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백신 맞았더니 치매 위험↓…생물학적 근거는 무엇?[노화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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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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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백신과 치매 위험 감소의 연관성을 다룬 관점 분석 논문이 나왔다.

학술지 ‘노화 임상·실험 연구’(Aging Clinical and Experimental Research)에 논문을 발표한 이탈리아 연구진은 매년 맞는 계절성 독감 예방접종이 고령층의 치매 발병 위험을 낮추거나 발현 시점을 늦출 수 있는 실용적이고 접근성 높은 예방 전략이 될 수 있다며, 그 근거가 되는 생물학적 기전에 대한 가설을 제시했다.

이번 분석 논문은 이탈리아 비타-살루테 산 라파엘레 대학교의 테뉴어 트랙(종신교수 임용 과정) 조교수인 로렌초 블란디(Lorenzo Blandi) 박사와 피렌체 대학교의 공중보건 전문의 마르코 델 리치오(Marco Del Riccio)가 썼다.

뇌과학·심리학 분야를 주로 다루는 과학 전문 매체 사이포스트(PsyPost)에 따르면, 두 연구자는 독감 백신이 중증 심혈관 사건의 위험을 낮추고 전신 염증을 줄임으로써, 호흡기 질환 예방을 넘어 뇌 건강을 보호하는 효과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의 근거는 독감이 단순한 호흡기 질환이 아니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독감은 전신 감염으로, 몸 전체에 심각한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다. 저자들은 독감에 걸린 직후 며칠 동안 심근경색과 뇌졸중 위험이 심하게 증가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러한 혈관 사건은 뇌 손상을 누적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두 연구자는 독감 백신 접종과 인지 기능 개선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기존 연구들을 체계적으로 검토해 “바이러스성 손상을 예방하는 것이 고령층의 치매 위험 경로를 바꿀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두 연구자는 독감 예방접종과 치매 감소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4개의 주요 역학 연구를 소개했다.

첫 번째 근거는 2023년 ‘Journal of Alzheimer’s Disease’에 실린 메타분석이다. 약 209만 명(평균 연령 62~76세)을 대상으로 4~13년간 추적관찰 한 연구들을 종합했다. 그 결과 독감 예방접종을 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치매 발생 위험이 31% 낮았다.

두 번째는 2022년 ‘Journal of Alzheimer’s Disease’에 게재된 보험 청구 자료 활용 코호트 연구였다. 기저 특성이 유사한 65세 이상 고령자 93만 5887쌍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독감 예방접종을 받은 고령자들은 약 4년의 추적 기간에 알츠하이머병(치매의 가장 흔한 유형) 발생 위험이 40% 낮았으며, 절대 위험 감소는 3.4%로 계산됐다. 이는 약 29명이 예방접종을 받으면 1건의 알츠하이머병 발생을 예방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세 번째는 2021년 ‘Vaccine’에 발표한 연구로, 미국 재향군인 보건국의 자료를 활용했다. 평균 연령 75.5세, 여성 3.8%였다. 연구 결과, 예방접종을 받은 고령자의 치매 위험에 대한 위험비(hazard ratio)는 0.86으로, 약 14%의 위험 감소를 의미했다. 또한 여러 해에 걸쳐 6회 이상 반복적으로 백신을 맞은 사람들에서 보호 효과가 더 강하게 나타나는 ‘용량-반응 관계(dose-response relationship)’도 확인됐다.

네 번째는 영국 바이오뱅크 자료를 활용한 분석으로, 네이처 자매지 ‘npj Vaccines’에 실렸다. 60세 이상 남녀 7만 938명을 평균 12.2년 추적관찰 하는 동안 백신 미접종자 3만 2610명 중 1806명, 백신 접종자 3만 8328명 중 281명이 치매 진단을 받았다. 백신 접종자는 모든 원인의 치매 위험이 감소했으며(위험비 0.83), 특히 혈관성 치매 위험 감소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위험비 0.58). 이 연구 역시 예방접종을 반복적으로 받을수록 인지 기능 보호 효과가 커지는 경향을 보였다. 위험비 0.83이란 백신 접종군의 치매 위험이 비 접종군의 0.83배, 즉 상대적으로 약 17% 낮았다는 뜻이다.

두 연구자는 이러한 보호 효과를 설명할 수 있는 여러 생물학적 기전을 제시했다. 핵심 경로는 혈관 손상 예방이다. 독감 감염은 강력한 염증 반응과 혈액 응고를 촉발한다.

연구에 따르면 독감에 걸린 뒤 첫 1주일 동안 급성 심근경색 위험이 최대 6배까지 증가할 수 있다. 독감을 예방함으로써 백신은 이러한 혈관성 공격을 막을 가능성이 크다. 혈관 건강은 곧 뇌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을 피하는 것은 인지 예비력(cognitive reserve)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반복적인 미세 뇌졸중이나 뇌 혈류 감소의 누적 부담은 인지 저하의 주요 예측 인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혈관 보호 외에도 저자들은 신경 염증(neuroinflammation)의 역할을 언급했다. 독감으로 인한 전신 염증은 신경계로 전달될 수 있는데, 예방접종이 이러한 염증 폭증을 완화할 수 있다고 저자들은 설명했다. 또한 백신이 면역 체계를 더욱 효율적으로 반응하도록 ‘훈련’하는 ‘훈련된 면역(trained immunity)’ 가설도 언급됐다. 이는 특정 병원체에 대한 면역 기억이 아니라, 선천면역 체계가 이후의 자극에 보다 효율적이고 균형있게 반응하도록 기능적으로 재조정된다는 개념이다.이러한 면역 반응의 변화가 전신 염증 반응의 과도한 활성화를 억제함으로써, 뇌에 대한 비특이적 염증 손상을 줄일 수 있다는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두 연구자는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고용량 또는 면역증강 백신을 우선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이러한 백신은 노화로 인해 약해진 면역 반응을 보완하도록 설계됐다. 또한 심장이나 폐 질환으로 입원했던 고령 환자가 퇴원할 때 예방접종을 기본치료의 일환으로 받게 할 것을 제안했다.

저자들은 연구의 한계도 인정했다. 근거가 된 연구 대부분이 관찰 연구로, 인과 관계를 입증할 순 없다. 또한 예방접종을 받은 사람들이 평소 건강한 생활 습관을 지닐 가능성이 있고, 이런 사람들이 연구 대상에 대거 포함돼 실제 약물 효과보다 건강 결과가 더 좋아 보이게 되는 ‘건강한 피험자 편향’ 가능성도 언급했다.

한편, 이번 논문이 다룬 근거는 대부분 6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관찰 연구에 기반한다. 중년층에서의 예방 효과는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으며, 이를 확인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65세부터 독감 무료 예방접종 대상이다.

관련 연구논문 주소: https://doi.org/10.1007/s40520-026-03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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