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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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4-03-23~2024-04-22
미술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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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용가 안은미, 伊 무인도서 굿 한판… 세계 눈길 끈 K아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 미술전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개막을 이틀 앞둔 18일(현지 시간) 오전 11시.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전시장 앞 부두에서 전 세계 유명 컬렉터 및 큐레이터, 기관장과 기자들이 배에 몸을 실었다. 배를 타고 50분쯤 움직이자 핑크빛 연기로 뒤덮인 무인도 ‘산자코모’가 보였다. 핑크빛 연기는 곧 섬에서 시작될 한국인 무용가 안은미의 퍼포먼스와 전시 ‘핑키핑키 굿: 산자코모의 내일을 향한 도약’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날 산자코모에선 프랑스 등 유럽에서 사랑받는 무용가 안은미의 해외 미술계 데뷔 무대가 펼쳐졌다. 그를 보기 위해 무인도를 찾은 600여 명의 관객 중에는 카타르 공주인 알 마야사 빈트 하마드 타니, 영국 서펜타인 갤러리 최고경영자 베티나 코렉, 헤셀미술관장 톰 에클스, 유명 컬렉터 울리 지그 등 세계 미술계 VIP가 다수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안은미는 관객 600여 명 앞에서 과거 군사기지 등으로 활용됐던 산자코모섬에 살았던 영혼을 위로하고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터굿’을 벌였다. 안은미는 크레인에 매달려 높은 곳으로 올라가 물을 뿌리며 섬을 축복하고, 관객이 골라온 돌에 핑크빛 물을 묻혀 세례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섬 입구에서 나눠준 한글 이름이 적힌 스티커를 옷에 붙인 관객들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공연을 즐겼다. 이내 안은미와 함께 춤을 추며 어우러졌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사람은 2020년 방탄소년단(BTS)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커넥트 BTS’를 협업한 세계적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다. 2009년 미술지 ‘아트리뷰’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미술계 파워 인물 1위에 올랐던 그는 지난해 영국 런던 바비컨센터에서 열린 안은미의 공연 ‘드래건스’를 보고 감명을 받아 그녀를 이곳에 초청했다. 이날 오브리스트는 고운 분홍색 두루마기 차림이었다. 그는 “오늘 슈트를 입고 도착했는데 안은미가 내게 분홍 한복을 입히면서 ‘너도 굿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웃었다. 전시도 이어졌다. 전시장에는 ‘굿’뿐만 아니라 한국 주유소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람인형, 뽕짝(트로트 음악), 꼭두인형 등 한국 문화에서 차용한 작품들도 설치됐다. 과거라면 해외 관객들은 이런 문화를 낯설게만 여겼겠지만, K팝 등 한국 대중문화가 잘 알려진 덕분에 거부감보다는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전시와 퍼포먼스를 즐겼다. 안은미는 “과거엔 외국인들이 별신굿이나 트로트 같은 음악을 생경하게 느꼈지만, 이제는 그 소리를 진지하게 들으려고 한다”며 “오늘도 많은 관객들이 ‘사운드 뷰티풀’을 외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문화가 진지하게 여겨지는 순간을 기다리면서 몇십 년을 트레이닝하고 에너지를 쌓아 올렸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무인도의 소유주이자 유명 컬렉터인 파트리치아 산드레토 레 레바우덴고는 “안은미의 매력은 전통 무용과 샤머니즘 등 현대와 전통을 능숙하게 융화시키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산자코모를 찾은 관객 가운데엔 서펜타인 갤러리의 파빌리온(임시 건축물) 작가로 선정된 한국인 건축가 조민석 씨도 있었다. 그는 ‘군도의 공허’를 주제로 새 건축물을 선보일 예정이다. 서펜타인 갤러리의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자하 하디드, 렘 콜하스, 프랭크 게리 등 다수의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이 거쳐 갔다. 조민석은 “(프로젝트 건축물에) 안은미 선생님을 초청해 공연할 예정이다. 한국의 문화를 재해석해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베네치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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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한국인이 日올림픽대표 감독 맡은 셈… “韓日, 차이보다 공통점 더 많이 느껴”

    세계 최대의 현대미술 축제이자 ‘미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니스 비엔날레가 17일(현지 시간) 사전 개막한 가운데 일본 국가관 예술감독을 맡은 이숙경 영국 휘트워스미술관장(55)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비엔날레에는 각 나라가 국가관을 설치해 ‘경쟁’하는데 마치 일본 올림픽 국가대표팀 감독을 한국인이 맡은 격이기 때문. 일본은 1952년부터 비엔날레에 국가관을 세웠는데 이번에 72년 만에 처음 외국인 예술감독을 초빙하며 한국 예술인에게 총책임을 맡긴 것이다. 한국인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외국 국가관에 대표 작가로 참가한 적은 있지만 예술감독이 된 것은 이번 비엔날레가 처음이다. 앞서 1993년 백남준은 독일관 대표 작가로, 1995년 최재은(재일교포 설치미술가)은 일본관 대표 작가로 참가한 바 있다. 이날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전시장 내 일본관에서 이숙경 예술감독을 만났다. 이번 전시에서 ‘합’을 맞춘 일본관 대표 작가인 모리 유코(44)와 함께였다. 일본이 파격적으로 이 감독을 선택한 배경은 무엇일까. 최근 일본이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바꿨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번에 참가 작가를 먼저 선정하고, 작가가 예술감독을 선택하게 했다. 지난해 일본관 대표 작가로 선정된 모리 작가가 이 관장을 지목하면서 협업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길지 않았지만 깊은 교감을 느꼈다고. 두 사람이 처음 함께 일한 것은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였다. 당시 예술감독이었던 이 감독이 모리 작가를 초청해 광주 남구 양림동의 예술공간에서 설치 작품 ‘I/O’를 전시했다. 이 작품은 한강의 소설 ‘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이 감독은 “모리 작가가 광주비엔날레에서 한국의 역사를 진지하게 연구해 감동받았다”고 했다. 모리 작가는 “광주에 수개월 동안 머물렀을 때 자주 가던 와인바의 사장님과 친해졌는데 나중에 그녀를 대학에서 가르쳤던 교수님이 한강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놀란 경험이 있다”며 “이렇게 세상의 많은 것들이 우연 같지만 서로 깊이 연결된 모습이 많은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한국인 감독’을 맞은 일본 미술계, 더 나아가 일본 현지의 반응은 어땠을까. 모리 작가는 “일본 언론에선 이 감독이 임명되자 관심이 매우 뜨거웠다”면서 “참여 작가인 내 얘기는 쏙 빼놓고 감독에 대해서만 다루기도 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앞서 예술계는 국적이 중요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있긴 했다. 이에 일반인들의 반응을 좀 걱정했는데 반대보다는 호응이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관을 운영하는 외무성 산하 일본국제교류기금의 사토 아쓰코 문화사업부장은 “아시아인 최초 영국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큐레이터 출신인 이 감독의 국제적 네트워크와 경력을 알고 있었고, 원칙적으로 큐레이터(예술감독)에는 국적 제한이 없기에 모리 작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때로 한일 양국의 정치적 의견이 다르고 때론 민감하지만 문화의 힘으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기에 두 사람의 협업은 기쁜 일이었다”고 했다. 1995년부터 비엔날레에 국가관을 연 한국 역시 올해 외국인이 공동 감독을 맡았다. 덴마크 출신의 야코브 파브리시우스 아트 허브 코펜하겐 관장이 이설희 큐레이터와 함께 한국관 전시를 책임지게 된 것. 한일 양국에서 모두 외국인 감독이 참여하는 첫 비엔날레가 된 것이다. 이 감독에게 ‘한일관계 때문에 작업하는 데 부담은 없냐’고 물었더니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답이 나왔다. “공통점이 더 많이 느껴졌다”고 힘줘 말한 것. 그는 “베네치아에서 모리 작가와 일하며 한일 간 차이점보다 아시아 여성으로서 닮은 점을 더 강하게 느꼈다”고도 했다. 이날 이 감독은 검은 옷을, 모리 작가는 화려한 패턴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같은 디자인의 검은색 신발을 나란히 신고 있었다. 서로 다른 국가적 배경을 지녔지만 ‘미술의 길’은 함께 걷는다는 느낌이었다.