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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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4-03-26~2024-04-25
미술58%
문화 일반10%
칼럼7%
문학/출판7%
금융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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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겜2’ 황동혁 감독 “새로운 게임-캐릭터 기대해도 좋아”

    “많은 분의 관심과 응원 속에 지난 7월부터 열심히 시즌2 촬영 중이다. 어깨가 무겁지만 기다려주신 만큼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다.”‘오징어 게임2’의 황동혁 감독은 7일 이같이 말했다. 황 감독은 이날 충청도 모처에 있는 세트장에서 “새로운 게임, 새로운 캐릭터와 함께 펼쳐질 더욱 깊어진 이야기와 메시지를 기대해 주셔도 좋다”고 했다.제작사 퍼스트맨스튜디오의 김지연 대표는 “시즌2에 대한 전세계적 관심과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노력해 훌륭한 작품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각오로 모든 제작진과 출연진이 최선을 다해 촬영에 임하고 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 했다.채경선 미술감독은 “시즌1에 보내주신 큰 사랑과 시즌2에 대한 많은 분의 기대감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황동혁 감독님의 크레이티브 비전과 주제 의식을 잘 구현해낼 수 있도록 미술팀 모두가 힘쓰고 있다”고 전했다. 7월부터 촬영을 시작한 ‘오징어 게임’ 시즌2는 내년까지 촬영을 이어갈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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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관이 벽돌 120장을 600만원에 샀다면? [영감 한 스푼]

    1972년 어느 미술관은 벽돌 120장을 가로 68.6cm, 세로 229.2cm, 높이 12.7cm로 가지런히 쌓은 작품을 삽니다.이 작품은 1966년 미국 작가 칼 안드레가 만든 ‘등가 8’(Equivalent VIII)였죠. 미술관은 이 작품을 얼마에 샀을까요?바로 6000달러, 단순 계산으로 600만 원입니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훨씬 더 비싼 가격이겠죠) 작품을 보고 가격을 들으면 많은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600만원이라면, 벽돌 한 장에 5만원어치인가? 아니면 쌓는 노동력도 포함인걸까? 미국 작가이니 배송비도…? 비슷한 논란이 영국에서 있었습니다.“혈세 낭비” 영국 뿔나게 한 ‘벽돌’이 ‘벽돌’ 작품을 산 곳은 영국 테이트 미술관입니다. 테이트는 1974, 1975년 작품을 특별 전시로 선보였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스캔들이 일어난 것은 1년 뒤인 1976년. 영국 주간지인 ‘더 선데이 타임스’가 작품 가격을 보도하며 “한가한 작품에 혈세를 낭비했다”고 비판한 뒤였습니다.더 선데이 타임스는 테이트 미술관이 정부로부터 매년 100만 달러가 넘는 예산을 받으면서, 존 컨스터블처럼 제대로 된 작품이 아니라 쓸데없는 곳에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심지어 첫 보도에서는 미술관이 산 가격의 두 배인 1만2000달러로 작품 가격이 잘못 알려지면서 분노를 부채질했죠.그 후 영국의 언론들은 공사 현장에서 벽돌에 기댄 노동자의 사진을 “끝내주는 예술 작품”이라고 게재하거나, 벽돌 무더기를 삽화로 그리고, 타블로이드 언론은 건설 기술자가 헤링본 모양으로 예쁘게 쌓은 벽돌이 훨씬 낫다고 주장하는 등 테이트의 결정을 풍자하기 시작했습니다.급기야 예술부 장관이 나서 “테이트 이사회는 실험적 예술에 예산을 쓸 모든 권리를 갖고 있다. 나는 그들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언론에 밝히며 미술관의 결정을 옹호했죠.미술관은 작품이 관심을 받자 1976년 2월 다시 수장고에서 꺼내 전시장에 놓았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시민이 와서 벽돌 위에 페인트를 뿌리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답니다.지금 가치는 수십억, 미술관의 승리‘벽돌’을 둘러싼 논란은 어떻게 일단락되었을까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미술관의 완전한 승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안드레의 작품은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언론의 유명세를 타면서 이전에는 무심하게 지나쳤을 관객들도 이 작품을 별명인 ‘벽돌’로 알아보는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죠.우선 영국의 미술관 소장품 관련 협회에서는 이 작품의 가치를 약 200만 파운드(약 33억 원)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칼 안드레가 구리판 100개를 가지런히 바닥에 놓은 작품이 2013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216만 달러(약 28억 원)에 낙찰됐으니, ‘벽돌’의 유명세를 고려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이 아닙니다.게다가 테이트 미술관은 당시 작품을 구매할 때 원래 가격의 절반에 샀으니 알뜰한 소비를 한 셈이죠. 안드레는 1966년 이 작품을 전시한 뒤 갤러리에서 팔리지 않아 벽돌을 다시 공장에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다 작품 사진을 본 테이트의 요청으로 절반 가에 팔기로 하고, 새로 벽돌을 주문해 보내주었죠.약 40년 사이에 작품 가격은 600만 원에서 33억 원으로, 500배 넘게 뛰었으니 미술관은 본전은 물론 아주 남는 장사를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인식 예술의 대표 사조, 미니멀리즘이유는 안드레가 196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미니멀리즘 예술’의 맥락에서 작품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미니멀리즘 예술은 안드레는 물론 도널드 저드, 리처드 세라 등의 작가가 대표적인데요.미니멀리즘 예술의 맥락에서 벽돌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는 황당하게도 “당신이 보는 대로 판단하라”, 즉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20세기 인간 사상사의 중요한 단면 중 하나인 ‘현상학’에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20세기 이전의 사회에서 의미는 신이나 왕이 정해주는 것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신이 가르치는 대로, 왕이 명령하는 대로 가치가 정해진 세계 속의 부속품이었을 뿐이었죠.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고민하고 결정하며, 이에 따라 삶을 설계해 나가려고 합니다. 이렇게 과거로부터 벗어나 현상을 직시하고 스스로 판단하라고 제안한 것이 바로 현상학입니다.이런 흐름에 맞물려 미니멀리즘 예술은 ‘예술가의 의도’를 지워버립니다. 즉 예술이 점차 신과 왕을 버리고, 인상주의 예술에서 ‘작가의 눈’을 강조했는데 이제 작가도 없앤 것이죠. 프랑스의 문학 비평가 롤랑 바르트가, 문학 작품은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반응에서 의미가 생긴다고 말한 것처럼, 미니멀리즘 예술가들도 ‘예술가의 죽음’을 선언한 셈입니다.이렇게 미니멀리즘 예술은 인식의 차원으로 넘어간 현대미술의 중요한 부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공공 미술관들은 미니멀리즘 예술 작품을 한 점씩은 갖고 싶어 하니 가격이 치솟습니다. 이런 칼 안드레의 작품을 대구미술관 어미홀에서 31일까지 볼 수 있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작품 앞에서 나에겐 뭐가 보이는지, 한 번 만나보세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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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8세 브렌다 리의 캐럴, 발매 65년만에 빌보드 1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요즘, 한국의 거리에서도 머라이어 캐리의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 대신 다른 캐럴을 듣게 될까? 5일(현지 시간) 미국 빌보드에 따르면 팝 가수 브렌다 리(78·사진)의 캐럴 ‘로킹 어라운드 더 크리스마스트리’가 발매 65년 만에 ‘핫100’ 차트 1위에 올랐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이 차트 정상을 차지했던 ‘올 아이 원트…’를 누른 것. ‘올 아이 원트…’는 2위였다. 1958년 발매된 ‘로킹 어라운드…’는 1990년 영화 ‘나 홀로 집에’ 삽입곡으로 유명해졌고, 2010년대에도 미국에서 연말마다 많이 사랑받았지만 최근 4년간 이 차트 2위에 머물렀다. 리는 역대 최고령 ‘핫100’ 1위 가수로도 기록됐다. 이전 기록은 1964년 루이 암스트롱이 ‘헬로, 돌리!’로 세운 63세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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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 없는 초상화’ 작가 램프 3번째 국내 개인전

