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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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4-06-27~2024-07-27
미술75%
문학/출판13%
문화 일반3%
칼럼3%
언론3%
인사일반3%
  • [책의 향기]추리극처럼 펼쳐지는 대항해시대

    교통과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개방적인 세상을 맞았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다른 문화, 종교, 욕망이 충돌하며 국경을 걸어 잠그거나 교역을 제한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국가주의, 고립주의로 돌아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책은 수백 년 전 세계의 상품이 모여들던 포르투갈 리스본에 살던 두 남자를 조명해 지금을 되돌아보게 한다. 첫 번째 인물은 16세기 후반 포르투갈 왕립 기록물 소장이던 다미앙 드 고이스(1502∼1574)다. 책은 그가 벽난로 옆에서 반쯤 타다 만 문서 조각을 쥔 채 사망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의 죽음에 관한 기록은 엇갈린다. 시신에 폭력의 흔적은 남았지만 불에 타 죽은 것인지, 교살당했는지, 그 범인은 누구인지 밝혀진 바가 없다. 이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두 번째 인물 루이스 드 카몽이스( ?∼1580)가 나타난다. 카몽이스는 세계를 방랑하며 겪은 경험을 서사시로 담아냈다. 이 서사시는 라틴어, 스페인어, 영어, 프랑스어로 번역돼 그는 포르투갈 국민 시인의 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그가 남긴 편지를 비롯해 다미앙 사망의 진범을 파헤칠 단서들이 드러나게 된다. 다미앙은 기록 보관소에서 종이 더미에 파묻혀 살았지만, 세계에서 모여든 기록을 탐독하며 넓은 시야로 변화하는 세상을 봤다. 반면 세계를 떠돌아다닌 카몽이스는 서사시를 통해 유럽인을 세계의 중심으로 내세우며 오히려 편협한 시각을 고집했다. 이 두 이야기를 교차하며 책은 어쩌면 인간은 낯선 사람과 문화를 접할수록 불안해하고 공격적으로 되며, 그러한 편협함이 본능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물리적 연결보다도 열린 태도로 세상을 볼 줄 알았던 다미앙의 시각과 상상력이 지금 더 필요한 자세임을 강조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책, 도서관, 여행을 연구하고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치는 저자의 꼼꼼한 연구와 이를 토대로 추리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서술이 인상적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9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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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 흑백 드로잉 속 ‘살인과 장미의 추억’

    폭격기, 탱크 등 전쟁에 관한 이미지를 흑백의 거친 드로잉으로 보여 온 작가 최대진이 ‘꽃 그림’을 그렸다. 10일부터 서울 종로구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열고 있는 개인전 ‘내가 (살아)본 모든 살인들(Tous les meurtes que j’ai v(ec)us)’에서 작가는 처음 그려 본 꽃 그림을 공개했다. 전시장에는 흑백 드로잉 10여 점이 걸려 있다. 여기엔 서울의 풍경을 넓게 펼친 ‘두 개의 달’부터 작가가 대학생 시절 집회에 나섰다가 경찰에게 둘러싸여 얻어맞는 모습을 담은 작품, 걸그룹 에스파까지 다양한 장면을 그린 작품이 소개된다. 그리고 이 그림들 사이사이로 마치 칸막이를 치듯 장미꽃을 그린 작품 ‘오웰의 장미’ 연작이 배치되어 있다. 작가는 “꽃 그림은 미술 시장에서 팔기 위해 그린 쉬운 작품이라는 독특한 의미가 있다”며 “그럼에도 리베카 솔닛이 쓴 ‘오웰의 장미’를 읽으며 꽃이 주는 다른 감정에 공감하게 돼 그려도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웰의 장미’는 문학가 조지 오웰이 일반인의 인식과 달리 정원 가꾸기를 즐겼음을 밝히며,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사사로운 욕망도 사회 변화의 중요한 요인임을 드러낸 책이다. 최 작가는 “‘오웰의 장미’처럼 사소하지만, 개인의 일상에선 커다란 기쁨이 되는 감성에 집중한 결과물이 꽃 그림 연작”이라고 설명했다. 8월 4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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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비닐로 만든 미술관이 하늘로 두둥실

    버려진 비닐봉지를 오리고 붙인 뒤 그 위에 환경에 관한 관심을 드로잉과 메시지로 담아 공중에 띄우는 ‘무세오 에어로솔라’가 서울 하늘에도 등장한다. 리움미술관은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 중인 작가 토마스 사라세노와 함께 공공 참여 프로그램 ‘에어로센 서울’을 개최한다고 24일 밝혔다. ‘에어로센’은 사라세노가 2007년부터 시작해 예술가, 활동가, 과학자 등과 협업해 ‘생태 사회 정의’를 위한 여러 활동을 하는 공동체로, 전 세계 126개 도시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하나로 열리는 ‘무세오 에어로솔라’는 서울 용산구 내 단체들과 협업해 비닐봉지 약 5000개를 수집하고 이를 태양열을 이용해 다음 달에 띄운다. 또 에어로솔라 조형물을 오직 태양열만 이용해 띄우는 비행 키트인 ‘에어로센 백팩’을 제작하는 워크숍도 광주, 경기, 대구, 대전, 부산 등의 지역 미술관과 함께 개최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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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기자’ 청전 이상범의 고뇌 밴, 이순신 삽화를 만나다

    “이순신의 얼굴을 어떠한 어른으로 꾸밀지 한참 생각하였다. 용감한 무장으로 그리면 족할까, 아니 아니 춘원(이광수)의 말씀을 들으면 지, 덕, 용을 갖춘 어른의 얼굴로 그려야 할 것이다.” 한국적 산수의 전형을 만든 청전 이상범(1897∼1972)은 삽화를 그리는 신문사 미술기자로도 오랫동안 활동했다. 그는 1931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이광수 소설 ‘이순신’의 삽화를 그릴 때 고민을 글로 남겼다. 청전은 “무장, 도덕 군자, 선비의 얼굴을 혼합했다”며 “순전히 내 머리에서 빚어낸 얼굴을 후세가 어떻게 비평할지 모르겠다”고 썼다. 그 후 청전은 현충사 중건 과정에서 필요하게 된 이순신 영정도 제작한다. 청전처럼 20세기 신문사에서 기자 또는 사원 직함을 달고 전속 화가로 활동한 ‘미술기자’를 조명하는 전시 ‘아담한 필촉: 기자가 그려낸 신문 삽화 미장센’이 12일 서울 종로구 신문박물관에서 개막했다.● 삽화 미술의 시작 전시는 1910년대 신문 삽화 미술의 태동부터 1920년대 전성기를 미술기자의 행적을 중심으로 선보인다. 한국에서 최초의 만화가로 알려진 이는 이도영(1884∼1933)이다. ‘대한민보’의 1909년 창간호 1면에 목판 인쇄로 시사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이도영은 당대 최고 도화서 화원 출신 조석진과 안중식에게 전통 회화를 배웠다. 이도영이 그린 최초의 만화를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문사에 소속돼 활동한 최초의 미술기자는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도 불리는 고희동이다. 동아일보 창간 동인으로 참여한 고희동은 안석주, 이마동, 이승만 등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도 대거 신문사로 영입해 미술기자 시대를 열었다.● 미술기자 전성시대 전시의 중심은 전성기 활약한 미술기자들이 남긴 자료다. 1920년대 여러 일간지가 창간되면서 각 신문은 화가를 미술기자로 채용했다. 이들은 일반 기자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으면서 신문에 필요한 도안, 삽화, 만화 등을 제작했다. 전시장에 비치된 대형 리플릿을 통해 청전을 비롯한 당대 미술기자들이 고민했던 흔적을 글로 볼 수 있다. 청전은 이순신은 물론 이광수의 ‘단종애사’ 삽화 제작도 가장 어려웠던 일로 꼽았다. 등장인물인 단종, 수양대군, 평안대군의 얼굴에 관해 남겨진 기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또 당시 건축부터 의복, 의관, 악기까지 어떠했는지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야 했기에 이광수와 부지런히 대화해야 했다. 당시 신문 소설은 지금의 영상 콘텐츠처럼 많은 사람들이 즐겨 보는 오락의 수단이기도 했다. 신문사들은 소설을 비롯한 문예 지면이 상업성과 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전문 미술인을 채용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체계적인 미술 교육을 받거나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해 능력을 인정받은 화가들이 삽화 제작에 활발히 참여했다. 당시 동아일보의 이상범, 조선일보 노수현, 매일신보 이승만은 ‘삽화계 삼대 천왕’으로 불리며 당대 신문 삽화 미술의 부흥을 이끌었다. 전시 후반부는 1930년대 이후 신문사를 떠난 미술기자들이 영화감독, 미술가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에 종사하는 과정을 그린다. 안석주(1901∼1950)는 삽화가로 기른 재능을 영화 연출에 활용했는데, 그가 남긴 흑백 유성영화 ‘심청’이 상영된다. 한국화가 천경자와 ‘고바우 영감’의 작가 김성환의 1960, 70년대 소설 삽화와 만평도 전시된다. 9월 8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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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소한 드러내며 기억은 강렬하게

