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는 자신이 사는 계곡 마을을 굽어보는 ‘큰바위 얼굴’을 매일 바라봤다. ‘큰바위 얼굴은 그의 스승이 되었고 그 얼굴이 표현하는 감정이 그의 심장을 더욱 키워서 넓고 깊은 연민으로 채웠다.’(‘큰바위 얼굴’, 너새니얼 호손 지음, 고정아 번역, 바다출판사, 2010년) 거대한 바위나 암벽은 수천만 또는 수억 년 전에 생겼다. 불교에서 말하는 겁(劫)에 가까운 시간이다. 그런 시간을 버틴 암석에 비하면 인간 삶이란 하잘것없을지 모른다. 새해를 맞아 인고의 세월을 응축한 바위와 돌 앞에서 겸허해지는 기회를 가져 본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寧越)에서다.
강원 영월군 북면 문곡리에서 4억5000만 년을 살아온 바위들. 오른쪽 것이 스트로마톨라이트이고 다른 두 개에서 건열 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 그 아득한 시간 앞에서 인간의 지혜, 명예, 부, 권력은 보잘것없어 보인다.
● 아주 옛날 영월은 바다였다
혹자는 영월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영을 넘고 또 넘어 울음 지으며 찾아들고 다시 떠날 때 또 눈물지으며 돌아선다는 곳’이라고. ‘안녕할 영(寧)’ 대신 ‘재 영(嶺)’을 써서, 높은 산봉우리를 몇 개나 넘어야(넘을 월·越) 오갈 수 있는 첩첩산중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영월군 북면 문곡리에 가면 이 ‘상식’이 뒤집어진다.
휘감아 도는 평창강(서강)을 바로 뒤로 한 절벽 아랫부분에 높이 약 16m, 넓이 14m쯤 되는 큰 바위 세 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가운데 삼봉을 떼어다 놓은 것 같다. 다른 두 개보다 검은 오른쪽 바위 표면은 굽 없는 대접 수백 개를 뒤집어 붙인 듯 올록볼록하다. 스트로마톨라이트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그리스어로 층상(層狀) 구조를 뜻하는 ‘스트로마’와 돌을 뜻하는 ‘리토스’가 합쳐진 단어다. 다시 말해 ‘겹겹이 쌓인 돌’이다.
문곡리 스트로마톨라이트.재미있는 점은 이 돌이 바다에서 만들어졌다는 것. 약 35억 년 전 바닷속에 시아노박테리아라는 아주아주 작은 녹색 세균들이 있었다. 몸에 끈적끈적한 막을 두르고 광합성을 하는 시아노박테리아에 썰물 때 물속 모래알이나 흙이 달라붙어 굳었다. 그 위로 다른 세균들이 올라와 쌓이는 과정을 수천, 수만 년 반복하면서 생긴 돌이다. 시아노박테리아 화석인 셈이다. 문곡리 스트로마톨라이트는 고생대 오르도비스기(期)인 약 4억5000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곳은 만조 때는 바닷물에 잠기고 간조 때는 대기 중에 드러나는 얕고 따뜻한 갯벌이었다. 층층이 쌓여 누워 있어야 할 바위가 지금은 발딱 서 있다. 지구의 어떤 격렬한 운동이 일으켜 세웠다. 하나 더. 시아노박테리아는 지구 최초 ‘산소 펌프’ 가운데 하나였다. 이 세균들이 만들어 낸 산소가 지구 전체 2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건열 구조가 보이는 문곡리 바위.스트로마톨라이트보다 밝고 옅은 회색을 띤 다른 두 바위 표면에서는 건열(乾裂)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같기도 하고, 거북이 등껍질 같기도 하다. 퇴적물이 건조한 환경에서 수축하면서 표면에 생긴 다각형 균열이다. 인간 머리로는 상상도 못 할 간난신고를 견뎌낸 흔적처럼도 보인다.