베네치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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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중심 미술史가 놓친 작가들 한자리에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오래된 조선소와 무기 공장을 개조한 전시 공간인 아르세날레. 베네치아(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는 장소인 이곳 입구에 들어서자 낡은 그물로 된 봇짐을 짊어진 우주인이 서 있다. 우주 탐사는 첨단 문명을 상징하지만, 그가 입고 있는 옷과 들고 있는 잡동사니는 오래되고 낡았다. 고도로 발달한 줄 알았지만 아직도 수많은 결점을 가진 인류의 ‘허름한 문명’을 상징한 이 작품은 잉카 쇼니바레의 ‘난민 우주인’이다. 우주인의 머리 위로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인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Stranieri Ovunque- Foreigners Everywhere)’라는 글귀가 네온사인으로 걸려 있다. 이들은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를 명확히 보여줬다. 인간의 문명이 여전히 허점투성이인 것처럼 “우리는 아직 세계 미술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세계 최대의 현대미술 축제이자 ‘미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이 17일(현지 시간) 사전 공개를 시작으로 11월 24일까지 7개월 동안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1895년 시작해 60회째인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는 브라질 큐레이터 아드리아누 페드로자가 예술감독을 맡았다. 이번 전시는 유럽과 미국 중심의 미술사가 놓친 작가들을 적극 조명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특히 자르디니 전시장에서는 20세기 유행했던 입체파, 표현주의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을 구사한 유럽 밖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원근법이나 해부학은 가볍게 무시한 선주민 예술부터 터부시됐던 욕망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퀴어 예술 등 규칙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감각과 이야기에 집중한 작품들이 관객을 맞이했다. ‘초상화’ 섹션에서는 이쾌대의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1948∼1949년)과 장우성의 ‘아틀리에’(1943년)가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을 비롯한 전 세계 작품과 함께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이쾌대의 작품을 선정한 큐레이터 아디나 메이는 “전통 두루마기와 서양의 페도라를 쓰고 유화 물감과 동양화 붓을 든 작가는 한국과 한국 예술의 미래를 상상하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로는 이강승(46)과 김윤신(89)이 출품했다. 두 작가는 각각 조각과 설치 작품으로 전시장 한가운데를 차지하며 비중 있게 작품이 다뤄졌다. 이강승은 드로잉, 자수, 깃털 등 연약한 오브제를 시적으로 배치해 퀴어 문화 역사의 주요한 인물들을 서정적으로 조명했다. 특히 신작은 주류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양피지 그림, 금실 자수, 미국 수어 알파벳으로 기록했다.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이강승 작가는 “퀴어이자 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는 주제가 많은 공감이 된다”며 “우리 모두가 지구상에 잠시 왔다 떠나는 이방인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전기톱으로 작업하는 할머니 조각가’로 불리는 김윤신의 작업물 중에선 지난해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선보였던 나무와 돌 조각 작품들이 전시됐다. 페드로자는 김윤신에 대해 “한국과 아르헨티나 조각 예술의 선구적인 작가”라며 “(아르헨티나 이주 등) 많은 곳을 옮겨 다니며 거주했던 경험이 작품에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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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뭉크가 그린 불안과 외로움의 방[영감 한 스푼]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방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곳엔 사람이 7명이나 되지만, 어딘가 허전하고 텅 빈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림 속 인물 중 1명은 정면을 보고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고개를 떨구고 있죠. 무엇보다 누구도 서로 눈을 맞추거나 쳐다보지 않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손을 잡거나 기댄 사람도 없이 모두가 섬처럼 뚝 떨어진 모습. 사람으로 가득하지만 모두가 저마다의 외로움에 잠겨 있는 이 작품은 에드바르 뭉크(1863∼1944)가 1893년 그린 ‘병실의 죽음’입니다.누나 소피의 죽음 이 그림은 아픈 사람이 머무는 곳인 ‘병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병실의 주인은 뭉크보다 한 살 많은 누나 요한네 소피(1862∼1877)인데요. 침대에 누워있어야 할 그녀는 마지막 순간 답답함을 호소하며 의자로 옮겨달라고 한 뒤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는 거의 보이지 않는 인물이 소피입니다. 소피를 마주 보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는 사람은 뭉크의 아버지 크리스티안 뭉크입니다. 그리고 의자에 손을 올린 채 고개를 숙인 여성은 이들의 어머니가 아닌 이모 카렌인데요. 어머니가 그림에 없는 것은, 소피가 세상을 떠나기 9년 전 같은 병으로 그녀도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뭉크의 어머니와 누나를 모두 앗아간 것은 결핵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림 속에서 뭉크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림 중앙에서 조금 왼쪽에 텅 빈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여자와 침대 사이 납작하게 끼어 잘 보이지 않는 옆모습의 인물이 바로 뭉크입니다. 정면을 보는 여자와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인 여자는 모두 소피의 자매입니다. 또 그림 왼쪽 벽에 손을 기댄 남자는 역시 뭉크의 남동생 안드레아스. 즉 이 그림은 소피의 죽음을 마주하는 온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불안과 외로움의 방 이 그림에서 뭉크가 어떻게 불안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표현했는지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이 작품의 주제는 소피의 죽음이지만, 텅 빈 침대와 소피의 뒷모습만 그려졌을 뿐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싱그러운 초록색이 아니라 시퍼런 멍이 든 것 같은 녹색, 검은색을 그림의 주된 색채로 사용하면서 죽음과 질병의 느낌을 드러내고 있죠. 게다가 마룻바닥과 벽이 만나는 선은 그림의 중앙보다 더 위쪽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 선을 기준으로 침대와 의자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혹은 아래로 쏟아져 내릴 것처럼 불안감을 자아냅니다. 여기다 그림 중앙에서 유일하게 앞을 보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 불안감을 극단으로 치닫게 합니다. 앞을 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쳐다보고 있지 않은 듯한 공허한 눈빛. 뭉크의 대표작인 ‘절규’에서처럼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 같은 얼굴의 여자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넘어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모두가 피할 수 없는 결말인 죽음을 마음 깊이 느낀 것처럼 말이죠. 뭉크는 이 그림에서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외로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는 왜 이렇게까지 두렵고 불안한 그림을 그려야 했을까요?죽음은 나를 지킨 검은 천사 뭉크가 소피의 죽음을 묘사한 것은 이 그림이 처음은 아닙니다. 22세였던 1885년 처음으로 소피의 죽음을 ‘아픈 아이(The Sick Child)’라는 작품에서 그린 뒤 뭉크는 64세가 된 1927년까지 40여 년간 ‘아픈 아이’를 여러 작품으로 그렸습니다. 공개된 작품으로는 유화가 6점, 판화가 8점에 달하고 드로잉까지 합하면 더 자주 천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소피의 죽음을 괴로워하며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 곱씹은 걸까요? 