    얼굴은 고개를 돌려 잘 보이지 않지만, 입고 있는 원피스의 색채는 화려하다. 표정이 없이도 그림 속 주인공이 선택한 옷으로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다. 또 다른 그림은 아예 속이 비치는 레이스 치마 사이로 다리만 드러난다. 그러나 딛고 선 자세, 레이스의 패턴, 가지런히 늘어뜨린 손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얼굴이 없는 초상화가 가능할까? 네덜란드 출신 작가 카틴카 램프(카팅카 람퍼·60)가 이 질문에 답한 작품 10여 점을 서울 종로구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 ‘My Frame Your Frame’에서 볼 수 있다. 그가 한국에서 여는 세 번째 개인전이다. 안혜령 리안갤러리 대표가 유럽 아트페어를 방문했다가 그의 작품에 반해 국내에 소개했다. 이번 전시는 인물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독특한 구도를 제시한다. 얼굴이 화면에 가득 차게 ‘줌 인’하거나, 중요한 부분을 잘라내 궁금증을 유발하는 식이다. 램프는 모델이나 인물을 먼저 사진으로 촬영한 뒤 유화로 옮긴다. 내년 1월 10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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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전통문화, 테라코타 부조로 되살렸다

    올해 작고 50주기를 맞은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테라코타 부조 작업을 조명하는 ‘권진규: 조각가의 릴리프’ 특별전이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테라코타는 찰흙을 구워서 만드는 기법으로, 수천 년이 지나도 작품이 잘 보존된다. 또 브론즈나 철과 같은 금속 작업에 비해 형태를 만들기 쉽다. 전시에선 테라코타를 활용한 권진규의 작품 8점을 만날 수 있다. 권진규의 작업은 ‘소녀’ 등 인물상이 흔히 알려져 있지만 이번 전시에선 현실의 대상을 단순화한 경향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날개를 양옆으로 펼치고 있는 새, 활짝 피어 꽃술이 드러난 꽃의 모습 등을 발견할 수 있다. 새의 날개와 꽃술은 자연의 생명력을 은유한다. 테라코타 부조 위에 채색을 더해 양감을 강조하거나, 질감을 돋보이게 한 점도 돋보인다. 권진규는 1964년 서울 성북구 동선동에 있는 작업실의 가마를 개축하면서 테라코타 조각을 시작했다. 그리스와 마야, 고구려 등의 고대 조각 다수가 평면 위에 형태를 만드는 부조로 제작됐다는 것에 주목해, 부조 작품을 만들었다. ‘공포’(1965년), ‘가면’(1966년경) 같은 작품은 한국 전통문화에서 소재를 가져왔다. ‘공포’는 한국의 건축에서 처마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를 가리킨다. 권진규는 이 무렵 전국의 문화 유적을 답사하며 다양한 건축 부재를 사진과 드로잉으로 기록했다. 이를 기반으로 부조 작품을 제작한 것이다. ‘가면’에는 테라코타로 만든 가면이 작품 상단과 하단에 부착되어 있다. 가면 양옆으로 날개처럼 펼쳐진 형태를 붙여 현대적인 미감을 더한다. 12월 9일까지. 무료. 이 밖에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선 권진규의 작품을 영구 전시하는 공간이 6월 1일부터 마련돼 상설전 ‘권진규의 영원한 집’이 열리고 있다. 작가의 유족이 2021년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 141점을 기증한 데 따른 것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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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특급 작품’ 사랑한 이건희 컬렉션의 명품들

    고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은 ‘좋은 물건’을 우선으로 구매하고 전문가의 확인만 있으면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특급 작품이 있으면 컬렉션 전체의 위상이 올라간다’는 지론으로 컬렉션을 구성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컬렉션 중 1만1023건, 2만3000여 점이 2021년 정부에 기증됐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리며 전국적인 관심을 모은 미술품들에 관해 20여 년간 삼성문화재단에서 근무한 이종선 전 호암미술관 부관장이 쓴 책이다. 이 전 부관장은 1976년 호암미술관 설립 및 개관 운영을 위해 채용돼 전문연구원, 학예연구실장을 거쳐 부관장을 지냈다. 책은 크게 세 가지 부분, ‘이건희의 수집과 기증’ ‘이건희 수집품 명품 산책’ ‘이건희미술관의 건립과 개관 이후’로 나뉜다. 첫 부분에서는 저자가 호암미술관에 근무하며 지켜본 이건희·이병철의 예술품 수집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분량은 많지 않다. 삼성가의 미술품 수집에 관한 내용은 저자의 전작인 ‘리 컬렉션’에 더 자세히 담겨 있다. 이 책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이건희 수집품 명품 산책’이다. 이건희 컬렉션의 대표작 69점을 선정해 도판과 상세한 설명을 붙였다. 국보인 ‘백자 청화매죽문 항아리’ ‘백자 청화죽문 각병’,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 고미술부터 이상범, 김기창, 김환기, 유영국, 백남준 등 근현대미술 주요 작품에 대한 설명과 이에 얽힌 이야기를 볼 수 있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과 사이 트웜블리, 마크 로스코, 프랜시스 베이컨 등 서양 현대미술품에 대한 설명도 포함됐다. 여기에는 추사의 글씨를 이건희 회장 집무실에 걸어놓았다 이우환의 조언으로 치웠다는 등 일부 에피소드가 등장하지만, 작품 수집 과정이나 뒷이야기보다는 작품 자체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따라서 수집가로서 이건희의 면면보다는, 컬렉션 자체를 알고 싶은 독자에게 더 알맞은 책이다. 책 끝에는 삼성 일가가 수집한 국보·보물 목록도 정리돼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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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픽서 인공지능까지… 발전 기술 활용한 작품”

