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고속철이 달린다]<中>운송업계 패러다임 변화

  • 입력 2003년 12월 15일 19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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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운행 중인 고속열차가 충남 천안시 풍세면 풍세교를 통과하고 있다. 내년 4월 고속열차가 개통되면 항공사 국내편과 중장거리 고속버스 이용자의 상당수가 고속열차로 넘어오면서 국내 장거리 교통체계의 새판 짜기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제공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시험운행 중인 고속열차가 충남 천안시 풍세면 풍세교를 통과하고 있다. 내년 4월 고속열차가 개통되면 항공사 국내편과 중장거리 고속버스 이용자의 상당수가 고속열차로 넘어오면서 국내 장거리 교통체계의 새판 짜기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제공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올해 10월 일본 도쿄 남쪽의 시나가와(品川)역에 신칸센이 정차하기로 하자 일본 항공사들은 초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도쿄 남서부지역에서 근무하는 대기업 사원들이 오사카 등지로 출장을 갈 때는 하네다공항의 국내선 항공편을 많이 이용했다. 도쿄역까지 나가는 번거로움 때문. 그런데 시나가와역이 생기면서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항공사들은 ‘하늘은 빠르다. 하늘은 싸다’라는 광고와 함께 고객 유치전에 나섰다. 우선 국내선 마일리지 혜택을 두 배로 늘렸다. 요금도 대폭 할인, 도쿄∼오사카 구간(편도 기준)도 800엔(약 8000원)을 할인 신칸센 요금보다 50엔이 싸졌다.

두 달 정도 지난 현재 양측의 경쟁 결과는 일단 무승부다. 신칸센 승객이 약간 늘었지만 항공사도 현상유지하고 있다. 가격이 싸지고 서비스가 개선되자 자가용, 일반 열차, 고속버스 등을 이용하던 이용객들이 고속열차와 항공기로 돌아선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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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上>국토이용 방식의 대변화

▽고속열차와 항공사의 경쟁=비슷한 경쟁이 한국에서도 벌어질 전망이다. 심지어 일부 국내항공편은 고사(枯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교통개발연구원이 올 10월 내놓은 ‘경부고속철도 개통 후 교통부문’ 보고서에 따르면 경부고속철도 영향권에 있는 노선의 항공기 이용객은 5∼65%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또 2005년에는 경부고속철도와 직접 경쟁을 벌이는 항공사의 서울∼대구 노선은 하루 37회에서 7회로 무려 30회가, 서울∼부산 노선은 89회에서 66회로 23회가 각각 줄어들 것으로 추정됐다.

교통개발연구원 이재훈(李在勳) 철도교통연구실장은 “그나마 부산 대구 청주 양양 등 지방 거점공항을 제외하곤 나머지 지방공항은 운영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유럽에서는 고속철도와 항공사가 공존하는 방안을 찾아냈다. 프랑스의 테제베는 에어프랑스나 루프트한자 등과 제휴해 고속열차와 항공기를 원스톱으로 이용하는 서비스를 제공, 이용객을 크게 늘렸다.

▽도로에서 철도의 시대로=고속철도는 기존철도 및 고속도로 수송 수요도 대량 흡수한다.

프랑스에서 최초 고속철도인 파리∼리용이 1981년 개통된 이후 파리에서 프랑스 동남부지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이용자 110만명이 고속철도로 전환했다. 또 여객수송 분담률도 개통한 지 3년 만에 철도는 32%포인트 늘어난 반면 승용차는 8%포인트 줄었다.

일본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1965년 신칸센이 개통된 이후 교통수단별 수송 분담률이 고속철도는 20%포인트 증가한 반면 고속버스는 5.4%포인트 감소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고속철도가 운행되면 철도수송능력은 하루 18만명에서 52만명으로 3배로 늘어난다. 여객이 기존 철도에서 고속철도로 옮겨감에 따라 기존 철도의 화물수송능력에도 여유가 생겨 컨테이너 수를 기준으로 7.7배 정도 증가한다.

여기에 고속도로 이용 승용차가 감소에 따른 교통혼잡 해소 등까지 감안한 경제적인 효과는 연간 1조8500억원(2005년 기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이런 분석 결과를 놓고 일부에선 고속철도의 개통이 ‘철도의 르네상스’를 가져올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성급한 기대감마저 나올 정도다.

▽고속버스 업계는 비상, 화물업계는 느긋=교통개발연구원은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경부고속철도와 경쟁이 불가피한 대전 대구 부산 등 중장거리 이용자는 40% 정도가 고속철도를 이용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에 따라 버스운행 횟수는 대전 이남 구간에서 26∼42% 정도 줄어들고 운임 수입도 44∼48%까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업계가 ‘새판 짜기’를 겪게 되는 것. 다만 100km 이내 근거리 노선은 고속철도 개통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승용차 이용자는 4% 정도가 고속철도 여객으로 전환될 전망이다.

철도청은 2010년 고속철도 2단계 개통 후 기존 철도노선에 여유가 생기면 이를 이용해 화물운송량을 늘릴 방침이다. 그러나 컨테이너를 도착역에서 최종 목적지까지 옮기기 위해선 다시 화물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 화물업계는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당일 관광 크게 늘어날 듯=고속철도 개통은 관광산업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프랑스의 경우 테제베가 개통되면서 프랑스인의 여행 방식이 바뀌었다. 테제베 개통 전인 1980년까지 철도여행객 가운데 무박(無泊) 여행객은 26%에 불과했다. 하지만 테제베 개통 이후 1985년에는 54%로 늘어났다.

일본 등을 보면 고속철도 개통 이후 고속철도역을 중심으로 테마파크 개발 등도 활기를 띠고 유동인구를 지원하는 서비스도 발달하다.

여기에 업무통행시간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체류시간이 길어져 업무생산성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국토연구원 조남건(趙南建) 연구위원은 “서울∼부산의 경우 체류시간이 평균 2시간 정도 늘어나고 그만큼 업무생산성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별취재팀▼

허승호(경제부차장·팀장)

황재성(경제부)

이기진(사회1부·대전)

이재명(사회2부·수원)

박원재(도쿄특파원)

박제균(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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