    미국, 멕시코에서 전시를 열었지만 한국에서는 이번이 처음인 아침 김조은의 개인전 ‘최소침습’에는 두 겹으로 된 비단 그림이 있다. ‘Unshoved(빼내다, 내 목에서 뼈를 꺼내는 엄마 위 생선요리)’라는 제목의 그림 위 겹에는 생선 요리가, 아래 겹에는 딸의 목에 걸린 생선 가시를 빼주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11일 전시가 열리는 서울 강남구 글래드스톤에서 만난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밥을 먹는데 목에 피가 날 정도로 생선 가시가 박혔어요. 아빠는 ‘밥을 꿀떡 삼켜’라고만 하는데, 엄마가 망설임 없이 제 입에 손을 넣고 가시를 뺐고 그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어요. 딸에게 엄마는 경계 없는 사랑을 베풀지만 그게 때로 괴로운, 미묘한 관계잖아요.” 이 작품의 아래 겹 그림은 202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개인전에서 선보인 ‘사자굴’ 연작의 일부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가족의 고통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하고, 빚쟁이가 아버지를 찾겠다고 우유 구멍으로 손을 집어넣는 극한의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는 “가족이 터부시하던 시절이었는데 응어리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집 문고리가 어떻게 생겼더라?’ 하고 작은 이야기로 가족과 대화를 시작했다”고 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관객들은 작가는 물론 부모님까지 붙잡고 저마다의 어려웠던 시절을 털어놓았고, 신진 작가임에도 LA카운티뮤지엄(LACMA)의 큐레이터와 아티스트 토크를 열었다. 그는 “비디오 가게, 우유 구멍, 피아노 같은 한국인만 알 수 있는 상징이 많은 작품이어서 한국 미술관에서도 꼭 전시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실에서 보내며 파티나 개막식에도 잘 가지 않는 ‘내향인’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삶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과 섬세함이 묻은 전시에 대한 입소문으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치렀다. 한국에서의 첫 전시 소감을 묻자 그는 “지금도 한국에 오면 꼭 고속터미널역에 있는 한가람문고를 가는데, 어릴 때는 주저하며 샀던 비싼 전문가용 붓을 한 꾸러미 사는 순간에야 실감이 났다”며 웃었다. 이번 전시 제목은 ‘최소한으로 자신을 드러내길 바라며 누군가의 기억엔 강렬하게 남고 싶어 하는’ 아이러니한 사람들의 인생 철학을 담았다. 최근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는데, ‘사자굴’ 연작처럼 개인사를 직접 이야기하기보다 느낌과 감정을 담은 것이 많다. 전시장에서는 액자를 벽에서 살짝 띄우거나, 다른 느낌의 천을 겹치고, 왼쪽 오른쪽을 함께 그리는 등 어느 쪽으로도 결정 짓지 않으려는 연출이 돋보인다. 이에 대해 그는 “작품과 전시를 ‘초고’ 상태로 두기를 좋아한다”며 “오늘의 나보다 미래의 내가 더 나은 사람일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 달 3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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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카소는 ‘시녀들’을 어떻게 변주했을까? [영감 한 스푼]

    2주 전 발송한 프라도 미술관 큐레이터 하비에르 포르투스 페레스 인터뷰의 이어지는 내용입니다.지난 뉴스레터 보기 ☞ 서양 미술사의 가장 미스터리한 그림, ‘시녀들’ 이탈리아 고전 미술의 영향- 벨라스케스가 초상, 역사화 등 전통적인 구분을 깼지만 그 바탕에는 고전 미술에 대한 충실한 이해가 있었다고요.맞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이탈리아를 두 번 여행했는데, 30세에 떠난 첫 번째 여행에서 시스틴 채플, 바티칸 벽화, 고대 로마 조각 등을 그렸습니다. 그러한 고전 예술에서 벨라스케스가 많은 배움을 얻었음을 알 수 있는데요.예를 들어 이 그림은 이탈리아로 여행하기 직전에 그린 것입니다. 훌륭하지만 공간의 관점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죠. 인물이 모두 전경에 나열되어 있어서 공간이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그리고 몇 달 뒤 고대 조각,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연구한 뒤 공간 문제를 해결했음이 다음 작품에서 드러나죠.여기서 공간은 매우 작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죠. 또 인물을 보면 고대 조각을 연구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모든 인물들이 일상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벨라스케스만의 특징도 살아 있습니다.- 벨라스케스 그림 속 사람들은 늘 움직이는 듯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중간을 포착한 것 같아요. 네. 인물의 얼굴은 고대 그리스 로마 조각을 연상케 하지만, 벨라스케스는 늘 다르게 보이는 것을 추구했어요.처음부터 남들과 달라야 함을 생각했다는 것이 벨라스케스의 주요한 특징이죠.이탈리아 로마에 가서도 고대 예술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늘 ‘다름’을 고민했어요.- 고대 예술을 해석해서 자신만의 버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네요. 벨라스케스를 이해하려면 그가 유럽 전역에서 가장 중요한 회화 컬렉션과 가까이에 있었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스페인 펠리페 4세 왕은 그 시절 가장 중요한 컬렉터였어요. 또 궁에는 티치아노, 루벤스의 최상급 작품들이 있었죠. 벨라스케스는 루벤스, 티치아노, 틴토레토, 반 다이크 그림에 둘러싸여 있었어요.‘스페인 미술’ 아닌 ‘유럽 미술 네트워크’를 조명하는 미술관의 전략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19세기까지 스페인 미술을 연구하던 역사가들은 우리 미술이 다른 나라와 어떻게 다른지, 스페인에 고유한 특징을 강조하는 데 몰두했어요.그런데 그 후 이어진 연구에서 스페인이 그렇게 고립되어 있지 않았고, 오히려 이탈리아와 플랑드르의 좋은 작품들을 갖고 있음을 주목했죠.지난 50년간 스페인 미술사는 벨라스케스, 무리요, 주르바란을 고립된 화가가 아니라 유럽과 교류하고 이해하는 화가라는 관점에서 조명하려 노력했습니다.벨라스케스의 경우 티치아노, 루벤스, 반 다이크의 작품을 매우 잘 알고 있었죠. 또 이탈리아 화가도요. 이들을 아주 잘 알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갖고 싶어 했어요.- 맞아요. 어제 프라도의 컬렉션 전시를 보면서 그런 맥락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벨라스케스와 고야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상설전을 순서대로 따라가 보니 티치아노, 루벤스의 영향을 느낄 수가 있었어요.현재 미술관 상설전의 배열이 정확히 그 점을 강조하려 했습니다.예를 들어, 메인 갤러리에서는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색채 화가인 베네치아 화가들을 볼 수 있어요.그다음으로 루벤스가 있어요. 루벤스는 비록 플랑드르 사람이었지만, 베네치아 화가들의 진정한 후계자였죠. 당시에는 국가별 작가 개념이 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죠.18세기부터 미술사는 주로 국가의 관점에서 쓰여 졌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멉니다.피카소가 해석한 ‘시녀들’‘시녀들’을 미술 내 장르, 국제적 미술의 관점뿐 아니라 다른 것과도 연결 지어 볼 수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연결 고리는 연극입니다.당시 스페인에선 연극은 왕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즐겼어요. 작가들은 한 작품 속에 다양한 의미를 넣어 누구나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죠.‘시녀들’에도 비슷한 속성이 있어요. 연극처럼 여러 가지 의미를 복합적으로 넣은 것이 그렇죠. 그리고 이를 정확히 이해한 예술가 중 한 명이 바로 파블로 피카소예요.- 피카소가 ‘시녀들’을 리메이크 한 연작 58점을 만들었죠?네. 그런데 마지막 작품이 무엇인지 기억하시나요? 이 작품이에요. 마치 연극 무대에서 관객에게 배우가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죠. 피카소는 ‘시녀들’ 연작을 막이 내린 연극처럼 표현했어요.- 피카소는 벨라스케스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거네요. 피카소는 벨라스케스와 경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재밌는 건 이 연작에서 피카소가 처음엔 벨라스케스를 거인 같은 존재로 그렸는데, 뒤로 갈수록 벨라스케스가 점점 사라진다는 점이에요. - 피카소의 작품에선 늘 야망이 느껴져요. 가끔은 너무 강해서 부담스러울 정도로…그렇죠. 뜨거운 사람이었어요. 피카소는 벨라스케스보다 고야와 더 닮았어요. 두 예술가는 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어요.벨라스케스의 작품에서 개인적인 감정을 찾기는 쉽지 않죠. 고야의 시대부터 예술들이 주관적인 생각, 정치에 대한 관점, 시대에 관한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예술을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개인적으로 벨라스케스보다 고야에 더 공감할 때가 많아요. 벨라스케스는 그림과 보는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는데, 이 시대 예술가들에겐 일반적인 일이에요.- 그렇지만 벨라스케스와 고야 모두 19세기 미술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요. 스페인의 어떤 속성이 이런 예술을 가능하게 했는지도 궁금합니다.스페인적 요소가 전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지만, 일반인들이 좋아하는 것과 예술가가 하고 싶은 것 사이 교차점을 찾으려고 했던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스페인 예술가들은 ‘현실적인 것’을 좋아했고 이는 스페인 사회의 중요한 특성이기도 합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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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밥 먹으러 갔다가 눈 호강까지