    모니터 속 화면에 구현한 그래픽, 스피커에서 나오는 사운드, 알아서 이미지를 생성해 주는 인공지능(AI)까지…. 예술가들이 최근 수십 년간 급속도로 발전한 기술을 활용해 어떤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뮤지엄 전시 2관에서 열리는 ‘럭스: 시적 해상도’전이다. 독일 작가 카르스텐 니콜라이의 ‘유니컬러’부터 지난해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식의 시각 효과를 담당한 중국 작가 차오위시(Cao Yuxi)의 ‘AI 산수화’ 등 미디어 아티스트 12팀의 현대미술 작품 16점을 선보인다. 2021년 DDP 외벽을 장식한 라이트 쇼 ‘서울라이트’를 연출했던 박제성 서울대 조소과 교수의 AI 작품 ‘기억색 (30803202)’도 전시된다. ‘명상적 풍경’, ‘새로운 숭고함’, ‘기술적 미니멀리즘’, ‘안식처’ 등 크게 4가지 주제로 나뉜 전시는 작품마다 별도의 방으로 구성돼 있다. 식물도감 속 모든 형태를 학습한 AI가 생성한 그림, 털복숭이의 생명체가 걸어가며 형체가 계속해서 바뀌는 영상 등 실사로 구성했다면 엄청난 시간과 공이 들었을 이미지가 쉽고 빠르게 만들어지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현대미술 전시 플랫폼 ‘숨엑스’와 뽀로로 제작사로 유명한 ‘오콘’이 공동 주최하는 전시라는 점도 독특하다. 이지윤 숨 대표는 “미디어 아트라는 딱딱한 말 대신 이들 작품이 해상도와 주파수의 틈과 경계를 넘나들며 승화된 한 편의 시라는 의미를 담아 ‘시적 해상도’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했다. 오콘은 애니메이션 제작을 넘어 현대 미술,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로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12월 31일까지. 5000∼2만 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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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년간 아시아 암각화 찾아다닌 ‘다큐 사진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강운구(82)가 전 세계 30여 곳의 암각화를 담은 결과물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 종로구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강운구 개인전 ‘암각화 또는 사진’이 내년 3월 17일까지 열린다. 전시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4개국과 러시아, 몽골, 중국, 한국 등 총 8개국에서 찍은 사진 중 150여 점을 선별했다. 전시 제목은 암각화가 수천∼수만 년 전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과도 같다는 의미를 담았다. 동아일보 출판국 사진부 기자를 지낸 강 작가는 50여 년 전 신문에서 울산 반구대 암각화 사진을 처음 접하고, 고래가 세로로 서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 것에 대한 궁금증을 가졌다. 답을 찾기 위해 조사에 나섰고, 2017년부터 한국과 문화 친연성(親緣性)이 있다고 여겨지는 중앙아시아의 파미르고원, 톈산산맥, 알타이산맥 등 여러 곳을 3년간 다녔다. 지하 1층 멀티홀에서는 8개국 암각화 중 서로 비슷한 형태를 지닌 작품을 계절별로 구성했다. 그 다음 지하 1층 복도형 전시실부터 1층 전시실까지는 국가별 암각화를 선보인다. 마지막 제2전시실에는 한국의 반구대와 천전리 암각화를 소개한다. 강 작가는 “답사 결과 고래가 서 있는 이유는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며 “여러 국가와 비교해 보니 반구대 암각화의 고유성이 더 깊이 다가왔다”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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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재춘에게 보라색이란… “고난을 이겨낸 색”

    한국화가 류재춘(52)의 개인전 ‘달빛이 흐르면 그림이 된다’가 서울 중구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열리고 있다. 크고 환한 달이 등장하는 그의 그림 54점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다. 작가가 대표작으로 꼽은 ‘한국의 달, 분홍’은 북한산을 오르내리며 느낀 감흥을 담은 그림이다. 작가는 2005년부터 북한산에 다니기 시작한 뒤부터 이곳의 풍경을 연작으로 그려왔다. 올해 그린 이 작품에는 처음으로 분홍색을 넣었다. 작가는 “분홍색이 색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이라고 생각해 시도했다”고 말했다. ‘월하’는 몽환적인 꿈의 세계를 보라색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구체적인 풍경을 직접적으로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장소에 가서 느끼는 마음의 풍경인 ‘심경(心景)’을 담은 것이다. 작가는 보라색에 대해 “힘들고 지쳐 있다가 이겨냈을 때 보이는 색”이라고 설명했다. 류 작가는 “세계가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희망과 위로를 주고 싶었다”며 “달을 보며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달을 주제로 삼았다”고 했다. 김노암 미술평론가는 “달은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인류 공통의 경험이자 신화적 주제로, 류재춘의 달은 한국화의 과거와 미래, 동양과 서양을 연결한다”고 평가했다. 전시가 열리는 순화동천은 출판사 한길사가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한길사는 이번 전시에 맞춰 류재춘의 미술 세계를 담은 동명의 책 ‘달빛이 흐르면 그림이 된다’를 출간했다. 작품 ‘월하’와 ‘묵산’ ‘자연의 초상’ 등 105점의 도판과 작가 노트, 비평, 인터뷰를 수록했다. 작가의 인생 이야기와 작품 해설도 담겼다. 전시는 내년 2월 1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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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나는 아름다움을 지키는 사람

