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기업 키우기가 이리 어려운데[오늘과 내일/하임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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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소송·경영권 흔들기 가능한 규제법 대기
추석 이후 국회, 일 열심히 할까 두려워

하임숙 산업1부장
하임숙 산업1부장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한국의 소재부품 산업을 키우자는 구호 속에 반도체 소재를 만드는 기업들이 각광받고 있다. 그중 하나가 포토레지스트를 만드는 동진세미켐이다. 요즘 말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한 것처럼 보이는 이 기업은 알고 보면 이달로 창립 53주년을 맞는 장수 기업이다. 이 기업이 커온 역사는 우리나라 산업화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창업주 이부섭 회장은 1967년에 벽지, 신발에 들어가는 화학소재인 발포제를 만드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도 세계 시장 1위인 이 기업의 발포제 매출은 1000억 원대 초반이다. 올해 1조 원에 가까울 것으로 기대되는 매출액 중 나머지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가 차지한다. 이 똘똘한 미래산업에 뛰어든 건 1980년대 중반 삼성전자가 반도체산업을 시작하면서다.

삼성은 반도체 사업 초반에 적자가 수천억 원대로 쌓였고, 주요 자본을 댄 제일모직이 망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당시 기업인 모임에서 이 회장은 일본의 한 화학회사 사장으로부터 반도체산업에 화학제품이 필요하고 유망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마침 삼성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소재 국산화에 나서고 있었다. 이때부터 기술로, 인맥으로 사업을 뚫는 험난한 과정이 시작됐다. 1980년대 후반에 이미 생산역량을 갖췄던 이 회사가 포토레지스트를 삼성에 본격적으로 납품하기 시작한 건 1994년 무렵이다. 처음 16K에서 시작한 이 협력은 나노 단계로 올라선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소재부품 국산화는 이미 현장에서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고 있던 결과물이다.

이 회사가 순탄한 길만 걸은 것은 아니다. 1980년에는 부도가 나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1979년 시작된 2차 오일쇼크로 부산의 신발 공장들이 줄부도가 났고, 이곳의 주 거래처였던 당시 대기업 대동화학이 부도가 났다. 동진은 대동의 1차 벤더였다. 채권자들이 몰려들자 이 회장은 목욕재계한 뒤 깔끔한 정장을 입고 그들을 만났다. “사람이 그렇잖아요. 죽을상을 하고 있으면 누가 도와주고 싶겠어요.” 채권자들을 설득하고, 투자하겠다는 회사가 나타나며 어려움은 풀렸다.

포토레지스트를 납품하는 과정도 어려움이 많았다. 처음 대량 납품을 시작했을 땐 동진 때문에 삼성전자의 생산라인이 1주일간 서기도 했다. 수년에 걸친 테스트도 통과했고, 생산할 때 품질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웬일일까. 화학제품이다 보니 만들어진 이후에도 화학반응이 일어나기에 억제제를 넣어야 했는데 빼먹은 것이다. 동진도 삼성도 경험 부족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이후 매번 반도체가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일본과 경쟁해 물량을 따내는 지난한 과정도 거쳤다.

만일 이 회사가 오일쇼크에 쓰러졌거나 제품 불량과 치열한 경쟁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오늘날 1조 원대의 유망한 중소기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좋은 기업을 하나 키우는 과정은 그저 지난하다는 말로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그런데 이런 기업들이 각종 규제법 앞에서 떨고 있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지주회사의 지분 0.01%만 있어도 자회사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된다. 웬만한 중견기업은 5000만 원 전후면 대상이 된다. 피해자가 50인 이상이면 민법, 형법, 제품, 서비스를 가리지 않고 집단소송제가 도입된다. 70%가 넘는 상속세 때문에 어렵게 일군 기업을 펀드나 외국 기업에 팔겠다는 중소기업인들이 이미 많다. 거기다 기술 개발에 투자할 시간과 자원을 소송에 투입하게 만드는 법안들이 줄대기 상태이니 당장 사업 접겠다 할 판이다. 이러니 “국회가 열심히 일할까 두렵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이다.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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