그림을 보면 뭉크는 단순히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기보다는 그때 느꼈던 처절한 외로움과 불안, 두려움을 표현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탐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흐르는 눈물처럼 물감을 세로선으로 그어 내리거나, 공허한 얼굴을 묘사하거나, 쏟아질 것 같은 방을 그리면서 말이죠. 즉, 아픈 기억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학자처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분석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본질에 접근하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문학가는 그런 탐구의 결과를 시와 소설 같은 문학 작품으로, 음악가는 음악으로 만들어 내듯 뭉크는 그것을 시각 언어로 풀어 놓기를 시도했습니다. 이러한 깊은 탐구가 ‘절규’와 ‘마돈나’ 같은 세기의 명작을 낳는 토대가 되었음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뭉크는 “어릴 때부터 내 요람은 아픔, 광기, 죽음이라는 검은 천사가 지키고 있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검은’이라는 말은 두렵고 불안한 느낌을 자아내지만 ‘천사’는 나를 지켜주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삶에서 겪는 고통과 상처, 외로움은 나를 시련에 들게 하지만 결국에는 스스로를 직면하게 해주는 인생의 수호자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죠. 살다 보면 누구나 겪게 되는 아픔을 끈질기게 파고들고 극복하면, 자신만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단단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그는 슬픔을 담은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 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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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보드, 세계 엔터지형 바꿀 K팝 홍보대사 될것”

    “K팝 음악의 미래가 굉장히 밝다고 생각합니다. 쏟아져 나오는 음악의 질과 양 모두 긍정적이거든요.”(마이크 반 빌보드 최고경영자·CEO) K팝이 방탄소년단(BTS)을 필두로 수년 전부터 빌보드 핫 100 차트 장벽을 깨며 높아진 위상을 자랑하는 가운데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음악 잡지·차트로 꼽히는 빌보드가 한국에 상륙한다. 빌보드는 6월 빌보드 매거진 한국판 ‘빌보드 코리아’ 창간호를 발간하고 한국에 공식 진출한다. 빌보드 내 K팝 차트 등도 신설돼 K팝이 다시 한번 도약할 계기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 반 CEO는 15일 서울 강남구 한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활발하고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한국의 음악 시장을 제대로 전달하겠다. 전 세계 팬들이 K팝의 트렌드와 인사이트를 접할 창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베트남계 미국인인 반 대표는 미디어 경영전문가로 2022년 5월 빌보드 CEO에 오른 뒤 이번에 처음 한국을 찾았다. 앞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에 빌보드 코리아가 발간된 적은 있지만, 이때는 라이선스만 가지고 국내에서 운영했다. 김유나 빌보드 코리아 대표는 “이전의 빌보드 코리아와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매거진은 전혀 관련이 없다”며 “올해 발간되는 빌보드 코리아는 본사 아래에서 모든 것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K팝 차트도 신설된다. 빌보드는 현재 메인 앨범차트(빌보드 200), 메인 싱글차트(핫 100) 등 차트 150여 개를 운영하고 있다. 기자간담회에서 ‘K팝 차트가 신설되면 한국의 다양한 음악 장르를 (아이돌 음악 중심의) K팝으로 한정 짓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반 대표는 “K팝 차트도 라틴 차트, 재즈 차트 등 다른 음악 장르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고 우리만의 노하우를 통해 한국 음악이 가진 모든 뉘앙스를 전달할 것”이라고 답했다. 빌보드의 K팝 차트 신설은 ‘음원 사재기 의혹’이 끊이지 않는 국내 주요 음원 차트들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반 대표는 “딸과 조카에게 좋아하는 가수를 물어보면 BTS, 블랙핑크, 뉴진스, 트와이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 여러 가수를 이야기한다. 나는 모든 K팝 아티스트를 응원한다”며 “K팝은 국경을 넘어 국제 엔터 사업계의 지변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빌보드는 K팝과 K뮤직, 나아가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홍보대사로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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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관에 들어온 정원… 80대 조경가 정영선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중정처럼 만들어진 야외공간 ‘전시마당’에 새로운 정원이 생겼다. 이 정원에는 미술관 근처 인왕산에서 영감을 얻어 언덕과 자연석이 배치됐고, 사이사이에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과 야생화 등 한국 고유의 자생식물을 심었다. 미술관 밖 자연풍경을 조그맣게 옮겨 온 이 정원은 1세대 조경가 정영선(83)의 작품(사진)이다. 그의 50여 년 조경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전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가 5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렸다. 1980년 여성 최초로 국토개발기술사(조경) 자격을 얻은 정영선은 예술의전당, 선유도공원, 서울식물원 등 공공 조경은 물론이고 제주 오설록 티하우스, 남양성모성지 같은 사설공간 조경 설계까지 최근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시장에서는 60여 개 프로젝트에 대한 설계도면, 스케치, 모형 등 관련 기록 500여 점을 살펴볼 수 있다. 기록들은 주제와 성격에 따라 7가지 부분으로 나뉘는데, 선조로부터 향유된 우리 고유 식재와 공간 구성을 도입한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정원의 재발견’ 부분이 흥미롭다. 호암미술관에 조성된 정원 ‘희원’에 관한 기록도 볼 수 있다. 희원에는 미술관이 소장한 신라시대 석탑, 불상 등이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사군자와 함께 어우러져 있다. 희원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정영선은 전통 정원의 요소를 자신의 작업에 본격적으로 활용하게 된다. 이 밖에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광화문광장’(2009년) ‘여의도샛강생태공원’(1997, 2007년) ‘남해 사우스케이프 암각 동산’(2018년)이 만들어진 과정도 볼 수 있다. 9월 22일까지. 2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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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MA 큐레이터들, 한국서 새로운 예술 찾는다

    미국 뉴욕을 찾는 사람에게 뉴욕현대미술관(MoMA)은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클로드 모네의 ‘수련’ 등 근대 유럽, 북미의 명작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런 MoMA의 화려한 전시실 뒤 큐레이터들의 집무실에서는 북미와 유럽을 벗어나 새로운 예술을 발굴하려는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9일 한국을 찾은 세라 스즈키 MoMA 부관장은 동아일보를 만나 “MoMA는 다양한 이야기를 찾고 있다”며 “북미와 유럽 밖 전 세계 예술가들이 어떤 생각과 아이디어를 가졌는지, 그것을 어떤 새로운 형태로 표현하는지 발굴하고 서로 다른 작품들이 대화를 나누도록 미술관을 구성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MoMA가 이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국 미술을 연구할 큐레이터를 파견한다. 스즈키 부관장은 이날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아트라이브러리에서 ‘큐레이터 교류 프로그램’ 등을 발표했다. MoMA의 큐레이터들이 한국에 2주∼3개월간 머물며 직접 한국 미술을 연구하고, 한국의 큐레이터도 MoMA에 가서 6개월∼1년간 연구 및 전시 기획에 참여한다. MoMA에서는 회화 건축 디자인 드로잉 프린트 사진 등 6개 분과의 큐레이터 중 지원자가 한국에 오게 되며, 이미 3월 사진 분과 큐레이터가 정연두 박찬경 문경원 노순택 오희근 성능경 등 국내 작가를 만났다. 스즈키 부관장은 “작업실 방문과 기록 열람,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예술 작품이 나오게 된 맥락을 밀착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MoMA는 한국에서 어떤 예술을 찾고 싶어 할까? 