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상상한 만큼 보인다[여행스케치]

  • 동아일보

웅진(공주) 사비(부여) 박물관 여행

‘구다라나이(くだらない)’. 일본어로 시시하다, 쓸모없다, 변변찮다는 뜻이다. 문법적으로는 ‘구다라’에 ‘없다’ 또는 ‘아니다’라는 뜻의 ‘나이(ない)’가 합쳐졌다. 구다라가 없으면, 구다라가 아니면 하찮다, 쓸데없다는 얘기다. 구다라가 뭐기에 그것이 없으면 앙꼬 빠진 찐빵처럼 취급하겠다는 것일까. 구다라는 일본에서 백제(百濟)를 부르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백제와 일본의 관계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선진 문물을 전해줬다는 사실 말고는 말이다. 백제 것이 없다면, 백제 것이 아니면 시답잖다는 관용구가 생길 정도로 백제 문화는 압도적이었다. 동장군이 바깥출입을 단단히 경계하는 이때, 구다라의 정수(精髓)를 찾아 충남 부여와 공주의 박물관을 찾았다.

● 찬찬히 용의 눈을 들여다보다

백제금동대향로 하나만으로도 충남 부여군 국립부여박물관을 가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백제금동대향로 하나만으로도 충남 부여군 국립부여박물관을 가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지난해 12월 23일 국립부여박물관에는 이것 하나만을 위한 전시실이 문을 열었다. 높이 62.3cm, 최대 지름 19cm, 무게 11.8kg 유물을 위해 3층 규모 254㎡(77평) 공간을 들였다. 전실(前室) 같은 짧은 복도를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선다. 고구려 고분 현실(玄室)에 들어온 듯하다. 어둑어둑한 사위 중앙, 황금빛이 사각 유리 상자에 모인다. 그 위를 천장에서 지상 약 250cm 높이까지 내려온 사각 벽이 호위하듯 빛의 산란을 막아 준다. 유리 안쪽 높이 120cm 정도 좌대 위에 도도하게 서 있다.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다.

이 향로는 향료를 피우는 왕실의 제기(祭器)였다. 향내와 연기는 신(조상)에 대한 찬미의 표시다. 그만큼 중요한 도구였기에 이를 제작할 때 가히 한 나라의 공력이 들어갔을 터다. 가까이 다가가 향로를 바라본다. ‘살아 숨 쉬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맨 위 봉황과 산악도(山嶽圖)를 표현하는 뚜껑, 연꽃 그득한 못(연지·蓮池) 같은 장식의 몸체(노신·爐身)와 이를 지탱하는 용 받침. 뚜껑과 노신이 맞닿는 각각의 테두리에는 흐르는 구름 무늬(유운문·流雲紋)가 새겨져 있다(이하 참조: ‘백제금동대향로’, 서정록 지음, 학고재, 2020년). 어느 시대, 어느 왕 때, 어떤 종교적, 사상적 배경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이 향로 앞에 서 있는 순간에는 무의미하다. 그저 찬찬히 바라볼 뿐이다.

수탉 볏을 한 봉황은 가슴과 턱 사이에 구슬을 두고 있다. 아래에서 연지를 입으로 물어 받치고 있는 용이 떨어트린 여의주인가 싶다. 날갯죽지 윗부분은 활(弓)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다. 몸길이만 한 꼬리는 하늘을 향한다. 봉황과 뚜껑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백제금동대향로의 삼산형 산 모양과 흡사한 산이 그려진 산수봉황무늬 벽돌.
백제금동대향로의 삼산형 산 모양과 흡사한 산이 그려진 산수봉황무늬 벽돌.
뚜껑에는 세 산이 중첩해 있는 형태(삼산형·三山形)의 산봉우리가 층층이 늘어서 있다. 정형적인 ‘뫼 산(山)’ 자 모양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변형돼 있다. 뚜껑 맨 위에는 악사 5명이 각각 미국 악기 밴조 비슷한 완함(월금·月琴), 긴 피리, 팬플루트를 연상시키는 배소, 북, 거문고를 연주한다. 몇몇 악사는 머리를 오른쪽으로 틀어 묶은 듯하다.

악사들 주위를 5개 봉우리가 감싸는데 새가 한 마리씩 앉아 있다. 다들 봉황을 쳐다보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자세가 다 다르다. 날개를 쭉 뒤로 펴고 머리를 치켜든 것이 있는가 하면 고개를 가슴에 묻고 있기도 하다. 날개를 접은 두 마리는 각각 고개를 왼쪽, 오른쪽으로 향한다. 서정록은 “고대 기러기 춤사위를 연상케 한다”고 했는데 그럴 듯도 하다.

봉우리 사이로 계곡이 있고, 폭포가 있고, 시내가 흐른다. 그 사이사이 사람들이 보인다. 누구는 씨를 뿌리고 누구는 낚시한다. 코끼리를 탄 사람이 있고 나무 아래서 참선하는 이도 있다. 폭포물에 머리를 적시는 듯한 사람도 있고 활을 든 사람도 있다. 지팡이 짚은 노인도 보인다.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보인다. 무엇을 하는지 분명한 사람도 있다. 말을 타고 활을 쏘는 사람이다. 고구려 고분 무용총 벽화 속 상체를 돌려 활 쏘는 수렵 인물이 떠오른다. 재미있는 건 여기서는 말도 얼굴을 뒤틀어 화살 쏘는 방향을 쳐다본다. 기수와 말이 일체가 된다.

