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나는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을 돌봤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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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의 치과의사/벤저민 제이콥스 지음·김영진 옮김/424쪽·1만8000원·서해문집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만큼 수없이 말해지는 이야기가 있을까. ‘안네의 일기’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이야기는 쉼 없이 나왔지만 여전히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은 더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이야기도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쉽게 잊혀져선 안 되기에.

저자는 평범한 치과의사였다. 하지만 아우슈비츠에 갇힌 이후엔 더 이상 평범하지 못했다. 1941년 5월 5일 나치에 끌려간 뒤 1945년 5월 3일 해방을 맞기까지 4년간 ‘아우슈비츠의 치과의사’로 살았다. 유대인이자 141129번 수용자인 저자는 천천히 마음속 깊이 숨겨놓았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아우슈비츠는 단순히 유대인을 죽이는 공간이 아니었다. 유대인에게 노동력을 짜내려면 가능한 한 건강한 상태로 관리돼야 했다. 저자는 나치의 강요에 의해 그 역할을 수행했다. 붕대, 진통제를 가지고 성한 곳 없는 유대인들의 몸을 돌봐야 했다. 나치 장교들 역시 치료해야 했다. 더 필요한 수용자였기 때문에 ‘특혜’도 받았다. 더 많은 음식을 배식 받았고, 노동은 최소한만 했다. 그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렸다.

풀려난 후에도 저자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여전히 과거의 기억에 몸서리치고 분노하듯, 저자 역시 거대한 비극의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기억을 꺼내는 일은 물론 어렵다. 저자는 50년이 지난 1995년에서야 이 회고록을 냈다. 9년 후인 2004년 1월 조용히 숨을 거뒀다.

이야기를 털어놓은 뒤에도 저자는 행복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 책에서 가장 덜 중요한 사람”이라는 고백은 여전히 그늘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진실을 제대로 남기기 위해선 써야 했다. “(아우슈비츠의) 화장터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수많은 관광객이 그곳에서 수백만 명이 살해당했다고 적힌 안내문을 읽고 있었다. 그것은 진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아우슈비츠의 치과의사#벤저민 제이콥스#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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