스즈키 부관장은 “우리 미술관에는 많은 큐레이터가 있고 각자 분야와 관심사가 달라 한 방향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 MoMA 부관장이 아니라 큐레이터 개인으로 예술을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말해 달라 했다. “저는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하는 작품이 호소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식은 지적이거나, 개념적이거나, 감성을 자극하거나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눈으로 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들이죠. 결국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보도록 관람객의 마음을 움직이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젊은 예술가들에게 “요즘 많은 유행이 예술을 좌우하지만 자신에게 정직하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내가 가진 느낌, 내가 믿는 아이디어가 인기가 없거나 트렌드에 맞지 않는 것 같아도 그 느낌이 진짜라고 믿는다면 포기하지 마세요. 주변을 둘러보고 함께해 줄 사람을 찾으세요. 그러한 시행착오가 당신의 예술을 사회 속에 자리 잡게 해 줄 것입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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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스타K’ 출신 박보람, 지인과 술자리중 사망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시즌2 출신 가수 박보람 씨(사진)가 11일 사망했다. 향년 30세. 경기 남양주남부경찰서에 따르면 박 씨는 11일 오후 9시 55분경 남양주시에 있는 지인의 집에서 여성 지인 2명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박 씨가 모임 도중 화장실을 가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운 뒤 계속 돌아오지 않자 지인들이 찾으러 나섰고, 이후 화장실 쪽에 쓰러져 있는 박 씨를 발견했다. 지인들은 즉시 119 신고와 함께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박 씨는 출동한 구급대원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박 씨와 지인 2명이 이날 마신 술은 소주 1병 안팎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폭행당한 흔적이나 혈흔 등 타살이 의심되는 범죄 혐의점이나 극단적 선택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박 씨에 대한 부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박 씨는 2010년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2’에 출연해 톱11 본선까지 진출하며 주목받았다. 2014년 ‘예뻐졌다’로 정식 데뷔했고, 이달 3일에는 발라드 프로젝트에 참여해 신곡 ‘보고 싶다 벌써’를 발표했고,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아 정규 앨범을 준비 중이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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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세월호 10주기… ‘기억의 공동체’로부터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되어가는 동안 나는 죽음과 더 가까운 나이에 이르렀다. … 무엇을 잊지 않고자 노력해야 하는가. 그건 아이들의 죽음이 아니라 사랑이다. 살고자 했던 삶이다.’ 은유 작가는 5월 16일 공개 예정인 에세이 ‘사랑이 안전한 세상을 위하여’에 이렇게 적었다. 2014년 4월 16일 비극적으로 발생했던 세월호 참사. 작가 뮤지션 배우 시인 정치인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이에 대한 기억을 에세이로 함께 묶었다. 앞서 4·16재단에서 2020년부터 매월 16일 웹사이트에 올린 연재물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시인 서윤후가 2020년 6월 16일 공개한 ‘슬픔의 기억력으로’에서부터 이슬아, 황인찬, 김애란, 장혜영, 핫펠트(예은), 나희덕 등의 에세이로 이어진다. 올해 공개 예정인 2024년 10월 16일분까지, 50편의 글을 담았다. ‘4월 16일에 우린 같은 안경을 나누어 가진 것 같습니다. … 조금씩 어지럼을 걷어내고 조금씩 선명히 걷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성동혁), ‘4·16이라는 숫자는 여전히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기표로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나희덕), ‘그들이 우리에게 주고 간 것, 우리가 받은 것에 생각이 미치면 이내 숙연해진다’(김애란) 등.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4월 16일’에 대한 의미를 이야기하며, 여전히 우리가 나눠야 할 이야기가 많다고 전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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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달 신곡도 발매했는데…‘슈퍼스타K’ 출신 박보람, 지인과 술자리중 사망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시즌2 출신 가수 박보람 씨가 11일 사망했다. 향년 30세.경기 남양주남부경찰서에 따르면 박 씨는 11일 오후 9시 55분경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지인의 집에서 여성 지인 2명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박 씨가 모임 도중 화장실을 가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운 뒤 계속 돌아오지 않자 지인들이 찾으러 나섰고, 이후 화장실 쪽에서 쓰러져 있는 박 씨를 발견했다. 지인들은 즉시 119 신고와 함께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박 씨는 출동한 구급대원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박 씨와 지인 2명이 이날 마신 술은 소주 1병 안팎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폭행당한 흔적이나 혈흔 등 타살이 의심되는 범죄 혐의점이나 극단적 선택 정황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박 씨에 대한 부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박 씨의 소속사 제나두엔터테인먼트는 12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11일 늦은 밤 박보람이 갑작스럽게 우리의 곁을 떠났다”며 “장례 절차는 유가족과 상의 후 빈소를 마련해 치를 예정이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깊은 애도를 보낸다”고 밝혔다.박 씨는 2010년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2’에 출연해 톱 11 본선까지 진출하며 주목받았다. 2014년 ‘예뻐졌다’로 정식 데뷔했고, 이달 3일에는 발라드 프로젝트에 참여해 신곡 ‘보고싶다 벌써’를 발표했고,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아 정규 앨범을 준비 중이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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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니콜라 부리오 “맥도날드와 맛집은 다르다”[영감 한 스푼]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시를 만드는 것과, ‘팔기 위해’ 전시를 만드는 것은 다릅니다. 맥도날드와 훌륭한 맛집(good gastronomic restaurant)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맛집은 돈을 버는 데에만 집중하지 않죠. 남들과 다른 음식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좋은 전시를 만드는 것은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죠.”올해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은 프랑스 출신 유명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를 만났습니다.‘관계의 미학’ 등 저서로 국내 미술인들에게도 익숙한 이론가이자 파리의 현대미술관 ‘팔레 드 도쿄’의 공동 설립자로 기관장을 지냈습니다.그가 2005년 감독한 리옹 비엔날레에는 관객이 50만 명이나 방문하면서 화제가 되었죠.최근 10년간은 이스탄불 비엔날레, 타이베이 비엔날레 등 유럽 밖 지역에서도 전시 감독을 맡으면서 ‘비엔날레 전문 큐레이터’라는 인상도 받곤 합니다.그런 그가 이번엔 광주까지 오게 되어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최근 참여 작가를 발표하면서 전시의 대략적 윤곽도 공개되었는데,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단어 자체에 주목한 주제, 판소리부리오는 앞서 광주비엔날레의 주제가 ‘판소리’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우선 그가 전시의 큰 틀로 생각했던 것이 ‘사운드스케이프(소리의 풍경, soundscape)’였는데, 이 단어의 의미가 마침 판(공간)과 소리가 결합한 ‘판소리’와 딱 맞아떨어진 것이 주제 선정에 가장 큰 요인으로 보입니다.부리오가 말하는 ‘사운드스케이프’는 소리가 열어주는 공간을 뜻합니다. 