    오래된 한옥 건물 지하를 와인 저장고로 개조하고, 일본인 셰프를 모셔 와 한국에 정착하게 만드는가 하면, 이탈리아 시칠리아 출신 셰프가 운영하던 레스토랑도 인수한다. 보고 느끼는 예술 작품뿐 아니라 맛과 감각으로 무장한 ‘미식’에도 신경 쓰는 갤러리스트들 이야기다. 이들은 갤러리 내외부에서 레스토랑과 카페를 직접 운영한다.● 1·2대의 다른 취향, 두가헌과 에밀리오 갤러리현대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갤러리 옆 두가헌과 강남구 청담동 에밀리오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두가헌은 1910년대 만들어진 한옥을 개조해 2004년 문을 연 곳으로 지하 공간에는 300여 종의 와인 3000여 병이 보관돼 있다. 도형태 부회장은 “처음 아버지와 이 한옥을 발견했을 때 지하는 와인 셀러로 완벽하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청전 이상범의 수묵화와 김창열의 물방울 작품이 걸려 있는 두가헌은 파스타, 스테이크 등 코스 메뉴를 판매하지만,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것이 특징이다. 오래전부터 갤러리현대를 찾은 전통적 컬렉터, 원로 작가 취향에 맞춰 대부분 요리를 저염으로 부드럽게 조리한다. 대표 메뉴는 한우 스테이크와 전복구이다. 이에 반해 도 부회장이 올해 초 인수한 에밀리오는 이탈리아식으로 더 과감히 밀고 나간다. 시칠리아 셰프가 운영하던 메뉴를 살려 버섯 크림에 비벼 먹는 파케리 파스타, 카포나타, 아란치니, 포카치아, 올리브를 곁들여 먹는 시칠리아 스타일 애피타이저, 양갈비구이가 대표 메뉴다. 레스토랑 내에는 이반 나바로의 발광다이오드(LED) 작품, 라이언 갠더의 풍선 설치 작품 등 국내외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으로 활기찬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식 양식 일식 중에 골라”, 국제갤러리 카페 국제갤러리는 삼청동 K1 건물 1, 2층에 각각 ‘카페@더 레스토랑’과 ‘더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애플 포타주’를 비롯한 정통 프렌치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더 레스토랑에는 양혜규의 벽지 작업이 설치돼 있다. 카페 벽면에는 김영나, 냅킨에는 홍승혜의 디자인 문양이 그려져 있는 등 갤러리 전속 작가들의 손길이 곳곳에 묻어 있다. 메뉴는 일본 도쿄 럭셔리 호텔과 현지 대형 외식 그룹 총괄 셰프를 지낸 아베 고이치가 1999년부터 총괄 담당하고 있다. 독특한 것은 카페 메뉴다.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다’는 듯 연어 스테이크, 해장 짬뽕, 매운 해산물 떡볶이와 사누키 우동 등 한식 일식 양식이 공존한다. 초기에는 파스타, 샌드위치, 샐러드 위주의 종이 1장짜리였던 메뉴판이 지금은 얇은 책 한 권이 됐다. 여기에는 2세 경영자인 김찰스창한 사장의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 국제갤러리 관계자는 “갤러리 레스토랑은 전시 관람의 경험이 미식으로도 이어지는 곳”이라며 “이런 점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대중적인 메뉴도 함께 준비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해장 짬뽕은 아베 셰프가 가끔 갤러리 직원들과 나눠 먹던 음식이 김 사장의 추천으로 정식 메뉴가 됐다. 이 관계자는 “김 사장이 지금은 갤러리 운영 전반에 참여하지만 처음에는 레스토랑, 카페를 경영했다”며 “지금도 새로운 메뉴 개발은 물론이고 테이스팅까지 관여한다”고 했다. 지난해 프리즈 서울과 연계해 갤러리들이 야간에 문을 연 ‘삼청 나잇’ 행사 때도 VIP뿐 아니라 일반인에게 개방한 데는 김 사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미술인들, 미식에도 진심 국제갤러리의 더 레스토랑이 처음 문을 연 1999년에는 ‘갤러리에서 무슨 식당이냐’며 비판을 받았다. 당시 이현숙 회장은 갤러리 비즈니스에 식사와 미팅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임에도 과감하게 레스토랑 오픈을 결정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전시 관람 문화가 확산되면서 미술관에서도 식음료 서비스를 중요하게 여기고, 소셜미디어에서도 주목받는다. 전시를 관람하는 큐레이터, 작가 등 미술인들 사이에서는 전시와 함께 인근 맛집을 소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우뚜기(@oottoogi)가 인기다. 6만7000명이 팔로하는 이 계정을 운영하는 A 씨는 “비엔날레와 대형 전시처럼 실제로 많이 움직이며 보는 전시도 있고, 작은 전시라도 보는 데 마음과 머리를 많이 써야 한다”며 “그러면 허기가 지기에 자연스레 먹을 만한 곳을 찾게 된다”고 했다. 호암미술관은 불교 미술 기획전이 열리는 3월부터 6월까지 태극당과 협업해 팝업 카페를 열었다. 팝업 카페를 기획한 이정진 삼성문화재단 대외협력실장은 “고미술 전시에 맞춰 나름의 역사와 창의적인 정체성을 갖춘 곳을 중심으로 물색했고 ‘극락 라떼’ ‘연꽃 에이드’ 등 한정 메뉴 반응이 좋았다”며 “전시 관람객의 30%가 카페를 함께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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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지 갤러리, 8월 17일까지 ‘그 다양한 시선’ 전시

