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제주시에서 인테리어 자재 제조업체를 운영 중인 김모 씨(58)는 지난해 하반기(7∼12월)에 수주를 한 건도 따내지 못했다. 5, 6년 전만 해도 신축 아파트나 빌라 분양이 활발해 밀려드는 일감을 쳐내야 했지만, 지난해에는 지역 내 신규 공사가 사실상 ‘올스톱’되면서 일거리가 뚝 끊겼다. 김 씨는 “30년째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경기가 이렇게까지 안 좋았던 적이 있나 싶다”고 토로했다.
반도체의 가파른 성장세에 힘입어 코스피는 연일 역대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지만, 실물 경기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서민 경제와 직결돼 낙수 효과가 크고, 취약계층의 ‘일자리 저수지’로 불리는 건설업이 극심한 부진에 빠지면서 경기 회복의 밑단을 떠받치던 축이 사실상 붕괴된 상태다. 이대로라면 첨단 대기업과 중소기업·자영업자 간 양극화가 더 커지면서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갈수록 심각해지는 ‘반도체 편중 경제’
30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업생산지수는 82.3(2020년=100)으로, 부동산 시장 침체로 건설 경기가 최악이던 2014년(80.5) 이후 11년 만에 가장 낮았다. 지난해 건설업체의 국내 시공 실적을 보여주는 건설기성(불변)은 전년 대비 16.2% 줄면서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8년 이후 가장 많이 감소했다. 부동산 시장을 전방위로 옥죄는 규제 조치에 분양과 착공이 동시에 위축되고, 지방 미분양 증가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경색까지 겹친 결과다.
박선구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건설투자 감소 폭은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절을 떠올리게 할 만큼 하락세가 가파른 수준”이라며 “건설업 침체는 연관 산업 부진이라는 부정적 파급효과를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산업 전반이 부진하다 보니 반도체 편중 현상은 갈수록 심각하다. 지난해 한국 국내총생산(GDP)이 1% 증가하는 데 반도체 중심의 정보기술(IT) 제조업 기여도는 0.6%포인트에 달했다. 반도체가 없었다면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0.4%에 그칠 수 있었다는 의미다.
● 소비 회복은 ‘반짝’… “양극화, 잠재 성장률 악화 우려↑”
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액지수는 0.5% 상승하면서 2022년(―0.3%), 2023년(―1.3%), 2024년(―2.1%) 등 3년 연속 감소하던 흐름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장기간 이어진 내수 침체 회복의 ‘신호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소비 증가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의 효과”라며 “장기적으로 소비 증가를 유도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4분기(10∼12월) 한국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0.3%였다. 전문가들은 올해도 실물 경제 부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건설은 (지난해 부진한) 기저효과로 성장할 순 있겠지만 근본적인 환경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까지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과 실물경제의 괴리가 자산 양극화와 잠재 성장률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이날 한국의 잠재 성장률을 2.1%에서 1.9%로 하향 조정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따른 경제 활력 둔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물 경기는 나빠지는데 국내 증시와 수도권 부동산 값 상승이 과열 양상으로 번질 경우 물가 상승 압력과 경기 둔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역대급 활황인 국내 증시와 실물 경제 지표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정부의 숙제”라며 “이대로라면 반도체 슈퍼사이클 이후 한국 경제의 성장을 담보할 수 없는 만큼 신산업 지원과 함께 좀비 기업 퇴출 등 구조조정에도 속도를 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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