그는 이를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 그 공간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경험에 빗대어 설명했는데요.즉 물리적인 틀이 아니라 우리가 귀로 듣는 여러 가지 소리도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기본 토대입니다.그에게 “전시를 기획할 때 판소리의 형식보다 이름 자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맞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 판(공간)과 소리가 이번 전시를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이기 때문에 그렇게 제목을 정했다”고 답했습니다.여기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흔히 판소리라고 했을 때 우리는 북을 치는 고수와 함께 소리꾼이 노래하는 ‘극’의 풍경을 떠올립니다. 이런 극의 형태와 전시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부리오의 답입니다.“판소리는 고수와 소리꾼으로만 구성되는 아주 단순한 형태의 오페라라고 생각한다. 그 형태의 차이는 있다고 하더라도 목소리와 악기, 스토리텔링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오페라와 다르지 않다.”이 답변은 판소리도 결국엔 유럽의 오페라와 근본적인 개념에서는 같다는 뜻인데요.이는 결국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판소리의 독특한 양상이 전시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뜻으로도 해석되었습니다.내용은? 기후 변화, 국경 분쟁,…그렇다면 전시의 내용은 어떻게 펼쳐질까? 전시 서문과 부리오가 밝힌 내용으로 유추하면 판소리보다는 인류세, 기후 변화 등 그간 국제 미술계가 주목해 온 주제가 더 주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우선 전시는 크게 세 가지 섹션, 1) 라르센 효과(Larsen Effect, 두 음향 기기가 너무 가까워서 나는 굉음) 2) 폴리포니(Polyphony, 다성음악) 3) 원초적 소리(Primordial Sound)로 구성됩니다.첫 번째 섹션에서는 마치 도시처럼 너무 많은 것들이 한 곳에 놓인 밀도 높은 공간을 제시하고, 그다음은 다층적 세계관에 주목하는 작가를, 그다음은 분자와 우주를 탐구합니다. 좁은 곳에서 시작해 넓은 영역으로 나아가는 구성인데요.첫 번째 영역을 고밀도의 공간으로 구성한 이유에 대해 부리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그것이 기후 변화의 가장 눈에 띄는 결과거든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다양한 생물이 살 수 있는 숲이 사라지고, 또 야생 동물이 인간과 접촉하면서 신종 전염병이 생기기도 하죠.에베레스트산을 올라도 사람의 흔적이 있잖아요. 야생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사라지는 지금의 현상을 반영하려고 했습니다.”이처럼 기후 변화가 일으킨 지구라는 공간의 변화, 또 국가 간 정치적 상황으로 발생하는 경계와 분쟁, 여기서 소외되는 다른 형태의 생명체들의 목소리 등이 전시의 주제가 될 듯합니다.“똑같이 손님 많아도 맥도날드와 맛집은 달라”그간 부리오가 여러 전시를 기획하며 주목받은 특징 중 하나는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고자 했다는 것입니다.지금 리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는 필립 파레노나 미술관에서 함께 밥을 지어 먹는 프로젝트를 선보인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같은 작가처럼 참여 형태의 예술로 관객을 끌어들였고, 대표 저서인 ‘관계 미학’에서도 이런 예술을 모범적인 사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부리오는 “나는 항상 일반 대중(general public)을 위해 전시를 만든다”라며 자신이 기획했던 리옹 비엔날레를 찾은 50만 명도 전혀 미술계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그러면서 “글을 재료로 하는 신문 기사는 언어를 모르면 읽을 수 없지만, 작품은 시각 언어로 보면 되는 것이기에 더 보편적으로 퍼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작품은 눈으로 보는 것이기에 파급력이 더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시각 언어’를 보는 것에도 타고난 감각이나 훈련이 필요하기도 합니다.부리오에게 “어떤 큐레이터들은 너무 일반 대중에 집중하다가 전시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을 우려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습니다.“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시를 만드는 것과, ‘팔기 위해’ 전시를 만드는 것은 다릅니다.어떤 사람들은 가장 많은 티켓을 파는 데에 관심이 있기도 하죠. 맥도날드와 훌륭한 맛집(good gastronomic restaurant)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맛집도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곳이지만, 그들은 돈을 버는 데에만 집중하지 않죠. 남들과는 다른 음식을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게 생각합니다.그러니 좋은 전시를 만드는 것은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올해 광주에서는 맥도날드가 아니라 훌륭한 맛집 같은 전시를 볼 수 있을까요? 30개국 73명 작가가 참여한 ‘판소리, 모두의 울림’. 9월 7일 개막하면 그 결과를 알 수 있겠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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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커상 최종후보 황석영 “차기작 집필 동력”

    황석영 작가(81)의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영문판 마터 2-10)’가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 부커상은 노벨 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부커상 위원회는 9일(현지 시간) ‘철도원 삼대’를 비롯해 최종 후보작 6편을 공개했다. 2020년 출간된 ‘철도원 삼대’는 철도원 가족을 둘러싼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의 근현대 역사를 조망하는 소설이다. 앞서 1차 후보에 올랐던 황 작가는 5일 부커상 홈페이지에 공개된 인터뷰에서 “이 책은 해방 후 한국 문학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소외되었던 계층인 근대 산업 노동자들의 삶과 고난의 흔적을 복원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후보에 오른 것에 대해서는 “지난 20년간 국제 문학상 후보에 올랐지만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고 이번에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을 느끼고, 팬데믹 동안 집필한 이 소설에 대한 애착 때문에 후보 선정 소식이 좀 더 기쁘다”고 했다. 이어 “준비하는 차기작 집필에 동력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황 작가가 올해 최종 후보에 오르며 2022년 정보라 ‘저주토끼’, 지난해 천명관 ‘고래’에 이어 한국 작가 작품이 3년 연속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게 됐다. 앞서 2016년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한국 작가 최초로 부커상을 받은 바 있다.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은 5월 21일 런던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발표된다. 최종 수상 작가와 번역가에게 모두 5만 파운드(약 850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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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브 자산 5조 넘어… 국내 엔터사 첫 대기업 지정될듯

