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고기정]지금은 한국이 군사력 키울 절호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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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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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추석 연휴에 베이징(北京) 서북쪽에 있는 이허위안(이和園)에 들렀다. 이곳의 인공호수 쿤밍(昆明) 호는 근세 중국의 치욕을 잉태한 곳이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막바지에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청의원(이허위안의 옛 이름)을 철저히 약탈하고 파괴했다. 서태후는 청의원을 개인 별궁으로 쓸 요량으로 1888년 재건사업에 착수하면서 해군 예산을 끌어다 썼다. 군함 훈련용 호수를 판다는 명분을 붙였고 실제로 전투함을 띄운 적도 있었다.

당시 중국 북양함대는 아시아 최강이었다. 가장 큰 함정의 배수량이 7000t 이상으로 한국의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기준 배수량 7600t)과 별 차가 없었다. 하지만 서태후 때문에 재정 지원이 끊기자 전력은 급속히 악화됐고,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궤멸됐다. 당시 북양함대 전투함에는 포탄조차 없었다고 한다. ‘아시아의 병자’ 중국의 마지막 희망은 너무도 허망하게 사라져 버렸다.

19세기 말 동아시아는 일본이 새로 쓰는 국제질서를 청과 조선이 수용하는 구조였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동아시아의 ‘룰 세터(rule setter)’는 중국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와 달라진 것은 질서의 변화 국면을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남중국해와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을 통해 동아시아를 힘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10년 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공산당 총서기 등 현 지도부가 취임했을 때 샹화이청(項懷誠) 국무원 재정부장은 “토끼는 자기 집 주변의 풀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중국이 주변국을 위협할 것이라는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 5월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필리핀을 향해 명·청 시대 황제의 칙서를 전하듯 “소국이 대국을 괴롭혀선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정식 취역한 첫 항공모함은 쿤밍 호의 패착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보였다.

일본은 중국의 부상을 집단적 자위권 확보 등 군사력 증강의 빌미로 활용하고 있다. 6월에는 34년 만에 원자력기본법을 개정하면서 ‘국가 안전보장에 기여’라는 문구를 추가해 핵개발 가능성까지 열어 뒀다. 표면적으로는 센카쿠 분쟁으로 코너에 몰린 것 같지만 실제로는 쏠쏠한 재미를 보는 셈이다. 미국도 중국 견제를 내세워 동남아 국가와 유대를 강화하고 일본 오키나와(沖繩)에 수직이착륙기 배치를 관철하는 적지 않은 이익을 챙기고 있다.

한국은 어떨까.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를 쥘 가능성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중국이 한국에 손을 내미는 정황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하지만 중재자 역할도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 일본이 핵무장을 하면 북한과 러시아를 포함한 동북아에서 한국만 무핵국(無核國)으로 남는다.

기회는 변화와 혼돈 속에서 만들어진다. 세월이 지나 2012년을 회고할 때 한국이 대미 군사의존도를 낮추고 독자 방위력을 증강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고 평가하며 후회할지도 모른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과 일본의 눈치 때문에 한국의 군사력을 제한해 왔다.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 우리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호기다. 단적으로 중국 항모가 서해에 뜨면 한반도 전역이 함재기의 작전 반경에 들어간다. 독도함대 신설 등 해상전력 현실화도 이참에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여야 할 것이다.

새로운 질서가 정착된 이후에는 기회를 찾기가 쉽지 않다. 북양함대에 쓸 은자 2000만 냥을 쿤밍 호에 쏟아 부은 뒤 굴종의 길을 걸었던 중국이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했는지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다.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koh@donga.com
#한국#군사력#중국 함대#일본 자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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