    미술관에 가면 꼭 만나지만 의식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작품을 지키는 경비원이다. 이들은 관객을 감시하면서 배려도 하는 독특한 역할을 맡는다. 그림자처럼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관객의 동선을 피해주지만, 혹시나 손이 작품으로 향하지 않는지 ‘매의 눈’으로 지켜본다. 그런 경비원도 일에서 잠시 벗어나 그림을 감상하기도 한다. 이 책은 온종일 작품과 함께 있고 싶어 미술관 경비원이 된 사람이 썼다. 저자는 두 살 위인 형이 암 투병을 하다 스물일곱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큰 충격에 빠졌다. 슬픔을 떨칠 수 없던 그는 2008년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일자리”에 지원한다. 바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이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23만1000㎡(약 7만 평)나 되는 거대한 공간이다. 각 경비원은 매일 아침 지킬 구역을 배정받는다. 이집트, 중세 미술, 르네상스와 인상주의, 그리고 현대미술까지 수천 년에서 수만 년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작품에 얽힌 감정의 흔적을 저자는 만난다. 그는 미술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기록함과 동시에, 형을 보내며 느꼈던 감정을 교차해 보여준다. 아들을 떠나보내고 미술관 속 ‘피에타’ 그림 앞에서 펑펑 우는 엄마의 모습, 당연했던 일상이 형의 아픔을 함께하면서 성스럽게 변했던 기억들…. 결국 모든 것은 슬픔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과정이다. 저자는 그렇게 2018년까지 10년 동안 미술관에서 일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자신이 마비되는 것만 같을 때, 오롯이 혼자가 되어 몰입하는 경험을 책은 미술관을 매개로 보여준다. 그리고 크나큰 슬픔과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때 삶의 맨얼굴이 나타나며, 그것이 찬란하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드러낸다. 책은 지식에 앞서 예술의 기본적 역할을 돌아보게 만든다. 결국 인간과 삶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임을 말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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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을 떠나 보내고, 미술관 경비원이 됐다[영감 한 스푼]

    미술관에 가면 늘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온종일 작품을 지키고 서 있는 ‘지킴이’들입니다. 이분들은 관객이 작품에 너무 가까이 가지 않도록 보호하고 감시하는 역할도 하지만, 또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마치 그림자처럼 저의 동선을 피해 움직이기도 합니다. 관객이 없을 때면 조용히 작품 앞에 서서 감상하는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죠. 기분이 좋은 날이면 이분들에게 인사를 건네거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이런 ‘지킴이’의 시선에서 미술관의 풍경을 풀어낸 책이 나왔습니다. 패트릭 브링리가 쓰고 김희경, 조현주가 옮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최근 출간된 이 책을 보고 미술관에 가는 경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갑작스러운 형의 죽음, 미술관 경비원이 되다이 책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시작합니다.2008년 6월. 형이 세상을 떠나자 나는 내가 아는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일자리에 지원했다.열한 살 때와 달리 이번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생각지도 않으며 그곳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도착했다. 가슴이 벅차고 찢어지는 듯했다. 한동안은 그저 가만히 서 있고 싶었다.저자 브링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뉴요커’에 입사해 선망받는 사회생활을 시작합니다. 그에게는 두 살 많은 형 톰이 있었죠. 수학 천재로 불리는 형을 저자는 어릴 때부터 따르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 형이 스물일곱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슬픔에 잠긴 그는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하는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미술관 경비원이 되기로 결심합니다.총 13개의 챕터로 이뤄진 책은 브링리가 경비원으로 채용돼 출근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매일 아침 배정받은 구역으로 가서 온종일 전시관을 지키며 작품과 사람들을 지켜봅니다.7만 평이나 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전시된 작품만 300만 점이 넘고. 브링리는 구석기 시대부터 이집트, 중세와 르네상스, 인상주의 그리고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을 넘나듭니다.위대한 그림이 바위처럼 보일 때가 있다책의 매력은 미술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브링리라는 한 사람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작품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모든 것들은 옆으로 밀쳐두고, 나 혼자 오롯이 감각에 몰입해 보이는 것을 받아들이는 경험을 브링리의 서술에서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감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혼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 도시를 돌아 다녀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놀랍도록 몰입하게 되는 경험인지 알 것이다.가로등, 작은 물웅덩이, 다리, 교회, 1층에 난 창문으로 슬쩍 들여다보이는 광경들에 자신이 녹아서 스며드는 느낌말이다.살아 숨 쉬는 듯한 이국적인 디테일은 물론이고 심지어 날개를 퍼덕이는 평범한 비둘기마저 이상하리만치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거리를 걷는다.어딘가 시적이다.조심스럽게 미끄러지듯 거리를 누비면 마법은 깨어지지 않을 것이다.”분주하게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쉴 틈 없이 밀려드는 온갖 자극에 진정한 나는 마비되어버리는 것 같은 순간들을 벗어나 잠시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브링리는 형의 부재 앞에서 그런 경험을 찾아가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밀려오는 슬픔과 고통, 그것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마주합니다.어머니와 함께 미술관을 찾았던 에피소드에서 그러한 경험을 그는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미술사를 부전공했던 연극배우인 브링리의 어머니는 두 형제를 미술관에 데려간 뒤 흩어져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찾곤 했습니다. 형 톰을 떠나보내고 모자는 미술관에 갔고, 한참 뒤 브링리는 ‘피에타’ 앞 엄마를 발견합니다.어머니는 늘 잘 울었다. 결혼식에서나 영화관에서나 눈물을 흘리곤 하는 사람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어깨가 흔들리고 있었다.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가 심장이 부서지는 동시에 충만해져서 그렇게 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림이 어머니 안의 사랑을 깨워서 위안과 고통 둘 다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우리는 경배할 때 아름다움을 이해한다. ‘통곡’할 때 ‘삶은 고통이다’라는 오래된 격언에 담긴 지혜의 의미를 깨닫는다.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냉혹하고 직접적이며 가슴을 저미는 바위 같은 현실 말이다.”미술관에서 우리가 만나는 건 결국 자신작품 앞에서 혹은 그것을 보는 사람들, 혹은 동료 경비원들을 보면서 겪는 감정들을 브링리는 솔직하게 또 감성을 가득 담아 전달합니다. 그런 그를 보며 미술관에서 작품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데요.책에서 브링리가 설명한 작품 감상법을 소개합니다. 저 역시 가장 처음엔 이러한 방법으로 작품을 보려고 노력합니다.우선 작품에서 교과서를 쓰는 사람들이 솔깃할 만한 특이점을 찾아내려는 유혹을 버린다. 뚜렷한 특징을 찾으려 하면 나머지 부분을 무시하기 십상이다.고야가 그린 초상화가 아름다운 까닭은 그의 천재성도 있지만 색채와 형태, 인물의 얼굴, 물결처럼 굼실거리는 머리카락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예술과 만날 때 처음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자신의 눈에게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좋다’, ‘나쁘다’, ‘이건 바로크 시대 그림이다’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 이상적으로는 처음 1분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해선 안 된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처음엔 브링리의 말처럼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조금씩 그림에서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그것들을 차분히 받아들이고, 또다시 보면서 정리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 뒤 그 이야기를 돌아보면, 결국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도 반추할 수 있게 됩니다. 미술관에 가는 것은 ‘나’를 만나러 가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오는 것이죠.브링리는 그렇게 10년을 메트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했습니다. 그곳에서 수천~수만 년 전의 흔적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다양한 사람들, 각양각색의 배경에서 일하러 온 동료 경비원들을 받아들이며 그는 점차 슬픔을 정리하고 미술관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책은 그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무엇을 경험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한 번 브링리의 이야기로 만나보세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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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마는 억압받는 여인의 깃발”… 1세대 실험미술가 정강자 개인전