    그룹 방탄소년단(BTS), 뉴진스가 속한 하이브가 자산 규모 5조 원을 넘기며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될 전망이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 중에서는 처음이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시 의무와 사익 편취 금지 등 각종 규제가 뒤따른다. 하이브는 여러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인수해가며 사업을 다각화하고 몸집을 키워왔지만, 앞으로 인수합병 속도가 더뎌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0일 하이브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하이브의 자산은 지난해 기준 5조3457억 원으로 2022년(4조8704억 원) 대비 9.8% 증가했다. 자산 규모가 5조 원을 넘기면서 대기업집단 지정이 유력하게 됐다. 하이브는 사업을 크게 확대하며 자산 규모를 불려갔지만 2022년까지는 5조 원에 미치지 못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산 5조 원 이상인 기업을 공시대상 기업집단(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해 각종 의무를 지운다. 예를 들어 계열사 현황과 주식 소유 현황, 대규모 내부거래, 비상장사의 주요 사항 등을 반드시 공시하게 한다. 순환출자는 금지된다. 하이브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이런 규제를 적용받게 되는 것이다. 현재 하이브의 지분 31.57%를 보유한 최대 주주이자 설립자인 방시혁 의장(사진)은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다. 방 의장이 총수로 지정되면 사익 편취 금지 규제를 받아 방 의장 친족이 일정 수준 이상 지분을 가진 회사에는 일감 몰아주기 등이 금지된다. 대부분 기업은 이런 규제들 때문에 대기업집단 지정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대기업집단 지정이 하이브의 사업 다각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많은 자금이 투입되는 기업 인수에 좀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하이브는 이전에 이뤄졌던 인수에서도 규제를 위반하는 것이 없는지 검토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 빅히트엔터테인먼트로 설립된 하이브는 BTS가 2017년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하면서 중소 기획사에서 주요 플레이어로 올라섰다. BTS 멤버가 모두 군에 입대했지만 뉴진스, 르세라핌 등 이른바 ‘4세대 걸그룹’이 성공을 거두면서 BTS의 공백을 메웠다. 올해에도 보이그룹 투어스와 걸그룹 아일릿을 데뷔와 동시에 잇따라 성공시키기도 했다. 다양한 인수합병으로 몸집도 키웠다. 하이브는 2019년 쏘스뮤직, 2020년 플레디스 등 다른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인수했고, 2020년 10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됐다. 2021년에는 글로벌 팝스타 저스틴 비버와 아리아나 그란데가 소속된 이타카 홀딩스를, 지난해에는 미국 유명 힙합 레이블인 QC미디어홀딩스 등을 사들이며 글로벌 사업도 강화하고 있다. 공정위는 하이브의 대기업집단 지정과 관련해 “아직 결정된 게 없다”고 밝혔다. 매년 대기업집단을 발표하는 공정위는 올해 지정을 위해 각 사로부터 받은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올해 지정 결과는 5월 1일 발표된다.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세종=송혜미 기자 1am@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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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늘 없는 시계, 컬러풀한 조각… 공간에 잠겨 명상하다

    자연에서 쉽게 보기 힘든 강렬한 빨강, 노랑, 초록 원색으로 만들어진 조각들이 서 있다. 겉모습만 보면 높은 곳에서 굴러떨어져 부서진 바위 같지만, 알고 보면 돌을 본떠 만든 청동 조각이다. 자연을 말하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색과 재료로 소장가들을 매혹해 온 우고 론디노네(사진)의 작품이 강원 원주 뮤지엄 산에 전시됐다. 뮤지엄 산은 6일부터 스위스 출신 현대미술가 론디노네의 개인전 ‘번 투 샤인(BURN TO SHINE)’을 연다. 미술관의 전시관 3곳과 야외 스톤가든, 백남준관에서 작품 40여 점을 소개한다. 미국 네바다주 사막에 설치돼 ‘인증샷’ 명소로 꼽혔던 ‘세븐 매직 마운틴’을 연상케 하는 돌 모양 조각 연작 ‘수녀와 수도승’부터 ‘매티턱(mattituck·미국 뉴욕주의 지역 이름)’ 회화 연작, 영상 작품 등이 소개된다. 로비에서 시작하는 전시는 시곗바늘이 없는 시계, 밖이 보이지 않는 창문 작품으로 관객을 맞는다. 시계와 창문 작품은 형광으로 빛나는데, 이 작품이 설치된 공간의 통창에도 색이 입혀져 있다. 8일 한국을 찾은 론디노네는 “오후 2∼4시에 이곳을 찾으면 색에 완전히 잠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계엔 바늘이 없어 시간을 모르고, 창문엔 내 모습만 비친다”며 “시간과 나에 대한 명상을 하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다음 전시장1에서는 작가가 본 일몰과 월출 풍경을 담은 수채화(매티턱), 바다를 상징하는 유리 말 조각 시리즈가 이어진다. 모두 자연의 기본적 요소를 표현한 것으로, 국내 아트페어와 갤러리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전시의 제목이 된 영상 작품 ‘번 투 샤인’(2022년)은 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의 전통 의식과 현대 무용을 결합한 퍼포먼스를 담았다. 론디노네는 이 영상에 3개의 ‘원’이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 원은 불, 두 번째는 불을 둘러싼 무용수 17명이 그리는 원, 세 번째는 드러머 12명의 원으로 이들은 시계처럼 움직이면서 해가 뜰 때까지 춤을 춥니다.” 10분 동안 이어지는 영상은 해가 뜨는 장면과 함께 막을 내렸다가 다시 어둠 속에서 불이 빛나고 그 주변에서 무용수들이 춤추는 장면으로 반복된다. 작가는 ‘빛나기 위해 타오르라’는 존 지오르노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제목을 붙였는데, 불에 탄 재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불사조처럼 순환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작가는 “이러한 순환을 해와 달이 곳곳에 있는 전시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돌 모양 조각 작품은 그 안에서 명상하는 사람을 상징한다. 9월 18일까지. 5000∼2만3000원. 원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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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흉물 발전소가 ‘테이트 모던’ 명소로… 미술관 체계, 건축이 핵심”

    2000년 영국 런던 동부 템스강 변 흉물로 방치된 화력발전소를 개조한 미술관 ‘테이트 모던’이 문을 열었다. 거대한 중앙 공간 ‘터빈 홀’ 내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인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1)의 초대형 거미 작품을 비롯해 화력발전소의 기계 장치 대신 예술 작품이 곳곳에 채워졌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 미술관은 낙후된 사우스뱅크 지역을 활기차게 바꾼 것은 물론이고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참고하는 모델이 됐다. 테이트 모던 개관을 주도하고 2016년부터 2022년까지 관장을 지낸 프랜시스 모리스(65)가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명예 석좌교수로 국내 강단에 선다. 첫 강의를 마친 3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만난 모리스는 “그간 서울에 오면 미술관이나 갤러리만 ‘찍고 떠나’야 했는데, 이번엔 길거리도 거닐고 지하철도 타면서 서울을 제대로 경험할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테이트 모던, MoMA와 퐁피두가 모델 모리스는 이화여대로부터 교수직 제안을 받고 “늘 궁금했던 서울에 오랜 시간 머물 수 있고 문경원처럼 활동 중인 작가로 구성된 교수진과 일한다는 점이 끌렸다”고 말했다. 그는 11일 ‘테이트 모던: 변혁의 생태학’을 주제로 공개 강연에 나서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대학원생에게 ‘현장 비평I: 예술과 비평’ 강의를 한다. 강의는 미술관 건축에서 시작해 공공 미술관의 역할, 사립 미술관과 미술 시장 등의 주제로 이어진다. 건축으로 시작하는 이유를 묻자 모리스는 “미술관 체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건축”이라며 “테이트 모던은 20세기 대표적 미술관 모델인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1970년대 급진적이고 독특한 문화를 담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의 요소가 섞여 있다”고 설명했다. 테이트 모던은 개관했을 때 소장품의 파격적 배치로도 논란을 빚었다. 통상 미술관은 시대별 사조를 시간 순서로 보여주는데, 테이트 모던은 이를 깨고 장르와 주제별로 작품을 배치했다. 개관 당시 디스플레이 총괄 큐레이터였던 모리스는 “어떤 작품도 한 가지 맥락으로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라며 “관객이 미술사를 다 아는 것도 아니므로 각자 방식대로 감상할 기회를 마련하자는 취지였다”고 했다.● 루이즈 부르주아, 거미 같은 여자 모리스는 테이트 모던에서 루이즈 부르주아, 구사마 야요이 등 여성 작가를 조명한 회고전을 열고 이들을 ‘스타 작가’로 만든 큐레이터이기도 하다. 특히 부르주아는 1995년 함께 첫 전시를 열고 2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갔다. 그는 부르주아에 대해 “늘 두려웠다”고 회고했다. “제 질문에 언제나 탐탁지 않은 반응이었어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제안이라도 하면 말없이 일어나 자리를 떠나기도 했죠. 그러다가도 제가 딸기잼을 사 가면 갑자기 조수를 불러 스푼을 가져오라 하고 그걸 셋이 작은 의자에 앉아 나눠 먹기도 했어요. 부르주아는 자기 엄마를 거미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가 거미 같은 신비로운 여자였습니다.” 여성 작가는 물론이고 유럽 밖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작가를 발굴해 온 그는 5월 4일 강원 강릉 솔올미술관에서 개막하는 추상 화가 아그네스 마틴의 국내 첫 개인전을 큐레이팅하고 9월 3일부터 6일까지 열리는 이화여대 국제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이마프(EMAP)’의 좌장으로 참여한다. 모리스는 “마틴의 아름다운 작품을 백색 공간에 펼쳐 놓아 관객에 커다란 기쁨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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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한국식 ‘대단지아파트’ 원형을 파헤치다

