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최영해]잇단 말 실수로 사면초가 된 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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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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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올해 대선에서 백악관을 수성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실업률이 8%를 넘어서고 국민의 60%가 ‘미국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여기는 상황이었다. 그가 경제를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이 워낙 거세 “4년 더 시간을 달라”는 호소가 먹혀들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 결과 ‘스윙 스테이트(경합 주)’에서 오바마 대통령 지지가 뚜렷해져 이런 추세라면 그의 재선이 유력해 보인다.

이렇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오바마가 잘해서라기보다는 상대방인 밋 롬니 공화당 후보가 잇따라 말실수를 하면서 스스로 점수를 깎아 먹고 있기 때문이다. 7월 25일 런던을 방문한 롬니 후보는 “런던 올림픽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개최될지 의문”이라고 말해 영국인들을 분노하게 했다. 이어 예루살렘에서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보다 경제적으로 더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자극했다.

리비아 벵가지 미국 영사관에서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대사가 피살됐을 때에도 롬니 후보는 시위대나 그 배후의 알카에다가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을 겨눴다. 국민적인 단합이 절실할 때 상대 후보에게 네거티브 공세를 펴자 여론은 싸늘해졌다. 많은 미국인은 그가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라는 인상을 받고 있다. 심지어 공화당 내에서조차 롬니 후보의 헛발질에 고개를 돌리고 있다.

올해 8월 말 플로리다 주 탬파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도 그랬다. 전당대회 마지막 날 후보 수락연설 직전에 깜짝 등장한 영화배우 겸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빈 의자’를 놓고 오바마 대통령을 조롱해 거센 역풍을 불렀다. 전당대회의 하이라이트가 돼야 했던 롬니의 후보 수락연설도 빛이 바랬다. 직접 작성했다는 후보 수락연설문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이 없었고 참전 군인의 노고에 대해서도 한마디 얘기가 없었다.

하루 저녁 식사값이 5만 달러나 되는 비공개 기금 모금행사에 부자들을 모아놓고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층을 폄하한 ‘47% 발언’은 결정타였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는 47% 미국인은 정부에 모든 것을 의존하면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47%’를 적으로 만들었다.

그가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정부에 기대 사는 골수 오바마 지지층’으로 분류한 47%에는 재향군인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참전용사와 평생 일해 기여한 사회보장연금과 메디케어의 혜택을 받는 은퇴 노인들, 근로빈곤층, 육아비와 학비 때문에 고통을 받는 중산층 등이 두루 포함돼 있다. 연방정부에 소득세를 내지 않는 저소득층도 사회보장세를 급여에서 원천징수하고 판매세 교량세 등 지방세를 별도로 낸다. 단순히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아예 사실관계가 틀린 것이다.

일각에선 그가 대선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을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도 적지 않다. 궁지에 몰린 롬니 후보에게 오바마 대통령은 “사람들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며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특정 계층만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점잖게 타일렀다.

그가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털 최고경영자 출신이어서 경제를 회생시킬 적임자라는 공화당의 대선 승리 구호는 설득력을 잃고 있다. 다음 달 3일부터 세 차례 열리는 대선후보 토론회는 롬니 후보가 판세를 바꿀 마지막 기회다. 하지만 달변의 오바마 대통령을 얼마나 대적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yhchoi65@donga.com
#롬니#오바마#말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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