    1968년 5월 30일, 정강자 작가(1942∼2017)는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정찬승, 강국진 작가와 ‘투명풍선과 누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 퍼포먼스로 그는 ‘1세대 실험미술가’로 기록되지만, 당시엔 ‘퇴폐미술’이라며 손가락질을 받았다. 1970년 국립공보관에서 연 첫 개인전 ‘무체전(無體展)’은 사회 비판 요소가 있다며 강제로 철거당했다. 이후 정강자는 가족과 함께 싱가포르로 떠났다. 정강자는 싱가포르에서도 인도네시아 염색 기법인 ‘바틱’을 접목한 작품을 제작하는 등 꾸준히 작업을 해나갔다. 1980년대 초에는 귀국해 미술학원을 운영하면서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그림을 그렸다.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은 정강자의 1995∼2010년 작품 40점을 선보이는 개인전 ‘나를 다시 부른 것은 원시였다’를 다음 달 30일까지 연다. 전시 제목은 정강자가 일기에 적었던 문구다. 그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중남미,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남태평양 등을 2∼3개월씩 홀로 여행했고, 당시 봤던 이국적인 풍경과 인물을 나중에 화폭에 담았다. 갤러리 지하 1층에 전시된 ‘거미’, ‘뜨개질로 우주를’ 등에선 풍부한 원색과 상상력이 드러난다. 갤러리 1층에 전시된 1990년대 후반 작품에선 한복을 비롯한 전통 소재에 대한 관심을 볼 수 있다. ‘유한한 인생’에선 한복 치마가 산처럼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정강자는 한복 치마를 “수천 년을 남성우월주의의 지배에서 억압받은 우리 여인들의 깃발이며, 어머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라고 작가 노트에 적었다. 여성 예술가로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3, 4층엔 2000년대 작품이 전시됐다. 원색의 풍경을 배경으로 기하학적 도형으로 단순화된 인체 형상이 나타난다. ‘숲에서의 오수’, ‘숲속을 부유하는 여인’처럼 자연을 배경으로 내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작품들이다. 강소정 아라리오갤러리 디렉터는 “작고 직전까지 작업에 전념했던 정강자는 화면 속 무한한 자유의 공간에서 펼쳐낸 상상을 통해 스스로를 해방시키고자 했다”고 말했다.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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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남준 예술, 첨단 기술만 보여주려 했을까?[영감 한 스푼]

