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포커스/정상은]中경제, 패왕 아닌 중재자 돼라

  • 입력 2008년 10월 28일 03시 00분


중국 베이징에서 24, 25일 개최된 제7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 폐막됐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이 빠진 상태에서 아시아와 유럽의 주요국 정상이 모인 이번 회의는 금융위기 처방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자리로 기대를 모았다. 특히 유럽 역시 금융위기의 심각한 타격을 받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금융위기에서 자유로운 아시아의 역할이 세계적 주목을 받은 회의였다. 불과 10년 전인 1998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2차 ASEM에서 아시아 금융위기 해결이 주요 의제였음을 고려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다.

ASEM 회원국은 프랑스 등 유럽이 주장한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액션플랜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말뿐이었다는 비판도 나오긴 하지만 이만하면 괜찮은 성과다. 이 정도만 해도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중심인 미국에는 대단히 위협적이다.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인 중국의 지원이 절실한 미국으로서는 “글로벌 금융시스템은 새로운 혁신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발언이 폐부에 와 닿을 것이다.

금융위기를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 대표되는 현 시스템하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미국과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유럽이 힘의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공은 아시아로 넘어왔다. 중심에는 물론 중국이 있다. 멜라민 파동 등에서 보듯이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중국에 때 이르게도 세계 경제의 향방을 결정할 수 있는 중차대한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중국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결론부터 얘기하면 중국이 새롭게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는 않지만 반드시 해야 할 역할은 있다. 중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 않음은 중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에는 때가 이르다고 함과 일맥상통한다.

첫째,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개혁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에는 중국의 금융당국이나 금융기관이 여전히 취약하다. 중국 금융기관은 돈만 많을 뿐 자산운용 능력이나 경험, 세계금융시장을 보는 시각이 턱없이 부족하다. 둘째, 중국이 고도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현 시스템을 수호해야 한다. 중국 고도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은 대미 무역흑자다. 이런 점에서 중국은 미국과 함께 현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이다. 대미 수출이 타격을 입을 경우 이로 인한 중국 금융권의 부실은 경제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유럽 선진국은 글로벌 금융시스템 개혁을 위해 일정 기간의 경기침체를 감내할 수 있는 체력이 있지만 개발도상국이자 국내적으로 취약한 중국은 단기간의 성장률 급락에도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 여전히 달리는 자전거인 중국에 있어서 고도성장은 생명줄과 마찬가지이다. 결국 중국은 시기의 문제일 뿐 미국을 지원하던 기존의 역할을 그대로 답습할 것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새로운 역할을 해야 한다. 10년 전 미국의 반대와 중국의 미온적인 태도로 성사되지 못한 아시아통화기금(AMF) 설립을 포함해서 동아시아 경제의 안정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이다. 미국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고 동아시아 금융시장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므로 현 상황은 10년 전보다 양호하다. 일본과의 해묵은 헤게모니 경쟁으로 금번에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동아시아 경제의 안정과 공동 발전은 요원하다.

중국은 거대 외환보유액을 AMF 주도권 장악의 수단으로 삼을 게 아니라 동아시아의 대국답게 아시아 각국이 균형 있는 목소리를 내도록 적극 지원하고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또 내수 진작과 시장 개방으로 아시아 국가로부터 수입을 더욱 확대해 지역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AMF의 최대 지분을 장악하는 것보다는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 중국이 진정 동아시아 경제에서 헤게모니를 가진 국가로 인정받는 일일 것이다.

정상은 한남대 교수 중국통상 경제학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