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에 흔들린 천년고도 ‘아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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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문화계 오樂가樂]문화재-학술부문

9월 경북 경주시 강진 직후 시민들이 첨성대를 둘러보고 있다. 첨성대는 이번 지진으로 인해 중심축이 20mm가량 기울었다. 동아일보DB
9월 경북 경주시 강진 직후 시민들이 첨성대를 둘러보고 있다. 첨성대는 이번 지진으로 인해 중심축이 20mm가량 기울었다. 동아일보DB
 “지진에 암각화 보존 대책 실패, 불법 공사로 인한 문화재 파괴까지…. 올해는 한마디로 문화재 수난의 해였다.”

 21일 한 문화재계 인사가 2016년을 짧게 요약한 말이다. 문화재 보존과 계승에 바람 잘 날 없었지만, 올해는 유독 자연재해와 인재가 겹쳐 문화재 파괴가 심각했다. 학계는 고대사에 이어 대한민국 건국 시기 논란에 휩쓸렸다.



 9월 12일 발생한 규모 5.8의 경북 경주 강진은 신라 고도(古都)의 빛나는 문화유산을 한순간에 위기로 내몰았다. 수많은 고택의 기와와 담장이 무너졌고, 다보탑은 일제강점기에 수리한 난간석이 내려앉는 피해를 입었다. 특히 첨성대의 중심축이 20년 치에 해당하는 20mm나 기울었다. 지진 전부터 첨성대는 북쪽 지반이 침하되면서 중심축이 매년 평균 1mm씩 북쪽으로 기울고 있다. 꼭대기에 놓인 정자석(井字石)도 9월 12일 50mm에 이어 19일 여진으로 다시 38mm 이동했다.

 이로 인해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들이 한밤에 첨성대로 급파되는 비상 상황이 연출됐다. 다행히 “첨성대는 당장 붕괴될 수준은 아니다”라는 진단 결과가 발표됐지만 첨성대의 구조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해체 수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돼 논란을 일으켰다. 결국 해체는 첨성대의 원형을 훼손시킬 것이라는 지적에 따라 해체 수리 방안은 유야무야됐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 대책이 3년간 28억 원의 국가 예산만 낭비한 채 실패로 끝난 것도 큰 문제였다. 특히 가변형 임시 물막이(키네틱 댐) 모형 검증 실험에 청와대와 정치권이 개입해 “실현 불가능한 방안”이라는 전문가 의견이 묵살된 사실이 동아일보 단독 보도로 알려졌다.

 불법 공사로 중요한 유적들이 파괴되는 사건도 잇달았다. 올 4월 국가 사적 제6호인 경주 황룡사지(皇龍寺址)에서 불법 공사로 인해 8세기 통일신라시대 건물과 도로, 수로 유적이 한꺼번에 파괴된 사실이 본보 보도로 드러났다. 이어 충남 부여군 세도면에서 발견된 기원전 2세기 토광묘(土壙墓·수직으로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매장하는 무덤)가 불법 공사로 90%나 파괴된 사실도 7월 알려졌다.

 광화문 현판의 원래 색깔이 지금과 달리 검은 바탕에 흰색이나 금색 글씨였음을 보여주는 사진이 새로 발견되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4월 현판 색상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지만, 예산 문제로 색상 검증 실험은 내년에 진행키로 했다.

 학술 분야에서는 강단-재야, 주류-비주류 사학자 사이에 한군현 위치 등 고대사 논쟁이 뜨거웠다. 지난해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위의 동북아역사지도 비판을 계기로 불붙은 이 논쟁은 올해 양측이 전열을 정비하며 한층 달아올랐다. 재야 사학계는 6월 ‘미래로 가는 바른 역사 협의회’를 구성했고, 주류 사학계는 계간지 ‘역사비평’ 2016년 봄, 여름, 겨울호에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이라는 연속 기획을 게재해 반격에 나섰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도학적 미비’를 이유로 8년간 제작된 동북아역사지도를 6월 ‘출판 불가’ 결정하고 다시 만들기로 했다.

 대한민국 건국 시기 논란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1948. 8. 15)”고 표현한 국정 한국사 교과서 현장 검토본 공개로 가열됐다. 1919년 시작돼 1948년 완결된 일련의 건국 과정을 드러냈다는 의견과 임시정부 역사를 부정하는 서술이라는 견해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김상운 sukim@donga.com·조종엽기자  
#지진#첨성대#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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