    1993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비엔날레 전시장 독일관에 백남준(1932∼2006)은 설치 작품 ‘시스틴 채플’을 선보입니다. 전시장 가운데에는 나무 선반 위에 브라운관(CRT) 프로젝터가 무더기로 쌓여 있고, 빈 벽과 천장으로 영상이 가득 메워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무겁고 다루기 까다로운 CRT 프로젝터를 들고 선반 위 높은 곳에서 수일간 씨름하던 설치 스태프들이 지치자, 백남준은 이들의 숙소로 찾아가 조식에 달걀 하나씩을 추가 주문해줬다고 전해집니다. 어렵게 선보인 이 작품은 2022년 울산시립미술관의 소장품이 되었고, 지금은 서울문화재단 기획전 ‘언폴드엑스’전이 열리는 서울 중구 옛 서울역사 ‘문화역서울284’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전시된 이 작품의 형태는 사뭇 다릅니다.백남준의 ‘현대판 시스틴 채플’먼저 1993년 ‘시스틴 채플’은 백남준이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독일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면서 제작한 작품입니다. 백남준이 첫 개인전을 연 곳이 바로 독일이었고, 작품 세계를 인정받아 개념미술가 한스 하케(87)와 공동으로 독일관에서 전시를 열었습니다. 백남준은 이곳에서 세계 미술사의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지는 ‘시스틴 채플’을 미디어 아트 버전으로 새롭게 해석합니다. 미켈란젤로가 천장화를 그린 시스틴 채플이 종교와 신화로 가득했다면, 백남준은 동시대 예술가와 팝스타로 전시장의 벽면과 천장을 채웁니다. 영상 속에는 요제프 보이스, 존 케이지, 머스 커닝햄, 샬럿 무어먼 등 동료 예술가는 물론이고 데이비드 보위, 재니스 조플린, 사카모토 류이치까지 등장합니다. 게다가 매우 빠른 영상 전환과 시끄러운 음악은 정적인 시스틴 채플과는 완전히 반대였죠. 미디어로 발달한 대중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백남준식 ‘현대판 시스틴 채플’이었습니다.나무는 철제로, CRT는 LCD로이번 문화역서울284에서 전시작의 흥미로운 점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이 작품의 외형이 1993년 버전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우선 1993년에 CRT 방식이었던 빔프로젝터는 액정표시장치(LCD) 빔프로젝터로 교체되었습니다. 또 이 프로젝터를 올렸던 나무 선반은 철제 비계가 되었죠. 영상과 음악의 내용은 같지만 그것을 작동하는 기계의 외관은 다릅니다. 이는 미디어 아트에 관해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줍니다. 지금의 형태는 어떻게 결정된 걸까. 출발은 2019년 영국 테이트 모던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백남준 회고전이었습니다. 이 전시 기획자들은 1993년 ‘시스틴 채플’을 설치했던 엔지니어, 백남준 에스테이트 관계자와 협의해 지금의 형태를 결정합니다. 우선 CRT 빔프로젝터는 더 이상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수리 기술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LCD를 선택했고, 구조물도 전시 공간에 맞춰 다르게 만들었습니다.기술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 인간테이트 모던 전시 큐레이터 발렌티나 라바글리아는 “백남준에게는 그것을 송출하는 기기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백남준은 생전 LCD 기술이 발전하자 CRT 대신 이 기술도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라바글리아의 분석은 백남준 예술 세계의 맥락에 비춰 봐도 합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백남준의 미디어 아트는 ‘최신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기술을 해체·활용해 새로운 의미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백남준 작품에는 텔레비전에 자석을 붙여 영상을 일그러뜨리고, 브라운관을 떼어내고 그 안에 촛불을 켜놓은 것도 있죠. 여기서 백남준은 텔레비전 같은 기술의 수동적인 대상이 되지 말고, 그것을 이용해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주체가 되라고 주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CRT냐 LCD냐를 두고 고민하는 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어떤 모양인지를 따지는 것 같습니다. 즉 백남준의 미디어 아트는 기술 자체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결국은 그것과 얽히게 되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메시지였다는 것이지요. 다만 미디어 아트 역시 시각 예술이기에 남는 고민은 있습니다. 어떤 조각 작품들은 브라운관이 주는 특유의 형태를 존중해야 하는 경우가 있죠. 또 CRT 영상 특유의 부드러운 느낌이 LCD에서는 너무 선명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면 큐레이터는 전 세계에 몇 명뿐인 CRT 기술자를 수소문하거나, 전국의 고물상을 뒤져 브라운관 모니터를 구해야 합니다. 테이트 모던에서도 CRT 모니터를 구하려 온라인 오픈마켓인 이베이까지 샅샅이 찾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회화가 가장 간단하고 훌륭한 미디어라는 생각도 듭니다. 비디오 기술은 지금은 너무나 익숙하지만 생겨난 지 100여 년이 지났을 뿐이고, 계속해서 그 방식이 바뀌니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백남준의 어떤 작품들은 ‘다다익선’처럼 매번 어떻게 유지해야 하느냐란 문제에 자주 부딪힙니다. 그러나 이런 점 때문에 여러 미술관의 큐레이터와 엔지니어들이 백남준의 작품을 각기 다르게 해석해 여러 가지 결과물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시스틴 채플’의 여러 버전을 찾아보며, 어떤 것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지 비교해 보세요. ‘언폴드엑스’전은 12월 13일까지 이어집니다.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금요일 오전 7시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하시면 이메일로 먼저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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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나무회 두 작가 신작 만나는 월하미술 ‘기억으로부터’展

    주름진 얼굴은 무심코 보면 고단하고 지친 것 같지만, 가까이 가면 화려한 색이 겹겹이 쌓여 있다. 오랫동안 지나온 시간 속에 얼굴이 마주했던 환희, 기쁜 순간들이 고스란히 기록된 것처럼 말이다. 서양 미술사를 벗어나 ‘한국인의 얼굴’을 그려온 권순철(79)의 작품 ‘아낙’이다.‘아낙’ 속 빛은 겪은 화려한 색이라면, 이 작품 옆에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빛이 나타난다. 곽수영(69)의 성당 연작 ‘Voyage Immobile’은 캔버스에 물감을 칠한 뒤 말리고 덧칠하는 과정을 반복한 다음, 그 물감을 거꾸로 긁어냈다. 이를 통해 고딕 성당 건물에 은은하게 비춰오는 빛을 묘사해낸다.프랑스 파리의 재불작가협회인 ‘소나무회’에서 활동한 두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획전 ‘기억으로부터’가 서울 종로구 월하미술에서 열린다. 전시는 권순철의 ‘아낙’과 곽수영의 성당 연작 등 20여 점을 1, 2층에서 선보인다. 월하미술은 소격동의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한 갤러리로 앞뜰에는 감나무가 있고, 2층 벽은 짙은 푸른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두 작가가 활동한 ‘소나무회’는 1991년 결성돼 1992년 파리 근교 이시레물리노의 옛 탱크정비공장을 기반으로 이어졌다. 이때 한인 예술가들이 주축이 되어 공장을 46개 작업실로 개조해 함께 작업하고 토론했다. 권순철 곽수영과 이배 등이 소나무회의 1세대 작가로 꼽히며 지금까지도 재불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다.월하미술을 운영하는 신영채 대표는 증조할아버지 대부터 미술 작품을 수집해 온 컬렉터다. 한국화인 운보 김기창부터 현대미술인 이우환까지 소장해온 가운데, 한국 근대 회화가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갤러리를 운영하겠다고 결심했다. 이는 한국 고전문학을 연구한 바탕도 작용했다. 신 대표는 “우리 고유문화와 현대 미술의 접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며 “한국인만이 느끼는 정서가 담긴 예술을 소개하겠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25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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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작가 유이치 개인전 ‘여행’… “자연과 인간의 관계 천착”