    1961년 5월 28일 대한주택영단(한국토지주택공사의 전신)에 장동운 이사장이 취임한다. 그는 같은 해 5·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의 주요 인물이었다. 취임과 동시에 장동운은 서울 안에 고층 단지식 아파트를 만든다는 계획을 세운다. 군부는 2년 뒤 민정 이양을 약속했고, 선거에서 정권을 유지하려면 서울 시민들에게 새로운 정치 세력의 능력을 보여줘야 했다. 그렇게 시작해 우여곡절 끝에 한국 아파트단지의 원형이라 불리는 ‘마포주공아파트 체제’는 1970년대 후반에 완성됐고, 그 후 50년 넘게 한국의 주거 문화생활을 점령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마포주공아파트 체제의 생성 과정과 구조를 밝히고 있다. 마포주공아파트 체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면 지금의 아파트 문화를 만드는 몇 가지 중요한 계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최종 준공이 이뤄진 1964년에는 임대주택이었던 마포주공아파트를 1967년 대한주택공사가 자금난을 겪으면서 분양하기로 결정된 순간이다. 이는 한국의 주택 공급과 아파트의 역사에 결정적인 분기점이 된다. 정부 주도의 집합 주택은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했는데, 19세기 말부터 예외 없이 모두 임대 주택이었다. 공공 주택을 통해 시장의 안정과 도시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 정부가 주택을 관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아파트는 ‘분양’ 방식이 도입되며 여러 기반 시설까지 입주자의 권리이자 책임으로 넘겨졌다. 단지 내 도로, 놀이터, 공원 등은 입주자가 부담하고 정부는 단지까지 이어지는 도로만 건설하면 됐다. 정부 예산은 없는데 주택이 압도적으로 부족해 단기간에 대량 공급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는 도시의 공공 기능, 개발 비용을 사적으로 부담하게 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낡은 체제로는 도시의 사유화와 계급화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진단한다. 책은 한국이 만든 현대성(modernity)에 주목하는 시리즈의 첫 책이다. 2021년 ‘한국주택 유전자’를 출간하고 학계와 출판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2023년 2월 세상을 떠난 박철수 교수의 유작이기도 하다. 와병 중 집필한 원고를 출판사가 인계받아 사후 편집을 거쳐 출간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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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고흐는 성경책을 그렸다[영감 한 스푼]

    노랗게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해바라기와 귀를 자르는 기행, 그리고 평생 한 점의 작품밖에 팔지 못했던 비운의 예술가.빈센트 반 고흐(1853∼1890)를 생각할 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이야기들입니다.그러나 고흐의 작품 세계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를 이렇게 오랜 시간 사랑받게 하는 것은 광기와 좌절 같은 극적인 스토리만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오늘은 고흐가 그린 정물화 두 점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이 두 정물은 유명한 해바라기도, 아름다운 꽃도 아닌 바로 책을 그린 작품입니다.하나는 고흐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직후 그린 ‘성경이 있는 정물’(1885년), 또 하나는 ‘프랑스 소설책 더미’(1887년)입니다.묵직한 성경책과 노란 소설책그림 속 커다란 성경책 옆에는 촛불 꺼진 촛대가 그려져 있어 마치 죽음과 삶을 대비시키는 것 같습니다. 고흐는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을까요?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흐의 작품을 소장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그의 대표작들이 걸린 전시장에서 ‘성경이 있는 정물’을 만났습니다. 두꺼운 책이 테이블 한가운데에 사다리꼴 모양으로 펼쳐져 묵직한 무게감을 뽐내고 있는 그림입니다.그런데 이 무거운 책 오른쪽 아래를 가벼운 노란 책이 경쾌하게 받치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끕니다.고흐는 이 그림에 대해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갈색빛 배경 위에 가죽 장정을 한 성경책이 펼쳐져 있고, 레몬빛 노란색이 들어간 정물화를 보낸다. 이 그림은 하루 만에, 단숨에 완성한 거야.”편지 내용을 보면 고흐는 어두운 배경, 펼쳐진 성경책의 흰색, 그리고 작은 책의 노란빛까지 색채의 조합에 집중한 것처럼 보입니다.그러나 그림 속 책들이 무엇인지 자세히 보면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펼쳐진 책은 이 그림이 완성되기 직전 세상을 떠난 고흐의 아버지가 갖고 있던 성경책입니다. 아버지가 동생 테오에게 주라고 했던 책이기도 하죠.그리고 그 책보다 작지만 색채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책은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으로 고흐가 즐겨 읽었던 책입니다.성경책 옆에는 촛불 꺼진 촛대가 그려져 있어 마치 죽음과 삶을 대비시키는 것 같습니다. 고흐는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을까요?“아버지는 이 시대를 이해 못 한다”프랑스 문학가들이 “우리가 느끼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진실하게 그린다”고흐는 집을 떠났다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이 무렵 부모님 집으로 돌아와 그림에 몰두했습니다. 이때 불편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편지에서 “모든 것이 갖춰진 집보다 저 먼 습지에 있는 것이 덜 외로울 것 같다”거나 “아버지는 나의 자유를 향한 갈망, 벌거벗은 진실을 향한 갈망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괴로움을 토로했죠.여기서 고흐가 언급한 ‘벌거벗은 진실을 향한 갈망’은 그가 그린 또 다른 정물 ‘프랑스 소설책 더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이 정물화에는 졸라, 기 드 모파상 등 당대 지식인들이 즐겨 읽었던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들이 그려져 있습니다.게다가 색채가 아주 밝고 경쾌한 톤으로 표현된 것이 인상 깊죠. 고흐는 이 프랑스 문학가들이 “우리가 느끼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진실하게 그린다”고 칭찬했습니다.즉, 성경책과 졸라 소설의 대비는 종교와 관념이 지배했던 과거의 사상과 개개인이 느끼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인정하는 새로운 예술과 문학을 교차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목사였던 고흐의 아버지는 졸라를 비롯한 당대 문학이 신을 부정한다고 생각해 좋아하지 않았습니다.고흐는 “아버지가 이 시대를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며 답답하게 여긴 것도 사실입니다.그러니 불 꺼진 촛대 옆 성경은 저물어가는 시대를, 레몬빛 작은 ‘삶의 기쁨’은 밝아오는 새 시대를 보여주는 듯합니다.고전이 열어주는 마음의 세계고흐가 평생 쓴 편지에는 저자 150명, 책 800여 권이 등장합니다. 그만큼 많은 책을 읽고 가까운 이들에게 추천했고, 말년 정신적 괴로움에 시달릴 때도 ‘엉클 톰스 캐빈’과 찰스 디킨스를 읽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습니다.그렇다고 고흐가 이 그림에서 성경이나 아버지를 부정한 것으로 보기는 힘듭니다.엑스레이로 그림을 보면 성경책을 더 반듯한 사각형으로 고쳐 그린 흔적이 나타나는데, 이는 성경을 더 크고 비중 있게 그리려고 했던 의도입니다.또 펼쳐진 구절은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희생과 수난을 겪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이사야 53장’으로 고흐가 평소 좋아했던 구절입니다.오히려 그림에서는 ‘벌거벗은 진실’을 갈망한다는 말처럼, 과거든 현재든 자신이 마주한 삶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으려고 했던 태도가 보입니다.고흐는 성경 속 구절을 실천하려 선교사 시절 교회에서 내준 집을 노숙자에게 주었다가 쫓겨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에는 장 프랑수아 밀레의 전기를 읽고 감동받아 시골 농부와 가난한 사람들을 그렸죠.또 고흐가 평생 쓴 편지에는 저자 150명, 책 800여 권이 등장합니다. 그만큼 많은 책을 읽고 가까운 이들에게 추천했고, 말년 정신적 괴로움에 시달릴 때도 ‘엉클 톰스 캐빈’과 찰스 디킨스를 읽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습니다.프랑스 문학뿐 아니라 토머스 칼라일의 철학서, 셰익스피어와 디킨스의 문학도 즐겨 읽은 것으로 전해집니다.고흐는 “책과 현실과 예술은 나에게 모두 같은 것”이라는 말도 남겼습니다.사회와 타협을 거부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았던 그를 버티게 해준 한 가지는 바로 세상을 깊고 넓은 눈으로 담은 고전 문학임을, 두 그림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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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수근 유족 “미국 전시 중인 위작 논란 작품, 내려달라”

