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 탄생 177주년인 9일 그의 고향인 ‘야스나야폴랴나(빛나는 들)’ 마을. 러시아의 한인 3세 작가인 아나톨리 김(65) 씨가 제3회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았다. 수상작은 1982년 발표돼 옛 소련 문단에서 격렬한 논쟁을 일으키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다람쥐’.
숨 막히는 사회 분위기를 견디다 못해 다람쥐로 변신한 주인공을 비롯해 돼지 돌고래 오소리로 변신한 4명의 예술가를 통해 인간 내면의 동물적인 속성과 황폐한 소련 예술계의 단면을 드러냈던 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이 해 크렘린에서 열린 전소련작가대회에서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주인공을 동물로 변신시켰지만 결국 촘촘한 검열의 그물을 피하지 못한 것. 당시 마르코프 소련작가동맹 의장이 이 작품을 비난하는 연설을 하던 도중 쓰러져 사망하는 해프닝까지 일어났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서방에서는 그의 성가가 더 높아졌다. ‘다람쥐’는 지금까지 한국어를 포함해 17개 국어로 번역돼 나왔다.
심사위원단은 “김 씨가 러시아 문학에서 ‘인간애’라는 톨스토이의 철학적 기반을 가장 잘 계승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이번 수상이 뒤늦은 감이 있다”고 밝혔다.
강릉 김씨로 시인 이상(본명 김해경)의 후예이기도 한 그는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모스크바의 고리키문학대를 마치고 1970년대부터 7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동안 “작품 속에 민족의식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아 온 그는 최근 20여만 명의 고려인이 사는 중앙아시아로 이사했다. 고려인연합회의 요청으로 침체된 한인 문화를 되살리는 작업을 돕기 위해서다. 김 씨는 “내 작품은 러시아어로 표현됐지만 늘 한국의 정신을 담고 있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후원으로 만들어진 톨스토이 문학상은 솔제니친 문학상과 함께 러시아에서 상금 규모(총 3만 달러)가 가장 큰 문학상. 지난해 수상식에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부인 권양숙(權良淑) 여사가 참석하기도 했다.
야스나야폴랴나=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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