    산지 갤러리가 8월 17일까지 ‘그 다양한 시선’이라는 주제로 현대미술의 다채로운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몇 개의 선과 모양만으로 현대인의 익명성을 나타냄과 동시에 경쾌하고 친숙하게 인물 형상을 완성시킨 팝아티스트 줄리안 오피(Julian Opie)를 선두로 자연, 동식물, 인간의 공존과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비유와 상징이 가득한 화풍으로 표현하는 일본 작가 유이치 히라코, 1993년 ‘아톰’과 ‘미키마우스’의 결합으로 탄생한 캐릭터 ‘아토마우스’로 유명한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 이동기를 비롯한 총 8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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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식에도 진심인 미술인들… 갤러리 레스토랑의 세계

    오래된 한옥 건물 지하를 와인 저장고로 개조하고, 일본인 셰프를 모셔 와 한국에 정착하게 만드는가 하면, 이탈리아 시칠리아 출신 셰프가 운영하던 레스토랑도 인수한다. 보고 느끼는 예술 작품뿐 아니라 맛과 감각으로 무장한 ‘미식’에도 신경 쓰는 갤러리스트들 이야기다. 이들은 갤러리 내외부에서 레스토랑과 카페를 직접 운영한다.1∙2대의 다른 취향, 두가헌과 에밀리오갤러리현대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갤러리 옆 두가헌과 강남구 청담동 에밀리오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두가헌은 1910년대 만들어진 한옥을 개조해 2004년 문을 연 곳으로 지하 공간에는 300여 종의 와인 3000여 병이 보관되어 있다. 도형태 부회장은 “처음 아버지와 이 한옥을 발견했을 때 지하는 와인 셀러로 완벽하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청전 이상범의 수묵화와 김창열의 물방울 작품이 걸려 있는 두가헌은 파스타, 스테이크 등 코스 메뉴를 판매하지만,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것이 특징이다. 오래전부터 갤러리현대를 찾은 전통적 컬렉터, 원로 작가 취향에 맞춰 대부분 요리를 저염으로 부드럽게 조리한다. 대표 메뉴는 한우 스테이크와 전복구이다.이에 반해 도 부회장이 올해 초 인수한 에밀리오는 이탈리아식으로 더 과감히 밀고 나간다. 시칠리아 셰프가 운영하던 메뉴를 살려 버섯 크림에 비벼 먹는 파케리 파스타, 카포나타, 아란치니, 포카치아, 올리브를 곁들여 먹는 시칠리아 스타일 애피타이저, 양갈비구이가 대표 메뉴다. 레스토랑 내에는 이반 나바로의 LED 작품, 라이언 갠더의 풍선 설치 작품 등 국내외 현대 미술가 작품으로 활기찬 분위기를 연출했다.“한식 양식 일식 중에 골라”, 국제갤러리 카페국제갤러리는 삼청동 K1 건물 1, 2층에 각각 ‘카페@더 레스토랑(카페)’와 ‘더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애플 포타주’를 비롯한 정통 프렌치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더 레스토랑에는 양혜규의 벽지 작업이 설치되어 있다. 카페 벽면에는 김영나, 냅킨에는 홍승혜의 디자인 문양이 그려지는 등 갤러리 전속 작가들의 손길이 곳곳에 묻어있다. 메뉴는 일본 도쿄 럭셔리 호텔과 현지 대형 외식 그룹 총괄 셰프를 지낸 아베 고이치가 1999년부터 지금까지 총괄하고 있다.독특한 것은 카페 메뉴다.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 했다’는 듯 연어 스테이크, 해장 짬뽕, 매운 해산물 떡볶이와 사누끼 우동 등 한식 일식 양식이 공존한다. 초기에는 파스타, 샌드위치, 샐러드 위주의 종이 1장짜리였던 메뉴판이 지금은 책 한 권이 됐다.여기에는 2세 경영자인 김찰스창한 사장의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 국제 갤러리 관계자는 “갤러리 레스토랑은 전시 관람의 경험이 미식으로도 이어지는 곳”이라며 “이런 점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대중적인 메뉴도 함께 준비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해장 짬뽕은 아베 셰프가 가끔 갤러리 직원들과 나눠 먹던 음식이 김 사장의 추천으로 정식 메뉴가 됐다.이 관계자는 “김 사장이 지금은 갤러리 운영 전반에 관여하지만, 처음에는 레스토랑, 카페 경영부터 참여했다”며 “지금도 새로운 메뉴 개발은 물론 테이스팅까지 관여한다”고 했다. 지난해 프리즈 서울과 연계해 갤러리들이 야간에 문을 연 ‘삼청 나잇’ 행사 때도 VIP뿐 아니라 일반인에 개방한 데 김 사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후문이다.미술인들, 미식에도 진심국제갤러리의 더 레스토랑이 처음 문을 연 1999년에는 ‘갤러리에서 무슨 식당이냐’며 비판을 받았다. 당시 이현숙 회장은 갤러리 비즈니스에 식사와 미팅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IMF 직후임에도 과감하게 레스토랑 오픈을 결정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전시 관람 문화가 확산하면서 미술관에서도 식음료 서비스를 중요하게 여기고, 소셜 미디어에서도 주목받는다.전시를 관람하는 큐레이터, 작가 등 미술인들 사이에서는 전시와 함께 인근 맛집을 소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우뚜기(@oottoogi)가 인기다. 6만7000명이 팔로우하는 이 계정을 운영하는 A씨는 “비엔날레와 대형 전시처럼 실제로 많이 움직이며 보는 전시도 있고, 작은 전시라도 보는 데 마음과 머리를 많이 써야 한다”며 “그러면 허기가 지기에 자연스레 먹을 만한 곳을 찾게 된다”고 했다.호암미술관은 불교 미술 기획전이 열리는 3월부터 6월까지 태극당과 협업해 팝업 카페를 열었다. 팝업 카페를 기획한 이정진 삼성문화재단 대외협력실장은 “고미술 전시에 맞춰 나름의 역사와 창의적인 정체성을 갖춘 곳을 중심으로 물색했고 ‘극락 라떼’, ‘연꽃 에이드’ 등 한정 메뉴 반응이 좋았다”며 “전시 관람객의 30%가 카페를 함께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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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 두 갤러리, 젊은 작가 소개 힘 모았다