호랑이 멧돼지 사슴 코끼리 원숭이가 듣도 보도 못한 동물들과 뛰논다. 사람 얼굴에 짐승 몸을 하거나 사람 얼굴에 새 몸통을 한 반인반수도 보인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신령이든, 인면수신(人面獸身)이든 누구든 얼굴 찡그리지 않는다. 천상 같기도 하고 환상 같기도 하다. 별유천지(別有天地)이다.

몸체는 3단으로 연꽃잎을 배치했다. 연꽃잎마다 그리고 꽃잎과 꽃잎 사이에 물고기, 신조(神鳥), 신수(神獸) 등을 한 마리씩 돋을새김했다. 몸체에도 두 사람이 보인다. 한 사람은 팔을 앞으로 뻗고 한쪽 다리는 굽히고 다른 다리는 쭉 편 모습이다. 누구는 택견 동작을 취한다고 하고, 누구는 요고(腰鼓) 연주 자세라고 한다. 또 다른 사람은 달리는 동물 등에 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화려하고 역동적인 용이 있다. 용의 눈을 보기를 권한다. 상상 동물 용이 반려동물처럼 보인다.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다.

● 다시 백제를 위대하게

충남 공주군 왕릉원의 무령왕릉과 왕릉 1∼6호분 전경. 무덤 위에서 후투티 세 마리가 뛰놀았다.
충남 공주군 왕릉원의 무령왕릉과 왕릉 1∼6호분 전경. 무덤 위에서 후투티 세 마리가 뛰놀았다.
국립공주박물관은 1971년 무령왕릉이 발굴되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령왕릉 자체가 공주박물관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무령왕릉에서 나온 국보 12종 17점을 비롯해 5200여 점 유물이 이 박물관을 지탱한다. 무령왕릉은 백제와 신라 왕릉 가운데 어느 왕이 묻혔는지 밝혀진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무령왕릉을 지키던 석수.
무령왕릉을 지키던 석수.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무령왕릉 입구에서 관에 이르는 널길 중간에 서서 묘를 지키던 석수(石獸)다. 높이 31.5cm, 길이 48.5cm 돌조각으로 머리에는 철제 뿔이 달려 있다. 무령왕릉을 발굴할 때 입구를 막고 있는 벽돌 더미에서 한 장의 벽돌을 빼내자, 무덤 내부에 응집돼 있던 공기가 분출됐다고 한다. 성에 같은 하얀 기운이 순간적으로 발굴자 눈에 서렸다가 곧 사라졌다는 것이다(‘무령왕, 신화에서 역사로’, 정재윤 지음, 푸른역사, 2021). 어쩌면 왕릉 지킴이 석수의 탄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국립공주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무령왕릉 기물들 및 왕과 왕비의 관.
국립공주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무령왕릉 기물들 및 왕과 왕비의 관.
부장품인 무령왕과 왕비의 금동신발.
부장품인 무령왕과 왕비의 금동신발.
책이나 TV를 통해 보던 무령왕과 왕비의 금동 신발, 관식(冠飾), 금목걸이, 환두대도 등을 실제로 보니 그 정교함과 아름다움에 무릎을 칠 만했다. 그러나 대향로를 본 뒤여서인지 무엇보다 ‘받침 있는 은잔(동탁은잔·銅托銀盞)’이 눈에 더 들어왔다.

백제금동대향로와 장식 문양 구성이 일치하는 무령왕릉 출토 동탁은잔.
백제금동대향로와 장식 문양 구성이 일치하는 무령왕릉 출토 동탁은잔.
전체 높이 15cm인 이 유물은 뚜껑과 은잔, 그리고 받침으로 돼 있다. 서정록에 따르면 동탁은잔 장식 무늬 기본 구성이 대향로와 일치한다. 잔 뚜껑에 산악도가 새겨져 있고, 그 산악도 위에 봉황도 그려져 있다. 산들도 삼산형이다. 또 잔에 장식된 것은 연꽃과 용이다. 은잔의 용은 세 마리지만 연꽃을 보호하는 위치는 다를 바 없다.

대향로는 백제 성왕의 아들 창왕(위덕왕)이 애통하게 전사한 부왕을 추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성왕이 부왕 무령왕을 위해 제작했다는 주장도 있다.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의 천도라는 국가 중대사를 치른 성왕이 무령왕을 위시해 선대 왕들을 모시기 위해서라는 얘기다. 기자는 이 설에 마음이 더 끌린다.

무령왕은 한성에서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뒤 백제의 재융성을 이끈 왕으로 평가받는다. 불혹의 나이에 뒤늦게 왕이 된 그는 재위 말기인 521년에 ‘(백제는) 다시 강국이 되었다(更爲强國)’고 선언했다. 그런 부친에게 아들이 바칠 만한 ‘선물’ 아니었을까.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공주 마곡사 오층탑 상륜부의 라마교 ‘풍마동’ 장식.
공주 마곡사 오층탑 상륜부의 라마교 ‘풍마동’ 장식.
실제 무령왕릉과 그 곁의 왕릉 1∼6호분은 보존 문제로 개방하지 않고 있다. 모형 무덤 내부 일부가 박물관에 있을 뿐이다. 하릴없이 왕릉원의 왕릉 사이를 걸었다. 무령왕릉 위인지 아니면 6호분 위인지 노랗게 변한 무덤 위에서 후투티 세 마리가 놀고 있었다. 후투티는 봄에 왔다가 가을에 떠나는 여름 철새라고 했는데…. 왕릉원 한쪽에 옛 정림사 연못을 재현했다며 파놓은 ‘백제연못’이 있다. 안내판을 보니 ‘391년 진사왕 때…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진귀한 새를 기르고…’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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