    아시아의 젊은 컬렉터들이 최근 주목하는 일본 작가 유이치 히라코(41)의 개인전 ‘여행’이 16일 서울 강서구 ‘스페이스K 서울’에서 개막했다. 나무 모양의 머리를 한 인간이 자주 등장하는 그의 작품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다. 이번 전시는 회화와 조각, 설치 등 작품 30여 점으로 구성됐다. 전시장 입구에선 작가의 초기 소품과 드로잉, 조각을 선보인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트리 맨’이 형성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트리 맨’은 일본 민속 설화의 나무 정령을 참고해 만든 것으로, 작가는 이 인물이 자화상이자 자연과 관계를 맺은 모든 사람의 초상이라고 말한다. 인물의 머리에 나무를 그려넣은 것은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자연을 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폭 10m, 높이 3m 대작 ‘여행’도 만날 수 있다. 4개로 분할된 화면에는 씨앗이 경계를 넘어 서로 다른 자연에 뿌리를 내려 번성하는 과정을 여행처럼 묘사했다. 마지막 장면에는 찌르레기 떼가 그려져 있다. 최근 일본 도심에서 자주 발견되는 새다. 작가는 “찌르레기는 인간과 공존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놓여 있는 곳에서 살아가는 것일 뿐”이라며 “인간 사회에서도 자연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중간적인 존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내년 2월 4일까지. 5000∼8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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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佛화가 루오 대표작 ‘미제레레’ 전남도립미술관 소장품 됐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루오(1871∼1958)의 대표작인 판화집 ‘미제레레’를 전남도립미술관이 소장하게 됐다. 19일 전남도립미술관에 따르면 미제레레는 올해 2월부터 소장 논의를 시작해 9개월간 프랑스 정부의 문화재 반출 심의를 거친 끝에 13일 미술관에 도착했다. 미제레레는 총 58점으로 구성된 판화집으로, 지난해 10월 6일부터 올해 1월 29일까지 미술관에서 열린 ‘인간의 고귀함을 지킨 화가, 조르주 루오’전에 전시됐다. 미술관이 구매한 미제레레는 루오가 살아 있을 때 직접 인쇄한 425개 에디션 중 16번째로 찍은 판화집으로, 루오 유족이 대대로 소장한 미공개 비매품이었다. 루오의 장손인 베르트랑 르 당테크 조르주 루오 재단 회장이 국공립미술관의 소장품이 된다는 취지에 공감해 작품을 보냈다고 한다. 미제레레는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영국 테이트미술관 등 해외 주요 미술관들이 소장하고 있다. 루오가 제1차 세계대전 중 그린 드로잉을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요청으로 동판화로 옮긴 미제레레는 작품성은 물론이고 출간에 얽힌 사연으로 유명하다. 작품 제목인 미제레레는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의미로, 전쟁의 비참함과 그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담았다. 정웅모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미술담당 신부는 “전쟁에서 모든 것이 파괴되고 무수한 사람이 생명을 잃은 참혹한 현실에서 외친 절규이자 기도”라고 설명했다. 루오가 전체 판화집을 완성한 것은 1927년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등으로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 20여 년이 걸렸다. 특히 볼라르가 갑작스레 사망한 후 유족이 작품을 돌려주려 하지 않아 소송을 했다. 루오는 1948년 발표된 판화집 서문에 “볼라르의 죽음, 독일의 점령, 소송으로 출간이 지연됐다. 나의 낙천적 성향에도 힘든 시간이었다. 내가 지상에서 사라지기 전 빛을 보게 돼 기쁘다”고 썼다. 전남도립미술관 루오전을 관람한 소설가 조정래는 미제레레를 보고 “루오는 인간이 가진 고통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라고 했다.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RM은 전시를 본 후 미제레레에 실린 작품 ‘마음이 고결할수록 목덜미는 덜 뻣뻣하다’의 제목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미제레레가 미술관 소장품이 되면서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기 수월하게 됐다.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장은 “미제레레는 미술사의 중요 작품이며 이중섭이 루오의 작품에 찬사를 보냈고 손상기는 비평가들에게 ‘동방의 루오’라고 불리는 등 루오는 한국 작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며 “내년 중 미제레레를 선보이는 전시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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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둔황 벽화 재해석해 화폭에 담아

    화가 김대열(71·사진) 초대전이 서울 종로구 한벽원미술관에서 21일까지 열린다. 월전미술문화재단이 주최하는 ‘김대열 수묵 언어―무상(無象)·유상(有象)’전에서는 수묵채색화인 ‘보현보살도’를 비롯해 선(禪)적 사유와 깨달음을 표현한 작품 39점을 선보인다. 김 작가는 직관을 통해 얻은 이미지를 빠른 붓놀림으로 표현한다. 한벽원미술관에 따르면 이런 방식은 종교화인 ‘선종화(禪宗畵)’나 문인화가가 느낌을 담은 ‘사의화(寫意畵)’에서 즐겨 사용하던 것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자신의 감성에 따라 형태의 유무, 수묵의 강약을 드러내고자 했다. 전시 제목을 ‘무상·유상’으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전시에 나오는 ‘보현보살도’, ‘문수보살도’ 등 불교화는 중국 둔황 벽화를 재해석한 것이다. 김 작가는 “수묵화에 객관적 사실을 그대로 묘사하기보다 나의 사고와 감정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 한다”며 “인간의 자아를 새롭게 이해하고 실현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수묵화와 깨달음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영재 미술평론가는 김 작가의 작품에 대해 “물길에 거침이 없듯 힘이 넘쳐흐르다 숨죽인 물의 잔잔한 흐름이 격변을 중화하는 동중정(動中靜)이 느껴진다”고 했다. 김 작가는 동국대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대만사범대에서 예술학 석사를 취득한 뒤 단국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동국대 미술학부 교수를 지냈다.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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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하학적 추상화, 한국 미술에도 100년 전 싹터

