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배트맨 포진 ‘100년 워너’… OTT 공룡 넷플이 삼킬 판[글로벌 포커스]

  • 동아일보

‘WBD 인수전’ 선두로 등장한 넷플릭스
극장-TV 시대 저물며 매물 나온 ‘워너’
핵심 IP 확보 노리는 ‘넷플릭스’ 눈독
콘텐츠 점유율 늘려 구독자 정체 극복… 독점 규제-업계 반발 등 난관은 있어

영화 ‘해리 포터’, ‘배트맨’과 TV 시리즈 ‘프렌즈’, ‘왕좌의 게임’….

세계적으로 팬덤이 있는 이 작품들은 모두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WBD)가 소유한 지식재산권(IP)이다. 1923년 설립돼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인 WBD가 매물로 나온 가운데, 세계 최대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인 넷플릭스가 유력한 인수 협상자로 등장했다는 소식에 글로벌 미디어 업계가 요동치고 있다.

넷플릭스의 WBD 인수는 아직은 조건부 계약 단계지만, 성사될 경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극장 중심 영화 산업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무려 720억 달러(약 104조 원) 규모의 이번 거래를 통해 넷플릭스는 WBD가 갖고 있는 IP를 흡수해 ‘할리우드의 메이저’로 도약하려는 꿈을 꾸고 있다. WBD의 OTT 서비스인 HBO맥스 구독자도 품을 수 있는 건 덤이다.

● ‘알바니아 군대’의 반격

2010년 아직은 신생이던 넷플릭스가 DVD 우편 대여 서비스에서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전환하던 무렵의 일이다. 당시 타임워너(현 WBD)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뷰커스는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넷플릭스가 할리우드를 위협할 것 같으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알바니아 군대가 세계를 정복할 것 같은가?”

미국인들에게 유럽의 영향력 없는 국가로 여겨졌던 알바니아에 넷플릭스를 빗댄 차별적 발언이었다. 당시 대부분이 케이블TV로 영화와 드라마를 시청했고, 그 중심에 타임워너가 있었다. 이 발언이 공개된 뒤 넷플릭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회의에서 알바니아 국기가 그려진 모자를 직원들에게 배포하며 유머로 대응했다. 그런데 그 ‘알바니아 군대’가 WBD의 코앞까지 다가와 성문을 열고 들어가기 직전인 상황이 벌어졌다.

워너브러더스는 1923년 설립된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스튜디오다. 1927년 최초의 유성 영화인 ‘재즈 싱어’를 만들어내며 무성 영화 시대를 끝낸 회사다. 1940년대 ‘루니툰스’로 애니메이션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1950년대 TV에 진출했다. 1989년 타임사(社)와 합병해 당시 세계 최대 미디어 그룹인 ‘타임워너’가 됐다.

2000년대에도 영화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 ‘다크 나이트’, ‘인셉션’ 등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프랜차이즈 콘텐츠로 지위를 굳건히 했다. TV에서도 ‘프렌즈’, ‘왕좌의 게임’과 DC코믹스 시리즈(배트맨, 슈퍼맨 등)를 성공시켰다.

하지만 2016년 AT&T에 인수돼 워너미디어로 재편된 뒤 2020년 OTT 확산 추세에 맞춰 HBO맥스를 론칭했으나 팬데믹 등을 겪으며 고전해 왔다. 2022년엔 디스커버리와 합병하며 WBD가 됐지만, 케이블 구독자의 이탈과 박스 오피스 부진 등의 악재가 이어졌다. 결국 부채가 쌓이고 주가도 폭락하며 최근 매물로 나왔다.

● OTT 전쟁에 마침표 찍나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WBD 매각은 6월 9일(현지 시간) 데이비드 재슬러브 회장이 케이블(TNT, CNN, 디스커버리)과 스튜디오·스트리밍(워너브러더스, HBO, DC) 분할 계획을 발표하며 시작됐다. 10월 초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 일가가 600억 달러(주당 24달러)를 제안했으나 거부당하자, 10월 말부터 넷플릭스가 비공식적으로 인수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1월 1, 2차 입찰을 거쳐 주당 28달러를 제시한 넷플릭스가 인수의 선두주자로 부상했고, 12월 5일 독점 협상에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넷플릭스는 WBD 인수를 통해 콘텐츠 강화와 구독자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최근 미 시장에서 디즈니+, 아마존 프라임 등이 ‘마블’이나 ‘스타워즈’ 같은 강력한 IP를 내세운 전략을 펴면서 넷플릭스는 구독자 확충에 정체를 겪어 왔다. 이런 상황을 WBD가 갖고 있는 HBO맥스의 1억2800만 명 구독자와 ‘해리 포터’, ‘배트맨’, ‘왕좌의 게임’ 등 핵심 IP를 흡수해 극복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번 인수가 성사되면 넷플릭스는 HBO맥스를 포함한 미국 내 구독자가 약 4억2800만 명으로, 점유율이 4할에 육박하며 압도적 1위를 굳히게 된다. 포브스는 “스트리밍 전쟁에 종결부를 찍을 것”이라고 했다.

변수는 남아있다. 넷플릭스와의 입찰 경쟁에서 밀렸던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는 인수 금액을 1080억 달러로 높이며 인수전 2라운드에 돌입했다. CNBC에 따르면 파라마운트는 “엘리슨이 인수 제안을 위한 금융 404억 달러와 파라마운트를 상대로 제기되는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개인 보증을 제공하기로 했으며, 거래가 진행되는 동안 가문 신탁을 철회하거나 자산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반독점 악몽이 벌어지나”

넷플릭스의 WBD 인수 소식은 곧장 엄청난 논란으로도 이어졌다. 미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WBD 인수를 “반독점 악몽(anti-monopoly nightmare)”으로 규정한 뒤 “넷플릭스-워너 결합은 스트리밍 시장의 절반을 장악하게 돼 구독료 인상, 콘텐츠 선택권 축소 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공화당의 마이크 리 상원의원도 “반독점 규제와 관련해 많은 문제(red flag)가 있어 보인다”고 언급했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폭스뉴스에 “넷플릭스 시장 점유율이 크게 상승해 반독점 규제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할리우드 노조 등 창작자 집단의 반발도 거세다. 미국작가조합(WGA)은 성명을 내고 “일자리 감소, 임금 하락, 콘텐츠 다양성 저하를 초래하는 이 합병을 차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감독조합(DGA)도 “넷플릭스와 긴급회의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으며, 미국배우조합(SAG-AFTRA) 역시 “플랫폼 독점 강화로 협상력이 약화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번 인수가 가뜩이나 하향세인 영화관 산업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넷플릭스가 WBD를 인수한 뒤 극장용 영화 제작을 줄일 수 있고, 제작하는 영화도 OTT 가입자 확대를 위한 ‘미끼용’이 될 수 있단 추측이 나오는 탓이다.

영화관 단체인 ‘시네마 유나이티드’의 마이클 올리리 회장은 “넷플릭스의 WBD 인수는 극장 생태계를 위협하는 전례 없는 일”이라며 “대형 영화관은 물론이고 작은 지역의 단관 스크린이 있는 영화관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넷플릭스는 이런 우려에 대해 “‘더 배트맨 파트2’ 등의 작품은 극장 개봉을 유지할 것이며, 미국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강화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워너브러더스 인수 규제 심사는 워너브러더스 주주총회 이후인 내년 1월 8일경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와 유럽연합(EU) 규제 당국인 경쟁총국(DG COMP)의 독점에 관한 본격 심사는 1년에서 1년 6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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