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전 디자인 ‘미니멀리즘 가구’… 가구 ‘본연의 기능’ 깨우다

  • 동아일보

美 ‘미니멀리즘 대가’ 도널드 저드
침대-의자-책상 직접 만들어 사용
‘현대카드 스토리지’서 38점 전시
“대량생산-세계화에 의문 제기… 제대로 된 ‘자기만의 것’ 추구”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스토리지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도널드 저드: 가구’전 전시 전경. 위쪽 사진은 저드가 손수 만들었거나 예전 디자인을 토대로 다시 만든 가구, 아래쪽 사진은 저드가 가구에 대해 쓴 책이 전시된 모습이다.
현대카드 제공 ⓒJudd Foundation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스토리지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도널드 저드: 가구’전 전시 전경. 위쪽 사진은 저드가 손수 만들었거나 예전 디자인을 토대로 다시 만든 가구, 아래쪽 사진은 저드가 가구에 대해 쓴 책이 전시된 모습이다. 현대카드 제공 ⓒJudd Foundation
“제대로 된 의자도 하나 살 수 없는 사회가 과연 제대로 된 사회인가?”

1970년대에 미국 뉴욕에서 텍사스 외곽 외딴집으로 이사 간 미국 예술가 도널드 저드(1928∼1994)는 당시 푸념하듯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 글을 쓸 무렵 저드가 살았던 텍사스 마파는 농업 지대였다가 1950년대 이후 중산층이 생겨나고 있었다. 가구 수요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이 옛 스타일을 어설프게 흉내 낸 가짜 앤티크나 대량 생산 플라스틱 제품이었다.

이에 저드는 침대부터 책상과 의자, 선반까지 직접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1970∼1990년대 그가 만든 나무와 금속, 합판 소재 38점이 한국에서 전시되고 있다. 서울 용산구 전시·문화 공간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열리는 ‘도널드 저드: 가구’전이다.

이 전시를 감상하려면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전시장에서 마주한 가구들이 지금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직각과 직선의 장식이 거의 없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지하 1층에서 전시된 금속 선반은 백화점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가구 브랜드가 떠오를 정도. 하지만 이 가구들이 30∼50년 전 디자인됐다는 걸 고려하면 놀랍기까지 하다.

저드는 당시 ‘좋은 가구’를 찾고 싶었지만 찾을 수 없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텍사스건 뉴욕이건 대부분 사람이 고를 수 있는 가구는 화려하고 과도하게 장식된 빅토리아 가구의 모조품이다. 이 가구들은 전통적이거나 보수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과거를 모방한 것이다.”

저드가 싫어한 건 의자 바닥 면에 채워진 푹신한 솜이나 팔다리 끝에 추가된 잎사귀 혹은 동물 발 모양의 장식 등이었다. 그는 이러한 장식이 의자 본연의 기능인 ‘앉아서 무언가를 하는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불필요하게 생겨난 군더더기’라고 봤다. 그 장식을 왜 넣어야 하는지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관점에서 저드가 가구를 만드는 과정은 모든 기준을 원점에서 생각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우선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소나무를 이용하고, 어디에 쓸지 기능을 생각해 치수를 재고, 그에 맞는 마감까지 현지 이웃 목수들과 함께 작업했다.

지하 2층 전시장에 가면 보이는 연단 같은 커다란 책상은 저드가 드로잉하거나 스케치하며 썼다. 일어서서 작업할 수도 있도록 높이가 맞춰져 있으며, 책상의 상판은 약간 기울어져 있다. 가까이 가보면 종이가 놓여 있던 곳만 색이 바래지 않아 하얗게 남은 흔적이 있다.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뭘까. 저드는 ‘자기만의 것’을 찾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는 “스위스나 텍사스가 왜 직접 차를 생산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수입해 오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유통의 독점은 진정한 혁신을 막는다. 모두가 비슷한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새로운 의자나 작지만 좋은 책을 만들 수 없게 된다”고 꼬집는다. 20세기 후반 대량 생산과 세계화가 가속되면서 모든 사람이 비슷한 물건을 쓰는 현실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저드가 지금 백화점에서 미니멀리즘 가구가 유행하는 걸 보면 뭐라고 말할까. 그것이 진정 마음과 취향에 와닿아서 쓰는 것이 아니라면, 똑같이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예술의 개념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했던 미니멀리즘 예술가, 저드의 일상이 어떤 철학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가 직접 만들고 썼던 가구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는 전시다. 내년 4월 26일까지.

#도널드 저드#미니멀리즘#가구 디자인#기능주의#현대카드 스토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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