사람 수명은 티끌 하나에도 미치지 못할 지구 시간이 빚어낸 바위는 또 있다. 역시 오르도비스기에 생성된 영월읍 방절리 선돌이다. 문곡리에서 남쪽으로 6~7km 오면 서강 줄기가 물굽이를 이루는 강변에 서 있다. 높이 약 70m. 원래는 하나의 거대한 석회암 암벽이었다. 암벽 중간 밑부분이 침식돼 그 윗부분이 무너져 내리며 기둥 같은 돌이 뚝 떨어져 나온 모양새가 됐다. 허리 한번 뒤틀면 10만8000리(약 4만2000km)를 날아간다는 근두운을 탄 손오공을 짐짓 막아서는 부처님 손가락 같다고나 할까.
영월읍 방절리 선돌(오른쪽). 하나의 거대한 암벽이었지만 중간이 침식돼 무너져 내리면서 홀로 서게 됐다.선돌은 신선암(神仙岩)이라고도 불린다. 조선시대 비운의 단종이 이곳에서 멀지 않은 청령포로 유배 가는 길에 잠시 쉬다 이 돌기둥을 바라보니 신선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해서 ‘선(仙)돌’이라 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선돌은 고인돌과 함께 영국 스톤헨지처럼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이다. 선돌은 또한 미국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작품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나오는 매끄러운 직육면체 돌 ‘모노리스(monolith)’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모노리스가 지구 문명을 일으키는 신 같은 역할을 하듯, 방절리 선돌에서도 기묘한 종교성이 느껴진다. 잠시 눈을 감아 본다.
● 인내한 땅속이 품은 석탄과 텅스텐
신화보다 더 아득한 지구 시간을 조금 앞으로 감아 보자. 인류 삶과 연관된 돌의 역사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약 3억5500만 년 전~2억9500만 년 전인 고생대 석탄기다. 지금이야 석탄은 기후변화를 초래한 주범의 하나로 손가락질받지만, ‘검은 다이아몬드’라 불리며 현재 인류 문명의 초석을 놓은 것도 석탄이다.
북면 마차리 탄광문화촌의 옛 마차 탄광 갱도 입구. 1935년 문을 연 강원도 최초 탄광이었다.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조선 병탄을 꾀하던 일본이 일찌감치 한반도에서 정밀 조사한 것도 석탄을 비롯한 광물자원 매장 분포였다. 영월군 북면 마차리는 한때 잘 나가던 탄광촌이었다. 1935년 강원 지역 최초로 마차 탄광 갱도가 열리자, 한국인은 물론 중국인 일본인도 모여들었다. 탄광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화전민 100여 가구가 살던 두메산골이었다. 전성기인 1960년대에는 영월 주민 절반이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화관에 고급 요정들까지 들어선 큰 마을이었지만, 이제는 옛 영화를 추억하는 ‘탄광문화촌’으로 남아 있다. 1990년 최종 폐광될 때까지 이곳에서 석탄을 캐고 나르던 각종 기계가 전시돼 있다. 갱도 내부는 채탄 각 과정을 실물 크기 인형들로 재현해 놨다.
마차리 탄광문화촌 갱도 내부에 천장이 무너지지 않게 나무 기둥(동발)을 받치는 작업 광경을 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다.철로 된 도르래 2개가 꼭대기에 달려 있는 5~6m 높이 철탑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약 12km 떨어진 영월화력발전소까지 석탄을 공중으로 운반하던 가공삭도(架空索道) 탑 중 하나다. 다른 탄광 석탄과 달리 이곳 석탄은 딱딱하지 않아 손으로 만지면 툭 부서져 밀가루처럼 됐다. 연기도 잘 나지 않았다. 이것을 ‘솔개차’라고 불린 쇠 통에 담아 케이블카처럼 공중으로 실어 보냈다.
