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인터넷]한글 몰아내는 통신언어 '외계어'

  • 입력 2003년 10월 13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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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인 9일 오후 네이버의 인터넷 공간에 ‘채팅 용어의 예(언어, 문자)’라는 제목의 글이 떠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채팅에서 사용되는 왜곡된 언어의 사례가 필요해요. 컴터 숙젠데, 좀 도와 주세효.’

답변은 이랬다. “‘컴터’ 자체가 채팅 용어고요, ‘주세효’도 채팅 용어죠.”

이 질문자는 도움을 청하는 자신의 호소가 왜곡된 우리말로 돼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안능∼, 할루∼, 앙뇽∼’ 등이 일상생활에 들어온 지는 오래됐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통신 언어를 그대로 과제물에 써내는 바람에 언어순화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통신언어 상의 독특한 언어와 이모티콘(통신상에서 말하는 사람의 감정을 나타내는 그림)으로만 구성된 소설까지 등장했다.

▽점점 더 기승부리는 ‘외계어’=기존 통신 언어는 한글에서 받침을 없애거나 음운을 줄이는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이른바 ‘외계어’라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외계어에 해당하는 예를 하나 보면 ‘øよøぎㅎビλĦㅎコ’. 괴상하게만 보이는 이 조합의 뜻은 ‘안녕하세요’. 세종대왕이 이 표시를 본다면 심정이 어떨까. 네티즌들은 그리스 문자나 일본어, 컴퓨터의 도형모음 등에서 한글의 자음이나 모음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아 개별적으로 외계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ø’를 ‘ㅇ’으로 활용하는 식이다.

이런 식의 의사소통이 원활할 리 없다. 정확한 규범이 없다보니 서로 알아듣지 못해 특정 문자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 인터넷 게시판에 자주 오른다.

이렇듯 사이버 공간에서 우리의 글자 생활은 진화가 아니라 퇴행하고 있지만 이른바 외계어는 인터넷을 타고 그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 다음에서 ‘외계어’나 ‘특수문자’ 등을 검색어로 입력하면 1만명이 넘는 회원을 가진 동호회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들은 자신들이 독특하게 만든 외계어를 ‘예쁜 서명’(e메일 끝에 첨부하는 글귀)이라는 형태로 공유하면서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한글학회 성기지 연구원(41)은 “초기 통신언어는 의사소통을 빨리 하기 위해 음운을 줄이거나 받침을 없애는 방식으로 나타났지만 2단계라고 할 수 있는 외계어는기성세대를 배제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젊은층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성 연구원은 “인터넷이 있기 이전에도 ‘꼰대’나 ‘짱’과 같은 젊은 사람들만의 은어가 있었지만 인터넷과 결합하면서 한글 오염에 속도가 붙었다”고 말했다.

▽한글의 중요성 인식하는 것이 중요=9일은 한글날이었다. 이날 한글단체에서는 인터넷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그 쓰임이 늘고 있는 국적불명의 언어에 대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글문화연대 김영명 대표(49·한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국적불명의 이상한 언어도 문제이지만 성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외국어가 더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글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인터넷이나 일반 대화 속에서 한글이 변형·왜곡된다는 것.

성 연구원은 “사회 계층이나 세대간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언어가 늘어나면 이는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며 “이런 이유 때문에 한글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비뚤어진 한글 사용에 대해 견제하는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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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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