    “글로벌 아트페어와 여러 파티가 열리는 한국 미술 현장이 일본보다 더 활기차다고 느꼈어요. 또 일본에서 K팝 등 한국에 관심이 많아 한국 작가와 디자이너도 소개할 생각입니다.” 13일 서울 용산구 갤러리 상히읗에서 만난 야노 앤 캄&펑크 갤러리 프로듀서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 도쿄에 있는 캄&펑크 갤러리는 이날 상히읗에서 일본 작가 나리타 히카루, 오카다 슌의 2인전 ‘대안적 존재: 내 이웃이 보는 풍경’을 열었다. 19일에는 캄&펑크 갤러리에서 한국 작가 이승희, 추수의 2인전 ‘대안적 존재: 모자만 아는 일’이 개막한다. 두 갤러리는 각 나라의 작가를 상대 갤러리에 소개하는 교환 프로그램을 열기로 했다. 지혜진 상히읗 대표는 “지난해 야노 씨가 프리즈 서울을 찾아 만나게 됐고 젊은 작가를 서로 소개하자는 공감대가 있어 교류 전시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야노 프로듀서는 “한국의 여러 갤러리에서 일본 작가 개인전이 열리고, 오카자키 겐지로 같은 원로 작가도 소개돼 놀랐다”고 했다. 상히읗에서 전시되는 두 일본 작가는 애니메이션이나 장난감의 캐릭터, 컴퓨터의 오류 화면에서 이미지를 가져와 작품을 만든다. 나리타는 인공 대리석 위에 조각으로, 오카다는 캔버스에 두껍게 올린 물감으로 표현한다. 이미지는 온라인에서 가져왔지만 결과물은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 손맛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승희는 동물을 신비로운 존재로 표현한 회화와 ‘개도사’ 조각 연작을 선보인다. 추수는 2021년 인공지능 음악 회사의 제안으로 만든 버추얼 인플루언서 ‘에이미’를 소재로 한 연작을 소개한다. 20일에는 일본의 유명 가상 인플루언서인 ‘이마’를 만든 제작사 Aww의 프로듀서 사라 주스토와 추수 작가의 아티스트 토크도 연다. 두 전시는 다음 달 4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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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들려서 단단한 예술가의 일상 [영감 한 스푼]

    미술관을 자주 찾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곳에 걸린 작품은 어딘가 움츠러들고 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작품의 작가를 직접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조심스럽고,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죠. 그런 예술가들의 솔직한 일상은 어떨까요?취재 현장에서 작가 본인은 물론 큐레이터, 혹은 과거 작가와 일했던 스튜디오 관계자나 지인을 만나면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곤 합니다.다른 모든 사람처럼 고군분투하며 때론 초라하기까지 한 일상을 알면 예술이 탄생하는 과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꿋꿋하게 버틴다사실 대부분의 예술 작품은 동시대에는 소수의 사람만 가치를 알아봅니다. 이에 예술가는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직감을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야할 때가 있는데요.한국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팝아트 화가 제임스 로젠퀴스트(1933~2017)의 친구이자 재단 이사인 존 코벳을 만났습니다.로젠퀴스트는 앤디 워홀과 달리 빌보드 화가 출신으로 그림에 집중하고 상징과 은유를 활용해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표현이 없어 덜 주목받았습니다.이런 가운데 최근 ‘팝아트’라는 타이틀보다 회화 자체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재조명을 받고 있는데요. 코벳은 그런 시대 변화에 관한 로젠퀴스트의이야기를 전했습니다.“어느 날 제임스가 1950, 1960년대 미술 잡지 한 더미를 가져와 책상에 턱 놓았어요. 그 잡지들을 한 장씩 넘기며 보이는 예술가마다 손가락으로 가리켰죠.그러면서 “처음 보는 작가”, “이 사람도 몰라”, “피카소는 알지”, “이 작가도 처음”, “모르는 작가”라며 몇 권을 계속 넘기더군요.미디어에는 수많은 작가가 언급되지만 그중 살아남는 건 일부라는 이야기죠.”로젠퀴스트는 끊임없이 변하는 동시대의 반응에 흔들리지 말고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충실하면 언젠가는 때를 만나 빛을 볼 날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그의 말대로 최근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대형 작품이 새롭게 소장되며 미국의 중요한 작가로 재평가를 받습니다.● 생각만큼 화려하지 않다‘노마디즘 예술가’로 불리는 김주영 작가는 최근 서울 종로구 토탈미술관에서 열린 ‘월요살롱’에서 1980년대에 교수직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났을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운동화와 가방만 들고 떠난 김 작가는 파리 대학에 등록하고, 그곳에서 그림 그리기 방법론을 떠나 자유로운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는 강의에 감명받습니다.포스트모더니즘을 공부하고 싶어 무작정 찾아가 수업을 듣게 해달라 졸랐던 조그마한 철학 교수는 질 들뢰즈.동양에서 온 학생이 간절해 보였는지 들뢰즈는 그를 받아주었고, 프랑스어도 제대로 못 했던 작가는 들리는 단어를 받아 적고 나중에 책에서 관련내용을 찾아보며 적응해 나갔습니다.작업실은 재건축으로 철거가 예정된 빈 건물에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나누어 썼죠. 그래도 한국에선 검은색을 즐겨 쓰는 그녀의 작품을 ‘어둡고 부정적’이라고만 했는데, 프랑스 미술계의 사뭇 다른 반응과 수상, 레지던시 입주 등 성과에 공부와 작업을 이어갔습니다.그러다 귀국하니 너무나 캐주얼한 자신의 복장과 달리 프랑스 유학 간 친구를 만난다고 귀부인처럼 꾸미고 온 친구들 앞에서 ‘예술가의 현실과 일반적 삶의 괴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라는 고민이 들었다고 합니다.● 초라할만큼 파고든다우리의 상상보다 예술가의 삶은 덜 우아하고 때로는 초라하기까지 합니다.한국을 찾은 프랜시스 모리스 테이트 모던 명예관장은 루이스 부르주아가 “함께 일하기에는 무서운 사람”이었다고 기억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들지 않는 말을 하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가 잠시 뒤엔 한없이 다정한,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었다고요.그런 부르주아는 언제나 자신이 어릴 적 겪었던 트라우마와 아픈 기억을 되새기며 작업의 원천으로 삼았습니다.모리스는 “부르주아가 예술 작업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하려 했지만, (좋은 작품을 위해서) 그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고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집중하며 보통 사람이라면 너무 초라하고 부끄러워서 외면할 문제들을 훌륭한 작가들은 깊이 파고들고 있는 것이죠.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앤디 워홀 다이어리’에도 워홀의 초라한 모습이 등장합니다. 동유럽 이민자 가정 출신이었던 워홀은 늘 앵글로색슨백인(WASP)처럼 될 수 없다는 데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습니다.“나는 너무 이상하게 생겨서 어디에 낄 수 없고 이를 바꿀 수도 없다”는 내용이 일기에도 자주 나옵니다.자본주의 사회가 주는 콤플렉스와 판타지를 깊이 파고든 결과물이 워홀의 예술인 것이죠. 그런 워홀도 자신이 좋아하고 아꼈던 젊은 작가 장미셸바스키아가 흑인으로서 받는 차별의 시선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습니다.이렇게 예술가들은 저마다 가진 현실의 문제와 그것이 주는 불안을 끌어안고 거기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초라함, 불안, 허무를 정면으로 파고들어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 좋은 예술 작품이 관객을 위로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여기에 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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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가벼운 듯 뼈 있는 삶의 단상

    옳고 그름, 내 편과 네 편, 흑과 백을 분명히 가르면 세상사는 편해질 것 같지만 그 경계는 언제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시간이 지나면 그 사이의 무언가가 삐져나와 ‘정말 그게 맞아?’라고 물으며 판을 흔들곤 하는데, 저자는 이런 판을 흔드는 말을 ‘드립’이라고 규정한다. 드립은 인터넷에서 흔히 헛소리나 딴소리 같지만, 뼈가 있는 말을 의미하는 데 사용됐던 용어다. 저자는 이런 드립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서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인생이 농담은 아니다. 누구나 넘어지면 아프고, 살갗이 찢어지면 피가 난다.…생존에 관한 한 인간은 맷돌처럼 진지하다. 그러나 인간은 끝내 진지하기만 할 수는 없다.…삶은 종종 부조리와 경이를 간직한 모호한 현상이므로, 때로는 구름을 술잔에 담듯 삶을 담아야 한다. 드립은 바로 언어로 된 그 술잔이다.” 서문이 끝나면 저자가 일기, 메모, 웹사이트를 통해 남겼던 짧은 글들이 펼쳐진다. 약 1500개가 넘는 문장을 365편으로 추리고 1부 ‘마음이 머문 곳’, 2부 ‘머리가 머문 곳’, 3부 ‘감각이 머문 곳’으로 나눴다. 각각 인생, 배움, 예술에 대한 문장들이다. 그 문장들은 “잘 먹고 플랭크를 하니 배로 가던 살들이 길을 잃고 온몸에서 방황하는 것 같다”며 피식 웃음을 짓게 하다가도, “인간은 필멸자다. 인생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우아한 패배다”라며 삶의 깊은 곳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런가 하면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어릴 적 글짓기 숙제,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던 아끼던 제자가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며 마지막 연락을 전해 온 이야기, 북토크를 하며 느낀 감정 등 일상 속 단상도 있다. 만화 ‘슬램덩크’, 영화 ‘패터슨’이나 살바도르 달리, 카라바조,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한 생각도 담았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문장들은 맷돌 같은 진지함과 구름 같은 허무함을 오가는 기술인 듯하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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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카소 영향에 추상화가로… 그의 눈에 비친 전쟁은

