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근면성과 교육열로 특징지어지는 국민성, 시련으로 점철된 역사 등 한국과 공통점이 많다. 특히 이스라엘은 한국의 경제위기와 유사한 상황을 80년대에 맞아 성공적으로 극복한 나라이기도 했다.
이스라엘도 대기업과 은행의 부실화로 금융시장이 무너지면서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 83년 주식시장이 붕괴, 시가총액이 70억달러나 떨어졌다. 당시 이스라엘 인구가 4백20만명이었던 점에 비춰 이는 재앙에 가까웠다. 이듬해 환율이 폭등, 1달러에 1천5백세켈(97년 현재 1달러는 약 3세켈)까지 치솟았다. 인플레율은 500%, 실업률은 12∼14%나 됐다.
한국 최초의 이스라엘 유학생으로 벤구리온대 교수로도 재직했던 유태영(柳泰永)건국대 교수는 『하루가 다르게 뛰는 환율 때문에 상인들은 국산품까지도 달러로 가격을 표시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스라엘의 처방은 요즘 우리와는 달랐다.
경제의 기초는 건실하다고 판단한 이스라엘 정부는 외부에 손을 벌리는 대신 모든 정파가 참여하는 거국내각을 구성, 위기 극복에 나섰다.
이스라엘의 바탕이라고 생각되던 교육 및 국방예산까지 줄이는 긴축재정을 폈다. 노사정(勞使政)의 합의아래 세제 고용 실업정책도 조정했다. 부실한 은행은 국유화해 예금주를 보호함으로써 불안과 동요가 확산되는 것을 막았다. 환전 제한, 해외여행 중과세, 다국적기업 본사 유치 등의 정책도 채택했다. 모셰 람 이스라엘 외무부 경제1국장은 『정부는 무엇보다도 정책 방향을 투명하게 알려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얻어내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뼈를 깎는 노력의 결과 85년 인플레율은 10%, 1달러는 1.5세켈로 떨어졌다. 정부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시장개방을 가속화했다. 신발 섬유 등 저부가가치 산업에서 첨단산업 위주로 산업구조도 바뀌어갔다. 90년대 들어 이스라엘은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6%, 인플레율 8∼10%를 유지하고 있다.
아리에 아라지 주한 이스라엘 대사는 『경제위기로부터 금융이든 산업이든 폐쇄구조에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교훈을 얻었다』며 『위기도 적절하게 대응하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진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