식주의에 빠져 있다. 최근 행정안전부에서 ‘1990년생 공무원이 왔다’라는 흥미로운 보고서를 내놓았다.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 공무원들에게 일하는 방식 중에 가장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물었더니, 답변자의 46%가 보고서 양식 꾸미기에 치중하는 문화를 꼽았다.

둘째, 정부 문서가 인공지능(AI) 시대, 빅데이터 시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데이터는 사람이 읽기 편한 게 아니라 기계가 읽기 편해야 한다. 이를 지원하는 문서 형식이 ‘개방형 문서 포맷(ODF)’이다. 그런데 현재 정부 문서는 내용보다 모양 꾸미기에 치중하는 관행 때문에 기계 판독이 어려운 형식으로 생성되어 문서의 데이터화에 심각한 어려움을 낳고 있다.

문서를 꾸미는 데 쓰이는 문서 작성용 프로그램의 다양한 기능은 ODF에서는 지원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문서를 ODF로 변환하면 특수문자는 깨지고, 표는 변형이 일어나 인식이 안 된다. 정성 들여 만든 정부 보고서가 AI 시대에 데이터 자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쓰레기가 되어 버린다. 정부 문서를 기계 판독이 가능한 형태로 정제하려면 또다시 수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데이터 경제를 활성화하고 AI 일등 국가가 된다는 말인가.

AI 시대에 맞춰 정부 문서 혁신이 절실하다. 보고서 꾸미기와 양식 통일 같은 껍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서를 생산할 때부터 내용 중심으로, 기계 판독이 가능한 양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AI 시대에는 AI 시대에 맞는 문서 작성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몇 가지 접근 원칙이 있다. 공공부문은 대부분 한글 문서(HWP)에 익숙하다. 정부는 공무원들이 각자 익숙한 문서편집기를 사용하되 ODF 형식에 최적화하여 문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ODF 관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당연히 문서는 형식 꾸미기보다 내용 중심으로 작성하도록 한다. 그리고 개방 대상인 모든 문서는 HWP나 PDF 파일이 아니라 ODF로 개방하도록 한다. 보도자료, 제안요청서, 채용공고 등 다수 기관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문서는 표준화된 서식을 제공하여 데이터로서의 활용성을 높인다.

AI 시대를 맞아 정부 문서를 생성할 때부터 개방형 문서 포맷으로 하면 공공데이터의 활용성은 극대화될 것이다. 젊은 공무원들이 보고서 꾸미기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기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과학 행정을 구현하는 미래를 기대한다. 정부 혁신과 AI 일등 국가를 위해서는 가까운 것부터 혁신해 나가야 한다.

문용식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장
#인공지능 시대#정부 문서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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