    한국에서 추상 미술이라고 하면 흔히 앵포르멜(1940, 50년대 유럽의 즉흥적 비정형 회화)이나 단색화가 떠오른다. 그러나 20세기 추상화의 출발로 여겨지는 피터르 몬드리안(1872∼1944)과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가 그린 기하학적 추상화는 우리 미술계에도 1920, 30년대부터 영향을 끼쳤다. 기하학적 추상의 역사를 돌아보는 전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16일 개막했다. 전시에 소개된 작가 가운데 유영국(1916∼2002)은 미국 뉴욕에서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 윤형근 색면 추상 최초 공개이번 전시에선 윤형근(1928∼2007)이 1969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 작가로 참가하며 출품한 ‘69-E8’이 처음 공개된다. 이 작품은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모습을 담은 사진에서만 확인됐을 뿐 그간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다 유족이 재작년 작업실을 정리하며 발견했고, 이번 전시를 계기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게 됐다. 마직물이나 한지에 먹색을 번지게 한 무채색의 대표작과 달리 이 작품은 강한 색채가 눈에 띈다. 전유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런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건축과 미술의 만남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윤형근도 김중업, 김수근 등 당대 대표적 건축가들과 교류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이처럼 기하학적 추상과 디자인·건축 등의 분야가 서로 주고받은 영향을 짚는다. 첫 번째 섹션 ‘새로움과 혁신, 근대의 감각’에서는 미술과 디자인, 문학까지 확장된 기하학적 추상의 사례를 살펴본다. 김환기의 ‘론도’(1938년)와 유영국의 ‘작품1(L24-39.5)’(1939년)을 시작으로 1930년대 단성사와 조선극장에서 제작한 영화 주보, 시사 종합지의 표지를 함께 전시해 비교해볼 수 있게 했다. 특히 시인 이상(1910∼1937)이 기하학적 구성으로 디자인한 잡지 ‘조선과 건축’과 시집 ‘기상도’의 표지도 볼 수 있다. 총독부 건축과 기사였던 이상은 미쓰코시 백화점 내외부의 기하학적 모습을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라고 시 ‘건축무한육면각체: AU MAGASIN DE NOUVEAUTES’에 표현하기도 했다. 이 밖에 1957년 한국 화가와 건축가, 디자이너가 결성한 ‘신조형파’의 활동상을 다룬 ‘한국의 바우하우스를 꿈꾸며, 신조형파’,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한 추상미술을 모은 ‘산과 달, 마음의 기하학’, 1960, 70년대를 다룬 ‘기하학적 추상의 시대’, 기하학적 추상을 오늘날 작가들이 신작으로 재해석한 ‘마름모-만화경’까지, 총 5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작가 47명의 작품 150여 점을 볼 수 있다. 내년 5월 19일까지. 2000원.● 유영국 뉴욕 첫 전시미국 뉴욕 페이스갤러리에서는 유영국의 해외 첫 개인전 ‘Mountain Within’이 10일(현지 시간) 개막했다. 산을 모티브로 한 작품 등 1960, 70년대 작품 17점을 선보이는 이 전시는 12월 23일까지 열린다. 아니 글림셔 페이스갤러리 회장이 유영국을 두고 ‘톱 클래스 화가’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페이스와 PKM갤러리, 유영국미술문화재단은 내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도 유영국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유영국의 아들 유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아버지가 1940년대 일본에서 귀국 후 해외 미술 동향을 접할 수 없어 선택한 것이 가장 변하지 않는 주제인 산”이라고 했다. 이어 “아버지가 산의 형태를 본질만 남기고 자신의 느낌을 색채로 입혔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러한 보편성이 해외로도 전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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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괴팍한 스타트업 같은 창작집단, 미스치프의 세계로

    에르메스 버킨백을 잘라 ‘버켄스탁’ 샌들로 만든다면?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회화 속 여러 개의 색점을 하나씩 잘라 따로 판다면? “신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외치는 창작 그룹 ‘미스치프(MSCHF)’의 그간 활동을 선보이는 전시 ‘MSCHF: NOTHING IS SACRED’가 10일 서울 종로구 대림미술관에서 개막했다. 미스치프가 만든 게임, 상품, 퍼포먼스 등 100여 점을 소개한다. 미스치프는 2019년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설립된 20여 명의 그룹이다. 구성원에는 예술가, 디자이너는 물론이고 개발자, 변호사도 포함돼 스타트업을 연상케 한다. 다만 이들이 무엇을 판매하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2주마다 웹사이트에 새로운 한정판 작품을 공개하며 온라인에서 화제와 논란을 일으켜왔다. 가장 시끄러운 소동을 만든 제품은 2021년 ‘나이키 에어맥스 97’을 커스텀 제작한 ‘사탄 신발’이다. 미스치프는 이때 팝스타 릴 나스 엑스와 협업해 에어솔에 사람의 피를 한 방울씩 넣은 ‘사탄 신발’ 666켤레를 제작, 판매했다. 신발이 논란이 되자 나이키가 ‘공식 협업이 아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이 신발이 시중에 유통되지 않도록 회수하는 조건으로 마무리됐다. 전시는 이 신발을 포함한 그간의 활동들을 크게 5개 부문으로 나누어 조명한다. 첫 번째 ‘아카이브’ 섹션은 미스치프가 발간한 매거진 8권을 디지털 버전으로 선보인다. 매거진에는 발표 상품, 이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 등이 자세하게 담겨 있다. 두 번째 ‘멀티플레이어’ 섹션에서는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여러 가지 게임이 등장한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숫자가 올라가거나,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만큼 포인트가 높아지는 등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게임이다. 세 번째 섹션 ‘모두를 위한 사기, 하나를 위한 사기’에서는 사회 구조를 풍자한 시도가, 네 번째 섹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외 다른 모든 것들은 마스터카드로’는 현대인의 물질적 소유와 소비 심리를 꼬집은 프로젝트들이 담겨 있다. 마지막 ‘신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섹션에서는 ‘사탄 신발’, ‘예수 신발’과 허스트의 회화를 조각낸 ‘잘린 점들’, 앤디 워홀의 판화 1점과 가품 999점을 섞어 판매한 ‘어쩌면 앤디 워홀의 ‘요정’ 진품’ 등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대림미술관이 2년 반 만에 선보이는 기획전이다. 이여운 전시디렉터는 “즉각적이고 재치 있게 사물과 대중문화를 건드려 이야기를 풀어내는 미스치프가 일상을 예술로 만들자는 미술관의 미션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내년 3월 31일까지. 3000∼1만7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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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발효 음식 누명 벗기기

    18세기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은 항해 전 모든 선원에게 매주 독일식 양배추 절임인 사워크라우트를 900g씩 먹도록 명령했다. 영국인에게 낯선 독일 음식을 권한 덴 이유가 있었다. 사워크라우트 한 접시에는 비타민C 약 150g이 들어 있어 수백 년간 많은 선원을 죽게 한 괴혈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됐다. 효모와 곰팡이, 박테리아 등 각종 미생물을 이용해 직접 만드는 발효식품은 20세기 들어 위험한 것으로 취급됐다. 이 무렵 공장에서 식품을 생산하는 것이 발달하면서 멸균 시설에서 베이킹파우더 같은 화학적 재료를 사용한 발효만이 안전하다는 인식이 굳어졌다. 음식·문화사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이런 문화가 발효식품의 다양한 맛과 정체성을 죽였다고 본다. 책은 와인과 맥주에서 출발해 수천 년간 인류 역사와 함께해 온 발효식품의 역사를 되짚는다. 19세기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나폴레옹 3세의 부탁으로 상한 와인을 조사하다 발효가 부패가 아닌 생식의 결과임을 알아내는 과정부터, 양치기가 깜빡하고 놓고 간 샌드위치에서 푸른곰팡이 치즈를 발견한 이야기, 한국의 김치와 독일의 사워크라우트 등 채소를 발효하는 다양한 방식 등 여러 시대와 공간을 아우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저자는 발효 식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고자 한다. 물론 과정이 잘못될 경우 발효 식품은 자칫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두려움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영양과 효과를 포기하지 말고, 현명하게 알아나가자고 제안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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