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베이징의 맥도널드

  • Array
  • 입력 2011년 3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영화 촬영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맥도널드 형제는 영화 종사자들이 너무 바빠 핫도그로 식사를 때우는 모습을 보고 이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식당 창업을 구상했다. 형제는 연구를 거듭해 1948년 햄버거 감자튀김 음료를 빠른 시간에 제공할 수 있는 식당을 개업했다. 이 업소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프랜차이즈 사업을 제의해 ‘맥도널드 왕국’을 만든 사람은 믹서 판매업자 레이 크록이었다.

▷오늘날 세계 118개국에 3만여 개의 매장을 보유할 정도로 성장한 맥도널드는 단순한 패스트푸드 점포가 아니다. 사회학자 조지 리치는 ‘패스트푸드 점포의 원리가 미국과 세계의 많은 부문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맥도널드화(化)’라고 불렀다. 맥도널드의 세계화는 자유 민주 합리 효율 등 미국적 가치가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맥도널드가 진출한 국가 간에는 무력 분쟁이 없다’고 기술했다.

▷맥도널드화에 긍정적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감독 모건 스펄록은 한 달 동안 맥도널드 햄버거만 먹으며 자신의 신체 변화를 기록해 영화 ‘슈퍼 사이즈 미’를 만들었다. 맥도널드가 비만과 환경 파괴의 주범임을 고발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 농민들이 반(反)세계화 시위 때 맥도널드 점포를 겨냥하는 것도 미국식 문화에 대한 반감이 반영돼 있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맥도널드 점포는 젊은이들로 붐빈다. 유혈 사태가 난 리비아 트리폴리에서도 맥도널드 점포가 성업 중이었다.

▷튀니지발(發) 재스민 혁명이 전파될 것을 우려한 중국 당국이 ‘베이징의 명동’인 왕푸징(王府井) 거리에 있는 맥도널드 앞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이곳은 지난달 20일 몇몇 젊은이가 재스민 꽃을 놓고 민주화 시위를 시도했던 곳이다. 삼엄한 분위기에 베이징 시민들은 서있지도 못하고 밀려났다. 중국 당국은 외신 취재도 막고 있다. 중국에 맥도널드 1호점이 들어간 것이 1991년이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을 시작한 시기다. 그때 맥도널드 점포가 개혁개방의 상징이었다면 20년 후 민주화의 상징으로 바뀔 것인지 세계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