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부르는 맛, 왕돌초에서 자란 울진대게의 향연[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경북 울진 후포항의 아침. 일출시간인 7시반에 맞춰놓은 알람시계에 잠이 깼다. 서둘러 옷을 입고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목표지였던 등기산 전망대는 좀 멀었다. 이대로 해가 떠버릴 가능성이 큰 상황. 숙소 바로 앞 후포항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은 항구의 일출을 감상해볼까. 여기는 울진대게의 본산인 후포항이 아니겠는가. 붉은 태양과 어우러지는 붉은대게(홍게)와 울진대게의 향연. 한겨울 동해에서만 볼 수 있는 항구의 분주한 아침 풍경이다.

●울진대게 축제가 열리는 후포항

동이 트는 항구에는 커다란 어선 두척이 정박해 있었다. 장화를 신은 일꾼들이 배 창고에 실려 온 대게를 꺼내 테이블 위에서 정리하고, 노란 플라스틱 박스에 담는다. 그리고 항구에 도착한 트럭에 빠르게 옮겨싣고 있다.

“이 대게가 어디서 잡혀오는 건가요?”
항구에서 만난 이상하 하이F&B 대표는 “후포항에서 배로 2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왕돌초에서 잡아온다”고 말해준다. 왕돌초라니! 지난 여름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다녀왔던 바닷 속이라 친근한 이웃을 만난 느낌이 들었다.


후포항에서 23km 떨어진 왕돌초는 태백산맥과 나란히 바닷 속에서 솟아오른 해산(海山)이다. 물이 맑아 수중시야가 30m가 넘는 곳. 해외바다가 부럽지 않은 국내 3대 다이빙포인트 중의 하나다. 여의도 2배 규모의 왕돌초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고, 해초숲이 무성해 총 126종의 해양생물이 서식하는 풍요로운 생태계다. 울진 어민들에겐 ‘바닷가 금광’과 다름없는 보고(寶庫)다.

울진대게는 1795년(정조 19년) 사도세자를 추도하는 제향의 식탁에 진상될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 그런데 이 대게가 영덕의 강구항에서 집하돼 팔려나가 한동안 ‘영덕대게’로 전국에 알려졌다. 울진의 입장에선 억울했다. 울진 어부가 울진 왕돌초에서 잡은 대게가 영덕대게로 불리다니. 그래서 1999년 울진군은 ‘울진대게 축제’를 시작했다. 이후 25년간 매년 2월말~3월초에 후포항에서 꾸준히 열렸다.

2017년부터는 붉은대게(홍게)의 어획량이 증가하고 소비층이 다양해지면서 축제 이름은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축제’로 확대됐다. 올해도 2월27일부터 3월2일까지 나흘간 울진군 후포면 왕돌초 광장에서 축제가 열린다. 선상 대게잡이, 대게빵, 대게비빔밥, 대게국수, 게살김밥 등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가 항구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2,3월에 잡힌 울진대게는 살이 꽉차 있어 가장 맛있는 시기다. 박달나무처럼 단단한 살을 가져 ‘박달대게’라 불리는 귀한 존재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후포항 위판장에서 매일 아침에 진행되는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경매 이벤트. 광장에 널려있는 홍게는 마치 고추를 말리는 것처럼 새빨갛다. 어민들이 자신들이 잡은 대게와 홍게를 직접 소개하고, 관람객들은 중간마진 없이 구입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탈피 직전의 대게인 ‘홑게’도 만나볼 수 있다. 1만 마리 중 한마리만 잡혀 선상에서 선주들만 맛본다는 진귀한 음식이다. 곧 벗겨질 겉껍질은 딱딱하지만, 새로 생성 중인 속껍질은 부드러워 껍질째 회로 먹을 수 있다. 그래서 홑게는 다리 껍질을 벗기면 안에서 탱탱한 속살과 속껍질이 꽃처럼 피어난다. 다리살은 초장에 찍어 회로 먹고, 몸통은 살짝 구워 껍질째 씹어먹으면 고소한 맛이 난다.

