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들의 이임사는 대개 언론에 한두 줄 반영되고 만다. 떠나는 장관보다는 후임 장관의 취임사에 더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처럼 집권세력과 갈등을 빚다 떠난 경우 정도가 예외다. 취임사가 대외용이라면 이임사는 대내용이다. 2011년 윤증현 장관의 글처럼 한시도 벗을 수 없던 마음의 갑옷을 벗어던지면서 조직에 남기는 마지막 문서다. 그래서 장관이 아닌 개인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글이 많다. 공직에 대한 소회, 재직 기간 동안의 성과와 아쉬움, 동료와 후임자에 대한 당부가 비교적 솔직하게 담겨 있다.
기획재정부가 출범한 이명박 정부 이후 7명의 기재부 장관이 이임사를 남겼다. 의외의 미문이 적지 않다. 학창 시절부터 문재(文才)가 있다는 말을 들은 강만수 장관의 이임사는 짧은 수필 같다. “설렘으로 와서 불같은 마음으로 일했다. … 지나간 것은 그리움으로 남는다. 새로운 설렘으로 내일을 간다.” 박재완 장관의 “늘 여러분의 헌신에 무임승차했고, 때로는 여러분의 저작권을 침해했다. 지난 22개월 서운했거나 제 말결에 날이 서 있었다면, ‘마음이 바빴겠지’라고 너그러이 헤아려 달라”는 문장도 인간적인 표현으로 기억에 남는다. 김동연 부총리는 “소신대로 할 수 없을 때 그만두겠다는 것은 작은 용기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바치는 헌신이야말로 큰 용기다. 헤밍웨이는 용기를 ‘고난 아래서의 기품’이라고 정의했다”고 했다. 후배들에 대한 엄중하고 품위 있는 당부다.
그런데 이임사를 보면 규제 혁신이나 공직사회 개혁 의제는 공통적으로 빠져 있다. 윤증현 장관이 “관료는 늘 개입과 간섭의 유혹에 시달린다. 시장이 해야 할 일에 정부가 나서서 성공한 사례는 없다”고 한 게 그나마 규제 관련 언급으로 볼 수 있는 정도다. 장관들이 재직했던 시절 각 정부는 예외 없이 규제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명박 정부에선 ‘규제 전봇대를 뽑겠다’고 했고, 박근혜 정부는 ‘손톱 밑 가시를 빼겠다’고 했다. 현 정부 역시 과거 정부보다 강도는 약하지만 규제 철폐에 동의하고 있다. 기재부 장관은 규제 개혁을 총괄한다. 그럼에도 이임사에서 정책 성과들을 열거하면서 규제 부문을 생략한 건 의외다.
규제 개혁 성과가 미미해서였을 수 있다. 실제로 규제 이슈는 정권 초기 공무원들을 다잡는 슬로건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관료들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정부 주도 산업화의 부산물인 규제를 공무원들이 권리이자 밥줄로 생각하는데 부처의 수장(首長)이 후배들에게 규제 철폐를 치적으로 자랑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임사에서 규제 개혁을 당부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퇴직 후 민간 기업 고문으로 있는 한 전직 관료는 “나라가 살려면 당신들 손발부터 잘라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장관이 몇이나 되겠나. 규제는 공무원들의 퇴직 후 생계까지 보장하는 수단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공직사회가 스스로 자신들의 카르텔을 걷어내기엔 역부족이라는 말이다.
지난해 초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이임식에서 “정부가 규제의 벽을 쳐놓으면 자율과 창의가 뛰놀 공간은 좁아지고 산업의 체력은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민간 부문 CEO는 떠나는 순간까지 규제 완화를 호소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눈감고 있는 게 현실이다. 조만간 개각이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자리를 떠나야 할 장관들이 이임사에서 이런 호소에 답하는 한마디 당부라도 남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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