    “아버지와 시골길을 걷다 보면 갑자기 바닥에 캔버스를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리곤 하셨어요. 제겐 일상이었는데 돌이켜 보니 그렇게 하는 사람은 우리 아버지뿐이었습니다.” 프랑스의 화가 올리비에 드브레(1920∼1999)의 아들 파트리스의 기억이다. 그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드브레의 개인전 ‘올리비에 드브레: 마인드스케이프’ 개막을 맞아 9일 미술관을 찾았다. 전시에선 프랑스 투르의 올리비에 드브레 현대창작센터(CCC OD) 소장품과 드브레의 자녀들이 소장한 회화, 드로잉 등 70여 점을 선보인다. 드브레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추상 회화가 많이 그려졌을 때 서정적인 추상으로 사랑받은 작가다. 17세에는 파리 에콜 데 보자르에서 건축 공부를 했는데, 파블로 피카소와 친분을 쌓게 되며 회화에 집중했다. 전시장에서는 초기부터 1990년대까지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전시장에서 보이는 1940년대 흑백 드로잉들은 감각적인 선과 초현실주의적 표현에서 피카소의 영향이 드러난다. 특히 이 시기 드브레는 전쟁 때문에 투렌 지방에서 홀로 지냈다. ‘살인자, 죽은 자와 그의 영혼’(1946년), ‘거울 속의 검은 추상화’(1946년) 같은 작품은 전쟁과 홀로코스트의 잔인함, 그로 인한 공포를 고발한다. 드브레의 형 미셸 드브레는 이 무렵 샤를 드골과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는데, 이후 드골 정부 총리로 임명된다. 파트리스는 “저의 증조부도 19세기 풍경화와 인물을 그린 화가였고, 할아버지는 국내외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였다”며 “저도 의사지만 늘 그림을 열심히 그렸던 아버지 덕분에 회화에 심취했다”고 회고했다. 전쟁이 끝나고 드브레는 서예처럼 선으로 인간을 표현한 ‘기호 인물’ 연작부터 풍경에서 느낀 감정을 담은 ‘폭풍우 치는 루아르강의 진보라와 흰색’(1981년) 등 추상 회화로 더 나아간다. 특히 프랑스 투르 지역 루아르 강변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 유명하다. 길이가 3m에 달하는 대형 회화 작품 3점은 완전히 몰입해서 감상할 수 있도록 천장에 매달려 전시돼 눈길을 끈다. 드브레가 무대 미술과 의상 디자인을 맡아 1997년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파리 오페라 발레단이 초연한 공연 ‘사인’ 영상도 마지막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한 작가는 한국도 여러 번 찾았으며, 에콜 데 보자르 교수를 지내 파리로 유학 온 한국인 제자도 여럿 있었다. 파트리스는 “아버지가 한국의 푸른 산과 바다가 공존하는 풍경과 한글, 기호에 흥미를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10월 20일까지. 수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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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경과 환상’ 사이를 가로지른 균형

    칠레 출신으로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예술가 파토 보시치의 개인전 ‘마술적 균형: 표면 아래에 존재하는 것, 꿈의 풍경과 영혼의 상징적 지형을 가로질러’가 서울 종로구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18세에 고향 칠레를 떠나 혼자 스위스 독일 헝가리 등 유럽 전역을 여행하던 작가는 런던에 정착하고 내셔널갤러리와 영국박물관을 오가며 다양한 시대와 지역의 그림과 유물을 관찰하고 그렸다. 그 결과 그의 그림에서는 대도시 런던의 풍경과 환상 속 세계가 결합한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번 전시에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그린 회화 19점, 드로잉 40점이 소개된다. 1층 전시실에서는 북런던 화가의 작업실에서 만들어진 ‘탑의 마법’ ‘마법적 균형’을 볼 수 있는데 붉은 테이블 위로 솟아난 탑, 그 위에 가지런히 놓인 굴 껍데기, 창밖으로 펼쳐진 바다가 작가의 상상 속 세계를 가늠하게 한다. 작가가 미술관에서 아시리아, 그리스,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유물 소장품과 고전 회화를 감상하며 영감을 얻은 과정은 3층에 전시된 드로잉을 통해 볼 수 있다. 작가는 유물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 마모되거나 부서진 흔적에 매료돼 그것을 연필, 잉크, 와인 등의 재료를 사용해 드로잉으로 표현했다. 8월 3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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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들려서 단단한 예술가의 일상[김민의 영감 한 스푼]

    미술관을 자주 찾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곳에 걸린 작품은 어딘가 움츠러들고 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작품의 작가를 직접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조심스럽고,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죠. 그런 예술가들의 솔직한 일상은 어떨까요? 취재 현장에서 작가 본인은 물론 큐레이터, 혹은 과거 작가와 일했던 스튜디오 관계자나 지인을 만나면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곤 합니다. 다른 모든 사람처럼 고군분투하며 때론 초라하기까지 한 일상을 알면 예술이 탄생하는 과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꿋꿋하게 버틴다 사실 대부분의 예술 작품은 동시대에는 소수의 사람만 가치를 알아봅니다. 이에 예술가는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직감을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있는데요. 한국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팝아트 화가 제임스 로젠퀴스트(1933∼2017)의 친구이자 재단 이사인 존 코벳을 만났습니다. 로젠퀴스트는 앤디 워홀과 달리 빌보드 화가 출신으로 그림에 집중하고 상징과 은유를 활용해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표현이 없어 덜 주목받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팝아트’라는 타이틀보다 회화 자체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재조명을 받고 있는데요. 코벳은 그런 시대 변화에 관한 로젠퀴스트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어느 날 제임스가 1950, 1960년대 미술 잡지 한 더미를 가져와 책상에 턱 놓았어요. 그 잡지들을 한 장씩 넘기며 보이는 예술가마다 손가락으로 가리켰죠. 그러면서 “처음 보는 작가”, “이 사람도 몰라”, “피카소는 알지”, “이 작가도 처음”, “모르는 작가”라며 몇 권을 계속 넘기더군요. 미디어에는 수많은 작가가 언급되지만 그중 살아남는 건 일부라는 이야기죠.” 로젠퀴스트는 끊임없이 변하는 동시대의 반응에 흔들리지 말고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충실하면 언젠가는 때를 만나 빛을 볼 날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최근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대형 작품이 새롭게 소장되며 미국의 중요한 작가로 재평가를 받습니다.생각만큼 화려하지 않다 ‘노마디즘 예술가’로 불리는 김주영 작가는 최근 서울 종로구 토탈미술관에서 열린 ‘월요살롱’에서 1980년대에 교수직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났을 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운동화와 가방만 들고 떠난 김 작가는 파리 대학에 등록하고, 그곳에서 그림 그리기 방법론을 떠나 자유로운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는 강의에 감명받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공부하고 싶어 무작정 찾아가 수업을 듣게 해달라고 졸랐던 조그마한 철학 교수는 질 들뢰즈. 동양에서 온 학생이 간절해 보였는지 들뢰즈는 그를 받아주었고, 프랑스어도 제대로 못 했던 작가는 들리는 단어를 받아 적고 나중에 책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보며 적응해 나갔습니다. 작업실은 재건축으로 철거가 예정된 빈 건물에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나누어 썼죠. 그래도 한국에선 검은색을 즐겨 쓰는 그녀의 작품을 ‘어둡고 부정적’이라고만 했는데, 프랑스 미술계의 사뭇 다른 반응과 수상, 레지던시 입주 등 성과에 공부와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 귀국하니 너무나 캐주얼한 자신의 복장과 달리 프랑스 유학 간 친구를 만난다고 귀부인처럼 꾸미고 온 친구들 앞에서 ‘예술가의 현실과 일반적 삶의 괴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라는 고민이 들었다고 합니다.초라할 만큼 파고든다 우리의 상상보다 예술가의 삶은 덜 우아하고 때로는 초라하기까지 합니다. 한국을 찾은 프랜시스 모리스 테이트 모던 명예관장은 루이스 부르주아가 “함께 일하기에는 무서운 사람”이었다고 기억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들지 않는 말을 하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가 잠시 뒤엔 한없이 다정한,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었다고요. 그런 부르주아는 언제나 자신이 어릴 적 겪었던 트라우마와 아픈 기억을 되새기며 작업의 원천으로 삼았습니다. 모리스는 “부르주아가 예술 작업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하려 했지만, (좋은 작품을 위해서) 그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집중하며 보통 사람이라면 너무 초라하고 부끄러워서 외면할 문제들을 훌륭한 작가들은 깊이 파고들고 있는 것이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앤디 워홀 다이어리’에도 워홀의 초라한 모습이 등장합니다. 동유럽 이민자 가정 출신이었던 워홀은 늘 앵글로색슨 백인(WASP)처럼 될 수 없다는 데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습니다. “나는 너무 이상하게 생겨서 어디에 낄 수 없고 이를 바꿀 수도 없다”는 내용이 일기에도 자주 나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주는 콤플렉스와 판타지를 깊이 파고든 결과물이 워홀의 예술인 것이죠. 그런 워홀도 자신이 좋아하고 아꼈던 젊은 작가 장미셸 바스키아가 흑인으로서 받는 차별의 시선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습니다. 이렇게 예술가들은 저마다 가진 현실의 문제와 그것이 주는 불안을 끌어안고 거기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초라함, 불안, 허무를 정면으로 파고들어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 좋은 예술 작품이 관객을 위로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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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휘어지고 균열된 일상의 조각들을 작품으로