    박수근의 유족이자 저작재산권자인 박수근연구소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전시 중인 박수근의 작품에 위작 논란이 일자 “진품으로 확인되기 전까지 전시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화랑협회(회장 황달성)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식 질의서를 마이클 고반 LACMA 미술관장, 스티븐 리틀 아시아 미술 큐레이터 앞으로 다음 주 초 보낼 예정이라고 5일 밝혔다.문제가 되는 작품은 LACMA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한국의 보물들; 체스터와 카메론 장 컬렉션’에 출품된 이중섭의 ‘황소를 타는 소년’, ‘기어오르는 아이’와 박수근의 ‘세 명의 여성과 어린이’, ‘와이키키’ 등이다.앞서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2022년 LACMA에서 열린 ‘사이의 공간’ 전시 개막식에 참여했을 때, 미술관 요청으로 수장고에서 해당 작품들을 보고 위작이라는 의견서를 써주었으나 미술관이 전시를 강행했다고 언론을 통해 밝힌 바 있다. LACMA는 스티븐 리틀 큐레이터가 전시 준비 과정에서 3년간 모든 작품을 상세히 조사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작품을 직접 본 윤 전 관장의 의견을 중심으로 감정운영위원회, 박수근연구소(대표 박진흥)가 논의를 거친 결과 전시 경위와 진품을 판단하는 근거에 대해 답변을 요청하는 질의서를 전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질의서에는 “이중섭의 ‘황소를 타는 소년’은 작가 특유의 화풍과 큰 차이가 있고 ‘기어오르는 아이’처럼 타일에 작업한 사례도 없다”, “박수근의 ‘세 명의 여성과 어린이’는 박수근 특유의 질감과 구성 혹은 선묘와 무관하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특히 박수근연구소는 “저작권자로서 박수근의 작품임을 인정할 수 없어 출품작에 대한 한국미술 전문가들의 감정과 정확한 근거 자료에 의해 진품으로 확인되기 전까지 전시를 중단해달라”고 썼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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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름진 입술… 주근깨… 숨기고픈 치부, 예술이 되다

    주름진 입술 위 빨간 립스틱과 그 사이로 보이는 금박을 씌운 치아. 손가락에는 입술과 같은 새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다. 미국의 예술가 마릴린 민터(사진)가 그린 작품 속 주인공은 바로 미셸 라미(80). 프랑스의 디자이너, 퍼포머, 사업가로 짙은 화장과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프랑스 문화계 유명 인사다. 최근 서울 용산구 리만머핀 갤러리에서 만난 민터는 “성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이 든 얼굴을 찾고 싶어 그녀를 모델로 택했다”고 설명했다. 민터가 여성의 입술을 클로즈업해 묘사한 신작 회화 ‘도금 시대(Gilded Age·2023년)’를 비롯해 주요 작품을 선보이는 개인전이 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서는 6점의 회화를 볼 수 있는데 라미를 모델로 한 작품은 ‘미셸 라미’(2014년), ‘스위트 투스(Sweet Tooth·2023년)’ 등 3점이다. 다른 신작 ‘흰 연꽃(White Lotus)’은 필리핀 출신 20대 여성의 주근깨를 도드라지게 그렸다. 민터는 “주근깨가 아름다워 그림에 넣었는데, 그림 속 여자가 뷰티 모델 일을 하며 주근깨를 다 지워버렸다”며 웃었다. 민터는 피부의 주름이나 주근깨처럼 보통의 사람들이 숨기고 싶은 몸의 부분을 크고 자세하게 묘사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아름답게 표현한다는 점이다. 전시장에서 그림을 직접 보면 물에 젖은 듯 촉촉한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이는 민터가 작업하는 고유의 방식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민터는 모델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다음 그 앞에 물을 뿌리거나 습기로 가득 찬 유리를 댄다. 그리고 이 유리 너머로 보이는 모델의 모습을 그린다. 여기에 라미의 초상 같은 작품은 투명한 젤을 거침없이 발라 유리 위로 물을 끼얹은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독특한 것은 대부분의 그림을 캔버스가 아닌 알루미늄 패널 위에 그렸다는 점이다. 금속판 위에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묻자 민터는 “독일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1980년대에 캔버스 위에 에나멜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시간이 지나고 부서지는 것을 봤다”며 “내 그림은 그렇게 되지 않고 영원히 보존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그 덕분에 민터의 회화들은 겉모습은 촉촉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 배경은 금속처럼 단단하고 영원히 박제될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지금은 없어진 그림 속 여성의 주근깨가 그림 속에선 물감으로 영원히 간직되는 것처럼 말이다. 손엠마 리만머핀 서울 디렉터는 “민터의 회화는 실제로 봐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4월 27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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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꺾이지 않은 여성의 불심… 금빛 불교미술을 이끌다

    11세에 왕이 된 아들 명종(1534∼1567) 대신 수렴청정했던 문정왕후(1501∼1565)는 1565년 아들의 건강과 후손 탄생을 기원하며 전국 사찰에 불화 400점을 나눠 준다. 조선 초기 문정왕후뿐 아니라 많은 왕실 여성이 불사에 나서자 사관과 유생들은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무너진다”고 비판했다. 왕실 여성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가족의 건강과 평온을 바라며 불교를 후원했고, 이는 수준 높은 불교 미술품을 낳았다. 불교 미술의 역사에 빠질 수 없는 후원자이자 소비자였던 여성의 역할을 조명한 전시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 지난달 27일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개막했다. 문정왕후가 1565년 나누어 준 불화 400점 중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총 6점이다. 이 중 ‘석가여래삼존도’(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와 ‘약사여래삼존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가 전시됐다. 특히 ‘약사여래삼존도’는 금빛 물감으로 그렸는데, 16세기 이러한 순금화를 민간에서 따라 해 노란 선으로 그린 불화가 유행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이승혜 큐레이터는 “왕실 여성이 한 시대의 불화 양식을 선도한 독보적인 후원자였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또 고려시대 1345년 검은 감지에 금니(금 물감)로 쓴 법화경 7권인 ‘감지금니 묘법연화경’(리움미술관 소장)의 후원자도 여성이다. 7권이 모두 남아 있는 ‘감지금니…’는 막대한 재원과 뛰어난 장인이 투입돼 제작된 고려 사경의 걸작으로 꼽히는데 일반에는 처음으로 공개됐다. 전시가 조명하는 것은 발원문이다. 여기에는 조성자인 ‘진한국대부인 김씨’가 “이전 겁의 불행으로 여자의 몸을 받았으니 참으로 한탄스러워 은 글자로 쓴 화엄경 1부와 금 글자로 쓴 법화경 1부를 만드는 정성스러운 소원을 간절히 내어 일을 끝마치었다”고 적었다. 고위층이었던 김씨가 여성임을 한탄한 이유는 불교에서 남성만이 성불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포기하지 않고 경전을 만들거나 불상 조성에 참여하며 성불을 꿈꿨다. 전시에선 약사여래에게 “남성이 되게 해달라”고 한 고려 금산군부인 전씨 여동생의 발원문, 아미타여래와 극락으로 향하길 바란 마음을 담은 불화들, 또 자신과 가족의 극락왕생을 빌며 머리카락을 넣어 수놓은 불화 등을 볼 수 있다. 전시의 2부 ‘여성의 행원’에선 불교미술품의 후원자와 제작자로 활약하며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려 했던 여성들의 역할을 조명한다. 1부 전시 ‘다시 나타나는 여성’은 불화나 조각상에서 여성이 어떻게 재현됐는지를 살펴본다. 특히 관음보살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95년 만에 국내에 전시돼 화제가 된 7세기 백제 ‘금동 관음보살 입상’은 젊은 청년으로 묘사된 관음보살이다. 이는 무릎에 아이를 안은 어머니의 모습(송자관음보살도), 반투명한 베일로 머리를 가린 채 선재동자를 바라보는 어머니와 같은 모습(수월관음보살도) 등으로 변주된다. 6월 16일까지. 1만4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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