후포항의 아침 해장국은 곰치국으로 정했다. 흐물흐물한 생선살이 씹지도 않아도 부드럽게 목구멍을 넘어가는 느낌은 숙취로 지친 몸에 따뜻한 위로를 전해준다. 곰치국을 먹는 동안 식당 주인이 곰치를 조리하다가 직접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곰치의 배를 갈라보니 통째로 먹은 울진대게가 사진에 찍혀 있었다. 왕돌초에서 대게를 먹다가 잡힌 곰치가 틀림없었다. 또 다른 곰치의 뱃속에서는 독도새우가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한미정상회담의 만찬 메뉴로 나왔던 귀한 독도새우를 곰치란 녀석은 매일 먹고 있었다니…. 정말 부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해양레저스포츠의 천국인 울진에서 꼭 즐겨봐야 하는 것은 바로 요트탑승이다. 울진군요트협회는 매년 요트학교를 열고 있다. 후포항에서 요트를 타고 방파제를 벗어나니 에메랄드빛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등기산 스카이워크와 갓바위를 올려다보니 더욱 웅장한 자태를 실감하게 된다. 특히 해가 질 무렵 요트를 타면 분홍빛 바다가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울진대게 축제기간에도 진행되는 푸른 동해 위를 떠다니는 하얀 요트들은 후포항에 색다르고 포근한 봄기운을 전해줄 예정이다.


● 겨울에 따뜻한 성류굴

“더울 수 있으니 외투는 차에 벗어놓고 가볍게 들어가세요.”
영하 1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덥다니…. 울진 성류굴에 먼저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이 건네는 조언이었다. 단양 고수동굴, 삼척 환선굴 등 석회동굴은 여름철에는 천연 에어컨 바람을 맞는 듯 시원한 피서지로 손꼽히낟. 그런데 겨울에 찾아가니 따스한 온기가 가득하다. “밖은 영하 10도인데 여긴 15도네”라는 감탄사가 나오는 순간, 계절의 벽이 무너진다.

연중 15~17도를 유지하는 울진 성류굴은 ‘지하금강(地下金剛)’이라 불린다. 2억 5천만 년의 세월이 빚어낸 이 석회암 동굴은 마치 수석(壽石)처럼 섬세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거제도 바다에는 해금강(海金剛)이 있고, 오대산에는 소금강(小金剛) 계곡이 있듯이 기암괴석 아름다운 풍경은 언제나 금강산에 비견된다.

성류굴에서 차로 10분 달려 도착한 남대천 하구에는 은어다리가 있다. 남대천은 국내 최대의 은어서식처. 산란철에 이 곳을 찾으면 바다에서 강으로 회귀하는 반짝이는 은어 떼의 장관을 볼 수 있다. 은어는 연어처럼 바다와 강을 오가며 사는 물고기다.

연어는 강에서 부화해 바다로 내려가 5~6년을 살다가 다시 강으로 돌아오지만, 은어는 불과 1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강물에서 바다를 오가며 부화하고, 성장하고, 산란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수백 마리, 수천 마리의 은어떼가 일제히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천회귀’는 장엄하고 치열하다.

남대천의 은어다리는 두 마리의 거대한 은어 조형물이 마주보고 있다. 두 마리의 은어는 암수를 상징하기도 하고, 바다로 나가고 들어오는 은어를 뜻하기도 한다. 해질녘 은어다리의 조명이 들어오고 야경이 펼쳐지면 색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울진 평해읍에 있는 월송정과 구산해수욕장은 호젓한 겨울 여행지로 좋다. 동해의 쪽빛 바다와 은빛 모래해변, 1만5000여 그루의 소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이 그림같다. 월송정(越松亭)은 ‘신선이 날아 넘어다니는 솔숲’에 있는 정자란 뜻. 조선시대 성종과 숙종도 월송정을 좋아했다고 한다.

월송정에서 바라보이는 해변인 구산해수욕장에는 추운 겨울인데도 몰디브를 연상케하는 파라솔이 놓여 있다. 호젓한 구산해수욕장은 한쪽에 반려견과 함께 놀수 있는 ‘펫 비치(Pet Beach)’도 있어 눈길을 끈다.

●가볼만한 곳=울진의 유서깊은 백암온천은 수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원탕고려호텔에는 가족끼리 프라이빗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있다. 최근 오픈한 VIP풀빌라 가족탕은 단층 펜션건물로 어린 자녀, 임산부, 노년층 가족도 편안하게 1박2일 머무르며 온천을 즐길 수 있다. 내부에 침실과 주방, 거실, 온천탕이 연결돼 있어 3대가 함께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울진대게#후포항#왕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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