마차리 탄광문화촌에 남아 있는 가공삭도 철탑.일제는 왜 대도시들에는 전기를 공급하지도 않는 화력발전소를 1937년 이곳에 지었을까. 그것을 알려면 지구 시간을 좀 더 앞으로 돌려야 한다. 한 1억~2억 년쯤 앞으로 말이다. 중생대 쥐라기에서 백악기(약 2억 년 전~6600만 년 전)까지다.
이 시기 한반도에서는 격렬한 화산과 마그마 활동이 벌어져 중석(重石·텅스텐)이 다량 함유된 광상(鑛床)이 생겼다. 그중 하나가 영월군 상동읍이다. 1980년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지리 교과서에서 ‘상동 텅스텐’을 외웠을 것이다.
1931년 만주사변에 이어 1937년 중일전쟁까지 일으키며 전쟁 소용돌이를 몰고 온 일본에 중석은 더 강한 병기 제조에 꼭 필요한 핵심 전략 물자였다. 따라서 중석 제련을 위한 전기 공급이 절실했다.
사라진 ‘텅스텐 신화’ 재현을 꿈꾸고 있는 상동읍 상동 마을 초입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1916년 중석 노두(露頭·지표면에 드러난 광맥)가 발견된 이래 상동 중석 채굴은 부침을 겪었다. 전시에는 활황이었다. 한때 한국 수출의 60%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평화 시기에는 시쳇말로 똥값이 됐다. 활황기에는 마차 탄광촌처럼 ‘개도 1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니는 동네’가 상동이었다. 6·25전쟁 직후 몇 년간은 폐쇄된 과거 갱도를 몰래 뚫고 들어가 텅스텐이 함유된 회중석을 캐내는 도굴꾼이 많았지만, 그러려니 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중석 광산에서 나오는 임금으로 영월 경제는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영월에는 술주정꾼이 많다’는 기사(조선일보, 1959년 4월 10일자)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휴업, 폐업, 재개업을 거듭하다 중국산 덤핑 공세에 밀려 1994년 문을 닫았다. 지금은 캐나다 광산업체 알몬티가 지분 100%를 인수해 텅스텐을 재생산하기 직전이다.
회중석에 자외선을 비추자 텅스텐이 함유된 부분이 파란빛을 띤다. 영월지오뮤지엄 제공회중석에 254nm(나노미터) 파장 자외선을 쐬면 텅스텐이 든 부분이 파랗게 빛을 낸다. 아주 자잘하게 박혀 있어 참깨 같다고들 한다. 그 ‘작고 푸른 참깨’가 만들어지기까지 돌이 감내한 시간에 살짝 경외감이 든다.
● 소박한 영혼, 소박한 심장
영월지오뮤지엄 전경.바위와 돌이 들려주는 장대한 시간 속에 빠져 있었다면 이제 정리를 할 시간이다. 영월군 한반도면에 있는 ‘영월지오뮤지엄’에 가 보자. 사회적 기업인 이 지질 박물관은 10여 년 전 영월로 귀촌한 민경문 관장이(67) 고군분투해 만들었다. 그저 쉬러 왔던 영월이 5억 년 전에 바다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놀랍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땅과 돌에 매달렸다. 교과서부터 국내외 관련 논문을 찾아 읽었다. 전국을 돌며 한반도 각종 지질 시대를 표상하는 돌 300여 개와 화석들을 수집했다. 제국의 특성답게 집어삼키려는 나라 정탐에 공을 들인 일본이 작성한 전국 지질 지도를 비롯한 각종 지도와 책, 논문도 모았다.
영월지오뮤지엄 민경문 관장이 1962년 제작된 ‘태백산지구지질도’를 펼쳐 보이고 있다.민 관장이 바라는 것은 명예나 지위가 아닌 것 같다. 발 딛고 사는 이 땅이 품은 돌과 바위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찾아보고자 하는 소박한 바람 정도다. ‘소박한 영혼, 소박한 심장, 소박한 희망….’ 어니스트가 큰바위 얼굴에서 찾은 것도 그런 것이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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