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발발 2주년…아프간의 오늘]폐허만 남은 ‘잊혀진 땅’

  • 입력 2003년 10월 6일 20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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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과 비호세력 탈레반을 척결한다는 명분으로 미국과 영국 연합군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지 7일로 2주년이 됐다.

2001년 12월 집권 탈레반이 항복을 선언했을 때 아프간 전역에서는 탈레반의 폭정에서 벗어났다는 해방의 기운이 넘쳤다. 그러나 최근 아프간의 속살을 들여다본 언론인들은 아프간의 모습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미국 주간지 ‘LA 위클리’의 벤 에렌레이크 기자는 최근(3일자) 아프간 현지 르포기사에서 “정부가 과연 존재하는가”라고 탄식했다.

▽아프간의 현재=카불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차창 밖으로는 폐허가 이어진다. 흙먼지를 뒤집어 쓴 탱크의 잔해가 가장 흔한 풍경이다.

카불 시내에서 총탄 자국이 없는 건물은 거의 없다. 전쟁 통에 파괴된 주택은 부서진 채로 남아있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인들은 거리에서 푸른색 부르카를 쓴 채 구걸을 한다.

전쟁 이후 달라진 것도 있다. 카불 거리를 질주하는 택시에서는 탈레반 치하에서 금지됐던 음악이 흘러나온다. 공터에는 축구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인 상황은 비관적이다. 하루 평균 4명이 지뢰나 불발탄으로 사망하며 아이들의 약 25%는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

4개 주요 도시 외에는 전력 공급도 안 된다. 카불에서조차 전체 주민의 5분의 1만이 깨끗한 물을 쓰고 있다. 1000가구가 단 하나의 수동 펌프에 물 공급을 의존하는 지역도 있다. 병원과 의료 인력도 태부족이다.

▽치안 확보가 급선무=치안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아프간 남부와 동부에서는 거의 매일 연합군과 탈레반 세력간에 교전이 벌어진다. 이미 아프간 남동부 대부분 지역이 탈레반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는 소문도 있다.

카불 북쪽 바그람 미 공군기지의 더글러스 레포지 중령은 “탈레반은 바퀴벌레 같아서 불을 비추면 흩어지지만 곧 다시 모인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종족간 위화감은 여전하다. 특히 아프간 최다 부족인 파슈툰족은 전쟁 이후 북부동맹의 지휘관들이 모든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데 대해 공공연히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하미드 카르자이 과도정부가 “정부의 힘이 카불 밖으로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시인할 정도다.

▽잊혀진 땅=미국의 인터넷언론 ‘에디터앤 퍼블리셔’는 최근 사설에서 “아프간은 그 어느 때보다 국제적 관심이 필요하지만 미국 언론은 최소한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 개시 2주년이 됐지만 미국 언론들은 아프간에 거의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아프간에 특파원을 두고 있는 곳은 워싱턴포스트뿐이다. 모든 관심은 이라크에 쏠려 있다.

미국 정부의 지원도 미미한 수준이다. 지금까지 아프간 재건비로 미국이 쓴 돈은 6억달러. 하지만 세계은행은 아프간 복구에 앞으로 5년간 최소 100억∼150억달러가 필요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5일 아프간을 방문한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은 “전후 복구를 위해 12억달러를 추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12억달러는 이라크 주둔 미군이 1주일에 쓰는 비용과 비슷하다. 그나마 엄청난 재정 압박에 직면한 미국 의회가 12억달러 추가 지원안을 통과시킬지는 미지수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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