    가전제품, 파이프 등 일상 속 오브제를 조각 작품으로 변형하거나, 도심 한복판의 흙을 가져다 굽고, 살덩어리 같은 실리콘 조각으로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서울 강남구 지갤러리는 문이삭, 최고은, 현정윤 등 조각가 3명이 참여하는 그룹전 ‘엉뚱한 여백(Whimsical Whitespace·사진)’을 열고 있다. 이 전시는 프랑스의 문학가인 조르주 페레크의 ‘공간의 종류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페레크는 삶의 공간에는 늘 어딘가 부서지고 휘어지는 균열과 여백이 있는데 우리는 이런 부분을 막연하게만 느낀다고 쓴다. 전시는 이렇게 일상에서 쉽게 간과하지만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물과 그 주변의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모았다. 문이삭은 인왕산이나 한강 등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공간의 흙을 가마에 구워 조각을 만들었다. 윤슬의 느낌을 담고 싶어 강변의 흙을 구웠는데, 그 속에 보이지 않던 유리가 녹아 반짝이는 효과를 낸다. 최고은은 건물에 사용되는 규격화된 파이프를 자르고 구부려 벽면에 걸었다. 사냥한 동물의 머리를 전시하는 ‘헌팅 트로피’를 닮았다. 현정윤의 실리콘 조각은 선베드와 목욕탕 의자 위에 놓여 휴식을 취하고 있는 생물체처럼 보인다. 최고은은 프리즈 서울 제2회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돼 9월 열리는 프리즈 서울에서 신작을 공개할 예정이다. 전시는 20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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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적과 실’로 엮은… 亞 여성작가 12인

    “스스로에게 정직할 것. 그리고 그 결과물을 지지해 줄 사람들을 찾아 나서며 실험과 소통을 계속할 것.” 세라 스즈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부관장은 올 4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젊은 작가들에게 조언해 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세계 미술 최전선의 큐레이터들은 과거 백인 남성 중심의 미술사를 넘어 여성, 유색인, 비서구권 작가들의 독창적인 표현을 찾아다니고 있다. 이런 흐름과 맞물려 독일계 갤러리 쾨닉 서울이 아시아 여성 12인의 단체전 ‘흔적과 실’을 연다. 전시는 일본 출신 아야코 로카쿠, 지하루 시오타 같은 국내 미술 시장의 인기 작가부터 시야오 왕(중국), 하디에 샤피(이란), 리나 바네르지(인도), 오돈치메그 다바도르지(몽골) 등 여러 국적과 연령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목탄, 아크릴, 캔버스, 종이 등 표현 매체도 다양하다. 최근 부산현대미술관, 북서울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등 여러 그룹전에 참여하며 활발하게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신민 작가의 조각도 소개된다. 맥도널드에서 쓰는 냉동 감자튀김 포대를 재료로 만들어 화가 난 듯, 익살스러운 듯 표정을 짓는 조각 ‘세미(世美)’ 연작과 드로잉이 전시됐다. 작가가 서비스 업계에서 일하며 느낀 희로애락을 정직하고 단단하게 그려내 눈길을 끈다. 한국계 멕시코 작가인 모니카 킴 가르자의 여러 회화는 시선의 대상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먹고 마시고 취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유쾌하게 그린다. 리나 바네르지의 종이 콜라주 작품 ‘수많은 목소리’(2021년)는 인도의 전통적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시각 언어를 사용했다. 하디에 샤피 작가의 ‘흰 스파이크’는 손으로 직접 쓰고 인쇄한 페르시아어 글귀를 주름진 종이 속에 숨겨 두었다. 전시는 27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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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원-덜크-빌스… 세계적 그라피티 작가들 신안 섬을 색칠한다

