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차 한잔]‘이미지로 읽는 중화인민공화국’ 유영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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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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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표어 통한 시민 통제 과연 중국만의 이야기일까

애국애교 단결전진 분투노력 공중도덕 상부상조 문명…. 2008년 중국 광저우 한 대학 정문 앞의 입간판에 쓰인 단어들이다. 중국 어디를 가도 이와 같은 계몽적인 내용의 구호와 표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홍콩에서 유학하던 1990년대, 기차로 30∼40분 거리였던 중국 선전(深(수,천))으로 책을 사러 자주 갔었어요. 그때마다 온 거리에 뒤덮인 표어를 보고 ‘중화인민표어공화국’이란 단어를 떠올렸죠.” 중국 곳곳에 있는 표어 등을 사진에 담아 ‘이미지로 읽는 중화인민공화국’(소명출판)을 펴낸 유영하 백석대 교수는 “그때 언젠가 중국의 표어로 논문을 쓰거나 책을 펴내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책에 실린 200여 장의 표어와 구호 사진은 유 교수가 2008년과 2009년 광저우(廣州)와 베이징(北京)을 방문했을 때 집중적으로 촬영했다. 외신 기자들이 내부 문서를 유출하려 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던 터라 ‘이렇게 찍어도 될까’ 하고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기차 안에서 사진을 찍다가 승무원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뭐 하는 사람이냐고 꼬치꼬치 묻기에, 인테리어 사업가라고 둘러댄 적도 있어요.”

표어는 사회를 대변한다. 국방과 애국을 강조하는 중국의 구호 이면에는 서구 열강의 침탈을 받았던 과거가, 신분증을 위조해 준다는 광고 등에서는 무한경쟁에 들어선 사회의 모습이 녹아 있다. “사람의 옷과 표정을 보면 그 사람의 내면을 짐작할 수 있듯, 구호나 이미지 등 겉을 보면 그 사회의 내면을 알 수 있습니다.”

‘문명사회’와 같은 거대담론부터 ‘함부로 버리거나 뱉지 말자’와 같은 소소한 사항에 이르기까지 중국에는 그야말로 구호와 표어가 넘친다. “인간의 행동을 유도하고 통제하는 표어가 넘쳐나는데 자유가 있을 수 없지요.” ‘표어와 구호만이 진리이니 무조건 따르라’는 경고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더 나아가 “국가가 시민들을 선도하고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구호를 내세우는 국가는 잘하고 있는데 시민들이 깨닫지 않아 국가 발전에 저해가 된다는 인상을 준다고 그는 덧붙였다.

“우리나라도 예전엔 반공, 방첩, 노약자 우대 식의 강력한 구호가 많이 있었죠. 오늘날엔 표현이 부드러워졌지만 여전히 G20 회의 등을 준비하면서 ‘공공질서를 지키자’는 공익광고가 나와요. 우리도 표어를 통한 통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거죠.”

이달 4만 발의 불꽃을 쏘며 광저우 아시아경기가 화려하게 개막했다. 이 책 곳곳에서도 ‘문명어를 사용하고, 문명의 길로 가고, 문명인이 되고, 문명도시를 창건하다’는 구호로 뒤덮인 광저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유 교수는 “화려하고 자신감 넘치는 개막식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통제되고 ‘계몽’을 강요당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표어만 난무하다 보면 도리어 그 내용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벌금과 같은 강제적 수단으로 시민들을 압박하게 된다고 말했다. “법과 규정이 투명하게 지켜지고 사회적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순화된다면 표어나 구호는 필요 없어질 겁니다. 그것이 중국이 진정 근대화되는 방법입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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