    “저는 부모님을 따라 미술관에 갈 기회가 없었습니다. 대신 길에서 예술을 발견했고, 덕분에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보는 예술은 제 인생을 바꿨죠.” 5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그라피티 작가 존원은 “바쁜 도심이 아닌 자연과 여유가 있는 신안에서 작품이 어떻게 보일지 기대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를 비롯해 스페인 작가 덜크, 포르투갈 작가 빌스 등이 전남 신안군 압해도의 ‘그라피티 아일랜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덜크는 압해읍사무소 벽면에 달랑게, 저어새 등 신안 갯벌의 동물을 담은 그라피티를 이날 공개했으며, 존원은 6일부터 지역 공공임대 주택 벽면에 작업을 시작했다.● 곰리, 터렐 참여 ‘1도 1뮤지엄’ ‘그라피티 아일랜드’는 신안군에서 추진하는 ‘1도 1뮤지엄’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신안군에는 섬 1025개(유인도 76개, 무인도 959개)가 있는데, 이 중 15개 섬에 미술관 26곳을 건립한다. 15곳은 오래된 미술관을 활용하거나 건립을 완료했고, 11곳은 추진 중이다. 압해도는 육지에서 신안의 여러 섬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이곳에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라피티를 설치한다는 구상이다. ‘1도 1뮤지엄’에는 앤터니 곰리, 제임스 터렐, 올라푸르 엘리아손 등 해외 유명 작가가 참여한다. 터렐은 노대도에, 엘리아손은 도초도 대지의 미술관 야외공간에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신안군에 따르면 엘리아손의 작품은 지면 아래로 반원형 모양의 굴을 파고 바닥 면에 빛을 반사하는 1100여 개의 조각을 채워 태양 빛에 따라 지면 위로 다른 반영이 보이는 형태다. 엘리아손은 과학기술을 활용한 작품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 선보인 인공 태양이 가장 유명하다. 비금도 해변에는 곰리의 작품이 들어선다. 그는 인체 형태를 단순화한 조각을 야외 공간에 놓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비금도에 설치될 작품은 가로 110m, 높이 25m, 폭 35m에 달해 아시아 최대 규모다. 완성된 프로젝트로는 암태도의 서용선 미술관이 눈길을 끈다. 일제강점기 친일 지주에 맞선 암태도 소작쟁의 운동을 작가가 연구하고 그 결과를 오래된 농협 창고 벽면에 그렸다. 이곳 전시는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 후속 전시로 이어졌다.● 인구소멸 위험 지역의 승부수 신안군이 다양한 예술 작품을 끌어들이는 데 적극적인 건 사정이 있다. 신안군은 올 3월 기준 인구 3만8191명 중 고령자가 40%로,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이다. 재정 자립도는 전국 226개 지자체 중 221위(2023년). 박우량 신안군수는 “열악한 여건을 극복하려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택했다”며 “섬에서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다는 자긍심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예술을 통한 관광 활성화로 젊은 세대의 유입을 늘리고,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겠다는 것. 다만, 지역 관광지 수준을 넘어서려면 해외 유명 미술가의 알려진 작품을 설치하는 것뿐 아니라 장기적 안목에서 독자적인 문화 생태계를 갖추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암태도 소작쟁의 프로젝트’를 맡았던 이승미 행촌문화재단 대표는 “해외 작가 작품은 유럽에서 더 좋은 것을 볼 수 있지만, 한국의 좋은 작품은 여기서만 볼 수 있다”며 “작가 레지던시 건립, 지역 맥락을 담은 작품 전시 등 한국과 지역 미술계를 활성화하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안=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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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구소멸 위험지역의 승부수 ‘1도 1뮤지엄 프로젝트’…지역 관광지 넘어설 수 있을까

    “저는 부모님을 따라 미술관에 갈 기회가 없었습니다. 대신 길에서 예술을 발견했고, 덕분에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보는 예술은 제 인생을 바꿨죠.”5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그라피티 작가 존원은 “바쁜 도심이 아닌 자연과 여유가 있는 신안에서 작품이 어떻게 보일지 기대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를 비롯해 스페인 작가 덜크, 포르투갈 작가 빌스 등이 전남 신안군 압해도의 ‘그라피티 아일랜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덜크는 압해읍사무소 벽면에 달랑게, 저어새 등 신안 갯벌의 동물을 담은 그라피티를 이날 공개했으며, 존원은 6일부터 지역 공공임대 주택 벽면에 작업을 시작했다.● 곰리, 터렐 참여 ‘1섬 1뮤지엄’‘그라피티 아일랜드’는 신안군에서 추진하는 ‘1도 1뮤지엄’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신안군에는 섬 1025개(유인도 76개, 무인도 959개)가 있는데, 이 중 15개 섬에 미술관 26곳을 건립한다. 15곳은 오래된 미술관을 활용하거나 건립을 완료했고, 11곳은 추진 중이다. 압해도는 육지에서 신안의 여러 섬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이곳에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라피티를 설치한다는 구상이다.‘1도 1뮤지엄’에는 앤터니 곰리, 제임스 터렐, 올라푸르 엘리아손 등 해외 유명 작가가 참여한다. 터렐은 노대도에, 엘리아손은 도초도 대지의 미술관 야외공간에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신안군에 따르면 엘리아손의 작품은 지면 아래로 반원형 모양의 굴을 파고 바닥 면에 빛을 반사하는 1100여 개의 조각을 채워 태양 빛에 따라 지면 위로 다른 반영이 보이는 형태다. 엘리아손은 과학기술을 활용한 작품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 선보인 인공 태양이 가장 유명하다.비금도 해변에는 곰리의 작품이 들어선다. 그는 인체 형태를 단순화한 조각을 야외 공간에 놓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비금도에 설치될 작품은 가로 110m, 높이 25m, 폭 35m에 달해 아시아 최대 규모다.완성된 프로젝트로는 암태도의 서용선 미술관이 눈길을 끈다. 일제강점기 친일 지주에 맞선 암태도 소작쟁의 운동을 작가가 연구하고 그 결과를 오래된 농협 창고 벽면에 그렸다. 이곳 전시는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 후속 전시로 이어졌다.● 인구소멸 위험 지역의 승부수신안군이 다양한 예술 작품을 끌어들이는 데 적극적인 건 사정이 있다. 신안군은 올 3월 기준 인구 3만8191명 중 고령자가 40%로,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이다. 재정 자립도는 전국 226개 지자체 중 221위(2023년). 박우량 신안군수는 “열악한 여건을 극복하려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택했다”며 “섬에서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다는 자긍심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예술을 통한 관광 활성화로 젊은 세대의 유입을 늘리고,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겠다는 것. 다만, 지역 관광지 수준을 넘어서려면 해외 유명 미술가의 알려진 작품을 설치하는 것뿐 아니라 장기적 안목에서 독자적인 문화 생태계를 갖추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암태도 소작쟁의 프로젝트’를 맡았던 이승미 행촌문화재단 대표는 “해외 작가 작품은 유럽에서 더 좋은 것을 볼 수 있지만, 한국의 좋은 작품은 여기서만 볼 수 있다”며 “작가 레지던시 건립, 지역 맥락을 담은 작품 전시 등 한국과 지역 미술계를 활성화하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신안=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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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모두 삶의 일부이기에

    밀리언셀러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의 저자로, 에세이 ‘사는 게 뭐라고’와 ‘죽는 게 뭐라고’를 쓴 사노 요코의 글들을 사후에 모았다. 그의 작고 10주기를 맞아 잡지에 실렸거나 단행본에 수록되지 않은 원고 등을 담았다. 짧은 동화부터 대학 재학이나 유학 시절 이야기를 쓴 에세이,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와 주고받은 연애 편지까지 다양하다. 표제작인 ‘언덕 위의 아줌마’는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희곡 작품이다. 1999년 극단 ‘엔’의 어린이 무대에서 상연된 이 작품은 매 순간 기분이 날씨처럼 변덕스럽게 바뀌는 거대한 아줌마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줌마가 장을 보러 등장하면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두려움에 벌벌 떤다. 아줌마가 분노하면 궂은 날씨로 마을이 위험에 처하게 될 수 있어서다. 사람들은 그녀를 ‘기분 괴물’이라고 부른다. 주인공인 루루가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가 이야기를 들어주며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과정을 담았다. “오래 산다고 뭔가를 잘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아마 자신의 마음을 가장 모를 것”이라고 쓴 사노는 “많은 기쁨과 슬픔과 분노를 아이들이 충분히 받아들이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후기에 썼다. 어린이 희곡 ‘언덕 위의 아줌마’와 더불어 동화 ‘제멋대로 곰’ ‘지금이나 내일이나 아까나 옛날이나’ 같은 작품에서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그것을 과감히 드러낼 줄 알았던 사노의 매력이 물씬 드러난다. 에세이가 아닌 이야기의 형식을 취해 좀 더 신비로운 감성이 더해졌다. 사노가 1938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나 중일전쟁을 겪고 가난한 시절을 지나온 삶을, 옷을 매개로 담담히 그린 ‘나의 복장 변천사’는 특유의 문체와 그림을 보는 재미가 있다. 다니카와가 그녀에게 보낸 33가지 질문에 답한 편지는 연인에 대한 애정에 재치를 듬뿍 담은 글이 웃음을 머금게 한다. “원고를 청탁받으면 마구 써대고 인쇄물로 나오면 내던져 두었다”던 사노의 원고는 매장된 금처럼 계속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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